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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 뿐 (고전 3:1-9)
2001년 10월 7일 높은 뜻 숭의교회라는 이름을 걸고 첫 예배를 숭의여대 소강당에서 드렸습니다. 첫 예배 설교 때 읽은 본문은 마태복음 16장 13절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반석위에 세운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만 분명하다면 교회는 어디에 세워도 반석위에 세운 교회가 될 것이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천국의 열쇠를 가진 교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는 지금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가진 분명한 제 결심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여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장로와 집사 권사의 임기를 6년으로 하였습니다. 임기가 끝난 후에도 장로와 권사와 집사로 불리우고 일하겠지만 당회원과 제직회 부장과 같은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것은 6년 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필요 이상 권력이 집중 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의도였습니다. 담임목사와 전임목사는 6년을 시무한 후 교인들의 신임투표를 받게 한 것도 지나친 권력이 목회자에게 집중되는 것을 견제하려고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회와 제직회를 구별하여 장로 한 사람이 당회원도 되고 제직회 부장도 되는 일을 막은 것도 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불완전하지만 나름대로의 노력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에서 권력이 집중 될 위험이 가장 높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두 말 할 것 없이 담임목사입니다. 인간적으로 이야기하면 제가 교회 개척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한 교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속도로 성장한 교회를 개척한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우리 청어람을 매입할 때 은행에서 대출을 해 주려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모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 교회의 교세와 재정을 생각하면 우리가 대출 받으려고 하는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두 번이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해서 제가 직접 대출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왜 대출이 안 되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때 그 담당자의 대답은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의 주인은 김동호 목사입니다. 만일 목사님이 잘못되시면 교회는 그 날로 와해 될 것이고 우리는 돈 받을 곳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대출이 어렵습니 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날 상담이 잘 되어 결국 대출을 받게 되었지만, 그 담당자의 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담당자의 말 중 두 가지 면을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는 높은 뜻 숭의교회의 주인은 김동호 목사라는 말이고 둘째는 어떤 한 특정인이 주인인 조직은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우리 교회를 건강한 교회,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가 되기 위하여 저 자신을 놓고 생각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에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겠지만 하나님은 제 마음의 진심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첫째, 팀 목회입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전임목사라는 제도를 만들어 담임목사의 역할과 권한을 분산시켜 놓은 것입니다. 아직도 완벽한 권력의 분산이 이루어졌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례를 쉽게 찾아 보기 어려운 우리 한국 교회에서 우리 교회만큼 이라도 담임목사의 역할과 권력이 분산된 교회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행착오가 지금까지 있었지만 저는 요즘 우리 교회의 목회에서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느낍니다.
둘째, 한 달에 한 번 주일 설교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주일 설교를 하지 않는 주일은 평균적으로 몇 백 명 정도 출석이 줄곤 했었습니다. 제 착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제가 주일 설교를 빠지지 않고 계속 했었더라면 교회는 혹시 지금보다 좀 더 성장했을는지 모릅니다. 목사의 설교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어떤 목사에 대한 교인들의 설교적인 취향 때문에 기형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별로 건강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재신임 투표입니다. 저희 교회는 담임목사와 전임목사의 경우 6년 시무 후 교인들의 재신임을 묻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물론 재신임의 경우는 교인들의 과반수 찬성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좀 느슨한 것이 사실입니다. 쉽게 말하면 웬만하면 재신임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가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웬만하면 되지만 담임목회자와 전임목회자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목회자의 거취에 대한 권한이 목회자에게 있지 않고 교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많은 한국 교회의 경우 목회자의 거취에 대한 권한은 위임목사인 경우 교인에게 있지 아니하고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저희 교회의 경우 목회자 거취에 대한 목회자 자신의 권한은 원칙적으로 신임을 받은 6년 동안 뿐입니다. 교회 헌법이 보장한 70세 까지의 정년과 자리 보장을 깨고 65세 정년과 6년 마다 재신임 투표를 하기로 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넷째는 안식년입니다. 저는 올 10월부터 여러분들이 대개 아시는 바와 같이 일 년 동안 안식년을 갖기로 당회 허락을 받은 상태입니다. 저는 전에 시무하던 동안교회에서 안식년을 98년도에 가져 본 경험이 있습니다. 동안교회에서 안식년을 가졌을 때는 예배당 건축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IMF 때였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상황에서 담임목사가 교회를 비우고 안식년을 갖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제 상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식년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안식년이라는 제도를 만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답은 ‘너 없어도 되’였습니다. 농사를 6년 동안 짓고 살다보면 자신이 먹고 사는 것이 하나님 때문인지 자신 때문인지 오락가락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안식년을 가지라 말씀하십니다.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게 될 때 먹고 사는 것이 자신에게 달린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린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목회를 6년 동안, 그것도 나름대로 성장하는 목회를 하다 보니 교회가 하나님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 저 때문에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없이는 교회가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안식년을 명령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 없어도 되고’ 또 ‘너 없어도 되어야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당회에 안을 내 놓았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제 안식년 해석이 옳았습니다. 동안교회는 아무 문제없이 건축을 완성했고, 교인도 조금도 요동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동안교회가 더 건강해 졌다고 믿습니다. 담임목사가 없다고 크게 변동이 오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형제 없이 자랐던 저는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였고 많이 길러 보았습니다. 개도 새끼를 잘 기르지만 제가 볼 때 고양이가 더 잘 기르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가 자기 새끼를 기르는 것은 참 감동적입니다. 거의 완벽합니다. 새끼에 대한 어미의 사랑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느 날이 되면 갑자기 어미가 새끼를 버립니다. 근처에도 못 오게 합니다. 새끼가 가까이 오려고 하면 발로 할퀴고 겁을 줍니다.
