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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설교 : 하나님이 쉬지 못 하게 하라! (사 62;7)

by 【고동엽】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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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쉬지 못 하게 하라! (사 62;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 62;7)

신 현균 목사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 그 분이 목회하시는 성민 교회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신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 옛 속담에 빌려온 소는 싫컷 부리다가 갖다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 목사님 우리 교회 오신 김에 두 가지를 부탁드립니다. 내일 낮 특강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온 교인들 안수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듣고 온 성도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래서 다른 집회와 달리 쉬지 못 하고 일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으로 하나님이 쉬시지 못 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여 주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아무 거만한 재판관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아주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과부는 그 재판관에게 자주 가서 말했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그러나 재판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찾아가서 쉬지 못 하게 졸라 댔습니다. 재판관이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같이 과부는 재판장을 쉬지 못 하게 졸랐습니다. 드디어 들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악한 재판관도 쉬지 못 하게 졸라 대면 들어 주는 데 하물며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졸라대면 들어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졸라대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졸라댈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가요?
1.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향하여 4가지로 표현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1) 너는 내 면류관이다.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3)

면류관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를 최고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 만물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놀라운 존재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면류관이라고 말씀하셨으면 그런 것입니다. 그 분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외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면륙관이다>

사도 바울이 가장 사랑했던 교회는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이 구구절절 사랑과 애정이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위로와 평안 넘치는 말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날도 빌립보서를 읽으면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빌립보서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고 포곤하게 하여 주는 책입니다.
그런데그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빌 4:1) 빌립보 교회교인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이 최고 애정을 표현한 말이 나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성경에서 최고 사랑을 나타내는 말은 <나의 면류관>이라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면류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졸라 댈 수가 있습니다.

(2) 너는 내 헵시바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4)

헵시바란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나의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그 것만 보면 기뻐지는 것이 헵시바입니다. 나는 목회하면서 그것만 보면 기뻐지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성막책만 한 방 가득차 있는 방에 들어가서 그 책만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전 세계를 돌면서 책방에 가서 뒤져 모은 책들입니다. 뉴욕 책방에 가서는 아예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한 권 한 권 뒤진 적도 있습니다. 덴막에 가서도 다른 목사님들은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길 때 나는 헌 기독교 책방으로 달려가 주어진 시간을 온통 고서 성막 책을 찾는 데 보냈습니다. 시간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 책들만 보면 나는 외칩니다.
<오! 너는 나의 헵시바다>
그리고 또 보기만 하면 기뻐지는 것이 또 하나있습니다. 주일 낮 예배 드리려고 강대상에 올라가서 우리 성도님들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일대일로 만나지는 못 하여도 다 한꺼번에 보는 우리 갈보리의 식구들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나는 혼자 외치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나의 헵시바입니다>
만일 아들이 없던 집에 아들을 낳고 나면 그 아들을 보기만 하여도 기쁠 것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기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살에 아들 하나 이삭을 낳고 났을 때 얼마나 기뻤을 가요? 아브라함은 밤낮으로 아들 곁에서 외쳤을 것입니다.
<이삭아! 너는 내 헵시바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보면 <너는 내 헵시바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헵시바입니까? 무엇을 보면 그렇게 기뻐집니까?

(3) 너는 내 쁄라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4)

쁄라란 <나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헵시바가 사람을 향한 애정이라면 쁄라는 땅을 향한 애정입니다. 네 땅을 쁄라 사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땅을 축복된 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땅에서 사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헵시바가 사는 땅에 쁄라입니다.
쁄라에서 사는 사람이 헵시바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땅이 쁄라이고 쁄라에서 지내는 여러분이 헵시바입니다.
헵시바와 쁄라는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졸라 댈 수 있습니다.

(4) 너는 나의 신부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5)

하나님을 우리를 신부같이 여기신다고 이사야 선지자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스바냐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

신랑에게 가장 귀중한 존재는 신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신부같이 여겨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졸라 댈 수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면류관같이, 헵시바같이, 쁄라같이, 신부같이 사랑하여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매달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사 62;1)

