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구약 12시간의 공부를 마무리하고 이제는 신약 공부를 하겠습니다. 모세오경, 역사서, 예언서 열심히 공부해주셨는데 오늘부터 시작되는 신약 공부에도 열과 성을 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처음 시간에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구약을 보시면 페르시아 통치기에 구약이 마무리되고 신약 복음서를 보시면 로마의 통치기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그 역사적인 중간기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말이나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일어나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적인 배경과 상황 가운데서 이런 말씀이 주어졌는가, 어떤 배경과 역사적 맥락 가운데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먼저 이스라엘 중간기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보시면 다윗 시대와 솔로몬 시대 때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 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에 19명의 왕이 있었고 남유다는 20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정을 보시면 총 42명의 왕이 있는데 초대 왕이었던 사울, 다윗, 솔로몬까지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때부터는 분열 왕국입니다. 북이스라엘에 19명, 남유다에 20명 그리고 사울, 다윗, 솔로몬 합쳐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총 42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먼저 패망을 맞이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실 때 5대 제국을 기억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앗수르 그 다음에 바벨론, 그 다음에 페르시아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바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헬라, 그 다음에 로마입니다. 이 5대 제국에 의해서 이스라엘은 700년 이상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고대 근동에 등장했던 최초의 제국이 앗수르입니다. 이 앗수르가 8세기 중반부터 발흥해서 주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앗수르는 식민지를 어떤 식으로 지배했냐면 A라고 하는 나라를 정복하면 이 A나라의 백성들을 B나 C나 D에 분산을 시킵니다. B라는 나라를 정복하면 B 백성들을 A나 C나 D에 분산을 시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앗수르가 A, B, C, D 네 개의 나라를 정복하고 그리고 이 나라 백성들을 분산시키면 모든 곳에 A, B, C, D 민족이 섞이겠죠. 그 다음에 이 민족들 간에 결혼을 장려했습니다. 이 결혼 장려를 통해 자녀가 태어나면 이 자녀들은 다 혼혈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2세대, 3세대, 4세대로 흘러가게 되면 이 후손들은 내가 어느 민족의 후손이다라고 하는 정체성이 약화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로 민족주의가 약화되는 겁니다. 민족주의가 약화되면 앗수르 제국에 대한 저항이 약해집니다. 이것을 앗수르가 의도한 겁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주전 722년에 멸망시킨 다음에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계 만국에 분산시키고 이방 사람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거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방 백성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 결혼을 통해서 탄생한 사람을 우리는 보통 사마리아인이라고 말합니다.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정복했던 최초의 제국이라 기억하시면 되고 이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킨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이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되었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분열한 이후에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합니다. 이때 남유다 백성들은 이것을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안지 않았습니다. 왜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안지 않았냐면, 남유다 백성들의 시각으로는 북이스라엘은 다윗의 후손들의 통치를 거부하고 뛰쳐나간 반역세력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유일한 왕조는 남유다이다, 다윗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남유다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신 유일한 왕조이다 라는 것이 남유다 백성들의 보편적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윗의 후손들의 통치를 거부하고 뛰쳐 나간 사람들이 세운 나라가 어디입니까? 바로 북이스라엘입니다. 한 마디로 남유다의 관점에서는 북이스라엘은 반역 세력입니다. 쿠데타 정권입니다. 합법성이 없는 겁니다. 그 북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먼저 멸망 당한 겁니다. 이것을 남유다 백성들은 당연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제국이 발흥하면서 주전 605년에 1차 포로, 주전 597년에 2차 포로, 주전 586년에 3차 포로, 주전 582년에 4차 포로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 겁니다. 이때 남유다 백성들이 엄청난 신학적 혼란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왜 혼란 가운데 빠졌냐면 고대 근동 사회에서 A나라와 B나라가 전쟁을 한다고 할 때, 이 전쟁에 이기고 짐은 A나라와 B나라 가운데 어디가 국방력이 세냐, 어디에 탁월한 지도자가 있느냐, 어떤 나라가 전략과 전술이 좋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A나라를 후견하는 신과 B나라를 후견하는 신들 가운데 어느 신이 더 강한가에 의해서 승부가 결정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남유다를 후견하는 남유다 백성들의 신은 야훼 하나님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섬겼던 바벨론 사람들을 후견하는 신은 마르둑입니다. 즉 남유다와 바벨론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야훼와 마르둑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벨론이 승리한 겁니다. 바벨론이 승리했다는 것은 마르둑이 야훼를 이긴 겁니다. 여태까지 남유다 백성들은 어떤 신앙적 고백을 했습니까? 우리 야훼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다, 이런 고백을 했는데 야훼 하나님이 마르둑에게 패배한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습니까?. 바벨론이 남유다를 멸망시키면서 성전을 박살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붕괴되었습니다. 