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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4장1-11 / 끝자리에 앉으라

by 【고동엽】 2023. 1. 18.

누가복음 14장)

 

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묵상/눅 14:1-11)

 

◆ 잘못된 기준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안식일이라도 아들이 우물에 빠졌으면 즉시 건져낼 것이다. 심지어 자기 집 소가 빠졌어도 즉시 건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수종병(몸이 붓는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일에 대해서는 율법을 어긴 것으로 정죄했다. 심지어 이들은 이렇게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을 트집잡아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했다(요 7:19-23).

 

이것이 인간들이 만든 종교의 무서움이다. 어떤 사람을 공격하고자 한다면, 그를 정죄할만한 일을 성경에서 찾아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라고 우겨대니(요 16:2) 제법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트집 잡고 있다.

 

이들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일까? 아니면 단지 내 편인지 아닌지일까?

 

과거에 한 자매가 자기와 경쟁 관계에 있는 자매를 공격하였다. 공격 내용은 그 자매가 찬양 책에 그려 넣은 삽화 중 하늘을 향해 찬양하는 여인의 손가락을 너무 길게 그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삽화를 그린 그 자매가 허영과 사치에 들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너무나 확신을 하고 말해서 듣는 사람들이 모두 미혹되었다.

 

하나님 말씀을 끄집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과장된 해석을 곁들이면서 트집을 잡으니까, 제법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침소봉대이며, 털어서 먼지 내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미혹해도 안 되고, 이런 것에 미혹되어도 안 된다. 

 

오늘날 상당수의 판단 기준은 진리나 정의가 아니라, 내 편인지 아닌지가 기준이다. 나도 종종 그런 실수를 범한다. 이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삼가야 할 일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경고하셨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요 7:24)

 

 

◆ 말석에 앉아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90년대 한참 나라와 민족의 회개 운동을 전개할 때였다. 당시 교계의 지도자들이 모이는 모임에 여러 목사들이 참석했다. 여기에 팔십 세가 넘은 교계의 원로 한경직 목사가 나타났다. 그런데 가장 상석에 한국의 아주 큰 교회 목사가 앉아있었는데, 그는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당시 모임을 주최했던 형제들은 몹시 불편했지만, 자리를 양보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그런 것이 아예 불쾌하지 않으신 분이었다. 이전에 이분을 잠깐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그의 몸에 밴 겸손은 참으로 감동이었다.

 

그런데 이런 예화를 들을 때, 겸손한 한경직 목사에게 감동하기보다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그 목사에 대해 분노가 더 큰 사람들은 여전히 바리새인처럼 율법적인 종교인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보다는 남에게 적용하고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일 수 있다. 

 

성도라면 섬기는 것이 익숙하고, 말석이 불편하지 말아야 한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석이 편해야 한다. 우리 주님 같은 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면, 나 같은 자가 마구간을 불쾌하게 여기면 되겠는가?

 

"끝자리에 앉아라."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와 다른 모습이 상석이 아닌 말석이 경쟁 자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형제들의 따뜻함과 사랑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별것도 아닌 것으로 자기를 무시했다고 길길이 뛰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평소에는 겸손한 체하고 섬기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주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닌 율법적인 외식일 뿐이다.

 

우리는 겸손하라, 섬기라는 율법 때문에 겸손과 섬김을 애쓰는 자들이 아니라, 진정한 섬김과 겸손을 직접 보여주신 우리 주님으로부터 보고 배운 자들이다.

 

주 예수님,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참으로 섬김과 겸손을 주님으로부터 더욱 배우길 원합니다.

세속화된 마음을 고쳐주시고, 새롭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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