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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주시옵소서 / 역대상 4: 9, 10

by 【고동엽】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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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주시옵소서 / 역대상 4: 9, 10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를 장식하고 있는 ‘야베스의 기도’(The Prayer of Jabez)라는 조그만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성경교사인 브루스 윌킨슨(Bruce H. Wilkinson)으로, 출간 5개월 만에 33판을 찍는 경이로운 판매부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떠오르는 의문은 ?어떻게 사람들이 이런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단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의 제목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야베스는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 번 성경에 등장하고는 이내 사라져 버리는 단역 배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책의 부제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내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 아마도 사람의 구미를 당기는 그 부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손에 오고 갔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긴 했지만, 그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하진 않습니다. 저자가 야베스의 기도를 비약 내지는 미화시켜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을 차마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야베스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저자와 입장을 달리합니다. 야베스는 이스라엘 족장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읽고 교회에서 말씀을 배워 영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가 오늘날 우리의 기도처럼 수준 높은 영적인 기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다분히 인간적이요, 현실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를 너무 영적으로 깊이 해석하려는 시도는 무리가 따릅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읽으면서 무언가 성령께서 깨우쳐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10절) 하나님께서는 야베스의 자기 중심적인 기도에도 불구하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10절) 바로 이 점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 본문을 좀 더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가지 기도
성경에서 야베스는 ?형제보다 존귀한 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대나라 사람들은 다 존귀합니다.(출24:11, 사43:4) 왜냐하면 많은 백성가운데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보다도 야베스를 더 존귀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기도란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과 만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유대나라 사람도 존귀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사람을 더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따라서 똑같이 예수를 믿더라도 존귀하신 하나님을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자연히 더 존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등한히 해선 안될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서두에서부터 우리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에 나아가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천인공노할 끔찍한 테러사건을 보았습니다. 공상만화에서나 있음 직한 일이 현실로 재현되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몇 사람의 과격분자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참사를 목도하면서 말세가 되었음을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냉전시대가 종식되면 보다 평화롭고 살기 좋은 시대가 오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가 지구촌이 되면 인종적, 국가적 장벽을 넘어 좀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복된 사회가 오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박사가 예언한 바대로 냉전시대의 종식은 새로운 문명충돌시대로의 진입을 알릴 뿐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기독교와 회교, 그리고 서구사회와 아랍권의 충돌로 더 비참한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그의 예언이 현실화되는 듯한 조짐을 봅니다. 게다가 경제의 지속적인 침체로 전세계가 불황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오늘보다 내일이 더 살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 세대보다 다음 세대가 더 혹독한 고통을 치루는 무서운 시대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야베스처럼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나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시도록 복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를 하는 우리를 멸시치 않으시고 누구보다도 존귀한 자로 여기시며, 야베스에게 응답하신 축복을 우리에게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름이 운명을...
역대상 1~9장까지 이스라엘의 족보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무려 500개 이상의 이름이 나열되기 때문에 하나 하나 신경 써서 읽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중간에 나오는 야베스의 이름에 이르러서는 잠시 멈칫하고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족장들의 이름은 한번씩 언급하고 지나치는 반면, 야베스의 이름에 이르러서는 특별한 코멘트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경을 기록한 저자가 ?잠깐만! 이 야베스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요. 뭔가 남다른 데가 있는 사람입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야베스에게서 주목할 만한 3가지 독특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주 고생하면서 낳았다는 점, 둘째는 특별히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한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그대로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10절)
지금부터 50년 전만해도 어머니가 자식을 낳을 때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고대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더욱 비일비재했을 것입니다. 왜 야베스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수고로이 낳았다?고 했을까요? 혹시 거꾸로 나왔는지, 아이를 낳기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지,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 집안에 감당할 수 없는 우환이 닥쳤는지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에게 ?고생, 고통?이라는 뜻을 가진 ?야베스?라고 이름 짓는 데서 시작됩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고통을 자녀가 기억하길 바랬는지, 한 마디로 ?Mr. Pain?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에 아무리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이름을 짓는 것은 유대나라에서 상식을 초월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이름이 그 사람의 일생과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룻기서를 보면 ?말론?과 ?기룐?이라는 나오미의 두 아들의 이름이 나옵니다.(룻1:2) 그런데 큰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는지 ?허약하다?는 뜻을 지닌 말론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도 마찬가지여서 ?수척하다?는 뜻을 지닌 ?기룐?이라고 이름을 붙인 듯 합니다. 따라서 이런 이름을 가진 그들의 장래가 어떻겠습니까? 나중에 그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했는데, 큰 아들에 이어 둘째 아들마저 결혼한지 얼마 안 되어 자식 없이 요절하고 맙니다.(룻1:4-5)
반면에 솔로몬은 ?평화?라는 이름의 의미 그대로 한평생 전쟁 한번 치루지 않고 인생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그만큼 이름이 중요한 것입니다.

