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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밖에서는 잠 못 자고, 옥안에서는 잠자고! (행 12:1-12)

by 【고동엽】 2022. 1. 6.

옥 밖에서는 잠 못 자고, 옥안에서는 잠자고! (행 12:1-12)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단기 선교를 떠나는 교우들을 위해서도 사명감을 갖고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쓰임을 받아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자랑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나라가 되었기에 선교 현장에 일어나는 순교의 소식도 자주 듣게 됩니다. 이번에 예멘에서 살해된 한국인 엄영선씨도 엄격히 말하면 순교자의 한 분입니다.
그 가족과 교회는 지금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단기 선교를 떠나는 교우들을 위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편 단기 선교의 열기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일을 조롱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고 말합니다.
교인들 중에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순교를 막아주시지 않는가? 이로 인하여 선교의 문이 막히고 선교의 열기가 식어진다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그렇지 만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어섬을 알 수 있는 것은 역사상 순교의 소식이 전해질 때, 선교의 열기는 더욱 뜨겁게 일어났고, 순교자가 나온 그 나라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 입니다,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지만 그로 인해서 지금과 같은 복음의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길에 예상하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신실했던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고,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던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짐을 받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했지만 유대인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아 스데반이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정치적인 박해를 받게 됩니다.
헤롯이 사도 야고보를 잡아 목 베어 죽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의 첫 순교자가 나온 것입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너무나 좋아 했습니다. 헤롯은 정통성이 없는 왕인 까닭에 유대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베드로마저 죽이려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큰 위기를 맞이 하였습니다.
유월절이 지나, 베드로를 죽이기로 작정한 날이 다가왔습니다. 전날 밤, 온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놀라운 기록이 있는데, 옥 안에 잡힌 베드로는 그 밤에 잠을 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옥 밖에 있는 사람도 잠을 자지 못했는데, 어떻게 당사자인 베드로가 잠을 잘 수 있습니까? 양 옆에는 군사 둘이 함께 쇠사슬로 묶인 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잠을 잤고, 그것도 깊이 잠을 잤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 옆구리를 쳐 깨워야 할 정도로 깊이 잤습니다. 천사와 함께 바깥으로 나갈 때도 잠이 덜 깨어 이것이 꿈인가 했을 정도였습니다. 길거리에 나와서 천사가 떠난 다음에 아, 진짜 내가 옥에서 풀려났구나. 이것이 사실이구나. 그랬을 정도니 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옥 밖에서 교인들이 철야하면서 기도하면 베드로야말로 정말 철야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베드로에게서 믿음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무엇이 베드로로 하여금 죽을 수도 있는 전날 이처럼 깊이 잘 수 있게 한 것일까요? 드는 모든 두려움과 염려를 예수님에게 완전히 맡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잠이 오는 것입니다. 밤 늦은 시간에 자야 될 시간에 잠이 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살고 죽는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완전히 맡겨버렸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사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베드로는 자기가 그 날 왜 그러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시 베드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이 얼마나 무서운가? 영적인 힘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예수님과 직접 3년 동안 같이 살았고 기적을 보았고 자기도 기적의 주인공이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다 들었던 사람인데도,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두려움과 염려는 주님께 맡겨지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대로 못 삽니다. 그가 영적으로 완전히 묶여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베드로전서 5장 7-8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씀은 이 날의 경험에서 나온 교훈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염려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구나! 어떤 일에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구나. 두려워하고 염려하면 또 마귀에게 사로잡혀는구나. 그가 죽을 수도 있는 위기를 만났을 때 정말 두려움과 염려를 주님께 맡겨 버리기로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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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도무지 앞길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 순간, 자신의 삶과 판단 전부를 예수님께 완전히 맡겼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붙잡은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은 베드로에게 더 이상 문제가 안됐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완전히 맡겼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의 주 나의 그리스도이시며, 나와 함께 하신다! 베드로는 오직 그것 하나만 알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믿음이 베드로로 하여금 아침이면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잠을 잘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감옥 안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감옥인지, 안방인지! 상황은 살벌하지만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하고 염려하지 않으니까 밤이 되니까 잠이 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전도자의 사명으로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좋은 곳 편한 곳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좋습니다. 감옥도 사명지이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도 전도 대상자일 뿐입니다. 주님이 생명 주실 때까지 전도하다가 주님이 오라고 하시면 기쁜 마음을 주께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감옥에서도 잠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베드로처럼 그런 위기를 만날 때 환란을 만날 때도 잠잘 시간이 오면 푹 자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들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을 고치시기로 작정한 날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염려와 근심 두려움을 주님께 맡긴 자는 잠을 잘 때 깊이 자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놀라운 일들이 참 귀한 일이지만,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옥 바깥에서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던 성도들의 문제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또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옥 바깥의 교인들은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죽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 맡겼지만, 옥 바깥의 교인들은 베드로가 죽지 않고 살아 나오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밤을 새며 기도했습니다. 중보기도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살려내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움은 기도는 간절히 하면서도 베드로가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은 믿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천사가 옥에서 꺼내주어서 성도들이 기도하는 처소로 찾아갔습니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헤롯의 군사들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밖에서 베드로가 문을 두드렸을 때, 하녀가 나왔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문을 열어줄 생각도 못하고 안에 들어가 베드로가 왔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지금 밖에 베드로가 왔어요. 그때 기도하던 그들이 뭐라고 그랬는지 뒤에 나옵니다. 미쳤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올 말입니까? 베드로가 왔다고 하면 정말이냐? 그래야지, 너 미쳤구나! 했다는 것은 확실히 안 믿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확실히 살아나올 줄은 정말 안 믿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고 있었지만. 하녀가 정말 베드로 목소리를 들었다고 그랬더니 그러면 아마 그의 천사였을 거야. 라고 말했다고 그랬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정말 열심히 기도하던 예루살렘 교인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성도들이 이런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는 열심히 합니다. 기도는 간절히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응답이 안왔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살려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순교하게 했지만 베드로는 살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그 응답을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기도하면 마음에 믿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아, 역사하시겠구나. 베드로는 죽지 않겠구나. 기도자는 일이 이루어지지 전에 이미 마음에 답을 얻게 되어 있다 말입니다.