우리가 하나님을 쉬지 못 하시게 졸라 대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스스로 쉬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으면 그렇게 하십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쉬시지 못 하게 졸라댈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인상깊게 본 사진이 한 장 생생합니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국무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온 세계에게 영향을 주는 결정을 하는 국무회의입니다. 그런데 회의장 책상 밑에 한 조그만 아이가 들어가서 케네디 대통령 다리를 잡아 다니는 사진입니다. 감히 국무회의장에 들어가서 대통령 다리는 잡아 다니며 노는 소년이 누구일가요? 대통령 아들입니다.
누구도 말리지 않습니다. 말리지 못 합니다. 대통령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쉬시지 못 하게 매달려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으면 그렇게 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하신다면 하십니다.
콩나물 장수에게 장관을 시켜 달라고 부탁할 수 없습니다. 200원을 깍아 달라고 부탁할 수는 있습니다. 콩나물 장수는 200원을 깍아 줄 능력은 있어도 장관을 시킬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장관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쉬지 못 하게 맬리면 그 분은 그렇게 하실 수 있기에 그 분에게 매달려야 합니다.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청년이 약혼을 하고 장사하러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한 바퀴 두루 돌아서 올 테니까 돌아온 다음에 결혼식을 올립시다. 돈을 많이 벌어 오겠습니다.>
둘이는 굳게 약속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장사하러 떠난 지 얼마 후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꼭 돌아가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겠노라고 약속하는 사연의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편지를 쓸 수 없는 곳을 돌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편지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청년이 10년만에 돌아와 보니 약혼자는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고맙고 반가워서 청년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고 10년 동안이나 나를 기다릴 수 있었소?>
약혼녀는 10년 전에 받았던 낡아빠진 편지 한 통을 꺼내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여기에 ‘꼭 돌아가서’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 말을 믿고 위로를 받으며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하면서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쉬시지 못 하게 들들 볶을 수 있습니다.

3. 이렇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쉬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까? 세계에서 제일 전쟁이 많은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그래서 가끔 원수들이 예루살렘은 점령하였습니다. 아직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쉬시지 못 하게 들볶아야 합니다.

사막에 얽힌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넓은 사막을 정처없이 방황하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지고 가던 물이 다 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양식도 마닥이 나고 있었습니다. 걱정과 불안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빨리 오아시스를 찾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이젠 살았다.>
그리고 그 발자국을 따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길은 오아시스로 가는 길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따라가도 발자국은 끝이 없었습니다. 해는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야 그는 그 발자국이 자기 발자국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발자국을 따라 가면서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녁 노을과 함께 북극성이 반짝였습니다. 별을 보고 그는 제대로 방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바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헤메던 내 인생.
내 발자국에 취하여 맴돌던 내 인생.
이제는 올바른 목표를 보고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하면서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시렵니까?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쉬지 않고 지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1-6)

예루살렘에 행복을 주시기 위하여 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8-9)

그런데 아직 예루살렘에 평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쉬지 않게 하나님께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아직 기도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쉬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평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오였습니다.
영국에 유명한 대학이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입니다. 그 대학 교수라고 하면 세계적으로 알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옥스퍼드 대학에 레이몬드 룰리(Raymond Lully)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1314년 아프리카 부기아로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교수직도 그만 두었습니다.
화교도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회교 지역이었습니다. 그는 70세까지 그 곳에서 복음을 전다가 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과거에 부요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과 진리를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랍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 곳에 왔습니다. 회교도들을 개정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늙었습니다. 가난합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도와 주시기를 한 시도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놀란드 헤이즈라고 하는 흑인 가수가 독일 베를린에서 독창회를 가졌습니다. 독창회에 모여든 사람은 모두 백인들이었습니다. 헤이즈가 노래를 부르려고 무대에 올라 왔을 때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흑인의 노래는 들을 수 없다! 검둥이 노래를 집어치워라!>
누군가는 그 이상의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어떤 이는 가지고 있던 물건을 던지며 무대에서 내려가라고 외쳤습니다. 치욕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흑인가수는 화가 나서 같이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
그리고 무대에서 돌아서 내려 가려고 하는 데 그의 앞을 가로막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법정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온갖 모욕을 다 당하시면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헤이즈는 그 환상을 보고 청중 쪽을 향하여 돌아섰습니다. 고개를 숙고 묵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소란스럽던 청중도 그 모습을 보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모두들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렇게 10분쯤 시간이 흘렀습니다. 헤이즈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청중을 뜨겁게 사로잡는 훌륭한 독창회가 되었습니다. 노래가 끝났을 때 박수소리가 우뢰처럼 터져나왔습니다.
흑인 가수가 모욕을 참으면서 10분 동안의 묵상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기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10분이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볶으십시오. 매달리십시오.
이렇게 살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헵시바와 쁄라처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일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부터 가지고 있는 기도제목이 응답될 때까지, 계획하는 일이 주안에서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을 쉬지 못 하게 하는 은혜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요트를 타고 혼자 세계일주에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1994년에 조그만 요트를 타고 세계를 돌았습니다. 장장 7만 km였습니다. 지구 한 바퀴가 4만 km입니다. 거의 두 바퀴를 혼자 돌아 온 셈입니다. 강 동석씨입니다. 그는 1994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출항하여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돌았습니다. 2년 후 1996년 10월 부산항에 입항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한국 젊은이의 기개를 온 세계에 떨쳤습니다. 1997년 6월 16일 서울 역삼동 해양수산부 대 회의실에서 <세계 일주 환영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해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항해를 중단하고 돌아 가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 일주에 성공하는 것이 아버지에게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하와이, 희망봉, 카리브해에서는 집채만한 파도를 만나 나를 여러번 덮쳤습니다. 꼭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위험한 순간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내가 요트에서 쉬지 않고 한 것은 단 하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이 한시
하나님이 쉬시지 못 하게 하여야 응답이 있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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