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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3장31-35 / 기회를 놓친 예루살렘 성

by 【고동엽】 2023. 1. 18.

누가복음 13장)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묵상/눅 13:31-35)

 

◆ 여우 헤롯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유대 왕이었던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헤롯(안티파스)은 자기 왕권에 손톱만큼이라도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바로 죽이는 권력 집착증 환자다. 이 헤롯의 아버지 헤롯(대헤롯)은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서 자기 아들마저 죽인 자다.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부르셨는데, 한낱 평민의 눈에서 평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평가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당시에 대단한 위세를 가졌던 헤롯일지라도 하나님 아들의 눈에는 단지 여우에 불과했다. 여우는 교활하고 꾀가 많지만 힘은 없는 조그마한 짐승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세상 권력자들을 무서워하면 안 될 일이다.

 

32절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제삼일'은 비유적인 말씀으로 보인다. 아직은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가 아니며, 헤롯이 무엇을 계획하든 예수님의 목숨은 헤롯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명확하게 하신 것이다. 주님, 이러한 주님의 당당함을 본받게 하소서.

 

◆ 예루살렘아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성,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하는 큰 왕의 성으로 여겨졌다(시 48:1-2). 그런데 막상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거역하며, 배반하고 하나님을 대적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고 하심은 얼마나 예루살렘이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피를 많이 흘렸는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하심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을 많이 쏟은 성읍이 이럴 수 있을까? 이런 배은망덕을 과연 참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끊임없이 참지 않으신다. 그것을 모르는 자는 방자하고,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지만, 언젠가 은혜의 시대가 멈추고 구원의 날이 끝나는 순간 후회하고 슬퍼해도 소용없다. 기회란 앞에서 잡아야지 뒤에서는 못 잡는다. 지금 바로 은혜를 구하지 않으면 결국 또 기회는 지나간다. 

 

주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아는 은혜를 지금 저에게 허락해주십시오. 은혜의 풍성함을 간구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 기회를 놓친 성의 최후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할 때까지 예루살렘 사람들이 주님을 보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셨다(35).

 

이 말씀은 후에 예수님께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 21:9)라는 사건을 의미할까?

 

흥미로운 점은 마태복음에서는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말씀하신 것으로 되었지만(마 23:39), 누가복음에서는 그 이전에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누가는 19장에서야 호산나 찬송하는 사건이 일어난다(눅 19:38).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잠시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로 가셨다가 얼마 후에 다시 돌아올 것으로 해석하고, 마태복음에서는 재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누가복음에서는 실제로 나귀 타고 입성함으로써 실현되었고, 마태복음에서는 미래에 정말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옴으로써 재림 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환영하며 맞이할 것이기에 맞다.

 

그러나 오늘 주님의 말씀에서 '예루살렘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35)는 말씀과 연결하면 재림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의미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후 꼭 37년 후인 AD 70년에 예루살렘은 로마의 침략으로 황폐하게 되었다. 백만 명 이상이 굶어 죽거나 학살당했고, 성전은 불타서 없어지고, 모든 백성은 온 세계에 흩어졌다.

 

예루살렘 성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사라졌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이 짓밟는 곳이 되었다. 과거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을 때는 소수일지언정 비천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남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몰락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 기간은 70년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무려 이천 년이었다.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다시 나라를 되찾았다. 이것은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언젠가 민족 전체에 회개가 일어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할 것이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을 손가락질할 때가 아니다. 주님의 한탄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보아야 한다. 주님께서 아무리 품으려고 해도 거절하고 제멋대로 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은혜 베푸실 때 은혜를 받고, 구원의 날에 구원받아야 한다. 기회는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주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마음 속의 성실과 진실을 기뻐하시는 주님,

제 마음을 주의 지혜로 가득 채워 주십시오.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 주시고 내 안에 정직한 새 영을 넣어 주십시오.

 

(다윗. 시편 51:1,6,10 표준새번역)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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