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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2장8-12 / 성령모독죄

by 【고동엽】 2023. 1. 18.

(누가복음 12장)

 

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묵상/눅 12:8-12)

 

◆ 사람 앞에서 시인

 

(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세례는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행위다. 세례는 절대로 혼자서 스스로 행할 수 없다. 최소한 세례를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므로 세례를 받으려면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과정이 필수다. 세례의 의미 중에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믿음을 시인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종교란에 기독교를 클릭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 개신교도는 통계적으로 무려 900만 명이나 된다. 이쯤 되면 힘없는 소수가 아니라 오히려 힘 있는 다수다.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거나 말거나 내 멋대로 행해도 별 지장이 없어 보인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인임을 밝히는 것이 무엇이 어려울까?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소수가 되고 핍박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과연 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힐 수 있을까?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각종 불의의 압박과 유혹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그런 불의를 거절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술고래였던 어떤 청년이 수련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었다. 집에 돌아가자 그가 변화된 것을 모르는 술친구들이 평소와 같이 그를 끌고 술집에 데려갔다. 이 친구는 술 잔을 뒤집은 후에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부터 나는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 모든 친구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은 지금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서 이중장부를 작성하고 조작할 것을 지시하자 그는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그는 회사에서 퇴사할 것을 각오하고 내뱉은 말이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였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동시에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과거에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겨를 분리하는 방법은 키질이었다.

키질로 곡식을 공중에 띄우면 티끌이나 가벼운 껍질은 바람에 날아가고 알곡만 밑에 가라앉는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4)

 

세상의 압박과 핍박은 일종의 키질이고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들이 알곡이고, 부인하는 자들이 바람에 나는 겨다.

 

◆ 성령 모독죄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사람의 모든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는데, 성령 모독죄는 용서받을 수 없고, 영원한 죄에 처한다고 하셨다(막 3:29). 심지어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마 12:32). 정말로 무서운 죄다.

 

예수님을 거역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면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성령모독죄로 몰아가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는 사람이다.

 

성령모독(훼방)죄는 도대체 어떤 죄일까?

솔직히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 조심스럽기도 하다.

모독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라스페매오(βλασφημεω)는 모욕하다는 의미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고 욕하는 것을 이 단어로 묘사했다(마 27:39). 영어는 아예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발음 그대로 사용하여 'blaspheme'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성령모독죄는 분명히 '말'과 관계있다.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이라고 하셨다(마 12:32). 이 죄에 대한 언급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험담한 데서 시작되었다. 분명히 그 열매를 보면 성령의 역사가 분명함에도 그들은 단지 상대방이 경쟁상대라는 이유로 헐뜯고, 모독했다.

 

성령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귀신의 역사라고 몰아간다면 그는 성령을 모독한 것이다. 시기와 질투는 성령모독죄를 유발하는 요소이며, 교만은 그것을 입 밖으로 토해놓는 용기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무서운 죄를 범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만일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계신다면 이 죄를 범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조차 시기와 질투, 그리고 교만에 눈이 멀면 이 죄에 근접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사역을 함부로 '마귀의 역사'라거나 '이단'이라는 등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나는 요즈음 이런 말을 너무나 쉽게 하는 사람들을 본다. 참 용감한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주님을 반대하지 않는 한 그는 타도되면 안 된다(마 12:30). 그가 예수님을 높이는 한 그는 반대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빙자하여 사람들이 자기를 추종하게 한다면 그는 사이비요 거짓 선지자다.

 

성령모독죄는 정의하기가 쉽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한다. 단순히 예수님을 반대했다고 성령모독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였다. 그러나 그는 알지못하고 행했기 때문에 용서받았다(딤전 1:13개역개정). 우리가 서로 비판하며 싸웠다고 해서 성령모독죄를 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감정에 휩싸인 나머지 명백한 성령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로 몰아가는 것은 너무나 치명적이다.

 

우리는 누가 성령모독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다. 함부로 정죄해도 안될 말이다. 다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심은 제자들이 이런 죄를 지을 위험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시기와 질투, 또는 교만에 찌들어서 이토록 위험한 죄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심이다.

 

주님,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께서 저의 주님 되심을 부인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세상 눈치 살피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해주십시오. 저의 신앙을 진실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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