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질문입니다.
‘만약 모든 종교가 자신들이 진리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요?’
답변 :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때때로 기독교인들은 이런 질책을 듣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만이
배타적인 주장을 펼친다는 질책입니다.
(즉 기독교만 유일한 진리라는 주장이죠)
타종교인은 그렇게 배타적이지 않는데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은 모든 종교가 다 배타적입니다.
고타마 붓다는 힌두교 배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힌두교의 근본 교리들을 포기했죠.
그것은 베다(힌두교 경전)와 카스트 제도였습니다.
부처는 이것들, 그 배타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위한 여정을 떠났죠.
그러고 나서 ‘4가지 진리’와 ‘8가지 길’과 *사제팔정도
‘욕망에 대한 완전한 해탈’을 주장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종교의 교리로부터
등을 돌리고 다른 답을 찾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힌두교가 너무 배타적이었기 때문이죠.
이슬람도 매우 배타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온갖 계율들과 이슬람의 다섯 기둥 (신앙고백, 기도, 자선, 단식, 메카순례)
등이 그 사실을 보여주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종교들간의 차이점,
구분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가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각 종교에는 이러한 구분점, 고유한 특징 들이 명백히 존재하며
이것들이 종교간 근본적인 차이들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오직 표면상으로만 비슷해 보일 뿐이고,
한 꺼풀만 속으로 들어가면,
모든 종교가 다 배타적입니다.
그러므로 유독 기독교만 배타적이라는 공격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때때로 잘못된 질문을 받곤 합니다.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똑같지만
겉보기만 달라 보이는 것 아닌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겉보기에 비슷해 보인다는 것은, 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주장들에 대한 예를 들어볼게요.
불교 신자들의 목표는 욕심을 없애는 것입니다.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죠.
저는 한 여자 승려와 대화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녀는 태국 출신이었는데 승려가 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태국의 불교는 여성을 승려로 임명하지 않았죠.
그래서 그녀는 스리랑카에 가서
결국 여자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캐나다 온타리오 맥매스터 대학에서
철학으로 Ph. D.도 받았습니다.
그녀가 Ph. D.를 받고 나서
처음으로 인터뷰 한 사람이 저 라비 재커라이어스 였습니다.
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일대일로 대화했습니다.
저는 매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죠.
왜냐면 기독교인으로서 무례해보이기 싫었거든죠.
제가 물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이 결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자녀들도 두셨다고 들었는데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승으로서, 절에서 혼자 사시는 건가요?’
‘네 그렇죠’
‘자녀분들을 못 보시겠네요’
그러자 그녀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제겐 차가 있어요.’
원하면 얼마든지 아이들을 보러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었죠.
‘아, 차가 있으십니까?’
그녀는 매일 밤마다 자기 아이들을
보러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제게 고백했죠.
(*불교는 욕망을 비우고, 내려놓고, 없애는 경지에 이르는 종교이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게 안 되는 영역들이 있습니다.)
제가 말했죠.
‘그렇다면 박사님(여승)은 자녀분들과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을
없애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군요.
제가 바르게 이해한 것입니까?’
그녀는 침묵했습니다.
제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달라이 라마에게는
가장 중요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티벳의 독립이었죠.’
‘네 그렇죠’
‘달라이 라마는 왜 그걸 열망한 겁니까?’
그녀가 저를 응시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복잡한 철학적 질문들은 그만하고
그냥 그가 그렇게 선택했다고 생각합시다.’
▶한 번 세계의 종교들을 돌아보세요.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는 이 4가지 평가 질문들을 적용해 보세요.
기원 – 의미 – 도덕성 – 운명
origin – meaning – morality – destiny
이 4가지 질문들은
일치성 correspondence 과 일관성coherence 에 의해
평가되어야 합니다. 잘 따라와 주세요.
또한 이 4가지 대답들을 한꺼번에 연결했을 때
서로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서로 모순되어서는 안 됩니다.
즉 서로 일치 correspondence 해야 합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오직 유대-기독교적 세계관만이
이 4가지 질문에 대해 일치된 진리와
가장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줍니다.
이에 대한 예를 한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냥 한 귀로 흘릴 게 아니라
정말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지껏 이슬람 국가에
굉장히 많이 초대되었습니다.
공개 포럼을 하러 갔던 거죠.
그들은 저를 호스트로 불러서
많은 토론을 저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코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유일무이한 역사적 문서입니다.
그리스 역사학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셨다고 말합니다.
로마 역사학자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교도 역사학자들도 그렇게 말하고요.
유대인 역사학자들도 그렇게 말하고
물론 기독교인 역사학자들도 그렇게 말하죠.
그러나 오직 코란만이
예수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참 종교가 아니란 증거이죠
그러므로 역사적으로만 봐도
이슬람은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시아파 지도자급 성직자인
Sheikh Hussein 이라는 사람과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예의바른 분입니다.
가운데 통역자를 두고 세 시간을 내리 토론했죠.
청중들이 듣는 가운데서
제가 그 분의 신앙에 대해 질문 한 가지를 던지면
그 분도 질문 한 가지를 제게 던졌죠.
어떠한 원한이나 적대적인 분위기도 없었습니다.
단지 서로 다른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했을 뿐이죠.
정말 훌륭한 대화방식이었습니다.
대화가 끝날 무렵 후세인이 저를 보더니
그 분은 대화 내내 저를 예의 바르게 ‘재커라이어스 교수님’
이라고 불렀습니다.
어쨌든 마지막에 저를 응시하며
몸을 약간 기울이시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거 아십니까? 교수님
아무래도 때가 이른 것 같습니다.
우리 무슬림들은 예수가 진짜 죽었는지를 묻기 보다
(그건 역사적 사실이므로 이제는 더 이상 부인 못하고)
왜 죽었는지를 물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분의 이 말을 인용해도 괜찮겠냐고 물었습니다.
그 분은 괜찮다고 하시더군요.
언젠가 다마스커스에 가서
그 분을 다시 한 번 뵙고 싶군요.
참 종교의 기준 분별 4가지
기원, 의미, 도덕성, 운명!
유대-기독교적 세계관
즉 구약에서부터 신약으로 연결되는 기독교의 세계관만이
배타적인 주장을 하는 유일한 사상이 아닙니다.
다만 기독교는, 이 4가지 질문에 대해
오랜 세월동안 적합하고 일관성 있는 대답을 해온
유일한 신앙 사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해답이었던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과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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