고통의 자리가 기도의 자리로
야베스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주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 인생은 이 이름대로 운명지워 질까? 어쩌면 이 이름 때문에 평생 고생하다가 인생을 마감하는건 아닐까?? 게다가 그의 눈앞에 펼쳐진 환경은 그리 썩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현실을 보면 넘어야 될 산들이 첩첩산중이고, 게다가 자신의 이름은 ?고통?이니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지 심히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가 이러한 상황에서 기도하기로 작정한 것만 봐도 고민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야베스가...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10절)라고 평이하게 표현했지만, 원뜻은 ?부르짖다, 소리지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야베스가 왜 갑자기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한번 부르짖어야 되겠다. 하나님의 옷깃을 붙들고 좀 매달려야 되겠다.?고 절박하게 느꼈을까요? 무언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평안한 사람이 특별히 기도해보겠다고 마음먹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므로 과거 일제시대 때 우리의 신앙 선배들의 기도보다 우리의 기도가 약한 이유가 있습니다. 6․25때 가마니 깔고 기도하던 조상들보다 우리가 기도를 덜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만큼 형편이 나아지고 걱정거리가 적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절박감이 사라진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보십시오. 그 심정이 얼마나 절박한 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내게 복에 복을 더해 주세요. 내 지경을 넓혀 주세요.? 자기의 이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러다가는 망할 것 같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졌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고통을 물려주었지만,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복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내 운명도 바꾸어주시리라는 믿음이 작용한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야베스처럼 고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여기저기 고통으로 얼룩지다 못해 갈기갈기 찢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 어떤 인생도 슬픔과 고통이라는 운명을 완전히 벗어버린 자유인은 없습니다. 이러한 고난과 고통에 대해 사람들은 대략 2가지로 반응합니다. 먼저 부정적인 반응으로, 모든 탓을 조상이나 자신의 무능함에 돌리면서 되는대로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 다음은 긍정적인 반응으로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야베스처럼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도전적인 자세를 취하려 합니다.
우리는 야베스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통을 안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까? 긍정적인 반응입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반응입니까?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기도라도
반복해서 말하지만 야베스의 기도는 매우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기도였습니다. 그 이유는 복을 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복이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 누리는 은혜를 말합니다.
모든 종교가 복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합니다. 불교와 유교의 복은 그 주체가 인간입니다. 복을 받기 위한 자격도 인간이 갖출 때 가능하며, 복을 받는 목적도 인간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의 관념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체입니다. 복을 주시는 자도 빼앗아 가는 자도 하나님이시며, 복을 받아 누리는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야베스가 이 사실을 얼만큼 깊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그는 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곧 나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합니다. 유대나라 사람들은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자기 소유를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대대손손 보존하는 것이 큰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땅을 다른 친척에게 넘기는 일조차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대로 잘 보존했다가 장자에게는 큰 땅을, 차자에게는 작은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경?(territory)입니다.
야베스도 아버지로부터 조그마한 땅을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평생 가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합니다. 요즘 말로 ?주여, 나에게 복을 주사 이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세요. 또한 사업을 번창시켜 주셔서 원하는 소원을 이루도록 해 주세요.?라는 기도와 같습니다. 물질의 축복, 성공의 축복, 부요의 축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은 복을 구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인생을 살게 해 주세요.? 개역성경에 ?근심?이라는 말은 ?고통?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환난으로 인해 고통하는 인생을 살지 않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할지라도 가정에 우환이 생기고, 병이 들고, 자식들이 사고를 일으켜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근심과 고통가운데 살아간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따라서 야베스는 2가지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모든 부요함을 달라는, 즉 잘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그것을 누리면서 평안하게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복을 주되 나의 사업과 생업을 번창하게 해 주시고, 그 번창한 생업을 통해서 평안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사람이면 누구나 얻고 싶어하는 복을 야베스가 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기도가 저급해 보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서 복받은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중요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복을 구할 자격이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이 평생 고생만 하다가 천국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기도라 하여 머뭇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현실적인 기도라 하여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야베스처럼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을 많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여 이런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하나님, 이 가정 복 좀 주세요. 장사 좀 잘 되게 해 주세요. 무언가 제대로 하려고 해도 자금이 부족해서 손을 못 쓰고 있는데, 이럴 때 하나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금방 일어서지 않겠습니까? 자식들이 저렇게 고생하면 어떻게 합니까??이런 기도는?주여, 믿음이 좋아지게 해 주시고, 천국가게 해 주시고...?를 구하는 기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비록 인간적인 기도지만 저는 서슴지 않고 이런 기도를 합니다.
또한 넉넉치 못한 가정이지만 머리가 좋아서 서울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등록금을 낼 때만 되면 밤잠을 못 자고 고민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 그러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 학생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 기도를 하게 됩니다. ?주여, 이들에게 은혜를 주세요. 가정에 복을 주시던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주시던지, 물질의 축복을 주시던지...그래서 등록금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런 젊은이들, 너무 지치고 기가 죽지 않도록 복 좀 주세요.?

