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7:33-37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2000년 전 예루살렘에 주둔했던 로마 군병들의 진영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한 꼬마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꼬마를 가리켜서 점박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에 유난히도 큰 점 하나가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꼬마 점박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얼굴의 점 때문에 "점박아! 점박아!"라고 놀리듯이 부르는 것이 왠지 듣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하루는 꼬마 점박이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눈 먼자도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도 듣게 하시고, 앉은뱅이도 일으키시고, 문둥병자도 낳게 하시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리게 하시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꼬마 점박이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예수님에게 찾아가서 내 얼굴에 나있는 점을 좀 빼달라고 부탁을 드려야 되겠다!"
그런데 워낙 심부름하는 일이 많아서 좀처럼 틈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꼬마 점박이는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날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을 당하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꼬마 점박이는 낙심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내 얼굴에 있는 점도 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구나!"
그렇게 낙심해 있는 찰나에 로마의 백부장 가운데 한 사람이 그를 불렀습니다.
"얘, 점박아! 이 쓸개 탄 포도주를 가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에 가서 오늘 처형을 당하도록 되어있는 예수 선생에게 이것을 드리고, 네 얼굴에 있는 점도 빼달라고 부탁을 드리려무나!"
꼬마 점박이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쓸개 탄 포도주를 들고서 얼른 골고다 언덕으로 뛰어갔습니다. 한참 뒤에 꼬마 점박이가 다시금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까 아직도 그대로 점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백부장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놈아, 어떻게 네 얼굴에 점이 그대로 있느냐? 아니 예수 선생에게 점 좀 빼달라고 부탁을 하지 아니했느냐?"
그 말을 들은 꼬마 점박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제가 예수님께 드린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은 그저 입에 대는 시늉만 하시고는 마시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이마에 가시가 찔리시고, 또 온몸이 채찍에 맞으셔서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차마 제 얼굴에 있는 점을 빼달라고 부탁드릴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돌아왔어요."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고, 어느 상상력이 풍부한 한 동화 작가가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꾸며낸 것입니다. 그러나 동화 작가가 꼬마 점박이의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줄 압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도 꼬마 점박이는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의 평생 소원이었던 얼굴의 점을 빼달라는 부탁을 차마 하지 못하고서 그냥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야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든지 마시든지 그것은 상관하지 않고, 그저 세상일에 분주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그저 예수님을 통해서 내 육신의 욕구나 만족시키려고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 한 번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소원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껏해야 꼬마 점박이가 자기 얼굴에 있는 점 하나만 빼달라고 부탁하려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고,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까? 돈은 돌고 돌다가 결국은 다른 사람의 손에 다 맡기고 떠나야 되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정도의 수준에 우리의 소원이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고난의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난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찢어주신 살과 또 흘려주신 뜨거운 보혈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살과 피를 흘려주셨는데, 왜 우리의 마음 속에는 그다지도 감동이 없습니까? 왜 우리에게 눈물이 없습니까? 오늘 성령께서 우리의 머리 위에 폭포수와 같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성령만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실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성령만이 우리의 귀를 열어주실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시며 나를 위하여 신음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만이 내 마음을 뜨겁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내 눈의 눈물샘을 터뜨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동해서 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우리의 심령이 되도록 주께서 이 시간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왜 우리 예수님이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셨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맑은 정신으로 겪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피땀을 흘리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종들이 검과 망치를 들고서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시몬 베드로가 자기의 검을 빼들고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편 귀를 잘랐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검을 집에 도로 꽂아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어찌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고난의 잔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취제로 사용되는 쓸개 탄 포도주의 도움을 입어서 육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실 생각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못난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세미한 부분까지 맑은 정신으로 겪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그 과정을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예수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리에 내주었습니다.
