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하나님설교 : 하나님을 본받는 자 (에베소서 4:25~5:4)

by 【고동엽】 2022. 5. 27.

 

전체 목록가기 하나님 목록 돌아가기
   

 

 하나님을 본받는 자  (에베소서 4:25~5:4)

세계 최고의 부자라고 할 수 있는 빌 게이츠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당신의 두뇌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가 보지요?” 그러자 그는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유별나게 머리가 똑똑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지혜가 많지도 않습니다. 다만 저는 변화하려고 하는 마음을 생각으로 옮기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변화하려고 하는 열정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습니다. 물이 고여 있을 것 같으면 썩지만 계속해서 흘러갈 때 생명의 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변화를 갈망하는 자들만이 새 역사를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사람이나 나라는 퇴보하게 마련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후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미국식 경제를 바탕으로 한 정책들을 펼칠 때 유독 그리스만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시키려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오늘 그리스는 서구에서 가장 낙후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삼성이 오늘 세계의 삼성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변화에 있습니다. “마누라 외에는 다 바꿔라!”라는 이건희 회장의 신조에 따라 삼성은 과거에 안주하던 모습을 벗어버리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변화하는 자들이 내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오직 퇴보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 교인들은 예수를 믿은 후에도 그 삶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믿기 전과 후의 모습이 별로 달라지질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삶과 밖에서의 삶의 모습에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세상과 접촉할 일이 많아지자 교회는 세상의 방식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큰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 문화의 침투로 말미암아 교회의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전에는 그럴 수도 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는 외적인 변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습관이나 삶의 양식의 변화만도 아닙니다. 종이가 타서 재가 되는 것과 같이 삶 전부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정신과 행동을 아우르는 전인격적인 삶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변화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것입니다. 완전한 변화만이 세상 문화의 침투와 도전에 맞서서 싸워 이길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그 역사가 매우 짧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부흥과 발전을 경험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그토록 자랑하는 천만 성도들의 삶의 모습은 과연 어떻습니까? 여전히 구태의연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천만 성도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이 이렇게 어둡고 캄캄한 것이 바로 그 뚜렷한 증거가 아닙니까? 때문에 이 땅의 미래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들에게서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부정과 불의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분단의 벽은 더욱 굳어지는 것 같습니다. 북핵 문제는 전혀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미사일 위기는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망국적인 지역 감정도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해가고 있고, 청년 실업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천만 성도들 가운데는 전직 대통령도 있습니다. 많은 정치인을 비롯하여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땅이 이렇게 어둡고 캄캄한 것입니까? 대답은 분명합니다! 마땅히 변화되었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받는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대답을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은 우리의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트겐쉬타인은 “언어는 사유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사고 방식, 즉 삶의 목적과 의식을 다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는 언어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더러운 말도 버려야 합니다. 또 이웃에 대해서 헐뜯는 말이나 비난하는 말도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칭찬과 같이 덕이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그 사용하는 언어가 진실하고 이웃에게 덕을 끼치는 말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혀 밑에 도끼가 있고 말 속에 뼈가 있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언어가 바뀌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는 그릇된 언어에서 하나님 나라의 언어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를 하나님 나라의 언어로 바꿀 때 생명의 씨앗이 싹트고 또 아름답게 자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가 달라질 때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성경은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노를 버릴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우리의 절제 상태를 쉽게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상처를 주기 쉽고 관계를 파괴하기 쉽습니다. 때문에 분노는 우리의 삶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태에서든지 분노를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특히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근심하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히려 성령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세 가지는 “키스, 코스, 카스”입니다. 키스는 히브리어로 돈 주머니를 말하는데 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코스는 히브리어로 술잔을 의미하는데 술 먹는 모습을 봐도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카스는 히브리어로 분노를 뜻하는데 자기의 분노, 즉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인격자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성경은 이웃에게 유익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도둑질이 심했다고 합니다. 특히 사교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중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의 옷이나 물건을 훔쳐가는 일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정당한 노력없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직한 땀을 흘리고 그에 따른 정당한 댓가를 바라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노력과 땀이 없는 소득은 오히려 해로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선한 일에 힘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기의 유익만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Change(변화)라는 단어에서 ‘g’를 ‘c’로 바꾸면 Chance(기회)라는 단어가 됩니다. 변화되려고 하는 자에게 기회가 옵니다. 과거의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될 때 하나님은 더 좋은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도 어제의 방식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더러운 옷이 필요 없는 것처럼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옛 삶의 방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새 삶이 필요할 뿐입니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과는 다른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새 옷을 입을 때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회복될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언어가 변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감정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통해서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늘의 신비한 은혜와 평강을 지금 여기서부터 마음껏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강석공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