그들은 왜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였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세상 권력에 주눅이 들어 두려움의 영에 눌려버린 것입니다. 이유는 얼마 전 야고보 사도가 결국은 죽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헤롯에 의해서 죽을 수 있는 것이구나. 헤롯이 죽이면 꼼짝없이 우리는 죽어야 되는구나. 그러니 베드로도 죽겠구나! 베드로가 살아나올 가능성은 없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도 마음은 완전히 헤롯에게 사로잡혀있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마음이 꽉 차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셔도 그들은 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온전한 믿음으로 기도하지 못하면 이런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신의 생각이 강하면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할 것이면 열심히도 기도해야 하지만 믿음으로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고,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천사를 통하여 기적으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십니까? 베드로만 더 사랑하신 것입니까?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3-38절을 보면 죽음의 위기 앞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성도나 믿음을 지키다가 결국 죽었던 성도도 다 위대한 믿음의 선구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의 오른 편, 왼 편에 세워달라고 부탁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네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제자 중에 첫 순교자, 요한은 마지막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첫 순교자의 자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는 우리 모두 천국에 가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아서 죽었고, 베드로는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된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절박한 순간에도 깊이 잘 수 있었던 베드로를 통하여 환란 중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순교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갈 때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계속 닥쳐오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가 혼란스러워지게 됩니다. 늘 하나님 말씀대로 가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모든 일이 금방 다 잘된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일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더니 하나님이 하라는대로 했더니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내가 끝까지 하나님 말씀대로 가야 옳은가? 그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그때 정말 놓지지 말아야 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살려고 할 때, 어려움이 오면 순간 당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 것인가?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영적인 밤이라고 표현합니다. 가기는 제대로 가고 있는데 어려움이 계속 와서 믿음의 시험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낮을 지날 때도 있지만, 영적으로 밤을 지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때도 우리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것이 다 혼란스러울 때도 십자가 복음과 사랑, 이 두 가지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반드시 내가 어떻게 가야 될지, 무엇을 해야 될지가 보이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구원하셨고 우리 안에 오셨고, 우리의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우리는 오직 영혼을 구원하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진리와 사랑! 이 두 가지만 붙잡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주님의 평안이 임합니다. 평안하다는 말은 길을 찾았다는 말입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길을 찾게 되었을 때 평안해지지 않습니까? 평안이 오면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시간 문제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믿음이 좋다는 말은 단순히 착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 잘 드리고 십일조하고 전도도 잘하고 큐티도 잘하는 것 만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오늘 말씀대로 하면 죽을 날을 앞두고도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베드로같다는 것입니다.