제일 먼저 예수님에게 가해진 것은 채찍질이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사정없이 예수님을 향하여 채찍질했습니다. 그 당시에 누구든지 일단 십자가형에 처해지면 죄수에게 제일 먼저 가해지는 것이 바로 채찍질이었습니다. 거의 초죽음이 될 정도로 채찍질을 했습니다. 그것은 죄수의 반항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고, 십자가에서 오랫동안 고통 당하지 않고 빨리 죽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사정없이 예수님을 향하여 채찍을 가했습니다. 예수님의 온몸에 피멍이 드셨고, 또 채찍에 터진 살갗에서는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채찍질을 다 하고 난 뒤에 예수님의 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치장하고서 희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목에는 죄패가 달려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쓰여진 죄패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른손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홀을 쥐어주었습니다. 그것은 갈대였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을 마치 왕처럼 꾸며놓고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라면서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더러운 침을 마구 뱉었습니다. "네까짓 것이 무슨 왕이냐?"라는 듯이 더러운 침을 내뱉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갈대를 빼앗아서 예수님의 머리를 쳤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얼굴은 가시에 찔려서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거기에 갈대를 가지고 머리를 치니까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가시가 예수님의 살을 더 깊이 뚫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고통이 그만큼 더 심해졌을 것입니다.
저들은 희롱을 다 한 뒤에 예수님의 몸에서 홍포를 벗기고, 도로 예수님의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매달리셔야 하는 십자가를 예수님의 어깨에 지우고서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심신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계셨습니다. 도저히 십자가의 무게를 지탱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다가 몇 번씩이고 넘어지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다가와서 사정없이 채찍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군병들은 심신이 피곤하신 예수님이 아무래도 십자가를 지탱하는 것이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경꾼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서 예수님을 대신해 억지로 십자가를 지우고 골고다 언덕으로 걸어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 있는 사형장에 이르게 되셨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십자가를 땅바닥에 눕혀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옷을 다 벗기고 그저 밑 부분만 가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목에 걸려있던 죄패를 벗겨서 십자가의 맨 윗쪽에 박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들은 미리 준비한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에게 제공했습니다. 구약성경 잠31:6∼7절에 보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독주를 마시우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만큼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함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예루살렘의 귀부인들은 이 말씀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돈을 내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죄수들에게 쓸개 탄 포도주를 공급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도 그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여러분, 죄수가 정신이 또렷한 채로 있는데 그의 맨 살에다가 굵은 못을 박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죄수가 그것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죽는다고 소리치면서 반항할 것입니다. 기를 쓰면서 몸부림칠 것입니다. 그러나 죄수가 마취제인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고서 정신이 몽롱해 지면, 굵은 못을 박더라도 반항하지 않으니까 쉬울 것 아닙니까? 그래서 로마의 군병들도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죄수에게 쓸개 탄 포도주를 제공하는 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일단 예루살렘의 귀부인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써 쓸개 탄 포도주를 입에 갖다대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마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예수님은 못난 나를 위해서 십자가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세미한 부분까지 맑은 정신으로 겪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누우셨습니다. 분명한 의식을 가지시고 누우셨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의 발과 양팔에 굵은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높이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이나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셨습니다. 위에서는 뜨거운 태양 빛이 내려 쬡니다. 밑에서는 열기가 올라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겠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의 체중이 밑으로 내려옴에 따라서 예수님의 찢겨진 살은 점점 더 크게 찢겨졌을 것입니다.
"내가 목마르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온갖 고통과 아픔을 겪으시면서 여섯 시간 동안이나 매달려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예비일 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유월절과 관련된 큰 안식일이어서 유대인들은 시체가 십자가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을 원치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의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이미 예수님이 숨을 거두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날카로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예수님은 못난 나를 살리기 위해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십자가 위에서 모든 아픔과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찢어주신 살과 흘려주신 뜨거운 보혈을 기념하는 성찬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도 아니하시고, 그토록 고통을 당하셨는데 우리의 마음 속에는 왜 그다지도 감동이 없습니까? 왜 우리의 눈물이 메말라 있습니까? "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시간 눈물 없이는 성찬을 대하지 못하도록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 바로 이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채찍질한 것은 바로 이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도,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친 것도 다 이 죄인이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좀 더 진지한 마음과 경건한 자세로 성찬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실 일들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님의 옷을 나누고 난 뒤에 어서 빨리 예수님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주변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만든 장본인들인 대제사장,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야유를 퍼부으면서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네가 그리스도이어든 어디 한 번 십자가에서 내려와 네 자신을 구원해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값싼 동정이나 보내면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못난 나를 위하여 쓸개 탄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시고, 맑은 정신으로 십자가 위에서 고통 당하시며 기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예수님의 기도를 아름답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뒤에 오순절날 사도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서 그곳에 모인 무리들을 향해서 설교했습니다. 