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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힘을 주옵소서(왕상 19:9-18)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7.

새 힘을 주옵소서

열왕기상 19:9~18

 

 

여러분께서 기도해 주셔서 지난 세 주간 동안 미주 집회와 목회자 세미나를 은혜 중에 끝마치고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미국에는 지금 4,000여 한인교포 교회가 전국에 산재해 있고, 10,000명이 넘는 목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바로 세우는 일을 도와드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가 중심이 되어 지도자들을 도와주고 격려하는 일은 얼마나 보람되고 의의가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지난번 뉴저지에서 목회자 세미나가 있었는데, 어느 1.5세 목사가 간증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미국에 이민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을 한 사람을 소위 1.5세 목사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성인이 되어 이민을 가신 분들의 눈으로 보면 1.5세 목사는 미국 물에 젖어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의 차이를 느끼고, 언어도 중·고등학생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반면에 미국에서 출생한 2세들의 눈으로 보면 1.5세 목사는 영어가 서툴러서 이해 못할 말을 하기 때문에 거리감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1.5세 목사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발붙일 곳이 없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1.5세 목사는 너무 목회가 어렵고 더 할 수 없어서, 안된 일이지만, 아예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에서 뉴저지와 맨하탄을 잇는 조지 와싱톤 다리에서 허드슨 강에 빠져버리려고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아내와 아이들이 생각나서 다시 집에 돌아온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목회자 세미나에서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어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확신에 찬 말을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보람 되다는 사실과 '앞으로 제 남은 생애에 건강만 허락하면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나에게 맡겨진 사명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 세계 150여 국에 우리 한국 민족이 나가 있고, 한국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교회가 있고 목회자들이 시무하고 있습니다. 설교자나 목회자가 꼭 가보고 싶고, 안식하고 싶은 나라가 미국이고, 미국 중에도 로스앤젤레스입니다. 그래서 우리 세계지도력개발원에서는 본부 건물을 캘리포니아 쪽에 정하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서 때로 탈진상태에 빠진 목회자들을 재충전하는 일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에게 아주 적합한 건물을 하나 발견하고 수속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잘 될 수 있기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정대로 되면 금년 안에 구입 절차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극적인 이야기입니다. 때는 주전 9세기경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이었고, 왕후는 이방 여인 출신 이세벨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는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방 여인 출신 이세벨은 자기가 섬기던 바알 신과 아스다롯을 수입해서 우상을 숭배하는 데 열중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입니다만, 한 나라의 왕이 왕후를 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 가정에서도 어떤 아내를 택하느냐 하는 것은 그 가정이 서느냐 무너지느냐 하는 관건이 된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 아합이 데려온 왕후 이세벨이란 여자는 얼마나 간악했었는지 모릅니다. 아합의 궁전 가까이 있는 나봇이라는 사람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싶어서 다른 땅과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나봇은 조상에게서 받은 것을 마음대로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세벨은 괘씸하게 생각해서 나봇에게 누명을 씌워 죽여버리고 결국 포도원을 압수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나쁜 여자가 이스라엘 나라의 왕후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부정과 부패가 생기게 되고, 여러 가지 부조리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아합 왕은 왕후 이세벨의 말만 들어서 바알 신의 선지자들과 아세라 목상의 선지자들을 아주 환대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바른 말을 하니까 귀찮다고 생각해서, 옥에 가두거나 죄목을 붙여서 죽여버렸습니다.

 

그것도 그럴 수 있는 것이 바알 신이나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은 아합 왕의 악정을 보면서도 "아주 잘하십니다. 당연하십니다" 하면서 아부하고 환영의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으로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터인데 이스라엘 나라의 왕인 아합 왕이 하나님을 섬길 생각은 아니하고 우상만 섬기며 악을 행하고, 국민들이 도탄에 빠져서 허덕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못 본 체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왕을 향해 국민의 소리를 대변했습니다.

