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12:49
◑1. 불세례를 받으라. 출처
나 레이븐 힐은, 주님이 세상의 불신자들을 오래 참으시는 것에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눈멀고 귀먹은 그들 앞에서 아무리 손짓을 하고 소리를 질러도
그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를 정말 놀라게 하는 것은, 주님이 교회를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잠에 빠져 있는 교회를,
오래 참으시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문제 삼으시는 것은, 세속화 되어버린 ‘탕자 같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파산한 신자요, 눈먼 신자들입니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벌거벗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수많은 장비와 프로그램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과거 어느 때 보다 더 부유하지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사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가난합니다.
물질적으로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거의 없으나
초대교회에 있었던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벌거벗고 부끄러운 줄 모르면서, 세상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데,
어떻게 주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는 성령의 불이 필요합니다.
죄인들을 거꾸러뜨리고 제단으로 몰려들게 만들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이
지금 교회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만
기도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불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과 불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불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죄인들은 '지옥의 불의 길'로, 진실한 성도들은 '성령의 불의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령의 불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수백만의 사람들이 지옥의 불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을 통해 부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해서,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도록 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하자, 그의 시종은, 엘리사를 둘러싼 불말과 불수레를 볼 수 있었습니다. 왕하6:17
미가는 불을 예언했습니다. 믹1:4.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그는 성령의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라고 예언했습니다. 마3:11
예수님 자신도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2:49
우리는 '물세례'를 받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론 '물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불세례'입니다.
우리가 불세례를 받지 않으면 큰일 날것으로 여기고, '불세례'를 받기위해 힘쓴다면
우리의 교회는, 성령의 불로 타오를 것이며, 제2의 오순절이 도래할 것입니다.
☞full length는 내 잔을 마시겠느냐? 를 보세요.
◑2. 말세의 비극은 무엇인가요? 출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말세의 비극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죽은 설교자가 죽은 청중에게 죽은 설교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큰 비극은 이런 설교자, 이런 청중, 이런 설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요?
저, 레너드 레이블힐이 '해 아래서' 목격한 이상한 일은
설교자들이 기름부음을 받지 않고 설교하는 일입니다.
더욱 애석한 것은, 이 이상한 일이 복음주의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설교자의 설교는, 죽은 청중을 더 죽이는 일이 됩니다.
설교자에게 기름부음이 임하지 못하면, 설교는 죽은 말씀이 됩니다.
설교자여, 기름부음을 얻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십시오.
설교는 영적인 일입니다.
머리에서 나온 설교는 청중의 머리만 움직일 뿐입니다.
마음에서 나온 설교는, 청중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설교자는, 성령충만한 청중을 만들어냅니다.
지식을 통해 배운다고 해서,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기름부음을 얻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름부음은, 기도의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둔 사람에게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곰곰이 묵상해 보십시오.
‘기름부음은, 기도의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둔 사람에게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서, 옛 지혜자의 명언과 최첨단 지식으로 가득한 말을 쏟아낸다고 해서
영적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영적 전쟁의 승패는 기도의 골방에서 판가름 납니다.
설교자가 설교단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이미, 그는 승리자이거나 아니면 패배자입니다.
기름부음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우리에게 침투해 들어오고 뚫고 들어와서
우리를 누그러뜨리고 상쾌하게 해줍니다.
인간적인 열정으로 목청을 높이거나 논리 정연한 언설로도 열리지 않던
돌 같은 마음도, 기름부음이 임하면 무너집니다.
◑3. 교회를 조직하는 사람은 많으나, 고뇌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출처
헌금을 내는 사람은 많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쉴 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씨름하듯 기도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세속적인 신자는 기도를 중단하고,
기도하는 신자는 세속적 삶을 중단합니다.
십일조는 교회를 세우지만,
눈물은 교회에 생명을 줍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와 현대교회의 차이점입니다.
우리는 헌금 내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들은 기도하는 것을 강조했고
우리가 돈을 낼 때에는.. 땅을 살 수 있지만
그들이 기도했을 때는.. 땅이 흔들렸습니다.
◑4. 강단의 설교가 살아나야 합니다. 출처보기
수백만의 이교도들이 멸망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성의 없이 차린 음식, 즉 맥 빠진 설교로 봉사하고, 낡고 오래된 선교영화를 상영하고,
생기 없는 교인들을 데리고 뭔가를 해보려고 하고, 소심하게 전도하고,
자기만족과 방종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백열의 태양처럼 뜨거운 마음을 가지신 의로운 주님께
준엄한 책망을 들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회당의 법과 제도를 지나치게 완고하게 따르는 자들에게
준엄하게 화를 내셨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우리는 역사상 볼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암 환자에게 아스피린을 건네주면서,
그것을 먹으면 병이 고쳐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제가 볼 때 이것과 똑같은 범죄행위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수백만의 굶주린 영혼들에게,
그릇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맥 빠진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지 않는 설교,
열정적으로 불타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설교,
타락한 사람들을 위한 해산의 눈물과 고통이 없는 설교,
이런 설교들이 잘못된 설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판이 아니라, 진지한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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