행2:36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찔림을 받았습니다. 회개했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해서 그 날에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맑은 정신으로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강도도 좌우편에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한 편 강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23:42의 말씀입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우리 예수님이 그 강도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눅23:43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만일 예수님이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고서 정신이 몽롱한 채 그저 십자가 위에서 고개만 푹 수그리고 계셨더라면, 예수님은 회개한 강도를 구원하지 못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강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모든 고통을 몸소 겪으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 바로 밑에는 예수님을 늘 따라다니면서 섬기던 몇 몇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거기에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요한도 있었습니다. 자기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마음은 너무나도 괴로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9:26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위로 받아야 할 자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자기 대신에 새로운 아들 요한을 마리아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9:27의 말씀입니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은 사랑하는 요한에게 새로운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서 큰 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귀한 사명을 요한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위로 받아야 할 자에게 위로해 주시고, 또 사랑하는 제자에게 귀한 사명을 주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의 모든 아픔을 몸소 겪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 예수님이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시고, 모든 고통을 몸소 겪으셨습니까? 예수님이 맑은 정신으로 모든 고통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못난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셔야 될 사명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은 구속사역을 완수하시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의 도움으로 자신의 아픔을 덜려고 생각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일을 다 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서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후 4세기에 마카리우스라는 사람이 이집트에 살았습니다. 그는 사막의 성자라고 불리우는 사람입니다. 한 번은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서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예수님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주여! 그 십자가를 제게 주십시오. 제가 그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고 그저 묵묵히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힘들게 앞을 향해서 계속해서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계속해서 예수님께 졸랐습니다.
"오, 주여! 그 십자가를 제게 주십시오. 제가 지겠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카리우스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네가 저야 할 십자가는 저기 있느니라. 가서 너의 십자가부터 먼저 지고 내게로 오너라. 그러면 내 십자가를 주겠노라."
거기에 가니까 그가 져야 할 십자가가 놓여 있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런데 와 보니까 예수님의 어깨에 지어져 있던 십자가가 사라졌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깜짝 놀라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오, 주여! 주님의 십자가를 누가 대신 졌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져야 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는 것이 곧 나를 위한 길이란다. 나의 십자가를 네가 대신 져 주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셔야 될 모든 일을 끝까지 다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싫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잘 감당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서,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결단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2000년 전 예루살렘에 주둔했던 로마 군병들의 진영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한 꼬마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꼬마를 가리켜서 점박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에 유난히도 큰 점 하나가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꼬마 점박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얼굴의 점 때문에 "점박아! 점박아!"라고 놀리듯이 부르는 것이 왠지 듣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하루는 꼬마 점박이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눈 먼자도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도 듣게 하시고, 앉은뱅이도 일으키시고, 문둥병자도 낳게 하시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리게 하시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꼬마 점박이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예수님에게 찾아가서 내 얼굴에 나있는 점을 좀 빼달라고 부탁을 드려야 되겠다!"
그런데 워낙 심부름하는 일이 많아서 좀처럼 틈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꼬마 점박이는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날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을 당하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꼬마 점박이는 낙심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내 얼굴에 있는 점도 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구나!"
그렇게 낙심해 있는 찰나에 로마의 백부장 가운데 한 사람이 그를 불렀습니다.
"얘, 점박아! 이 쓸개 탄 포도주를 가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에 가서 오늘 처형을 당하도록 되어있는 예수 선생에게 이것을 드리고, 네 얼굴에 있는 점도 빼달라고 부탁을 드리려무나!"
꼬마 점박이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쓸개 탄 포도주를 들고서 얼른 골고다 언덕으로 뛰어갔습니다. 한참 뒤에 꼬마 점박이가 다시금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까 아직도 그대로 점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백부장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놈아, 어떻게 네 얼굴에 점이 그대로 있느냐? 아니 예수 선생에게 점 좀 빼달라고 부탁을 하지 아니했느냐?"
