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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2장49-53 /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

by 【고동엽】 2023. 1. 18.

(누가복음 12장)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묵상/눅 12:49-53)

 

◆ 불을 세상에 던지러 오심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주님께서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하신다. "이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는 말씀은 불이 붙어서 퍼지기를 간절히 원하심을 내포한다.

이 불은 무엇을 의미할까?

 

주님께서 언급하신 '불'은 이 세상에 던지신 구원의 복음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소동이다. 이 불은 세상을 두 개로 나눌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킬 것이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되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멸망의 증거다(빌 1:28). 복음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사이에 분쟁을 일으킬 것이다. 평화의 복음이 평화를 깨는 일을 한다니 아이러니다.

 

과거에 제주도 어느 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갔는데, 예배당에서 생활하는 고등학생이 있었다. 목회자 말에 의하면 이 아이가 학교에서 전교 1등 하는 우수한 학생이라고 했다.

 

예배당에서 사는 사연을 물어보니, 이 아이의 집이 부자이고, 아버지가 제주도 유지인데, 이 아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알자 토속신앙을 가진 아버지가 크게 노했다고 했다. 예수 믿으면 한집에서 살 수 없으니 믿음을 포기하던가, 집을 나가든가 선택하라고 하자 믿음을 버릴 수 없었던 이 학생이 결국 집을 나와서 지금 예배당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아들, 그리고 평화롭던 가정이 예수님 때문에 분쟁이 생기고 깨지게 되었다.

 

이 학생은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믿음을 포기했어야 했을까?

아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 것을 말씀하심이다. 설사 어떤 분쟁을 일으키더라도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오히려 그 꿋꿋한 믿음 때문에 온 가족이 구원받을 날이 올 것이다.

 

세상에는 목숨보다 귀한 것이 있다. 아비가 자식을 위해서 죽기도 하고, 종종 의인들은 타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애국자들이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감동이다.

 

그러나 어떤 것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버려도 될 만한 숭고한 가치는 없다. 믿음이란 단순히 내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기본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것까지 손상시킬 가치란 없다. 그리고 믿음을 버림으로써 얻는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님을 믿는 자였다. 그러나 자기 조국의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 믿음을 버리고 힌두교를 선택했다.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간디는 마지막 길에서 자신 안에 평화가 없음을 토로했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신의 인생은 빈껍데기 뿐임을 깨달은 것이다. 차라리 그가 조국에 복음을 전했다면 더 좋을 뻔 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지라도 자기 백성이 구원받기를 원했지만, 그것은 믿음을 버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롬 9:3). 바울은 자기 백성이 모두 자기처럼 믿음을 갖기를 원했다.

 

믿음은 어떤 분쟁과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고수해야 할 가장 최고의 가치다.

 

어느 무신론자 사업가가 무남독녀가 예수님을 믿어서 선교사로 헌신하자, 결국 딸을 떠나보내면서 이렇게 울부짖었다.

"나사렛 목수여, 당신은 사람인가, 신인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분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복음으로 정복되었을 때 진정한 기쁨과 평화가 이루어진다. 

 

내가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 한 여학생을 전도하자, 그 집에서 아버지와 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자기 딸에게 복음을 전한 나를 무척 원망했다. 그러나 후에 그 아버지는 딸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었고, 그의 임종을 내가 지켜보았다. 그는 죽기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심약한 자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서 믿음을 포기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아무리 분쟁이 일어날지라도 믿음 만은 고수할 것을 명령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단호함과 꿋꿋함이 결국은 온 가족을 살릴 것이다. 배가 뒤집어져도 한 명은 살아있어야 나머지를 구한다. 

 

내가 천국에 갔을 때, 내 자식이 지옥에서 '왜 내게 이런 진리를 말해주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듣는다고 상상해보라. 정말 끔찍하지 않는가? 

 

 

◆ 주님께서 받으신 세례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작은 불씨가 온 숲을 태운다.

차에서 무심코 던진 담배꽁초 하나가 온 산을 태웠다. 불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불씨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그 불씨를 만들어야 하는 심정을 토로하신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50)에서 '받을 세례'란 십자가에서 죽는 고난이다(막 10:38). 이것이 없이는 복음의 불씨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십자가의 고난을 겨우 몇 개월 앞둔 시점에서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가 전하는 진리는 전설이나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피흘려죽으심으로 이룩하신 생생한 복음이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실재하는 곳이다.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양보하지 말자.

 

주님,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어떤 분쟁을 일으킬지라도, 

깊은 고난 속일지라도,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질지라도,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칠지라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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