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로마서 8장33-37 / 누가 정죄하리요?

by 【고동엽】 2022. 11. 14.
 
■2022년1월21일(금)■
 
(로마서 8장)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묵상/롬 8:33-37)


◆ 누가 정죄하리요?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미숙한 신자들이야 조그마한 일로 뻐기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겠지만, 상당수의 신자들은 영적 열등감에 시달린다. 자신이 평가해도 몹시 부족하고, 자신이 설정한 기대에도 못 미친다. 인간은 비교의식에 찌든 존재이기에 자기가 완벽하거나 최고가 아닌 이상 늘 열등의식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당당함의 근거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분명히 깨우친다.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위해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다.
거울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 저를 의인 삼아 주심을 감사합니다를 외쳐보라.
'아멘' 하면서 감사가 솟구치는 사람은 정상적인 신자다.
그러나 의심과 함께 오만가지 반발이 생기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다음 셋 중에 하나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모두 해결하셨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고 있거나
아니면 믿기는 하지만, 십자가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알량한 자기 의에 미련이 있거나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속에 거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착각 중 하나가 죄 사함이 자기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가령 내가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빌어서 용서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용서된다. 
'내가 죄를 범했습니다. 내가 죽일 놈입니다.'라고 하며 '용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용서가 보류되는 것이 아니다. 탕자는 아버지께 와서 아들로 받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품꾼의 하나로 삼아달라'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그를 완전히 회복시켰다.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쳐야 용서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소위 '호함파'는 사흘 간 떼굴떼굴 구르면서 눈물로 회개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한다.
구원을 위해 그 정도 수고는 해야 하나님께서도 용서할 마음이 생길 것으로 믿는다.
아니다. 삭개오는 즐거워하면서 구원받았다(눅 19:1-9).
그가 울든, 웃든 그런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감정이 십자가의 희생에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오로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용서되고, 구원받으며, 의롭다함을 얻는다.
그것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공로다. 


나는 40년간 사역하면서 여러 사람을 보았는데, 예수 믿을 때 울고불고 감동적인 간증을 했어도 나중에는 흐지부지되는 사람을 보았고. 덤덤히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도 보았다. 죠지 뮬러 같은 위대한 기도의 사람은 후자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그리고 믿음 안에 거하는 자는 정죄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의롭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지지 말라!


어떤 사람은 자기가 믿는지 안 믿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이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까지 한다. 이것이야말로 고질병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기쁜지 슬픈지 알려달라고 할 사람이다. 하긴 자기 마음을 종잡을 수 없으니 그런 모습도 이해가 된다.


자신의 믿음이 의심스러운가?
조용히 주님께 나아가 입술로 고백하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탕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돌이켜서 아버지께로 오는 것이다. 그 이상은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최고의 옷과 신발과 잔치는 아버지의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라.


주님, 저는 십자가의 은총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 그리스도의 사랑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간구하신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분이 최소한 두 분이시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롬 8:2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롬 8:34). 우리는 이 두 분의 중보기도 때문에 이런 유혹 천지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압도적이다.
종종 세상으로부터 도살당할 양처럼 취급될 때,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최근에 북한을 돕는 사역을 하다가 트집 잡혀서,  북한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노동교화소에 갇혔다가 풀려난 분이 있다. 캐나다에서 사역하는 임현수 목사다.  그는 북한 감옥에서 설사와 동상으로 고생하며, 힘든 노동과 열악한 음식으로 몸무게가 20킬로 그램이나 빠지고 하루하루가 죽을 지경이었다. 종신형…. 이런 생활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절망적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 밑바닥에서 오히려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체험함으로써 자신이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기회였다고 간증했다. 종종 주님의 사랑은 그 와중에서도 그를 감격하게 했다. 그는 900일 만에 석방되어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는 북한 감옥의 생활을 수도원에서 있었던 시간으로 회상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에 처하는 것을 종종 허락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에 처하는 것을 종종 허락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지는 않으신다. 그의 위로와 사랑을 체험하게 하심으로써 더욱 하나님과 밀접하게 하신다.  
모든 것이 절망적일지라도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정말 넉넉히 이긴다. 


주님,
주님의 사랑이 제 생명보다 귀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있기에 넉넉히 이깁니다.
이 믿음의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