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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공경하라! (창세기 9:20~27)

by 【고동엽】 2022.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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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9:20-27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세상에서 자기 배우자 없이 사는 사람은 있어도, 또 자녀 없이 사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가 없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 뜻깊은 어버이주일을 우리가 다시금 맞이했습니다. 비록 부모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남겨주시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한 가지 사실만 생각하더라도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행여 우리의 마음 속에 부모님에 대해서 섭섭한 감정이나 원망스러운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다 떨쳐버리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몇 해 전에 어떤 보험회사에서 생명보험을 판촉하기 위해서 이러한 광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스물아홉… 열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일곱…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마흔셋…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여덟… 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셋…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 보고 또 입어봤습니다.
예순하나…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곧 이어지는 어머니에 대한 광고는 또 이러했습니다.

스물하나… 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김씨 댁의 큰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여섯… 시집온 지 오 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둘…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밤길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마흔…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데워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쉰둘…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다섯…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적셨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나이 드신 부모님의 상을 잘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인 줄 압니다.
오늘 뜻깊은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동안 부모님을 이해해 드리지 못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죄, 부모님을 원망했던 죄,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했던 죄를 이 시간 다 회개하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홍수 뒤에 노아가 가족들과 함께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포도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노아는 포도를 따서 포도주를 담갔습니다. 홍수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 노아에게 무슨 세상 친구가 있겠습니까? 또 사람이 나이가 들면 먹고 마시는 것 이외에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노아는 포도주를 한 잔, 두 잔 계속해서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너무 많이 마셔버렸습니다. 그는 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그는 자기 장막 안에서 하체를 부끄럽게 내놓고서 벌거벗은 채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작은 아들인 함이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식된 도리가 무엇이겠습니까? 얼른 이불로 아버지의 하체를 가리워 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흔들어 깨워서라도 아버지를 도와서 옷을 입혀 드려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함은 장막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자기들의 형제 셈과 야벳을 찾아가서 아버지의 허물을 들쳐 내며 흉을 보았습니다. 소문을 내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흉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노망하신 것 같아. 아버지가 요즘에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어. 정말 주책이셔. 지금 술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부끄럽게 그 모습을 다 드러내고서 주무시고 계셔!"
아마도 함은 다른 두 형제가 자기의 생각에 동조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은 얼른 옷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가 볼세라 빨리 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 갈 때에 바르게 가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아니하려고 눈을 가리고 뒷걸음질쳐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렸습니다.
나중에 노아가 술이 깨서 자기의 세 아들이 자기에게 한 행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아들들이 보여준 효성에 따라서 그들에게 복을 주기도 하고, 화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킨 함은 자기 아들 가나안까지 대를 이어서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상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뜻깊은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의 어버이를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지, 세 가지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부모님도 얼마든지 실수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 앞에서 완벽한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인간입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까? 창6:9의 말씀을 보십시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훌륭한 노아였기에 하나님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홍수로 심판을 받을 때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토록 훌륭했던 노아였지만 그에게도 실수가 있었습니다. 잘못이 있었습니다. 허물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부모님은 말로 다 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역시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인간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얼마든지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의 눈앞에서 무엇인가 잘못을 범할 때라도 "아니, 그럴 수가?"라는 생각을 가지기에 앞서서, "그래, 우리의 부모님도 연약하시니까 얼마든지 실수하실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해하도록 애쓰는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여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시어머니의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늘 울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는 찬송가 395장을 계속해서 불렀습니다.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그는 이 찬송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루는 그의 집에서 구역예배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시어머니도 외출을 하시지 않고 집에 계셨습니다. 구역원들은 시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어머님, 이제는 며느님을 따라서 교회 좀 나오시지요? 며느님이 어머님을 위해서 늘 눈물로 기도하고 있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시어머니는 역정을 내며 구역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며느리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요? 우리 며느리는 말도 마세요. 왕내숭이예요. 우리 며느리가 나를 욕하면서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아세요?"
구역원들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며느님이 무슨 노래를 부르는데요?"
그러자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부르는 노래를 흉내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며느리는 늘 이런 노래만 부른답니다.
'너 시어밀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어밀 이겨 새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시어머니는 교회를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으니까 찬송가 가사를 제대로 알 리가 없습니다. 또 시어머니의 마음 속에 편견이 있으니까 며느리의 노래 소리가 곱게 들릴 리가 없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그렇게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구역원들은 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얼른 찬송가 395장의 가사를 펴 보여드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며느님이 시어머님을 욕하겠습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제야 시어머니는 자기가 괜한 오해로 며느리를 구박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며느리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며느리를 구박하지 않고, 며느리를 따라서 교회에 잘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토록 훌륭했던 노아에게도 얼마든지 실수는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부모님에겐들 왜 실수가 없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이 어떠한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우리는 넉넉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이해해 드릴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부모님이 돈을 벌지 못해서 고생하셨습니까? 그래도 부모님을 이해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바람을 피우셨습니까? 그래도 용서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머니께서 우리를 두고 일찍 돌아가셨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들은 어머니를 용서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원망하면서 사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용서하면서 사는 것이 쉽겠습니까? 용서하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용서 속에 기쁨이 있고, 용서 속에 참된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에게 어떠한 잘못과 실수가 있었다 할지라도 원망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부모님에게 어떠한 허물이 보일 때 우리는 셈과 야벳처럼 그것을 적극적으로 덮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 노아의 허물을 덮어드렸습니다. 그러나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흉을 보았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찾아가서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습니까? 여러분, 모든 인류가 홍수로 다 심판 당할 때 함이 누구 때문에 살았습니까? 아버지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일백 이십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이 다 살아남았습니다. 훌륭한 아버지 때문에 자기가 살아남았다면, 비록 아버지에게 허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덮어주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들추어내어서야 되겠습니까? 함은 그런 면에서 정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우리 아버지가 친구도 없이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혼자서 저렇게 술을 많이 마셨을까? 내가 이제부터라도 내 아버지의 말상대가 되어 드려야지."
