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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설교 : 하나님의 원하시는 제사와제물 (시50:22-23)

by 【고동엽】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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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원하시는 제사와제물   (시50:22-23)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22-23

제사 곧 예배는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축복을 받기도 했고 제사를 통해서 저주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사를 통해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제사를 잘못 드림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바르게 드려져야 합니다.

제사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관계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므로 축복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의 몸을 제물로 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생활 전부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것이요,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로서의 의미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1. 제사의 유익과 제사의 필요성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6절 이하에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처음 계명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아담과 하와가 이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곧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 죄의 대가로 죽는 것입니다. 죽음은 곧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사악하고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때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 5절 이하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고 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는 했지만 심판당한 세상을 볼 때에 마음이 너무 아픈 나머지 무지개를 증거로 다시는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9:13). 그런데 또 사람들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제사 제도인 것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범죄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 드리면 그 죄가 짐승에게 옮겨가서 짐승이 대신 저주를 받고 그 사람은 사함을 받게 됩니다.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짐승이 대신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가 사람에게 주는 유익인 것입니다. 제사는 죄인된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제사가 없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제사는 죄인된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신약에 건너와서는 제사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침례를 받으러 나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요한이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2절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자기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제사가 없어진 것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가 신약에 와서는 예배로 바뀐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죄인이 의롭다하심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배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제사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확신없이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다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누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되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제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제사는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사람에게 보이러 오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십니다. 진정과 신령으로가 아닌 사람을 의식해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예배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8장 9절 이하에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 비유에서 바리새인은 "서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고 기도했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기도했을 때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이 비유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9). 자기 의를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은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보다는 자기 의를 다른 사람 앞에 드러내려 한 것이 더 강했습니다. 이사야 1장 11절 이하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많은 제물을 가지고 나아와 하나님께 드리지만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려드리는 제사가 아니고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해서 행해지는 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난 자들이었습니다. 이사야 1장 4절에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고 했습니다. 이런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은 진정 회개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드린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이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더럽고 추악하고 죄많은 모습을 하나님께 보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세상의 여러 가지 일로 상처를 받고 찢겼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고 싸맴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우리가 듣고, 더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이 곧 예배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보이러 나가는 것은 목적이 잘못된 것입니다.

둘째로, 정성이 담겨있지 않은 흠이 있는 제물을 가지고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십니다. 아무 것이나 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습니다. 제물이 적으니까 받지 않으시고 많으니까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문제는 정성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 15장 21절에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찌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하나님께 정성없이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말라기 1장 7절 이하에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제물이 작기 때문에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한 것, 정성이 담겨져 있지 않은 제물을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방인들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십니다. 이방인들의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제사는 조상들에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마귀에게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9절 이하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요4:23). 이 말씀은 곧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어떤 제사인가를 알아야 올바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곧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난 후에 그 죄가 드러났을 때 그대로 무릎꿇고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그저 깨끗한 마음으로 통회했습니다. 시편 51편 16절 이하에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일컬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행13;2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요엘 2장 12절 이하에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감사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오늘 본문을 앞에서부터 보면 천하만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을 봅시다. "내가 너의 재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가지고는 뭐라고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내가 네 집에서는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10절에 이하에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고 했습니다. 창조주가 되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뭐 부족하다고 사람들에게 물질을 가져오라고 하시겠습니까? 고기가 없어서 짐승을 잡아 바치라고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원하시는 것은 없어서가 아니라 곧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의 감사로 인해서 하나님이 자신이 기뻐하시며, 또한 감사하는 자에게 더 주시기 위해서 제물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는 아무리 감사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다 감사할 수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님의 생신날에 고기 몇 근과 조금의 과일을 사서 부모님을 찾아뵙는다고 해서 자식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아무리 잘 해도 그 동안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감사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다 보답할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어떤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진정 감사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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