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를 신앙과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학문적 노력.
원래는 고대 그리이스 철학자들이 신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신개념에 대한 철학적 논설에 쓰이던 말이었는데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는 용어로 채택되었음. 출발점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며, 협의로 본다면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만을 취급하나, 광의로 생각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제반 문제를 다룸.
신학의 소재는 성경.
신학은 그 원리에 따라 주경신학(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등으로 구분됨.
신학에는 기본적인 세 가지 틀이 있음. 정통, 자유, 급진적 신학이 그것인데, 이 세 가지 틀들은 기독교 신앙의 각기 다른 시대에 형성된 세 채의 집들과도 같음.
1. 정통신학
그 출발점은 성경이며 교의학적 전통을 말함.
정통주의라고 할 때 이 말은 '올바른 신앙'이라는 뜻을 가짐.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발전했으며, 구라파의 계몽적인 사상이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에도 '고전 신학'으로 치부된 이 신학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
2. 자유신학
기본 전체는 과학의 타당성과 종교의 역사성, 문화와 종교의 일치.
정교 분리 원칙을 해방적 기본원칙으로 주장함.
자유주의 신학의 붕괴를 초래한 것은 20세기의 파시즘.
3. 해방신학
급진적 신학의 한 형태.
시각의 변화를 강조함. 단순히 인종이나 성, 계급이라는 것 때문에 억압받고 차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신학. 가난한 사람이 우리의 선생이라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음.
신학2(Thelogy).
광의로 말할 때는 전 신학적 체계의 주체적 사실을 의미하며, 협의에서는 신론을 의미한다.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 속성, 그리고 삼위일체를 다룬다. 다른 정통에 의하면 신학의 본질과 관련해서 작정과 예정교리를 다루기도 한다.
1. 신학 개념
처음 플라톤이 사용하여 3,4세기 경에는 신학자란 말이 통상으로 로고스의 신성을 변호하는 사람들의 칭호로 되었고, 12세기에 신학자란 말이 종교적 진리와 신앙을 포괄해서 사용케 되었다. 중세기 신비가들은 신학의 진수는 직관이라고 생각하고 신을 직관하는 것이 신학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과 후계자들은 조직화된 진리로, 나아가서는 하나의 과학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차차 자연신학, 비기독교신학, 기독교신학의 구별이 불가피해 졌다.
2. 신학의 정의
신학의 원천을 종교 경험에서 찾는 자유주의 신학자들 중에서는 신학을 종교의 학이라고 정의하는 자가 많다. 그러나 신학의 원천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는 기독교 본연의 신학의 정의는 신학을 하나님에 관한 이론 또는 학문이라고 규정짓는 것이다.
3. 신학의 분과
석의신학은 성경 본문의 연구와 그 본문의 정리 및 해석에 관계되며, 역사신학은 기독교의 기원과 발전을 거론하는 동시에 그 종교의 교리들, 조직들, 행사들과 관계한다. 조직신학은 석의신학과 역사신학이 제공한 재료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신학연구의 대 제목들 아래 논리적 순서로 배열한다. 실천신학은 조직신학이 가르치는 교의들을ㅇ 사람들에게 전하여 가르쳐 그들의 종교 생활에 응용하는 일을 논의하는 것을 주임무로 한다.
브리태니커 백과
개요
신이라는 낱말로 표현되는 '궁극적 실재'는 제1철학이나 존재론적 형이상학에서 연구되기도 한다. 각 종교마다 이에 해당되는 신학이 있지만, 학문체계에서 신학은 흔히 그리스도교 신학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교에서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진술하고, 새로운 상황에서 그 진리를 거듭 재해석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노력이다. 신학은 교회에 봉사하는 학문으로서, 성서와 교리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인간상황에 선포하고 변증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신학의 연구대상은 이성의 영역 안에서 온전히 해명될 수 없는 '궁극적이고 성스러운 실재'이지만, 그 탐구가 하나의 학문적 연구이기 때문에 신학은 인간의 시도이며, 시대상황과 역사성에 제약받는다. 따라서 학문 일반과 마찬가지로 진리를 탐구하는 순례자로서 신학이 있을 뿐이다.
