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세상 사람들이 지옥으로
달려가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아십니까?
그 속도에 비하면 초음속 여객기도
거북이처럼 느리게 느껴집니다.
세상을 뒤흔들 부흥을 달라고
철야기도를 해본 적이 언제였습니까?
너무 오래 되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계(건축공사장에서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가로세로 얽어서 만든 시설)를 건물로 오해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머리로만 연구
하고 해석하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분주함을 기름부음으로
떠들썩한 것을 부흥으로 오해합니다.
기도의 비결은 은밀함에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기도를 중단할 것이고
기도하는 사람은 죄 짓기를 중단할 것입니다.
기도는 오묘하면서도 단순하고,
단순하면서도 오묘합니다.
기도는 유아들도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형태의 언어입니다.
그러면서도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수처럼 말을 많이 쏟아놓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말을 쏟아놓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쏟아놓아야 합니다.
영혼을 쏟아놓는 깊은 기도의
한 예가 ‘한나의 기도’입니다.
성경은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기도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삼상 1:13)라고 증거 합니다.
그녀의 기도 소리가 귀에 들렸는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기도에는 ‘말할 수 없는 탄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의 조상의
성경적 신앙과 행함을 따릅니까?
아니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도한
흥분과 과시의 신앙 형태를 따릅니까?
현재 많은 교회의 최대 관심사가
돈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이러한 현대
교회의 최대 관심사에 하등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돈 내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들은 기도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과거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수많은 성도들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지옥을 뒤흔드는 강력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사람이 가뭄에 콩 나듯 드뭅니다.
명심하십시오.
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기도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 중에서
◑기적이 아니라 거룩을 설교하라 출처
레너드 레이븐힐
https://www.youtube.com/watch?v=oesN0b-ruTc
요즘에 은사주의 집회를 가보면
서서 30-40분 정도 찬양한 후
하늘로 경배를 올려주었으니
하늘에서 불을 내려 주길 기대합니다.
저는 영국에서 있었던 오순절
거룩한 집회를 기억합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강대상 앞에 예배 후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며 있었습니다.
14살 때 저는 그런 그들을 보며 두려워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오순절 집회에 데려 가고는 했습니다.
길가에 사람들이 모여서 힘차게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 오셔서 역사하소서.’ 라고 외쳤을 때
저는 주님이 내려와서 역사할까봐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보통 하나님께서 그런 집회 가운데로 오셨습니다.
집회 후 찬양을 했습니다.
‘십자가 아래’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를 찬양했습니다.
십자가 아래가 아니라 십자가 위로 가야 합니다.
토져 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다시 그길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은 사람들이 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 죽은 사람들과 죄안에서 죽는 사람들
우리는 이 두 부류의 사람 중 하나에 속합니다.
사실 요즘에 죄에 대한 승리에 대해 말하면 비웃습니다.
승리하면서 살지 못한다면 차라리 불교 신자가
되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게 낫습니다.
순결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
지금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는 책에서
그렇게 말하는데 사람 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가서 죄를 덜 지으라고 했습니까? 십자가가 있기도 전에
부도덕하게 사는 여자에게 죄짓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훔치는 자들은 덜 훔치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죄를 끊어내라고 했습니다.
미국 교회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거듭남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강조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방언, 기적, 기사와 표적에
대한 메시지보다 거듭남이 무엇인지 가르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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