그 말을 들은 꼬마 점박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제가 예수님께 드린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은 그저 입에 대는 시늉만 하시고는 마시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이마에 가시가 찔리시고, 또 온몸이 채찍에 맞으셔서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차마 제 얼굴에 있는 점을 빼달라고 부탁드릴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돌아왔어요."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고, 어느 상상력이 풍부한 한 동화 작가가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꾸며낸 것입니다. 그러나 동화 작가가 꼬마 점박이의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줄 압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도 꼬마 점박이는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의 평생 소원이었던 얼굴의 점을 빼달라는 부탁을 차마 하지 못하고서 그냥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야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든지 마시든지 그것은 상관하지 않고, 그저 세상일에 분주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그저 예수님을 통해서 내 육신의 욕구나 만족시키려고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 한 번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소원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껏해야 꼬마 점박이가 자기 얼굴에 있는 점 하나만 빼달라고 부탁하려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고,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까? 돈은 돌고 돌다가 결국은 다른 사람의 손에 다 맡기고 떠나야 되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정도의 수준에 우리의 소원이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고난의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난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찢어주신 살과 또 흘려주신 뜨거운 보혈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살과 피를 흘려주셨는데, 왜 우리의 마음 속에는 그다지도 감동이 없습니까? 왜 우리에게 눈물이 없습니까? 오늘 성령께서 우리의 머리 위에 폭포수와 같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성령만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실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성령만이 우리의 귀를 열어주실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시며 나를 위하여 신음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만이 내 마음을 뜨겁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내 눈의 눈물샘을 터뜨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동해서 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우리의 심령이 되도록 주께서 이 시간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왜 우리 예수님이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셨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맑은 정신으로 겪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피땀을 흘리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종들이 검과 망치를 들고서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시몬 베드로가 자기의 검을 빼들고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편 귀를 잘랐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검을 집에 도로 꽂아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어찌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고난의 잔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취제로 사용되는 쓸개 탄 포도주의 도움을 입어서 육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실 생각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못난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세미한 부분까지 맑은 정신으로 겪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그 과정을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예수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리에 내주었습니다.
제일 먼저 예수님에게 가해진 것은 채찍질이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사정없이 예수님을 향하여 채찍질했습니다. 그 당시에 누구든지 일단 십자가형에 처해지면 죄수에게 제일 먼저 가해지는 것이 바로 채찍질이었습니다. 거의 초죽음이 될 정도로 채찍질을 했습니다. 그것은 죄수의 반항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고, 십자가에서 오랫동안 고통 당하지 않고 빨리 죽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사정없이 예수님을 향하여 채찍을 가했습니다. 예수님의 온몸에 피멍이 드셨고, 또 채찍에 터진 살갗에서는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채찍질을 다 하고 난 뒤에 예수님의 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치장하고서 희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목에는 죄패가 달려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쓰여진 죄패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른손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홀을 쥐어주었습니다. 그것은 갈대였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을 마치 왕처럼 꾸며놓고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라면서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더러운 침을 마구 뱉었습니다. "네까짓 것이 무슨 왕이냐?"라는 듯이 더러운 침을 내뱉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갈대를 빼앗아서 예수님의 머리를 쳤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얼굴은 가시에 찔려서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거기에 갈대를 가지고 머리를 치니까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가시가 예수님의 살을 더 깊이 뚫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고통이 그만큼 더 심해졌을 것입니다.
저들은 희롱을 다 한 뒤에 예수님의 몸에서 홍포를 벗기고, 도로 예수님의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매달리셔야 하는 십자가를 예수님의 어깨에 지우고서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심신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계셨습니다. 도저히 십자가의 무게를 지탱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다가 몇 번씩이고 넘어지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다가와서 사정없이 채찍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군병들은 심신이 피곤하신 예수님이 아무래도 십자가를 지탱하는 것이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경꾼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서 예수님을 대신해 억지로 십자가를 지우고 골고다 언덕으로 걸어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 있는 사형장에 이르게 되셨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십자가를 땅바닥에 눕혀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옷을 다 벗기고 그저 밑 부분만 가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목에 걸려있던 죄패를 벗겨서 십자가의 맨 윗쪽에 박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들은 미리 준비한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에게 제공했습니다. 구약성경 잠31:6∼7절에 보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독주를 마시우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만큼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함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예루살렘의 귀부인들은 이 말씀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돈을 내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죄수들에게 쓸개 탄 포도주를 공급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도 그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여러분, 죄수가 정신이 또렷한 채로 있는데 그의 맨 살에다가 굵은 못을 박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죄수가 그것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죽는다고 소리치면서 반항할 것입니다. 기를 쓰면서 몸부림칠 것입니다. 그러나 죄수가 마취제인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고서 정신이 몽롱해 지면, 굵은 못을 박더라도 반항하지 않으니까 쉬울 것 아닙니까? 그래서 로마의 군병들도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죄수에게 쓸개 탄 포도주를 제공하는 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일단 예루살렘의 귀부인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써 쓸개 탄 포도주를 입에 갖다대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마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예수님은 못난 나를 위해서 십자가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세미한 부분까지 맑은 정신으로 겪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누우셨습니다. 분명한 의식을 가지시고 누우셨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의 발과 양팔에 굵은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높이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이나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셨습니다. 위에서는 뜨거운 태양 빛이 내려 쬡니다. 밑에서는 열기가 올라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겠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의 체중이 밑으로 내려옴에 따라서 예수님의 찢겨진 살은 점점 더 크게 찢겨졌을 것입니다.
