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포도원 품꾼 설교
권력과 능력으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가 사회의 주류에서 배제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악질적이고 파렴치한 세리, 부정한 창녀, 부도덕한 고아(당시 고아는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죄인인 병자(당시 병은 죄로인해 생긴다고 여겼습니다)와 어울려 다니는 걸 용서할 수 없어서 예수를 사회질서를 교란한다고 여겨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나라는 이와 같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침 6 시에 한 데나리온을 품삯으로 정하고 일꾼을 불러 일을 시키고 각 9 시, 12 시, 오후 3 시에도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킵니다. 또 오후 5 시에 나가보니 아직도 사람이 있는지라 왜 일을 하지 않는가? 물으니 아무도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니 너도 가서 일하라고 일을 주었습니다. 오후 6 시에 일을 마치고 모두 모이게 한 후에 오후 5 시에 온 사람에게 먼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습니다.
당연히 오전 6 시에 와서 하루종일 일 한 사람이 자신이 한 데나리온에 정했지만 1 시간 일한 사람과 똑같이 받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예수가 기업을 이렇게 운영하라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했다가는 기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물정 모르는 몽상가 예수의 설교일까요
1. 아침 6 시에 온 일꾼에게 먼저 품삯을 주어 보내고 이어 다 보낸 후에 오후 5 시에 온 일꾼도 같은 품삯을 주었다면 그 주인은 자비심 많은 사람으로 칭송 받았을 거고 예수도 그렇게 설교했다면 봉사대상을 받았지 사회질서를 교란한 자로 몰려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2. 1. 과 같이 하는 것이 세상의 질서고 모든 종교와 사상의 가르침 입니다.
불교 : 측은지심 곧 자비 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우월적 지위에서 나오는 사랑 입니다.
니체는 사랑을 이렇게 파악하여 인간의 자만심을 나타내는 사랑이 인류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탄 합니다. 니체는 예수사랑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꼭 필요 합니다.
공자 : 제자 안회가 스승 공자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인이란 너무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무엇 입니까? 인이란 예(절)다. 즉 공자도 사랑을 말하지만 예를 갖춘 사랑으로 체애라고 합니다. 즉 높은 사람 낮은 사람으로 서열을 나눈 사랑 입니다.
묵자 : 예수보다 4 백 여년 앞선 묵자의 사랑은 인류애 입니다. 여기엔 한 인간의 존엄은 없습니다.
예수 : 한 데나리온은 한 가정의 하루 생계비 입니다. 왜? 오후 5 시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했는가는 묻지 않습니다. 그가 노름을 했는지 장터에서 술을 마셨는지 묻지 않습니다. 누구나 가장은 그 가족의 생계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예수의 생각이고 이것을 동정이 아니라 모든사람 앞에서 당당히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랑, 즉 차등없이 존엄을 지키는 사랑 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업을 할 수 없으므로 대책없는 몽상가의 설교로 치부하고 말가요?
우리는 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 급료의 절반도 안 되는 비정규직 문제를 생각 합니다. 특히 사회에 처음 나오는 비정규직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앞날에 절망 합니다.
일터에서 예배를 드리고 시작하며 비정규직이 있는 사업을 운영하는 그리스도인은 부끄러운줄 알아야 합니다. 비정규직 없이는 사업할 수 없다고요? 그러면 그리스도인인 척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말씀은 개무시하면서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하면 하나님을 세상으로부터 조롱받게 하는 행위 입니다. 키에르케고어는 그리스도인이란 너무 엄청나서 자기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고 다만 예수를 전하는 사람일뿐이라고 합니다.
능력위주의 사회는 죽은 사회 입니다. 어제 미국의 페친을 통해 확인한 바로, 지금 미국의 집없이 개인텐트 생활하는 사람이 6 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LA 근교는 일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매 해 만 가정씩 증가한 답니다. 30 여 년 전에 천 만 명이었는데 엄청 늘었습나다. 인구 3 억여 명되는 나라에서 큰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능력과 번영을 주창하는 나라가 망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소수 권력자와 기득권 세력이 결탁하여 부와 정의를 독점하고 약자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찾지 못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 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법(법률, 종교, 문화, 사상, 이념, 도덕, 경제법칙)으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으라고 합니다.(로마 1:16-17, 3:21) 믿음이란 하나님의 의를 쫓아 죽음과 죽음으로 이끄는 세력에 저항하는 삶 입니다.
여러분 평화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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