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2장35-48 / 진실한 청지기가 될 자가 누구냐?

by 【고동엽】 2023. 1. 18.

(누가복음 12장)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묵상/눅 12:35-48)

 

◆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주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34)고 하시고는 바로 이어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하신다.

 

성도들의 삶의 자세가 언제라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렇게 주님께서 오실 것을 대비하고 사는 성도를 향해서 주님께서는 '복이 있다'고 하시고, 주인이 오히려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을 들 것이라고 하신다(37).

 

주님께서 얼마나 성도들에게 이러한 자세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많은 성도가 신앙 초기에는 아주 신실하고, 마치 등불을 켜고 서 있는 것처럼 시작한다. 그러나 교회 생활 속에서 서서히 오래된 신자들의 세속화되고 타락한 모습에 오염되기 시작한다.

 

가끔 신앙생활 수십 년 했다는 신자들의 자발적인 세속화 결심을 듣는다. 이제부터는 누구 눈치도 안 보고 내 고집대로 살 것이라고 선언한다. 정말 슬픈 일이다.

 

세상에서는 멋대로 사는 삶의 부추기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당신 스스로가 자기 주인이 되라는 식의 권고는 마치 예수님을 향해 조롱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외치는 세상 사람들 같다(마 27:40-42).  이러한 것들이 죄성을 자극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오래된 욕망을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

 

성도는 스스로가 자기 주인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의 주인 된 사람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다. 거기로 돌아가면 안 된다.

 

세속에 찌든 오래된 신자나 직분자들이 내가 본받을 대상이 아니라 처음 믿는 초신자일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내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다.

 

◆ 진실한 청지기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에게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있다. 모름지기 교회 공동체란 단지 모여서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라 서로가 자기 은사를 가지고 기여하여 함께 자라가는 유기체다.

 

교회 직분은 감투가 아니라, 남을 섬기는 일이며 봉사직이다. 교회 직분이 감투처럼 취급된다면 사양하되 봉사직이 분명하다면 사양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야 한다. 사양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오만이고 게으른 것일 수 있다. 오히려 이사야처럼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소서"(사 6:8)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자기 은사를 따라 충성하며 힘을 다해 봉사하는 자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다. 

 

이렇게 충성한 청지기에게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신다고 했는데(44) 이것은 하나님의 소유된 천국을 그에게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심이다. 그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내게 무엇이 주어지든 마음을 다해서 충성하자.

 

 

◆ 악한 종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신실한 종과 대비되는 악한 종이 있다. 이 종은 종교를 이용해서 교인들을 지배하고 자기 배를 위해 예수님의 이름까지 팔아먹는 자들이다.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 알고도 이런 짓을 한 자들은 매를 많이 맞는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 구절이 '구원의 영원성'의 문제와 얽혀있어서 논란이 된다. 일반적으로 칼빈주의를 따르는 자들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에 절대로 구원을 잃는 일 따위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 악한 종은 구원받은 자인가, 아닌가? 일단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매를 맞을 뿐 천국에 들어가는 데는 이상이 없을까, 아니면 구원이 취소되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자일까?

 

교리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성경에서 교리를 뽑아내고는, 나중에는 그 교리 속에 성경을 욱여넣는다.

 

참고로 주님께서는 이러한 '악한 종'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하셨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았건만 자기는 친구의 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은 자(마 18:32),

 

한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종(마 25:26) 등이 있다.

 

이들은 구원을 잃은 자일까,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자일까?

 

한때 빌리그래함과 함께 활동한 템플턴이란 자는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고 전도자로 변신했다. 거대한 운동장에서 수많은 청소년을 모아놓고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매우 열정적으로 사역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교에 입학한 후 성경에 대해 회의하면서 믿음을 잃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안 믿기로 선언했다. 그는 말년에 '내가 기독교 신앙을 버린 이유'라는 책을 써냈다.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었다.

 

배도한 그는 처음부터 구원을 받지 못한 자일까, 아니면 구원을 잃어버린 자일까, 아니면 여전히 구원받은 자일까?

 

종종 주변에서 이렇게 배도한 자들을 본다. 나는 구원의 영원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한번 구원받은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이다. 그것처럼 비성경적인 말이 없다. 교리를 위해서 성경을 찢는 행위다.

 

성경에서 명백하게 밝히는 것은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칼빈주의든 알미니안 주의든 어떤 교리로도 이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

 

한번 구원받은 자는 예수님을 안 믿어도 구원이 유지된다는 식의 주장이 말이 되는가? 그것은 한번 구원받으면 지옥에 가도 구원이 유지된다는 말처럼 모순된 말이다. 지옥에 갔는데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어떤 물건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주님과의 관계다. 이 관계가 손상되었는데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악한 종은 매를 맞게 된다는 이 말씀은 무서운 말씀이다. 이것은 매 맞고 난 후에 천국으로 받아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연옥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을 말씀하심이다. 가룟 유다처럼, 템플턴처럼 주님을 버린 자들이 가는 비극적 결말을 말씀하심이다.

 

이들이 구원을 얻었다가 잃었는지, 애초에 구원을 못 받았는지는 신학자들이 논쟁하게 하라. 분명한 것은 믿음을 버린 자에게 천국은 없다.

 

주님의 이 경고는 교인들을 착취하는 어떤 목회자들에게만 적용하여 위안으로 삼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바로 내 자신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삼아야 한다. 내가 그러한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곧 배도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안일함과 세속적 욕심에 눈먼 내가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한다. 교회를 통해서 내 명성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오, 주님,

나의 믿음이 사람에게만 보이려고 하는 이 외식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진실하게 하시고 실제로 적용하고 실천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4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