하나님은 복의 출구를
어떻게 보면 우리가 구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구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7: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예 구하지 않거나, 성의 없이 구해서 하나님께서 주고 싶어도 못 주는 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복을 받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자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기도하지 않는 내 자신입니다. 물론 일관적으로 적용할 순 없지만 충분히 그럴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베스처럼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의 자녀답게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도 하나님의 복을 누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나오시는 성도 가운데서도 복을 받아 가정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은혜를 모르고 신앙생활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것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복 자체가 목적이 될 때 그것이 기복신앙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복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안 들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우리가 간절하게 구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일이 잘 안 된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야베스처럼 긍정적으로 도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기도의 지경을 넓히라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여기에서 머물면 안됩니다. 한가지 더 깨달을 진리가 있습니다. 야베스는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 그 말씀을 배우고 깨닫는 복된 자리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구 시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충만한 신약시대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주신 그리스도를 말씀을 통해 배우며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베스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는 당장 눈앞에 있는 자기 농토를 넓히고,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다운 긍지를 살리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수준을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거룩한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을까? 어떻게 하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백성들이 이 땅에 가득하게 될까?? 하는 고귀하고 영원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 인간적인 복을 구할 수 있지만 거기에서 머물면 안됩니다. 기도의 지경을 한 걸음 더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더 많이, 더 크게 헌신할 수 있도록 사역의 장을 넓혀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힘있게 전할 수 있도록 막강한 영향력을 주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물질, 자녀, 성공, 절망, 자유, 평화, 이 모든 것들을 주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 주의 제단에 올려놓습니다. 더 많은 부분에서 제 삶을 드릴 수 있도록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주를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길 원합니다. 더 많은 땀을 흘리길 원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신다면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길 원합니다. 더 험난한 인생을 살더라도 주님의 뜻을 이 땅에 펴길 원합니다. 주여, 나에게 거룩한 지경을 더 넓혀 주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작은 자라도 천을 이루고, 가장 약한 자라도 강국을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사60:22) 이런 기도 없이 단지 야베스처럼 인간적인 기도만 한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가 여기까지 승화되어야 합니다.
대각성전도집회를 앞두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길 원합니다. 그 복을 가지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더 일할 수 있도록 사랑의교회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주님을 알게 되고 더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향해 달려 나올 수 있도록 우리의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간적인 기도를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영광스런 자리에 세워주실 것입니다.

기적의 주인공
강영우 박사라는 분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한국 장애우 중 최초의 유학생이자 첫 박사학위 취득자입니다. 그가 쓴 저서로는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등 다수가 있습니다. 그는 중학교 재학 시절 축구공에 맞아 실명을 했습니다. 실명 전 아버지에 잃은 그는, 아들의 실명에 절망한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당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3명의 동생과 생계를 꾸리고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밤낮없이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마저 18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 믿는 집안에 무슨 저주라도 내린 것처럼 끔찍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는 눈을 다시 보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병원에서 피눈물을 쏟으며 기도하고, 몇 차례 수술도 받긴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결국 암흑이 그의 눈을 덮었고, 그의 인생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목사님이 그에게 사도 바울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평생 몸에 가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도 극심한 고통때문에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은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가시로 인한 고통이 그에게 능력이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강영우 군도 사도 바울처럼 될 수 있어요.? 이 말씀을 들은 그는 바울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긍정적으로 자기 불행을 극복하기로 마음 먹고는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기도에도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기게 하옵소서. 나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던 지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교육학을 전공한 후 철학박사가 되어 현재 특인 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대학 시절에 천사와 같은 아내를 주셨고, 두 아들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두 아들이 다 하버드대학에 들어가서 한 아들은 안과전문의가 되었고, 나머지 아들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강박사의 이야기를 들은 유명한 빈센트 필(N. Vincent Peale) 목사님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생애를 알고 나서 아무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야 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산 증인입니다.? 그는 현재 부시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으로 전세계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지경을 크게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달라고 부르짖는 사람에게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만능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성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자주 좌절한다면 그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려야 될 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를 적당히 하는 우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복을 구합시다. ?원컨대 내게 복에 복을 더해 주십시오.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고통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거기에서 한 단계 뛰어넘어 ?주여, 내가 주님을 위하여 한평생 기쁘게 헌신할 수 있도록 지경을 더 넓혀 주십시오.?라고 기도합시다

출처 : 전도카페
글쓴이 : 전도자:박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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