이런 마음을 가졌어야 자식된 도리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셈과 야벳의 모습으로 살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함처럼 살았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셈과 야벳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함처럼 살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모든 잘못을 회개합시다. 더 이상 함과 같은 모습이 되지 않고 셈과 야벳처럼 부모님을 이해해 드리고,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드릴 수 있는 참된 자녀의 도리를 다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릴 때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르셨습니까? 부모님은 우리를 덮어주시면서 길러주셨습니다. 옷으로 우리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잠을 잘 때 이불을 발로 차고 잠을 자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사랑으로 이불을 덮어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부모님의 속을 얼마나 많이 썩여드렸습니까?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넓은 마음과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장성했으니까 우리가 부모님을 덮어드릴 차례입니다. 우리의 연로하신 부모님을 덮어드리면서 삽시다. 실수도 덮어드리고, 잘못도 덮어드리고, 허물도 덮어드리면서 삽시다. 그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일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의 자녀들 앞에서 부모님의 흉을 보지 마십시다. 그래서는 우리의 자녀가 제대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얘들아, 할아버지는 술주정뱅이셨단다. 술만 드시면 할머니에게 얼마나 행패가 심했는지 모른단다."
그런 소리를 들어서 우리의 자녀들이 제대로 자라겠습니까?
"이야! 내 몸에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구나! 우리 집안의 피는 깨끗지 못하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부모님이 내게 남겨주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어야 될 것입니다.
"얘들아, 너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비록 많이 배우시지 못하고 많이 벌지는 못하셨지만 그래도 정말로 진실되게 사시려고 애를 쓰셨단다. 법 없이도 사실 분들이셨다. 정말 가족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님이셨다. 너무 훌륭하신 분이셨단다."
그러한 소리를 우리의 자녀들이 들을 때 이런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야! 우리 가문은 정말 훌륭하구나! 내가 바르게 자라야지."
어릴 때부터 우리의 자녀들은 예절 바른 어린 아이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효자 집안에서 언제나 효자가 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 앞에서 진정으로 부모님을 존경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본을 보여줄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한 그대로 내가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함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25절입니다.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함은 자기의 잘못 때문에 자기 아들 가나안까지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잘 덮어드렸던 셈과 야벳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26-27절입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잘 공경한 결과 번영과 창대의 축복을 대대로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엡6:1-3에서 기록한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이었습니다. 미국의 어떤 작은 시골 마을에 한 과부가 자녀 4명을 데리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양계를 했습니다. 밤에는 삯바느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없는 어린 네 남매를 훌륭하게 사랑으로 잘 키웠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그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졸업식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들의 졸업식을 가기는 해야되겠는데 입고 나갈 만한 마땅한 옷이 없었습니다. 누더기 옷을 입고 가서 자기가 조롱을 받는 것이야 괜찮지만, 아들이 영광스럽게 수석으로 졸업하는데 아들에게 누가 돌아갈 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고민하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너의 졸업식에 가기는 가야되겠지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고 말았구나! 그래서 내가 가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아들은 그 말을 듣고 어머니에게 애원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졸업식이 제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머니께서 꼭 오셔야합니다. 다른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저의 졸업식에는 어머니가 꼭 와주셔야 합니다."
울면서 애원하는 아들의 간청을 어머니는 차마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꼭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드디어 졸업식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 입던 누더기 옷을 입고 초라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한쪽 구석에 다소곳이 앉았습니다. 아들은 졸업생을 대표해서 멋진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름이 적혀있는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아들은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습니다. 아들은 뚜벅뚜벅 걸어서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찾아 어머니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에 걸려 있는 금메달을 벗어서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 영광을 어머니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오늘의 이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은혜입니다."
그러면서 아들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었습니다. 어머니를 공경할 줄 알고, 어머니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않았던 그를 하나님은 무한히 축복하셨습니다.
그는 28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공경하는 아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신 것입니다. 1914년 그가 재임할 때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은 자기의 뒷바라지를 해준 어머니의 은혜임을 생각하면서 국회의원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5월 2째 주일을 어머니의 날로 지키기로 법을 제정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와 같이 5월 2째 주일이 되면 어머니주일 또는 어버이주일로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이제부터는 우리가 셈과 야벳처럼 우리의 어버이를 공경함으로서 그들이 받았던 놀라운 축복을 우리 모두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어버이도 약한 존재입니다. 얼마든지 실수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버이에게 허물이 있을 때 원망하지 말고 이해해 드리면서 덮어드리십시다. 그리함으로서 셈과 야벳이 받았던 놀라운 축복을 우리도 다 받아서 자손대대 하나님의 축복 속에 번창하고 창대하는 가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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