다윗 왕조가 끝장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엘리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남유다 백성들은 어떤 신학적 인식을 가졌냐면 야훼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관하시고 다윗 왕조를 통해서 세계를 통치하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야훼 하나님이 머무시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성전입니다. 성전의 무너짐이라고 하는 것은 남유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야훼 하나님이 무너진 겁니다. 예루살렘이 박살나고 다윗 왕조가 끝장났다는 것은 야훼 하나님의 세계 통치가 끝장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가나안 땅을 떠나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이방 땅으로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게 되었으니, 이때 사람들이 얼마나 큰 신학적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야훼 하나님이 마르둑에게 패배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고, 이제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가나안 땅을 떠나서 하나님의 통치가 전혀 없는 이방 땅으로 끌려간다고 하는 것, 그로 인해 이제 더 이상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인해 이때 남유다 백성들이 안게 된 신학적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야훼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 이런 이해를 남유다 백성들이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동안 자신들이 살아왔던 역사적인 걸음들을 돌아보고 그 다음에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해서 우리를 돌이키길 원하셨는가 이것을 뒤늦게 남유다 백성들이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적인 반성을 하게 되냐면 야훼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버려왔구나 하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 언약의 핵심적인 내용이 뭐였죠? 이제 하나님만을 우리의 유일한 왕으로 섬기겠습니다, 하나님께만 충성하겠습니다, 당신만을 믿겠습니다, 이런 다짐을 이스라엘이 했는데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만을 믿지 못한 역사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역사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뭐라 할 수 있냐면 우상 숭배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구약 강의를 통해 그런 강조를 많이 했습니다.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믿지 못하는 것, 바꿔 얘기하자면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음에 뭐를 깨닫게 된 거냐면 우리가 너무나 오랜 세월 우상 숭배의 삶을 살아왔구나, 하나님만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겸하여 섬겨 왔구나, 오랜 세월 하나님을 배반하며 살아왔구나, 이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겁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저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을 저버려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중요한 개념이 언약이라는 겁니다. 바로 시내산 언약입니다. 그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겠다고 약속하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면 복을 받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고 벌을 받는 이것이 시내산 언약의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라는 것은 복을 받는 시기입니까, 하나님께 매를 맞는 시기 입니까? 매를 맞는 시기입니다. 심판을 받는 시기입니다. 언약에 근거해보면 왜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매를 맞고 있죠?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 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의 결과 지금 바벨론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매를 맞고 있다, 이것을 남유다 백성들이 깨달은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매를 맞는 이 심판의 시간들을 통해 그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어떤 희망을 갖게 된 거냐면 여전히 자신들이 하나님과 체결했던 언약이 유효하구나 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 신명기 신학에 근거해서 현재 그들은 하나님께 매를 맞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전히 하나님과 자신들이 체결했던 언약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이 유효하다는 것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깨닫게 된 겁니다. 그러면 이 심판의 매로부터 그들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뭐를 해야 됩니까? 순종하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집대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구전으로 내려오거나 파편적으로 내려오던 말씀들을 수집하여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모세오경이라는 토라를 완성하게 됩니다. 어디에서요? 바벨론 포로지에서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음에서야 이스라엘은 반성하게 된 것입니다. 포로지의 땅에서 그들은 회개합니다.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저버렸구나, 그래서 하나님께 심판의 매를 맞게 되었구나,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 다시 언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언약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뭡니까?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만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다 라고 하면서 바벨론 포로 시기에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토라, 오경이라고 하는 것을 확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만 최종적으로 완성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율법 교육 이것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기 때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남유다 백성들은 1차, 2차, 3차, 4차에 걸쳐 잡혀 갔습니다. 