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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8:28-34
설교방송 (설교본문)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려고 하시는 내용도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 관심은 우리 인간에게 있으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좋아하는 말씀 중에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고 느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에게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온 관심은 우리 인간에게만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해야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오로지 우리 인간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해야만 드디어 행복해 하십니다. 하나님의 행복은 오로지 우리 인간의 행복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슬픈 데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없고 우리가 불행한데 하나님께서 행복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쁜데 하나님이 슬퍼하실 수 없고 우리가 행복한데 하나님께서 불행하거나 외로우실 수 없습니다.
저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에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시구나'하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삶의 목적도 우리 인간에게 있으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힘써 6일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완벽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기보다 우리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창세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읽으면서 창조의 중심과 목적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 인간의 목적이 하나님 당신이시기만을 원하실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의 목적과 중심이 우리 인간이게 하시리만큼 우리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만 당신의 영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만 당신의 형상을 닮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단순한 피조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처음부터 당신의 자녀로 창조하셨습니다. 때문에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 보통 사랑이 아닌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불완전한 부모 사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완전한 부모의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 들려 무덤에서 사는 아주 사나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와 같은 사람을 향하여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가다라 지방은 돼지를 많이 기르던 지방이었는데 그 지방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귀신들린 사람보다 돼지 한 마리를 더 귀히 여겼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 '돼지만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그렇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돼지 한 마리만도 못한 사람으로 여기는 그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님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여기셨습니다.
귀신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대신 자신들이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예수님에게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사정 속에는 돼지 한 마리만도 못한 이 귀신 들린 인간을 위하여 수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를 버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뉴앙스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즉시 돼지 떼는 귀신이 들려 몰사하였고 그 대신 귀신 들린 사람은 온전하여 졌습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려 아무 짝에도 쓸데없어 보이는 그 사람을 위하여 돼지 떼 수천 마리를 아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그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우리 인간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가 아니라 당신의 생명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귀신들린 자와 같은 우리 죄인을 위하여 돼지 떼가 아니라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에게 우리 인간들은 천하보다 귀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생명보다도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고 우리 인간들을 귀히 여기십니다.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극치는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들을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대신 죽게 하시리 만큼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우리 인간에 대한 더할 수 없는 극진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입니다. 무시하는 것입니다. 괴롭히는 것입니다. 마음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천대하고 괴롭히면 벌을 받습니다. 천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아벨의 핏소리를 들으시며 가난한 과부의 울부짖음과 하소연에 귀 기우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들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그와 같은 억울함과 괴로움을 끼친 자들에게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높아지고 부유해지고 강해졌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교만하여지지 아니하고 악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여 사람을 깔보고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억울하게 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88년도 처음 미국을 갔을 때 애트란타에 있는 마틴 루터 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사진첩 하나를 샀습니다. 지금은 그 사진첩을 잃어 버렸습니다만 지금까지 기억에 선명한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십대 말쯤 되어 보이는 흑인 여자가 아주 아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한 줄기의 눈물을 조용히 흘리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슬퍼서 우는 눈물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아파서 우는 눈물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예리한 칼에 베이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에게 그와 같은 아픔과 억울함을 안겨준 사람은 복없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으셨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귀히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며 저들을 돕고 섬기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와 같은 일을 보통 좋아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죽 하면 소자 한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 하셨겠습니까? 오죽 하시면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 하셨겠습니까?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람 대접하면 복을 받습니다. 큰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고 사모하신다면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억울하게 하고,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고, 사람을 깔보나 업수히 여기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생각을 아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꿈도 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텔레비젼을 보니 불법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학대하는 우리 한국 사람들에 대한 프로그램이 시리즈로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저들이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을 악용하여 저들을 학대하고 착취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마음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와 같은 악한 사람들에게 아무 짓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에 합당한 벌을 저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극진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미워하거나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틴 루터 기념관에서 사온 사진첩에 또 하나 기억이 나는 사진이 있습니다. 흑인들이 자신의 인권을 위하여 침묵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에 'I am a man' '나도 사람이다'라는 팻말을 걸고 침묵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위하는 흑인들을 향하여 경찰들이 검이 꼽힌 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동적이었던 것은 20대 말이나 30대 초 쯤으로 보이는 아주 잘 생긴 전형적인 백인 청년 하나가 흑인들의 시위에 함께 줄을 서서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백인 청년의 사진을 보면서 참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큰 상과 복을 받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틀림없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저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습니다. 저는 그 하나님의 복 주심을 위하여 예수를 믿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됩니다. 다시 말해 복 받을 일을 하면 됩니다. 복 받을 일 다시 말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사람을 사랑하고 귀히 여겨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로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설립한지 꼭 6개월이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 우리는 주일 날 한번 예배 드리는 것과 등록교육을 실시한 것 외에는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일부러 모든 일을 천천히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기초가 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서두르다가 큰 일을 그르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지난 6개월 동안 열심히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복 받을 일'입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첫 추수감사헌금을 전액 숭의학원의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으로 내어놓았습니다. 첫 성탄헌금을 전액 남산동에 사시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과 베트남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위해 내어 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기쁨으로 헌금해 주셔서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곱절씩 더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산동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물질로만 아니라 마음과 사랑으로 섬기기 위하여 '이웃 사랑 궁휼회'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공부까지 해가면서 저들을 구체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첫 부활절 헌금을 전액 볼고그라드에 이주해 온 고려난민들을 위하여 쓰기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 일은 작아도 역사의 한을 푸는 일입니다. 이유도 알지 못하는 고난을 대를 이어 격고 있는 고려인들에게 아무런 이유와 대가 없이 무작정 해드린 우리들의 헌금은 저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한을 풀어주는 약이 되리라 저는 믿습니다. 지난 주 헌금하였는데 약 3,700만원의 헌금이 모여졌습니다. 우리 교인 수를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액수의 헌금입니다. 교인 여러분들이 이 일을 기뻐하시고 정성껏 헌금을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올해 추수감사헌금도 숭의학원 내에 있는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으로 내어놓을 것입니다.숭의학원을 위한 예산을 5천 만원으로 잡아 놓았지만 헌금이 더 나오면 나오는대로 더 드릴 작정입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일 5천 만원이 안되면 교회 예산에서 보태서 5천 만원을 만들어 드릴 예정입니다.
올해 말 성탄헌금은 북한 동포를 위하여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여러분들이 헌금을 많이 잘해 주실 것 같습니다. 그 돈을 전액 북한에 보내 어려움에 빠져 있는 우리 북한 동포를 돕는다면 너무 좋을 것입니다. 근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왜 그와 같은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고 높은 뜻 숭의교회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잘 지켜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인가를 지켜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작부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귀히 여기며 정말 저들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정성껏 대접하려고 한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복 주시고 높히시는지 한번 지켜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쉽게 낙심하거나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비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렇게나 막 사시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고 귀한 존재들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복 받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면 복을 받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복을 받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명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을 깔보거나 마음 아프게 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손해를 끼치거나 특히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면 천벌을 받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돼지 한 마리 값도 안 나가는 귀신 들린 사람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온 관심은 우리에게 있으시며 하나님의 삶의 목적도 우리 인간에게 있으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사랑하시며 귀히 여기십니다.
자신과 사람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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