"내가 목마르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온갖 고통과 아픔을 겪으시면서 여섯 시간 동안이나 매달려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예비일 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유월절과 관련된 큰 안식일이어서 유대인들은 시체가 십자가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을 원치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의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이미 예수님이 숨을 거두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날카로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예수님은 못난 나를 살리기 위해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십자가 위에서 모든 아픔과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찢어주신 살과 흘려주신 뜨거운 보혈을 기념하는 성찬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도 아니하시고, 그토록 고통을 당하셨는데 우리의 마음 속에는 왜 그다지도 감동이 없습니까? 왜 우리의 눈물이 메말라 있습니까? "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시간 눈물 없이는 성찬을 대하지 못하도록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 바로 이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채찍질한 것은 바로 이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도,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친 것도 다 이 죄인이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좀 더 진지한 마음과 경건한 자세로 성찬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실 일들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님의 옷을 나누고 난 뒤에 어서 빨리 예수님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주변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만든 장본인들인 대제사장,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야유를 퍼부으면서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네가 그리스도이어든 어디 한 번 십자가에서 내려와 네 자신을 구원해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값싼 동정이나 보내면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못난 나를 위하여 쓸개 탄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시고, 맑은 정신으로 십자가 위에서 고통 당하시며 기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예수님의 기도를 아름답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뒤에 오순절날 사도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서 그곳에 모인 무리들을 향해서 설교했습니다. 행2:36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찔림을 받았습니다. 회개했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해서 그 날에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맑은 정신으로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강도도 좌우편에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한 편 강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23:42의 말씀입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우리 예수님이 그 강도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눅23:43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만일 예수님이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고서 정신이 몽롱한 채 그저 십자가 위에서 고개만 푹 수그리고 계셨더라면, 예수님은 회개한 강도를 구원하지 못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강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모든 고통을 몸소 겪으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 바로 밑에는 예수님을 늘 따라다니면서 섬기던 몇 몇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거기에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요한도 있었습니다. 자기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마음은 너무나도 괴로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9:26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위로 받아야 할 자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자기 대신에 새로운 아들 요한을 마리아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9:27의 말씀입니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은 사랑하는 요한에게 새로운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서 큰 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귀한 사명을 요한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위로 받아야 할 자에게 위로해 주시고, 또 사랑하는 제자에게 귀한 사명을 주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의 모든 아픔을 몸소 겪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 예수님이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시고, 모든 고통을 몸소 겪으셨습니까? 예수님이 맑은 정신으로 모든 고통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못난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셔야 될 사명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은 구속사역을 완수하시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의 도움으로 자신의 아픔을 덜려고 생각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일을 다 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서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후 4세기에 마카리우스라는 사람이 이집트에 살았습니다. 그는 사막의 성자라고 불리우는 사람입니다. 한 번은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서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예수님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주여! 그 십자가를 제게 주십시오. 제가 그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고 그저 묵묵히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힘들게 앞을 향해서 계속해서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계속해서 예수님께 졸랐습니다.
"오, 주여! 그 십자가를 제게 주십시오. 제가 지겠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카리우스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네가 저야 할 십자가는 저기 있느니라. 가서 너의 십자가부터 먼저 지고 내게로 오너라. 그러면 내 십자가를 주겠노라."
거기에 가니까 그가 져야 할 십자가가 놓여 있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런데 와 보니까 예수님의 어깨에 지어져 있던 십자가가 사라졌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깜짝 놀라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오, 주여! 주님의 십자가를 누가 대신 졌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져야 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는 것이 곧 나를 위한 길이란다. 나의 십자가를 네가 대신 져 주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셔야 될 모든 일을 끝까지 다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싫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잘 감당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서,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결단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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