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예수님의 얼굴을 다르게 그립니다. 각자가 만난 예수님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팔레스타인의 농민 혁명가로 그립니다. 어떤 이는 그 시대의 인습적인 지혜를 뒤집어엎는 전복적인 현자(賢者, Sage)로 그립니다. 우울한 종교인의 얼굴로 그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휴머니스트로 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합해도 예수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예수상을 그리는 일들은 참 중요합니다. 며칠 전 [광수생각]이라는 만화가 참 재미있더군요.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빠, 제가 하느님을 그려볼게요!" "아무도 하느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아빠는 뜨악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아이는 말합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내가 그린 걸 보면 알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만화가가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것도 압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잘 그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 어른이 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래요,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그린다는 데, 우리가 주님의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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