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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이 의미하는 것! (마 28;1-10)
지난 주간 나는 춘천 광장 교회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92세 된 윤명선 원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지금도 새벽기도 한 번도 결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 한 장로님이 <장로님 100살까지 사세요>라고 축복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윤 장로님은 화를 버럭 내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보고 8년만 더 살라라고요?> 100살까지 살라고 축복한 장로님은 무한하여 재빨리 말을 바꾸었습니다. <모세만큼 사십시오> 사람들은 영원히 살고 싶어 합니다. 죽기를 좋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드려 봅니다. 사형수가 사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도중에 조금 파인 곳이 있었습니다. 사형수는 그 곳에 발을 헛디뎠습니다. 쓰러질 뻔 하였습니다. 그 때 그 사형수가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이쿠 하마터면 죽을뻔 했네." 사람은 영원히 살고 싶어 합니다.
오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바로 해가 지면서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도 멀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100m 이상 걷지도 않았습니다. 모두가 꼼짝하지 않고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일만 하였습니다.
토요일 저녁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밤이었습니다. 주일 새벽이 되었습니다. 몇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여자들은 걱정하면서 향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어떻게 여자들이 치울 수 있을 지 걱정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당시 장례는 굴을 파고 시체를 넣고 돌로 막는 문화였습니다. 여인들이 막상 도착하여 보니 돌이 옆으로 굴러져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보였습니다. 여자들은 너무나 무서워서 얼굴을 땅에 댔습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여자들은 평소에 예수님께서 늘 이렇게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려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였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빈 무덤은 우리에게 세 가지 확신을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1. 빈 무덤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여인들이 새벽에 가서 보니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숨겨 놓고 부활하였다고 거짓말하였다면 그 거짓말을 위하여 제자들이 순교하였겠습니까?
진리를 위하여 죽을 수는 있어도 거짓을 위하여 죽은 이는 없습니다. 잠시 동안은 속일 수 있어도 2,000년 동안 속일 수는 없습니다. 몇 명을 속일 수는 있어도 전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남은 속일 수가 있어도 자기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인도 능수 해안에 묻혀 있습니다. 마호멧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묻혀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장평양에 묻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썩었고 흙이 되었습니다.
중국 북경에 가면 천안문 광장 한 쪽에 모택동 미이라는 보려고 뱀처럼 길게 줄 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쏘련 모스코바 붉은 광장 한 쪽에는 레닌의 미이라 시신을 보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부활을 선물로 주신 우리의 생명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한 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 국에서는 한동안 떠들썩했었습니다.
그 때 석가모니의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의 경의 속에 시가행진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뼈가 지나갈 때 땅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산산 조작이 나고 말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을 뼈 조각하나 찾을 수 없습니다. 빈 무덤을 부활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최고의 자랑이요 당당한 자랑입니다.
인도에서 선교사로 있었던 스텐리 존스가 설교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설교 도중에 일어나더니 소리를 질렀습니다. <메카에 가면 마호멧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소. 능수에 가면 석가모니가 이 땅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소. 그런데 지구 어디를 가도 예수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지 않소? 예루살렘에 가 보아도 빈 무덤밖에 없지 않소? 예수는 정말 이 땅에 있었다는 증거가 어디 있소?>
이 스텐리 존스는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확실히 다른 점이요. 우리 주님은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기에 우리는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빈 무덤은 부활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2. 빈 무덤은 승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군중들이 이기는 것 같았습니다. 로마가 승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룟유다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질서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군중은 놀랐습니다. 하루에 5천 명씩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님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로마는 패하여 자기 나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가룟유다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사망 권세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예수 이름앞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싸움은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죽이면 죽인 편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죽은 편이 지는 것입니다.
이라크 후세인이 죽으면 이라크 전쟁은 끝납니다. 빈 부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의미하고 부활은 세상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기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공원묘지에 한 아기의 묘가 있었습니다. 그 어린아이 묘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이야, 조금만 기다려라. 주님께서 곧 오신다.> 비록 이 땅에서 몇 년 밖에 못 살다 죽은 어린 생명이지만 조그만 기다리면 예수님이 오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라는 소망의 묘비였습니다.