주전 605년에 1차 포로가 끌려가는데 이때 대표적 사람이 다니엘과 세친구입니다. 그리고 주전 597년에 2차 포로가 끌려가는데 이때 대표적인 사람이 여호야긴이라는 왕과 에스겔이라는 예언자입니다. 남유다를 무너뜨린 이 바벨론이 천년만년 고대 근동을 재패할 줄 알았는데, 주전 539년에 페르시아에 의해서 이 바벨론이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전 539년부터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의 식민지가 됩니다. 이때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의 왕이 누구죠? 고레스입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나서 칙령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칙령의 주된 내용이 뭐냐면,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 와 있는 이방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원한다면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 이것이 고레스 칙령입니다. 이 고레스 칙령에 근거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많은 남유다 백성들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 겁니다. 그때 돌아온 사람 중 대표적 인물이 스룹바벨, 학개, 스가랴입니다. 이 사람들이 1차 귀환 세력입니다. 그다음에 주전 458년에 에스라, 그다음에 주전 445년에 느헤미야 이런 사람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대표적 인물입니다. 페르시아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페르시아는 제국의 변방을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바벨론은 주전 605년에 다니엘과 세 친구를 끌고 갔죠. 그리고 597년에 여호야긴 왕과 에스겔 같은 사람을 끌고 갔습니다. 바벨론이 남유다를 멸망시킬 때 남유다 모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지 않았습니다. 학자들마다 주장이 좀 다르기는 한데, 최소로 남유다 인구의 약 5%, 최대로 남유다 인구의 20% 정도를 포로로 끌고갔다고 봅니다. 무슨 말이냐면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을 당했을 때 대다수의 남유다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계속 거주했던 겁니다. 작게는 5% 많게는 20%의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겁니다. 이때 끌려간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특징이 있냐면 끌려간 사람들은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기득권 세력입니다. 힘 있는 사람들입니다. 엘리트들, 전문가들 이런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은 좀 똘똘하다 싶은 사람들을 다 포로로 끌고 간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구심을 다 없앤 겁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유일한 꿈과 소망이 뭐겠습니까? 독립이죠. 해방이죠. 이런 독립과 해방을 가능하도록 만들려면 똘똘한 사람이 구심이 돼서 자신과 함께 힘을 모아 제국에 저항하자는 운동을 펼쳐야 되는데 바벨론은 똘똘한 사람들을 다 제국의 중앙으로 끌고간 겁니다. 그러니까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런 제국에 저항할 만한 구심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용했던 제국이 페르시아입니다. 한마디로 바벨론이라는 제국은 중앙은 엄청나게 강력했는데 변방이 약했던 겁니다. 그것을 페르시아가 공략한 겁니다. 그래서 페르시아는 바벨론을 무너뜨린 다음에 어떤 전략을 시행하냐면 제국의 변방을 강화시킨 겁니다. 페르시아라고 하는 나라가 오늘날 이란입니다. 바벨론은 오늘날 이라크입니다. 이란과 가나안 땅은 거의 1400~1500KM 의 먼 거리에 있는 나라인데 페르시아 입장에서 제국의 가장 중요한 변방이 어디냐면 가나안 땅입니다. 왜요? 가나안 땅은 어디와 맞닿아 있습니까? 이집트입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에 맞짱을 뜰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이집트인데 그 이집트 하고 경계가 맞닿아 있는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가나안 땅이 친 페르시아적인 입장을 가져야만 제국이 안정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스라엘 종교생활과 문화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고레스가 어떤 칙령까지 발표합니까? 너희가 가나안 땅에 돌아간 다음에 야훼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다시 재건해도 좋다, 그 성전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비용들은 페르시아 왕실에서 다 지원해주겠다, 엄청난 특혜를 준 겁니다. 왜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페르시아가 특혜를 준 거냐면 페르시아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변방이 가나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와 경계를 맞닿아 있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경도되지 않고 친페르시아 정책을 펼치는 것이 제국을 안정시키는 데 있어서 너무나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페르시아는 이스라엘이 원하는 종교생활과 문화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대신 왕을 세우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부터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역사에 왕은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을 세우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말은 뭐냐면 정치 공동체가 되지 못하게 만든 겁니다. 대신 왕의 역할을 누구로 대신하게 만드냐면 바로 제사장입니다. 이런 것을 흔히 신정국가라 합니다. 제사장 그룹이 왕의 역할을 한 겁니다.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린 겁니다. 이것을 간접통치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제국이 직접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제사장이라는 중간 매개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겁니다. 뭐를 요구한 겁니까? 제국에게 매년 조공만 잘 바치면 됩니다. 세금만 잘 바치면 됩니다. 그리고 제국에 저항만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종교생활과 문화생활을 마음껏 허용해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제국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취했던 핵심적인 지배 정책의 특징입니다. 간접 통치, 제사장을 통한 통치, 제국이 부과하는 것은 뭡니까? 세금과 조공만 잘 바치면 된다, 제국에 저항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제사장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종교생활과 문화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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