신학의 학문적 분과
전통적으로 신학의 학문적 분과는 크게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지며, 각 분야는 다시 세분된다. 신학의 세 영역은 성서신학 분야, 역사신학 및 이론신학 분야, 실천신학 분야이다. 성서신학 분야는 성서의 직접 연구를 주목적으로 하며, 성서원전연구·주석학·신약학·구약학·성서언어·성서고고학 등이 이 분야에 속한다. 역사신학 및 이론신학 분야에는 교회사, 교리사, 그리스도교 사상사, 조직신학, 문화신학, 종교신학, 그리스도교 윤리학 등이 속한다. 실천신학 분야에는 설교학, 예배학, 목회상담학, 전례학, 선교학, 그리스도교 교육학 등이 속한다.
성서신학 분야
현대 성서신학의 학문적 연구는 17세기 이후 계몽주의 정신에서 발달한 성서비평학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교부들의 성서신학, 중세 스콜라 신학의 성서연구방법, 종교개혁자들의 성서연구 등은 그 나름대로 항구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17세기 이후 역사학과 문헌비평학이 발달함에 따라 성서에 관한 과학적 연구방법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본문비평학과 역사비평학을 통해 성서의 원문을 재구성하고자 했고, 저자와 수신자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추적하게 되었다. 연구방법은 더욱 분석적·과학적으로 진행되어 성서의 문학적 양식을 연구하는 양식비평 연구방법, 편집과정과 성서의 전승과정을 연구하는 편집비평 연구방법과 전승사 연구방법이 발달되었다. 최근에는 인간의 삶의 기초를 이루는 사회 경제사적인 조명 없이 성서를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사회경제사적인 연구방법도 발달하게 되었다. 모든 신학분야가 그러하지만, 특히 성서신학의 문제는 결국 해석학(hermeneutics)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서신학은 성서가 전하려고 하는 참다운 메시지를 바르게 해석하고 오늘의 삶에 적용하는 이해의 과제를 갖기 때문이다. 17세기 이후에 발달한 성서비평학이 성서의 신적 권위와 계시의 진리성을 무너뜨린다고 판단하는 보수적 그리스도교 교파는 학문적 성서비평학을 거절하고 '성서무오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신학 및 이론신학 분야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메시지를 인간상황 속에서 선포하고 변증하는 과제를 갖는다. 그러므로 신학은 성서가 증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삶 속에 나타난 영원한 진리의 메시지와 인간의 상황을 상관시킨다. 인간의 삶의 상황은 일정한 역사적 시대에 이루어진 인간의 자기이해의 총체이다. 신학은 복음의 자기정체성과 인간상황에 대한 연관성을 동시에 지녀야 하므로 '자기정체성과 연관성의 딜레마'(Dilemma of Identity-Relevance)라는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상황을 무시하거나 초월하려는 신학은 굳어진 보수주의 신학이 되고, 그리스도교의 영원한 계시적 진리를 무시하는 자유주의 신학은 인본주의에 희생된다. 교회사와 그리스도교 사상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변천하는 인간상황 속에서 복음에 응답하고 그리스도교 진리를 변증한 역사이다. 그러므로 교회사와 그리스도교 사상사는 사회사·철학사·종교문화사의 밀접한 상호 조명관계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이론신학 분야는 교의학(dogmatics) 또는 조직신학의 형태로 전개되며, 계시론·신론·그리스도론·구원론·성령론·창조론·종말론 등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실천신학 분야
신학의 궁극적 목적은 교회의 선교 내용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돕는 실천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다. 실천신학은 설교와 예배를 위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훈련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바른 설교이며 참다운 예배인가를 연구한다. 상담학은 현대 심층심리학과 상담이론을 도구로 인간의 영적·정신적 치유와 성장·성숙을 돕는다. 그리스도교 윤리학은 개인윤리만이 아니라 사회윤리의 과제를 가지며, 사회구조의 창조적 변혁과 실천적 이론을 '하느님의 나라'의 빛 아래서 조명하고 훈련한다. 선교학과 그리스도교 교육학은 '하느님의 선교론'(Missio Dei)에 근거해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을 복음의 능력으로 조명하고, 창조적 변혁을 통하여 사랑·정의·자유·평화 등이 구현되는 하느님의 나라 실현을 위해 이론과 실천의 병행을 강조한다.