제게 있는 부끄러움 중 하나는 손이 너무 곱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육신의 고생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공부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내성적이기도 했던 저는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공부만 하던 도시 학생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게 큰 약점입니다. 지도자에게는 순탄하기만 한 삶이 약점인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수학 시간에 숙제를 깜박 잊고 안 가지고 가서 생전 처음 선생님으로부터 큰 자로 손바닥을 맞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애처로운 표정으로 사정을 해도 통하지 않아서 결국 손바닥을 맞아야 했는데, 얼마나 겁이 나던지 손바닥을 편 손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선생님은 손바닥을 똑바로 펴지 않으면 더 아프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손바닥을 세대 맞고 아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옆의 짝이 손바닥 맞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는 숙제를 해 온 적이 없었던 깡패같은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숙제 검사가 시작되자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서 손바닥을 펼치는데, 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품위마저 있어 보였습니다. 딱! 딱! 딱! 세 대 손바닥을 맞고 앉는데, 씩 웃는 것입니다. 제 마음에 존경심이 일어났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안 걸던 짝이었지만, 그 순간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니 안 아프나? 그 때 그 친구의 대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숙제는 뭐할라꼬 하노? 한대 맞으면 되지. 세상을 막 사는 사람도 고난을 당하는 것을 각오하면 이 정도가 될 수 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심을 믿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나는 왜 이렇게 담력이 없는가? 이런 저를 하나님이 쓰실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기를 때 하나님의 계획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우리는 자녀를 애지중지 기른다고 길렀는데 하나님이 전혀 쓰실 수 없는 사람을 기르고 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제게 시련을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런 시련을 겪을 때는 괴로워했고, 울며 기도했고, 낙심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살아계시며 저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비로서 저는 환란의 유익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생의 축복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보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제 마음에 요동함이 없어지게 됐습니다. 비로서 담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고생이 무서운 것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생이냐 어려운 일이냐 힘든 일이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집안 배경, 학력, 재산, 건강, 재능 등. 그러나 이 모든 요소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을 한꺼번에 다 뒤집을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환경상의 문제, 능력, 재능, 건강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인생에는 또 하나의 변수가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 믿음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려움을 당할 때 드러납니다.


브랜트 빌 목사님이 쓰신 [하나님의 여행자]에 보면 오언과 존이라는 친구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언은 이상한 피부에 몸집도 작고 목소리도 섬뜩할 만큼 이상한 아이였다. 그러나 오언은 자신의 외모와 목소리와 모든 신체적 특징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오언의 친구 존윌라이트는 훨씬 정상적인 아이였으나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라고 믿는 오언이 아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언이 죽고 나서야 누가 옳았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존과 오언의 삶은 매우 달랐다. 오언은 거룩한 성인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존은 갈등과 좌절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다고 믿은 오언은 자신의 삶에 열리는 길을 보았다. 그러나 존은 자신의 삶에 성공을 발견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다.
존과 오언의 경험이 다른 이유는 오언이 존보다 성인이 되기에 좀 더 적합한 자질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면에서 거룩한 삶을 살았던 오언 조차도 사실은 자격이 없다. 그는 정결하지도 않고 칭송받을 만큼 대단하지도 않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제로 계시며, 늘 함께 하시며 끔찍하게 생긴 그를 위해서도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성인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언을 통해서 놀라운 삶을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조건들이 굉장히 많아 보이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놓지고 삽니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 그리고 그 주님이 우리 인생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믿음이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게 되는 순간부터 여러분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허드슨테일러는 중국 선교사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나, 그 당시 영국의 어떤 선교 단체도 그를 중국으로 파송해 주지 않았습니다. 실망한 허드슨테일러는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나를 중국 선교사로 부르셨으니,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고 입히고 살게 하실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믿으면 되는구나! 믿음으로 사는 답을 얻은 허드슨테일러는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어느 선교 단체에서도 파송해 주지 않았지만 그는 떠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믿어지니까. 그리고 그는 [중국 내지 선교회]를 만들고 엄청난 사역을 감당하며 중국 선교의 엄청난 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우리 믿음이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였던 예루살렘 교인들 수준에서 머물면 안됩니다. 그들은 열심히 기도했지만, 오직 열심히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밤을 새며 기도했지만 평안도 확신도 응답도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혼란스럽고 계속 미음을 찢어집니다. 기도하면서도 슬프고 두렵고 방황하였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믿음, 내일 죽음이 눈 앞에 온 것 같아도 죽고 사는 문제는 주님께 완전히 맡기고 염려 근심 두려움도 주님께 맡겨버리고 십자가와 사랑 붙잡고 오늘도 내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십자가와 사랑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베드로처럼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신뢰하게 됩니다. 비록 아침이 되면 죽을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길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환경과 처지에 있든지 우리의 생명이고 주님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완전한 평안과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믿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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