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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2장22-31 /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by 【고동엽】 2023. 1. 18.

(누가복음 12장)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묵상/눅 12:22-31)

 

◆ 염려와 믿음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 당시에는 하루하루 먹고 입는 것이 사람들에게 큰 문제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먹고 입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은 무책임한 말씀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냥 대책 없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 모든 염려를 한순간에 극복게 하실 수 있는 너무나 놀라운 분이 계심을 일깨우신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1)

 

염려가 습관이 된 사람은 없는 것까지 상상하면서 염려한다. 염려가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할 정도다. 염려 중독이다. 조금만 아프면 암이 아닐까 염려하고, 아이가 조금만 늦으면 납치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건강 염려증에 걸린 사람은 그 자체가 정신병이라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활의 염려에서 벗어날 것을 명령하신다.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신다. 염려해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염려가 나를 병들게 하고 수명을 단축시킨다.

 

지금 하는 염려가 무엇인가?

우리가 하는 많은 염려가 불필요하고, 믿음과 대립하고 있음을 아는가? 주님께서는 생활의 염려를 술취함이나 방탕함과 같은 수준의 타락으로 보신다(눅 21:34).

 

인상을 많이 쓴 사람은 이마에 골이 생기는데, 나중에는 인상을 펴도 그 골이 없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염려가 습관이 된 사람이 염려를 버리기는 그 골을 없애는 것만큼 어렵다. 염려도 회개해야 할 죄다.

 

주님은 염려하는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책망하신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28)

 

염려되는 것이 있는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자(빌 4:6).

지혜를 구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자. 그리고 잠잠히 주님을 기다리고 기뻐하자.

 

◆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우리의 세계관 속에는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신다. 우리의 이론 속에 늘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매일 매일 만나를 주심을 체험했다. 그런데 이 만나라는 것이 매우 특이해서 쌓아두고 먹지 못하고 그날그날 먹어야만 했다. 정말 '일용할 양식'이었다. 하루만 넘기면 어김없이 바로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출 16:19).

 

그런데 안식일에는 거두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러면 안식일에는 굶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 전날에 이틀 치를 거두도록 하셨다. 그런데 만나는 하루만 지나면 썩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 보아도, 경험적으로 보아도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순종하고 백성들이 안식일 전날에 이틀 치를 모았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정말로 만나는 어제 거둔 그 상태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출 16:24).

 

사람들의 이론이란 늘 경험을 토대로 그럴싸하게 세우지만, 성도들의 이론에는 거기에 절대적인 요소가 첨가된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샤다이께서 계신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다르다. 그들의 세계관을 본받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교회당 서랍에 넣어두고, 예배드릴 때만 꺼내서 착용하고 예배가 끝나면 다시 서랍에 넣어두고 나온다. 이제부터는 교회당에서 찾아서 집에 가져오자. 일하러 갈 때도 가지고 가고, 친구들과 만날 때도 가지고 다니고, 잠잘 때도 가지고 자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롬 1:17).

 

우리의 문제는 건강이나 사업이나 자녀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없음이 문제다. 주님께 '믿음이 작은 자야'라는 책망을 듣지 않으려면 염려와 싸워야 한다. 염려되는 것이 있다면 선하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함으로 아뢰자. 한번이라도 믿음으로 살아보았는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하셨다. 아멘.

 

주님,

습관처럼 굳어버린 염려증에서 건져주십시오.

선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게 해주십시오. 제 언어에 감사가 있게 하시고, 제 표정에 감사가 있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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