 

미련한 아합 왕은 아첨하는 바알 우상 선지자들의 말은 좋게 여겨 들으면서도, 바른 말로 충고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말은 귀에 거슬렸고, 마음이 상했고, 결국 분해서 그들에게 벌을 가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나라가 어두운 때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아합 왕을 마주서서 그의 행하는 모든 악행을 지적하며 책망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아합 왕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바른 말을 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죽음을 각오하고 담대히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복된 장래를 위해서 나섰습니다.

 

그는 신랄하게 아합 왕의 잘못을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3년 반 동안 이스라엘 나라에 하늘의 문이 닫히고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사실 엘리야가 예언한 그대로 이스라엘 나라 온 지경에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재앙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국민 모두는 문자 그대로 한재를 겪게 되고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합 왕은 자기가 범한 잘못은 생각지 아니하고,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나라가 어려움을 당하게 된 것이 이것을 예언한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말할 수 없이 격분하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렇게 되면 큰 일입니다. 아합 왕은 엘리야를 만나기만 하면 자기의 막강한 권력으로 처치해버리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습니다. 3년 반의 어려움이 거의 다 지나게 되었을 때, 아합 왕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합 왕은 너무 화가 나서 이를 갈며 "네 이놈, 우리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를 여기서 만나게 되었구나" 하여 야단쳤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비록 왕의 앞이었고 자기를 해치겠다고 미친 듯이 덤비는 권력자의 앞이었지만, 침착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은 제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이오. 왜 당신과 당신의 집이 여호와를 버리고 아무 것도 아닌 바알을 좇고 계시오? 그러니 이제 제가 대왕께 제의를 하나 하겠습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과 특별히 왕후 이세벨의 상에 붙어먹고 사는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선지 300인을 갈멜 산 위에 모으시오. 우리가 거기서 대결해서 어느 신을 섬기는 것이 우리가 축복 받는 길인가를 밝혀 봅시다."

 

이때 아합 왕은 당장이라도 엘리야을 죽이고 싶었지만, 이 엘리야의 제의를 무시하면 비겁하게 보일 것 같아서 그대로 하기로 승낙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하나요, 아합의 편인 바알 선지자는 많으니까 무엇을 하든지 아합에게는 승산이 컸습니다. 아합 왕은 바알 선지자의 수만을 믿었습니다.

 

엘리야는 왕과 모든 국민을 갈멜 산 위에 모으고 바알 선지자 450명이 둘러선 자리에서 도전했습니다. "여러분,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시겠습니까?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시오."

 

이 장면은 이스라엘의 종교 역사상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 역사상 잊을 수 없는 중대한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의 앞날이 정해진 것입니다. 아마 그때 갈멜 산 위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종류의 사람은 참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요, 다른 종류의 사람은 거짓 신 바알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그저 이 편이든 저 편이든 상관없이 형편 봐가면서 정하자고 머뭇머뭇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편이든지 이기는 편에 드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아서 결과만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작정을 하지 못하고, 결단을 내리지 목하고, 머뭇거리는 대중을 향해서 안타깝게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어느 때까지 이렇게 정하지 못하고 머뭇머뭇하시겠습니까? 분명하게 옳은 편에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방 신 바알이 들어오면서, 그것도 권력자인 이세벨을 통해서 들어오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바알을 섬기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자기 민족을 향하여 호소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한 것을 보아도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과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되리요.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바알, 하나님과 세상, 두 주인을 같이 섬길 수는 없습니다.