현대신학의 동향
자유주의 신학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슐라이어마허와 신칸트 학파의 영향을 받은 리츨·헤르만 등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 신학의 경향을 말한다. 현대 개신교 신학의 선구자는 슐라이어마허이며, 그의 신학사상은 1799년에 출간된 〈종교강연 Reden Über die Religion〉에 잘 나타나 있다. 〈종교강연〉은 종교를 경멸하거나, 종교를 형이상학이나 도덕으로 간주하는 합리주의적 지성인들과 계몽주의의 후예들에게 종교의 본질을 변증하려는 목적으로 씌어졌다. 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종교는 유한자 속에서 무한자를 느끼는 우주의 직관적 감정이며, 무조건적인 절대의존의 감정이다. 종교는 형이상학이나 도덕이 아니며, 우주와 무한자에 대한 직관적 느낌이다. 그의 '체험과 직관의 신학' 속에는 낭만주의와 경건주의의 유산이 내포되어 있다. 또 '절대의존의 감정'은 경건의 본질적 직관이며, 절대의존을 느끼는 것과 자기자신이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동일하다. '절대의존의 감정'은 인간의 자기의식의 최고 단계이며, 이 감정은 보편적인 삶의 요소, 곧 인간본성의 본질적인 요소를 이룬다. 슐라이어마허의 자유주의 신학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본성의 동일성 때문에 모든 인간과 동일하다. 그가 그리스도로서 모든 인간과 구별되는 것은 예수의 '하느님 의식'이 갖는 순수하고도 지속적인 힘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간의 원형이다.
리츨의 자유주의 신학은 신칸트 학파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예수의 순수한 도덕의식에서 찾았다. 헤르만도 '예수의 내적 삶'이 인간에게 최고 선(善)인 하느님의 현실성을 자각하도록 했다고 본다.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주의적 계시신학은 자연주의적인 합리적 도덕종교로, 종말론적 미래지평은 현재적 도덕왕국으로, 하느님의 섭리와 역사경륜신앙은 역사의 내재적 목적으로 해석했다.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의 신학, 리츨과 헤르만으로 대변되는 윤리신학을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학적 인식의 출발점과 토대를 초월적 계시, 성경의 무오성, 정통 교의에 두지 않고 인간의 내면적 종교성·윤리성에 두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적 종교사학
슐라이어마허 이후 개신교 신학의 새로운 경향은 20세기초 에른스트 트뢸치의 '종교사학'에서 대표된다. 19세기 이래 역사주의 풍토 속에서 신학은 그리스도의 본질과 종교의 본질 이해를 더이상 인간의 내면적 종교감정이나 윤리성에서만 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트뢸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초역사적 진리인 교의에 기초한 교의학적 또는 심리학적 방법이 역사적 방법으로 해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사 개념은 신학의 중심범주가 되었다. 그러나 트뢸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역사상대주의에 희생시키지는 않았다. 여기서 종교체험의 선험성과 종교의 표현, 자기전개의 역사성을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문제로 등장한다. 역사의 관계된 모든 실제는 확고부동한 절대적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역사과정과 인간의 역사와 관련된 역사적 그리스도교 역시 그 자체로서는 절대적 가치규범이 될 수 없다. 트뢸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목적지향적이고 가치창조적인 윤리적 일원론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느님 자신은 역사적 창조과정과 구원사 과정에서 자기 목적을 지닌 존재이며, 전체성과 통일성을 지니며, 피조세계를 끝없는 문화통합과정으로 인도한다. 트뢸치는 성서의 종말론적 하느님의 나라를 역사 내의 문화통합과정으로서 파악하기 때문에, 그의 종교사 신학은 19, 20세기의 역사적 낙관주의와 역사발전론 위에 세워진 서구의 '문화적 그리스도교'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변증법적 신학
