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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이 세상에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게으름 뱅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도무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하기 싫어서 밤낮으로 집안에 들어 누워만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어도 거냥 방안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불쌍히 여기서 먹을 갖다 주어도 게을러서 자기가 떠먹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가끔 가서 먹을 것을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이 지쳤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산 채로 파묻어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거머리와 같은 존재라고 합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지게에 메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 모습을 보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게으르다고 생사람을 죽일 수가 있겠소? 내가 콩을 주어서 살리리이다>
지게 위에서 태연하게 자고 있던 그가 말했습니다.
<나에게 줄 콩이 깐 콩인가요? 안 깐 콩인가요?>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 이 세상에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링컨에게도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링컨이 길을 걷고 있을 때 군인들이 전보대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여러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전보대를 세우는 데 대위 한 명이 그 대로 서서 명령만 하고 있었습니다. 링컨이 얼른 가서 도와 주었습니다. 그래서 전보대를 빨리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직함이 찍힌 명함을 대위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앞으로 전보대 세울 일이 있으면 나를 부르시요>
대위는 명함을 받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릎을 꿇으며 말했습니다.
<각하 잘못 했습니다. 각하도 일하시는 데 나도 일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 갑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셨는 데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일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는 가정 하나 관리하는 데도 쩔쩔 맵니다. 나는 한 교회를 관리하는 데도 힘듭니다. 대통령은 나라 관리에도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만일 지구 전체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힘들가요?
그런데 하나님은 온 우주를 관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주를 관리하실 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성경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4)
이렇게 하나님이 일하시니 예수님도 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예수님도 일하시고
예수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일가요?
1. 기도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루터는 말했습니다.
<기도는 노동이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늘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니 나도 기도한다>
나는 미국에서 늘 기도하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가 내게 노트를 하나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내 조국 한국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한국 목사님들 300명 명단을 불러 주셨습니다. 나는 강 목사님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 수첩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중에 일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가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일입니다.
그 사람을 위하여 누군가가 뒤에서 기도하면 그 사람을 하나님은 지켜 주십니다. 롯 사건을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이 유황불로 멸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 하고 다 죽었습니다. 그 때 롯의 가정만 살려 주셨습니다. 롯의 가정만 살려 주신 이유를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 19;29)
기도도 일입니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가 기도하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뒤에 있으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일으켜 주십니다.
기도는 놀라운 하나님의 일입니다.
2. 전도
전도야 말로 예수님의 가장 큰 일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실 때에는 전도에 가장 큰 비중을 두시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막 1;38-39)
전도야 말로 가장 큰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난 주간 동두천 교회에 가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전도 표어가 강대상위에 붙어 있었습니다.
전도는 쉽다.
전도는 즐겁다
전도는 재미있다.
전도는 행복하다.
이 네 가지 표어가 강대상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까지 어느 교회에서도 보지 못 하였던 기록을 보았습니다. 어린이 전도도 전도입니다. 아니 어린이 전도가 더 큰 전도입니다.
무디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전도하고 돌아 온 무디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어른 전도는 반이고 어린이 전도는 하나다>
이 말을 들은 제자가 말했습니다.
<어린이는 확실이 전도하였고 어른은 반쯤 전도하였나요?>
무디가 말했습니다.
<어린이를 전도하면 확실하고 어른을 전도하면 불확실하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린이 전도도 전도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보에 어린이 전도도 전도란에 넣을 것입니다.
전도야 말로 가장 큰 하나님의 일입니다.
3. 돌보기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셨는 가요?
지극히 작은 이웃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31-33)
이렇게 염소와 양을 가른후에 오른 편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35-36)
그러면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37-39)
그러면 심판하시는 분은 대답하실 것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40)
그리고 다시 왼편을 향하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41-43)
그러면 왼편에 있는 이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44-45)
이같이 어려움속에 있는 이들을 섬기고 돌보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부흥회에 갔을 때였습니다. 사모님이 세수대야에 물을 기러 오더니 목사님에게 발을 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발을 닦아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극구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모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아버지가 나를 기르면서 나를 사모로 서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모의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흥강사님이 오시게 되면 발을 닦아 드리는 것은 내 마음을 보상하고 싶습니다. 목사님들을 이렇게 섬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늘 강사님이 오시면 그렇게 발을 닦아 드리며 늘 말했습니다.