 

"어느 때까지 이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겠습니까?" 아마 이 뜻은 "얼마나 더 오래 이런 생활을 계속하겠습니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알 신을 섬긴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나님의 경고와 징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생활을 계속하겠느냐?"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이 땅에 비가 그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경고요 징계인데도, 아직도 그와 같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머뭇머뭇하는 생활을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참 신과 거짓 신을 판가름하기 위해, 나무를 쌓아놓고, 그 위에 송아지를 잡아 올려놓고, 사람이 불을 지르지 아니하고 제물을 불사르게 하는 것이 참 하나님인 것으로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당신들은 수가 많으니까 먼저 이 일을 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은 아침부터 낮이 되도록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며 기도했지만,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알 선지자들은 다급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나중에는 칼과 창으로 몸을 상해 피가 흐르게까지 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오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까이 오게 하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뜻으로 열두 돌로 단을 쌓고, 나무 위에 송아지를 잡아놓고 물통으로 물을 네 통이나 길어다 나무와 제물 위에 붓고, 세 차례나 그렇게 열두 통의 물을 붓고 엘리야는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에 고였던 물까지 핥은 듯이 말려버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되니까 기연 미연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가 참 신인 것을 인정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바알 신 선지자에게 완전히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이미 약속한 대로 바알 신 선지자들을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고 기손 시내로 내려가 한 칼에 다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엘리야를 '불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마음이 불같이 타고 있었고, 하나님의 불로 응답을 받아 승리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던 이스라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한 능력의 종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엘리야에게 이튿날 왕후 이세벨에게서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내일 이맘때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에 하나같이 네 목을 치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는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위해 멀리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억지를 부렸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넉넉합니다. 제 생명을 거둬주세요. 나는 내 열조보다 조금도 나은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엘리야는 열심이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자기 혼자서 대결할 정도로 대담한 사람이었고, 확신과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그에게 불로 응답해서 승리를 거둔,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약해질 때 이세벨의 칼이 무서워 멀리 멀리 도망했고 하나님께 목숨을 거둬달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렇게 약한 면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를 보세요. 범죄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눈물로 호소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레미야는 낙심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리라.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아니할뿐더러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일만 당하니 이런 고생 더 이상 할 수는 없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에서 대접받는 위치는 아닙니다. 그래서 약해지기 쉽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방주를 지으면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대접받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 조롱을 받았고, 공연히 시간과 재물의 낭비라고 빈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롯도, 다니엘도,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도 다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불의 선지자 엘리야도 낙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낙심되어 누워 있는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위로하셨습니다.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이 있어서 그것을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고 힘을 내어, 네가 갈 길을 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의 사람들이 지쳐서 넘어질 때 찾아오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며 새 힘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아주 넘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KO 되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우리를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엘리야에게 강풍이 지나갔습니다. 지진이 지나갔습니다. 불이 지나갔습니다. 이런 것이 지나간 후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와 있느냐?"

 

"예, 제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냈으나,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를 죽였으며, 이제 저만 남아 있는데 저희가 저도 죽이려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엘리야야, 내가 잘 안다. 네가 얼마나 열심이 있었던 것도 내가 잘 알아. 네 입장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도 다 알고 있어. 네 생각에는 너 혼자 남은 것 같아 외로울 거야. 그게 아니야. 이스라엘 가운데 7,000명이 아직 남아 있어. 저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들이야. 엘리야야, 너는 사명이 있어. 할 일이 있어. 어서 일어나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엘리야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 누웠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힘들어 쓰러집니까? 통계에 의하면, 가정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가계부채가 늘어나, 금년 말이면 가구 당 평균 가계부채가 3,000만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빚에 쪼들리다 자살까지 하는 사람의 수가 더해가고 있지 않습니까? 쓰러지고 자빠집니다. 우울증 환자가 증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세상 권력에게 몰려 도망하고 쓰러졌을 때,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 새 힘을 얻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답답하고 하늘이 아무리 캄캄해도 자세히 찾아보면 별 한두 개는 보이는 법입니다. 이것이 소망의 별입니다. 여러분, 이 별을 쳐다보십시다.

 

강한 바람이 아니고, 요란한 지진이 아니고,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이 아니라, 조용하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사도 바울은 비바람이 몰아쳐서 구원의 여망이 없는 캄캄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들을 다 네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풍랑을 만나 절망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안심하세요. 우리는 마침내 이 풍랑을 극복할 것입니다." 그는 풍랑 속에서 사명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사명 감당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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