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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십자가와 찬란한 부활의 교훈. (벧전 1:3-16)

by 【고동엽】 2021. 10. 30.
 
부활 목차 돌아가기
 

 험한 십자가와 찬란한 부활의 교훈.   (벧전 1:3-16)

며칠 전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멜 깁슨의 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Christ) 시사회에 초청을 받아 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는 제작자인 멜 깁슨의 의도가 아주 분명한 영화였고, 그 제작자의 제작 의도에 관한한 아주 집중도가 높은 그리고 성공적인 영화로 보여 졌습니다. 제가 이해한 멜 깁슨의 제작 의도는 영화 제목 그대로 The passion of Christ 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한 멜 깁슨의 영화와 그림만큼 충격적인 것은 이제껏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끝에 납이 달린 가죽 채찍에 의해 찢어지고, 갈라지고, 뜯겨져서 차마 두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이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모습은 충격이라는 말고도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부인 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충격적인 그림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잔인한 폭력물 영화를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혹시라도 영화 중에 그런 장면이 나오게 되면 아예 눈을 감고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화나 소설을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그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많이 우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저는 The passion of Christ를 보면서 거의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혀 울지 않았습니다. 그 영화가 제게 주는 메시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 메시지가 전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전에 받았던 느낌과 감동과는 다른 강도의 느낌과 감동으로 저에게 전해져왔습니다.

제가 멜 깁슨에 의해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한 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내가 큰 죄인이다.

저는 잔인한 채찍질로 인하여 피투성이가 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어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과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고통 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그것도 내가 아주 큰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물론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구하시기 위한 십자가였지만, 예수님은 온 인류가 아닌 나 하나의 죄를 사하시고 구하시기 위하여서도 그 험한 십자가를 지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세 자녀가 있습니다. 이제는 며느리를 보게 되었으니 네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네 자녀를 위하여 생명을 버릴 수 있습니다. 저 하나가 죽고 네 자녀가 산다면 저는 기꺼이 제 목숨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네 자녀가 아니고 넷 중의 한 자녀라면 제 목숨의 사분의 일만 버리려 할까요? 네 자녀가 아니라 한 자녀만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일은 아까운 일이고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할까요? 그와 같은 생각을 통하여 저는 제게 네 자녀와 한 자녀가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을 통하여 저는 하나님에게 저 한 사람의 생명과 온 인류의 생명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하나만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능히 저 험한 십자가를 지셨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나 하나만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도 저렇게 처참한 십자가형을 받으셔야만 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온 인류의 죄가 아닌 나 하나만의 죄이니 그 형을 좀 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물론 답은 아니었습니다. 나 하나만의 죄를 위하여서도 예수님은 그 처참한 십자가형을 고스란히 다 받으셔야만 했겠구나하는 생각을 결국 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정말 새삼스러운 충격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을 통하여 저는 내 죄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죄가 저 엄청난 대가를 치루어야만 사해 질 수 있는 큰 죄라는 것을 정말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살다보면 참으로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격기 마련입니다. 그와 같은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마다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억울해 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자기는 마치 그와 같은 고난을 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죄 없이 억울하게 고난을 받는 것처럼 대부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회개를 하였던 강도를 기억했습니다. 그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도 예수님을 빈정거리고 있는 강도를 향하여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 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눅 23:41)

저는 멜 깁슨의 The passion of Christ를 보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에 대하여 그것을 억울해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당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과 자세가 바로 십자가상에서 회개를 하였던 강도의 생각과 자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입니다.

두 번째, 나는 확실히 구원 받았다.

저는 처참하게 피 흘리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시하면서 새삼스럽게 제가 구원을 얻었다는 확신을 다시 한번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치루 신 값이 너무 엄청나서 사탄도 어떻게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 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 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 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 여 간구하시는 자 시니라> (롬 8:32-34)

저는 처참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우리의 사람됨과 죄와 허물을 그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탄이 우리의 죄를 고발하지도 못하고 송사하지도 못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치루 신 대가가 너무도 엄청난 것이어서, 사탄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그와 같은 죄를 다 용서해 주실 수 있느냐고 송사 할 수 없다는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사탄이 우리의 죄를 송사할 수 없다면 누가 우리의 죄를 송사할 수 있겠습니까? 저와 그와 같은 생각을 통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얻은 우리의 구원이 완벽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깨달음을 통하여 저는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 원망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절망을 해서도 안 되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처절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눈도 감지 않고 직시하면서 저는 제가 죽고 망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의 이런 저런 일로 죽고 망할 사람이라면 우리 예수님이 저렇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참한 십자가를 눈 감지 아니하고 직시하니 십자가 속에 구원이 있었습니다. 부활이 있었습니다. 구원과 부활은 논리적인 필연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멜 깁슨이 그려낸 처참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 속에서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을 때 ‘이처럼’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저렇게 까지 사랑하시는데, 저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없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 이하에서 바울이 고백한 고백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 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 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 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5-39)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한번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랑에서 저와 여러분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계십니까? 핍박을 당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지나쳐 곤고하고, 곤고함이 지나쳐 완전히 적신으로 벌거벗겨진 것과 같이 되셨습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칼과 위험이 승하여 죽임을 당케 된 도살할 양같이 되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와 같은 환난과 역경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같은 환난과 역경을 끊어 낼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세상의 고난과 역경 속에 죽고 망할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입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아무렇게나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16절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
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

처참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직시하면서 저는 제가 큰 죄인이라는 것도 깨달았지만 동시에 제가 참으로 대단한 존재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값을 많이 치룬 것은 비싼 것이고 귀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에 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냐 하시며 우리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하신 말씀의 의미를 십자가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귀한 사람은 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밥이나 먹겠다고 아무렇게 몸을 굴리고 살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은 너무 하찮게 여기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을 대가로 치루시고 구해주신 생명인데, 정말로 온 천하보다 더 크고 귀한 존재인데, 밤낮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만 생각하며, 그것도 그 때문에 온갖 비열한 생각과 죄를 지으면서 살아갈 수 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우리의 인생의 목표를 정말 보다 높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 즉 뜻을 구하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두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값이 예수님의 피 값 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시고 그 값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생각하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할 말은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 말씀들을 다시 한번 우리의 육비에 새기는 귀한 부활주일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망하지 말자. 우리는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을 당해도 마땅한 큰 죄인이다.
절망하지 말자. 세상의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나타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
값진 인생을 살자. 우리의 몸값이 하나님의 피 값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에 합당한 거룩하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자.

아멘.

출처/김동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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