저는 처음에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를 기를 때마다 반복되는 그와 같은 행동을 보며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말미암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한정 새끼를 보호해 주다보면 새끼가 독립하여 야생의 세계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미는 새끼를 버리고 새끼로 하여금 독립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고양이는, 야생 동물들은 마마보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에게만 마마보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교회도 대개 마마보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자기 마음에 드는 목회자 한 두 사람에게 매여 신앙생활을 의존하는 마마보이들이 우리 한국 교회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 한국 교회를 수적으로 크게 하였으나 강하지 못하고 연약한 교회가 되게 한 것 입니다.
얼마 전 저는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계시는 어떤 분으로부터 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제 안식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그 내용은 목사님이 안식년을 떠나시니 자기도 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었고,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가 전도하여 온 교인들을 다 데리고 다른 교회로 가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푸른 초장을 찾아 떠난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저로서는 저를 푸른초장과 같이 여겨 주시는 것이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영적인 어린아이처럼 젖을 먹는 수준을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제가 제 손녀가 미국으로 떠나기 때문에 손녀를 따라 교회를 버리고 안식년을 떠나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교인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손녀가 있는 지역에 거처를 정하고 있을 것은 사실이지만 손녀를 떠나보낼 수 없어서 안식년을 내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제 양심을 걸로 아닙니다. 제가 교회를 떠나 안식년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교회를 더 건강하게 하고 교인들을 영적인 마마보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제가 안식년을 하는 동안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지만 혹시라도 얼마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날는지도 모릅니다. 출석이 줄지도 모르고 성장이 멈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에 유익합니다. 그 어려운 동안 우리 교회는 오히려 더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코스타 때문에 밴쿠버를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운동 삼아 공원을 걸었습니다. 많은 아름들이 나무들이 뿌리 채 뽑혀 넘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바람이 불어 넘어진 것들이었는데 넘어진 나무들의 뿌리를 보니 뿌리가 일 미터도 되지 않았고 조그마한 방석같이 크지도 않았습니다. 이유를 설명하는 후배 목사님의 말을 들으니 밴쿠버는 비가 자주 오고 땅이 너무 기름짐으로 나무들이 구태어 힘들여 뿌리를 내릴 필요가 없어서 저렇게 뿌리가 얕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람이라도 불면 그렇게 큰 바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넘어지는 나무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알아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내 모시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온실에서 기르시지 않으십니다. 푸른 초장에서만 키우시지 않으십니다. 푸른 초장만 찾아 이곳, 저곳을 떠돌다 보면 저들은 밴쿠버의 뿌리 앝은 나무들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개척자였던 사도바울이 교회를 떠난 후 아볼로라는 후임자가 와서 목회를 아주 잘 했습니다. 교회는 바울과 아볼로와 같은 훌륭한 목회자로 말미암아 셩령의 역사가 충만한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뿌리는 앝았습니다. 그래서 늘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저들이 너무 사람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분파가 크게 넷이 있었는데 그 분파들의 이름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바울을 편지를 써서 책망하고 교훈합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인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항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게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1-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에게 뿌리를 내리시면 넘어집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 조금은 힘이 드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와 여러분들에게 좋은 영적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틀림없이 더 건강해지고 튼튼해 질 것입니다.
저는 안식년 동안 좀 쉬기도 하겠지만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몇 달을 머물면서 그 동안 한번도 하지 못했던 성지순례를 하려고 합니다. 여행처럼 하지 않고 학생처럼 열심히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6년 동안을 보다 새롭게 그리고 힘 있게 목회할 힘을 비축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푸른 초장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높은 뜻 숭의교회라고 하는 씨를 뿌린 사람이고 잠시 물을 주다 갈 사람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뿌리를 내려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 이어지는 10절 이하의 말씀에서 교회와 믿음의 터는 그리스도 예수 뿐이고 그렇지 않은 교회와 사람들은 불과 같은 시험이 올 때에 다 무너지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되지 않고 사람이 주인인 교회가 되면 은행 대출 담당자가 예리하게 본 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조차 믿을 수 없는 나약한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늘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해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김동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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