<설교 잘 해 주셔서 우리 교인들 다 은혜 받게 하여 주세요>
그래서 그 분이 강사 발을 정성껏 닦아 드림으로 부흥강사가 설교를 잘 하게 되어 은혜로운 부흥회가 되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신 분이십니다.
4. 회복
강패의 핵심단어는 폭력입니다. 은행의 핵심단어는 돈입니다. 불교의 핵심단어는 <자비>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단어를 말하라면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세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1. 영생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 지라>(창2;7)
이는 가장 귀중한 선물입니다. 만일 어느 누가 금은 보석이 아니라 100년 더 살수 있는 생명 연장 선물을 주었다면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00년이 아니라 영생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2. 다스림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이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과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선물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어느 누가 대통령 직을 선거로 얻은 것이 아니라 선물로 주었다면 이는 큰 선물입니다.
3. 관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영생이라는 생명과 다스림이라는 좋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잘 가질 수 있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대통령과 마음대로 교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이는 큰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마음대로 교제할 수 있는 관계를 선물로 주셨다면 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네 마음대로 살아라>라고 절대적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가지고 살도록 관계라는 선물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세 가지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회복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곧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시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예수님은 회복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회복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을 회복시켜 주는 일을 우리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는 이런 고백을 들었습니다.
어린 아이 네 명을 두고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나 가난하게 살다 세상을 떠났기에 살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자녀 네 명과 함께 연탄까스 중독으로 죽으려고 연탄불을 방에 피워 놓고 잤지만 죽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나란히 자는 네 자녀를 보며 목졸라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려고 하였지만 곤하게 자는 자녀들의 모습이 그렇게 불쌍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던 그는 자살하려고 한강 주변을 여러번 서성거렸으나 막상 죽으려니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고 자살할 자리를 돌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빠지지는 못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강 주변 자살자가 많은 곳에는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늘 서성이는 것을 본 경찰이 그 여인을 불쑥 검문하였습니다. 여인은 경찰에게 사실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경찰은 감리교인이었습니다.
<나와 함께 다음 주부터 교회 나가십시다. 예수님을 만나면 살 길일 열릴 것입니다>
살 길이 열릴 것이라는 말에 그 여인은 호감이 갔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예수님만은 믿을 수 있는 분같이 느껴졌습니다. 믿음이 들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네 자녀를 예수님에게 맡기고 싶었습니다. 파출부로 인생을 다시 시작하던 그는 자기가 일하는 집에 10만원만 가불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10만원을 봉투에 넣고 네 자녀를 향한 소망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적었습니다. 자기는 이런 신세라 할 지라도 자식만은 잘 기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후에 자녀 네 명이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파이로트도 한 명 나왔습니다. 교수도 나왔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회복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5. 돈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엄청난 물질이 요구됩니다. 특별히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를 짓는 일에 엄청난 물질이 요구됩니다. 사업을 잘 하는 분들은 이런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돈버는 은사가 있다. 열심히 사업하여 돈을 많이 벌어 드려서 하나님의 일하는 데 물질 봉사를 많이 하겠다>
이것도 큰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돈을 벌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는 것도 큰 일 중에 일입니다.
바나바가 그랬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어 초대 교회에 선교 헌금으로 모두 헌금하였습니다(행 4;36)
루디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에서 자주 옷감장사를 하여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전도하러 갔을 때에 집을 선교 선터로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유럽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물질적으로 봉사하는 일을 할 일군이 교회에는 필요합니다.
나는 대구 서문 교회 정 규만 장로님을 기억합니다.
그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서 정 장로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한의사였습니다. 당시 남한에서는 가장 큰 돌 교회였습니다. 당시 정 장로님은 건축 헌금을 많이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를 통하여 교회 건축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가장 돈이 필요할 때이니 한의원을 통하여 돈을 많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구 전역에 괴질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이상한 것은 정 장로님이 조제한 약만 괴질을 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환자가 미어졌습니다. 매일 한 자루씩 돈을 긁어 모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기도에 헌금하였습니다. 세 보지도 않고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이같이 물질을 강대상에 드리려고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무엇이 하나님의 일입니까?
1. 기도
2. 전도
3. 돌보기.
4. 회복.
5. 헌금.
출처/강문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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