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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거와 의미/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1 ~ 22절

by 【고동엽】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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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거와 의미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1 ~ 22절 마경훈 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1 ~ 22절(개역개정)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미국의 노부부가 성지순례차 고향 땅 이스라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장의사를 찾아 시신 처리와 장례 절차를 물었습니다. 장의사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묻힐 경우 축복도 받고 비용도 150달러면 충분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신을 방부처리해 미국으로 공수하는 방식인데, 절차도 번거롭고 비용도 5000달러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망설이다 결심했습니다. 비싸더라도 미국으로 시신을 옮겨 묘지에 묻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 땅에 묻히면 그 옛날 주님처럼 자기 아내가 부활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감당하기 어렵다는 ‘뼈 있는’ 이유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배우자가 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 기쁨이 되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부활의 증거와 의미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1. 부활의 증거
   첫째,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3.4절을 보면 주님은 성경대로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말은 성경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에 관한 성경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눅 24:27에 보니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율법을 말하는 것이고 ‘선지자의 글’은 대선지서나 소선지서를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구약성경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약 성경 중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4복음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결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습니다. 진리의 책인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텅 빈 무덤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세상과 타종교는 무덤의 크기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나 기독교의 자랑은 빈무덤입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님이 인도에서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와서 자랑하듯이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독교인들이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존스 선교사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이슬람교도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있어서 우리는 정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도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이 말에 존스 선교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기 때문에 무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말씀이 증거입니다.
   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복음서에만 25회 이상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넷째는, 제자들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된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마지막 밤에 성만찬을 거행하실 때에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누가 높은 자리 차지할 것이냐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던 철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밤새워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그들은 하나같이 졸며 잠만 자고 있던 사람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체포되실 때 주님과 함께 죽는데도 가겠다던 베드로와 제자들은 다 도망쳐 버렸고, 베드로는 계집종 앞에서 “나는 예수와 상관없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은 모두 도망쳐 숨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사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죽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헬라에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엑스자형(X)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베임 당하여 죽었고, 빌립은 서아시아 부르기아에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으며, 마태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베임을 받아 죽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시몬은 애굽에서 전도한 후 다시 유대에 돌아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바사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고, 가룟 유다 대신 선출된 제자 맛디아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사건이 그들을 그토록 변화 시켰을까요? 부활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을 받은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만약 주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이 이렇게 까지 변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다섯째는, 초대교회의 설교의 내용이 십자가와 부활뿐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사도들이 어떻게 사역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책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여러 편의 설교가 나옵니다. 베드로, 바울, 스데반, 빌립 등 설교자들은 많았지만 그들의 설교는 언제나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라는 내용뿐이었습니다. 그들이 핍박 중에도 부활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활을 목격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섯째는, 이 세상의 역사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계제일의 권위를 가진 대영백과사전은, 예수님을 설명하는데 2만여 단어와 400여 페이지를 할애하여 그분의 삶과 부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최대의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마호멧, 석가, 나폴레옹, 씨저, 죠지 워싱턴 등의 여섯 위인을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세계역사의 기초를 제공한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네로황제의 아들 티베리우스 치하에서 유대총독 빌라도에게 사형되었고, 그 예수는 예언한대로 다시 살아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역사도 주님의 부활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곱째는, 오늘날에도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부활을 증명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복음을 증거 할 때 따르는 표적이 많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며 믿는 자들의 삶과 사역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푸시는 기적은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도 일어났습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웠습니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을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습니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파송을 자원했습니다. 1885년 4월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단순한 입항이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땅을 밟았습니다.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날의 감동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제 12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라는 성장과 부흥을 경험했으며 ! 아펜젤러의 기도처럼 온갖 결박이 끊어지는 기적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덟째는, 오늘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사실이 부활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일주일의 끝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이라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날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지켰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것은 그들이 목격하고 체험한 부활에 대한 확신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이 주일에 부활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 땅위에 주일이라는 날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홉째, 성령이 내 마음 안에서 증거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아들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교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부활을 믿게 하시고 부활을 증거 하게 하십니다.
   믿는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활의 주님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영으로 주님을 만난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을 직접 만난 경험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안에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환 확신이 생기고 하나님이 아버지로 믿어집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믿는 자 속에서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

2. 예수 부활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의 사실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음과 같은 많은 사실들을 의미 있게 해 주었습니다.

   첫째, 성경의 모든 말씀이 진리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사람이 강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죽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죽게 되어 있고 죽으면 이 세상과는 이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주님의 부활을 예언하였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진리이기 위해서는 어느 한 말씀도 잘못되면 안 됩니다. 한 말씀이라고 잘못 되었다면 진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이라는 불가능해 보였던 말씀마저도 그대로 성취되므로 성경이 진리임을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임이 밝혀졌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인간과 구별됩니다. 인간중의 출중한 한분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나 공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위인중의 한분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의 자식으로 났고 사람 중에 위대했으나 사람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자기의 죄 문제로 고민하다가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결국 죽었습니다.
   죽음을 해결하실 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롬1:4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라고 말합니다.

   셋째,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 죽으심이요 예수님이 다시 부활은 믿는 자를 영생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롬4:25에 보면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는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한 죽음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를 살리기 위한 부활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 육신도 부활 할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고전 15장에서는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첫 열매라는 주님을 믿는 자들이 주님의 뒤를 이어서 부활에 동참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 혼자만의 부활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대표자의 부활이며 모든 성도의 부활의 보증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부활을 확신하기에 이 땅에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소망이 있습니다. 영국 어느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석탄광 하나가 무너지는 바람에 그 안에서 일하고 있던 164명의 광부들이 생매장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깊은 슬픔을 가지고 사체발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체 옆에 판자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이 하십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여 축복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영광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는 이곳에 남지 않고 부활의 생명 가운데 아름답게 꽃 피울 것입니다’ 석탄광의 무너지는 흙더미 속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영생의 기쁨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처럼 죽음 앞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영생을 주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살아야한다는 것이 말해줍니다.
   마 16장에 보면 주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칭찬하신 후에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주님의 길을 막았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을 보신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들은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부활후에 우리의 상급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잘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고전 15장에서는 부활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58절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흔들림 없이 주의 일에 힘스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신앙이 확실했습니다. 그리스의 한 철학자가 친구에게 쓴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그는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이런 말을 썼다.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새 종교집단이다.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고 기뻐하며 그들의 신에게 감사의 예식을 드린다. 그들은 시체를 들고 묘지로 행렬할 때 마치 즐거운 소풍이나 가듯이 노래를 부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행진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확신이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믿음으로 핍박도 죽음도 이겼습니다. 우리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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