일시적으로는 힘이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것 같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부러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 헛것입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빈 무덤은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이라는 확신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0-2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첫 열매이고 우리 모두는 줄줄이 두 번째 세 번째 부활의 열매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하여 새 새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께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예수 안에서 우리가 죽었다고 말하는데 죽는 것이 무엇이며 부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때에 목사님께서 <내가 가르쳐 줄터이니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너를 미워하던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이 있느냐?> 그는 한 사람이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다가 죽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그 공동묘지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그 친구를 향하여 욕을 실컷 하고 오너라. 그러면 죽는 것이 무엇인지. 부활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다>
그 사람은 목사님과 약속이라 그렇게 하였습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공동묘지에 가서 하루 종일 욕을 하였습니다. <이 죽일 놈, 이 못난 놈, 이 고약한 놈> 그리고 목사님에게 그렇게 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너를 굉장히 좋아 하던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이 있느냐?>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역시 도시락을 싸들고 그 무덤에 가서 하루 종일 사랑한다고 외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사랑하던 친구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친구야! 나는 너를 사랑하였고 너는 나를 사랑하였지? 친구야! 나는 아직도 너를 잊지 않고 사랑한다. 너는 아름다운 친구였지. 정말 사랑스러운 친구였지.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너는 얼마나 훌륭한지 모른다.> 하루 종일 외치고 돌아 왔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 미워하던 친구에게 하루 종일 욕을 하니까 친구가 뭐라고 하더냐?> <아무 말도 안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하는 친구에게 하루 종일 칭찬을 하고 사랑한다고 하니까 뭐라고 대답을 하느냐?>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왜 아무 말도 안하느냐?> <그거야 죽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반응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다시 산다는 말은 예수님과 반응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이것이 부활이다>
빈 무덤은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우리와 함께 계시면 기도하는 이에게 반응하시면 승리하게 하신다는 확실한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내 곁에 항상 계심을 믿으며 내가 기도하기만 하면 반응을 보이시고 응답하시고 대답하시고 역사하심을 믿는 이들에게는 승리의 보장이 있습니다. 빈 무덤은 승리의 선물을 확실히 주고 있습니다.
3. 빈 무덤은 보상을 의미합니다.
빈 무덤이 없다면 예수님은 부활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으셨으면 우리도 부활하지 못 합니다.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것입니다. 우리가 바랄 것은 이 세상뿐입니다. 부활이 없으니 이 세상만 잘 살면 끝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저 세상에서 살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저 세상에 가서 보상 받을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6-20)
빈 무덤은 부활입니다. 부활 후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보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고생하면서 희생하면서 믿음 생활한 것들이 헛것이 됩니다. 부활 후에는 우리 모두를 모아 놓고 보상하여 주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도 15장 부활 장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0-44)
주일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공부할 때마다 기도하였습니다. 교실에서도 늘 친구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몹시 싫어하는 담임선생이 하루는 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믿는 천당이 어디 있는지 나에게 알려 줄 수 있니?>
그 때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선생님 가는 길로 계속 가면 지옥이 있고 제가 가는 길로 계속 되면 천국이 있습니다.> 부활 후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에게 항거할 때였습니다. 그는 친일파 사람들이 이 상재 선생님을 매수할 의논을 하고 나서 말했습니다. 친일파 사람들 중에 영향력 있는 기자가 일본 총독부와 의논한 후에 돈 뭉치를 들고 이 상재 목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돈으로 시골로 가셔서 편히 사시지요> 이상재 선생은 돈 뭉치를 밀어 놓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돈으로 사는 자가 아니다. 나는 말씀으로 산다.> 기자는 당황하면서 물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백세를 산다고 했고, 영국의 누구는 얼마 동안을 산다고 장담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몇 살이나 사시겠습니까?>
그 때 월남 이상재 선생은 젊은 기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사람이 한 번 났으면 영원히 살지 죽긴 왜 죽나?> 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진시황은 불로불사약을 구해 먹었지만 결국 죽었는데 무슨 불사약이라도 잡수셨습니까?>
<먹었지. 너희 천황이 먹지 못한 것을 내가 먹었지. 영생 불사약을 먹었기에 나는 죽지 않을 것이며 일본이 망하고 군국주의자들이 죽는 것을 다 볼거야>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기자가 묻자 선생은 그 옆에 있는 성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으로 산다. 그러면 영원히 살다. 죽어도 부활한다.> 이 상재 선생님은 부활의 믿음을 확실히 가지고 살았기에 독립 운동하다가 죽어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독립운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1. 빈 무덤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2. 빈 무덤은 승리를 의미합니다.
3. 빈 무덤은 보상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부활절 메시지를 마치려고 합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 어린 아들 둘이 엄마랑 외롭게 사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그립고 남편이 그리워 식탁 위에 아빠 사진을 걸어 놓았습니다.
아빠와 같이 식사하는 마음으로 식사 시간마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식사를 했습니다. 엄마도 식사할 때마다 그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남모르게 눈물지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식사를 하려던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저 사진틀에만 있지 말고 여기 나와서 우리랑 같이 살면 좋겠다.> 그 때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나팔소리가 울리고 그 때 아빠가 사진틀에서 부활하여 나올 거야> 그리고 온 가족이 다시 울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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