또는 '하느님 말씀'의 신학 19~20세기의 역사주의와 심리주의에 희생된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적 특성과 계시의 초월성을 회복하려는 신학적 비판운동이 카를 바르트, 불트만, 틸리히, 니부어 형제 등을 중심으로 해서 20세기 변증법적 신학운동으로 나타났다. 카를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Der Römerbrief〉(1919)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중심성과 역사주의에 기초를 둔 문화적·종교적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정통주의적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복귀하려 하여 그의 신학운동은 '신정통주의 신학' 또는 '위기신학'이라고 불린다. 그는 하느님의 초월성, 신과 인간의 질적인 차이, 하느님의 나라와 역사적 유토피아의 질적 차이를 강조했다. 하느님의 자기계시,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인간적·역사적인 자기성취적 도취를 심판하고 갱신한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은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은총만', '오직 믿음만', '오직 성서만'이라는 신학원리를 다시 회복하려 했다. 신정통주의 신학을 '하느님 말씀의 신학'이라고 명명하는데 그것은 하느님 인식과 신앙의 가능성이 인간의 주체적 인식능력, 종교성, 윤리적 능력에 있지 않고, '하느님이 말씀하신다'는 근원적 계시 사건에 근거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요, 삼위일체론적 구조의 신학이다. 복음주의적인 바르트의 신학은 20세기 최대의 기념비적 신학작품인 〈교회교의학 Kirchliche Dogmatik〉(13권, 1932)에 체계적으로 서술되었다. 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인본주의적 경향과 신학적 객관주의를 극복하려는 점에서 바르트와 공동전선을 폈으나, 불트만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창조적 유산을 더 많이 계승했다.
문화·종교 신학
20세기는 다원화된 사회이며, 지구촌의 실현과 함께 다문화·다종교의 사회현상이 인간 삶의 현실이 되었다. 문화신학자 P. 틸리히는 문화와 종교의 관계를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고 규정했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적 삶과 활동의 특수한 한 기능이 아니고, 인간의 모든 정신적 삶의 '깊이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리처드 니부어는 〈그리스도와 문화 Christ and Culture〉에서 복음과 문화의 관계유형을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문화와 역설적 긴장관계의 그리스도', '문화의 그리스도',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 등 5가지로 구분했다. 1960년대 이후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와 개신교의 세계교회협의회는 세계 종교간의 대화와 만남의 문제를 논의했다. 종교간의 만남과 대화를 다루는 태도에는 배타주의적, 포용주의적 성취설, 다원주의적 입장들이 있다.
정치신학
20세기의 신학 경향 중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지니는 자유·정의·평화가 구현된 '메시아적 공동체'의 실현을 지향하는 현실개혁적·실천적인 신학운동이 있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정치신학, 남아메리카의 해방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등이 그 대표적 신학운동이다. 정치신학은 이론과 실천의 통합, 그리스도 제자직의 실천, 가난한 자와 연대성, 정의로움과 해방에 대한 요구, 하느님 나라의 현세적 실현을 강조한다. 인류문화의 가부장적 구조와 인식의 폐쇄성을 제거하고, 여성 해방과 함께 인간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여성신학운동도 정치신학의 기본원리, 특히 이론보다 실천을 위에 두는 점에서 일치한다. 정치신학은 사회적·정치적 구조와 그 역학관계를 깊이 고찰하지만 정치학이나 사회학은 아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통치를 신학의 근본축으로 삼기 때문이다. 정치신학은 인간중심주의의 정치적·사회학적 윤리만이 아니라 자연환경 파괴의 현실에서 생태학적 윤리문제를 다루고, '자연의 신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과정철학·과정신학 및 연대 속에서 지구 전체의 유기체적 생명연대와 윤리를 연구한다.
金敬宰 글
'◑ 학문편◑ > 교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 영국의 이신론(理神論)~52. 세계교회협의회의 발전 (0) | 2022.08.30 |
---|---|
77. 조직신학과 교회사의 발전구조 ~ 84. 대표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사가 (0) | 2022.08.30 |
교리사 제2장 교리의 예비적 발전 (0) | 2022.03.05 |
교리사 제 3장 삼위일체론 (0) | 2022.03.05 |
교리사 제4장 기독론 (0) | 2022.03.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