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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3장18-30 /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by 【고동엽】 2023. 1. 18.
누가복음 13장)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묵상/눅 13:18-30)
 
◆ 하나님 나라의 시작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하나님 나라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다.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시제의 양면성을 말한다.
'이미 그러나 아직 (Already but not yet)'
 
이 말은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지구상에 현존하고 있으며, 앞으로 오는 나라임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확장되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완성되는 나라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바라보며 기다렸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된 자들이며 모세도 엘리야도 모두 이 나라를 위해 준비된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나라의 모형이며 그림자였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들을 실체로 오해함으로써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워졌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8) 라고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실체임을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정말 겨자씨처럼 작았다.
예수님에게 수만 명이 모일 때, 로마 당국이 잠시 긴장했지만, 막상 조사하니 핵심 멤버는 12명뿐이고 그들은 모두 배경도 학벌도 없는 지극히 초라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가르침도 '원수를 사랑하라'이니 절대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는 자들이었다.
 
더구나 활동 기간이 3년도 채 안 되어서 대표되는 자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라를 세우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세속국가 권력자 눈에는 예수님의 세력이 정말 겨자씨처럼 작으며 그의 영향력이란 '찻잔 속의 태풍( a Storm in a Teacup)'일 뿐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부흥의 불길이 온 세계로 번지고 말았다. 겨우 담배꽁초 하나 버렸을 뿐인데, 그게 온 산을 넘어서 산맥 전체를 불태울 줄 누가 알았을까? 로마가 굴복하고, 유럽이 굴복하고, 근대에 와서는 미국도 굴복했다. 부흥의 불길 앞에서는 어떤 국가도 무력했다. 심지어 한국도 제헌 국회 첫 시작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였다.
 
 
하나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약간 섞었을 뿐인데 빵 전체가 몇 배로 부풀어 오른다. 더둘로는 사도 바울을 고발하면서 온 천하에 팬데믹을 일으킨 염병이라고 고발했다(행 24:5). 바이러스 명은 복음이다.
 
문준경 전도사(1891-1950)가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기독교 신자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여 온 섬의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 증도는 우리나라 동네 중에서 기독교인 비율이 90%가 넘는 유일한 지역이다. 길거리 이름도 '문준경로'다. 하나님 나라는 누룩과 같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오, 우리가 복음 바이러스 보균자로서 천하에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자이며, 누룩과 같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아는가? 이 복음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까 조심하지 말고, 오히려 열심히 전염시켜야 한다.
 
◆ 구원받은 자는 적나요?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천국에 들어가기는 어려울까?
 
성경은 양면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좁은 문'이라고 하시고, 심지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신다(마 19:24).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게 오는 자를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하신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부요하심을 증거한다.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하면서 즉시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2, 13)라고 한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는 겨우 한마디의 요청을 했을 뿐인데 주님은 그에게 '아멘'으로 응답하셨다(눅 23:42-43). 이는 우리 주님께서 구원에 얼마나 부요하신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왜 좁은 문이라고 하실까?
그것이 복음의 특이함이다. 자기 의로 가기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불가능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 19:26) 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단번에 얻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 믿지 않는 자들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는 질문에 주님은 적다고 하지 않으셨다. 단지 기회를 놓친 자들이 있고(24), 착각하는 자들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는 말씀은 무서운 말씀이다. 마치 구원받은 자가 똑바로 못살면 내쫓는 것같이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구절은 구원의 부요하심이나 영원성을 부정하는 말씀이 아니다. 구원 받았다가 잃어버린 자의 이야기도 아니다. 평생 예수님 주변을 맴돌았지만 끝내 예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오병이어 기적 속에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길거리에서 직접 배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진짜로 예수님을 믿은 적은 없다. 그저 예수님에 의해서 일어나는 기적이 신기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았을 뿐이다. 설교 말씀 듣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느끼자 바로 떠났다. 이들이 행악하는 자들이다. 행악을 단순히 율법을 범한 행위라고 정의하면 안 된다. 용서가 있는 한 죄 자체가 지옥에 보내지 못한다. 행악자란 결국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대적하는 무리다.
 
오늘날 교인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설교 후에 참 좋았다는 칭찬은 남발하지만, 정작 실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들은 예배당을 나서는 순간 아무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 그저 머릿속을 세상일로 가득 채울 뿐이다. 설사 설교 말씀을 기억은 해도 그것은 그냥 참고 사항일 뿐 나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바꾸지는 못한다.이런 자들이 바로 행악하는 자들이다.
 
교회 내에는 두 부류가 있다.
예수님을 진짜 믿는 부류와, 자기가 믿고 있다고 상상하는 부류다. 그런데 이 둘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열 처녀 비유에서처럼 평소에는 함께 졸고 있다. 그러나 신랑이라는 소리에 깨자,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이미 준비해서 잘 대비했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이 없어서 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신앙은 위기가 닥쳐봐야 그 참모습이 드러난다.
위기가 닥쳤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떠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오히려 더 신앙이 단단해지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나보다 신앙생활 오래 했거나 교회 타이틀이 높다고 해서 그에게 함부로 조언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신앙생활 오래 했다고 함부로 초신자에게 조언하지도 말아야 한다. 당신의 세속적이고 부패한 신앙을 기준으로 조언함으로써 진짜 신자가 미혹될까 염려하라.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맷돌을 매고 물에 빠져 죽는 게 더 낫다고 하신다(마 18:6).
 
사람이 똑바로 살지 못해서 구원의 반열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율법으로 구원을 유지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다(롬 1:16-17).
 
그러므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받자. 그래야 예수님을 닮아간다.
내 고집, 내 편견에 휩싸여서 어설픈 율법주의자가 되거나 자기 의를 자랑하고, 자만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자.
 
주님,
저를 구원해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지혜로운 처녀처럼 기름을 잘 준비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말고 항상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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