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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슈바이쳐박사가 노벨 평화상을 타기 위해 잠시 아프리카를 떠나 프랑스공항에 내린 박사님은 덴마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세계에서 몰려온 신문 기자들이 기차에 동승을 하게 되었고 슈바이쳐를 만나기 위해서 특등석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슈바이처를 찾지 못한 사람은 1등석으로 그리고 2등석으로 가 뒤져 보았지만 슈바이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3등석 시골 촌부들과 함께 사과 괴짝을 엎어놓고 슈바이처는 촌노들의 손을 붙들고 맥을 짚고 있었습니다. 슈바이처는 박사 학위가 3개, 명예박사학위가 20개 였습니다. 영국황실에서 그에게 백작칭호를 주었고, 노벨상으로 막대한 상금을 손에 쥘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한 기자가 “선생님, 몸도 피곤하실 터인테 어찌 이런 3등석 자리에 있습니까?” 슈바이쳐박사는 한마디 말을 남깁니다. “3등석 밑엔 열차가 없어서요. 그리고 나는 내가 즐길 곳을 찾아 살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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