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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막16:6/눅24:7)

by 【고동엽】 2022. 2. 8.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막16:6/눅24:7)

 

전해오는 재미있는 설화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유대 요단강 계곡의 경사면에 세 그루의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이들 나무는 저마다 나름대로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예루살렘의 성전의 재목이 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경배하는 하나님 성전의 한 부분이 됨으로 저를 통하여 하나님께 크게 높이 찬양되기를 소원했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바다로 가고 싶었습니다. 곧 큰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온 세계로 두루 다니면서 소중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쓰임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세 번째는 나무는 '나는 여기 남아서 높이 자라 하늘을 향해 가지를 쳐들고 있겠다. 그리하여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내 그늘에 앉아 쉬면서 하나님을 사모하게 해 주겠다'는 소원을 밝혔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고 싶어했던 첫 번째 나무는 찍혀서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의 작은 구유가 되어 나귀가 핥아먹는 먹이통이 되어 마구간 한 귀퉁이에 팽개쳐지는 슬픈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큰배가 되어 큰 바다로 나가고 싶었는데 서글프게도 찍히고 깎이어 조그마한 조각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갈릴리 호수로 가게 되어 꾀죄죄한 어부들이나 올라타고 비린내나는 생선이나 싣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일 없을 때에는 쓸모 없이 버려진 채 호숫가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 자리에 그냥 있고 싶어 한 그의 소원과는 달리 어느 날인가 웬 사람들이 와서 결국은 찍혀버렸고 그리고 다듬어져서 엉뚱하게도 저주받은 죄인들을 매달아 죽이는 형틀인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예수께서 만백성을 구원하시고자 만 왕의 왕으로 오시는 날,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나무였던 그 말구유가 결국은 더 할 수없이 큰 영광을 입은 것입니다. 다시 세월이 더 흘러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에 밤이 맞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실패자 베드로에게 오셔서 그의 배를 빌려 복음을 전하신 뒤에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자 만선의 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번째 나무였던 그 조각배가 주님께 강단을 드리는 뜻밖의 영광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3년쯤의 세월이 더 흘렀습니다. 세 번째 나무였던 그 십자가는 예수께서 못 박혀 달리심으로 길이길이 만백성의 추앙을 받는 거룩한 십자가가 되었답니다. /할/ ◀제목 소개!▶

 

성경 66권의 크라이막스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성경은 지난 한 주간 때문에 기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 주일은 종려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치며 찬송했습니다.

▶고난주간에 예수께서 하신 발자취를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⑴월요일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성전 성결운동'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타락한 교권지도자들과 검은 돈을 만지는 제사장들의 무리와 성전에서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어쫓고 성전을 정결케 하시면서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꾸짖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바로 가르쳐주셨습니다.
⑵화요일은 아침 일찍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말세에 대한 비유와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을 책망하셨고, 마24-25장에서는 휴거사건과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신 재림을 전하셨습니다.
⑶수요일에는 마리아가 주님께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죽음을 준비하셨고, 가롯유다가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기로 약속한 날입니다.
⑷목요일에는 유월절 성만찬 식을 끝마치고 수제자 셋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겟세마네는 '기름을 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인류 구원을 놓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 날 밤 배신자 가롯유다가 대제사장의 군대를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쳤습니다. 그때 주님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교훈 하시면서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체포되어 당시 대제사장이 가야바에게 보내졌습니다. 그 날 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밤이었습니다.
⑸금요일은 새벽 1시부터 대제사장과 헤롯왕과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은 후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⑹토요일은 무덤 속에 계신 날입니다.
⑺그리고 다음 날 주일(오늘 부활절)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한 주간에 다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한 주간을 위해 오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입니다. /할/
▶어떤 마을에 꽃을 파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생활이 가난해서 입고 계신 옷도 늘 허름했습니다. 또 고생을 많이 해서 손마디도 굵고 거칠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얼굴만큼은 늘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보고 '행복한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는 행복한 그 할머니에게 기자가 물기를 '할머니, 무슨 좋은 일이 그렇게 많으시기에 늘 싱글벙글하십니까?'
그러자 할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 내게는 행복을 지키는 한 가지 비결이 있답니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사흘만에 다시금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인답니다. '사흘만 기다리자! 믿음으로 삼일만 참고 견디자!' 그러면 내 마음이 한결 평안해 진답니다.'
왜 참고 견딥니까? 십자가 뒤에는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사흘 뒤에는 우리가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조바심 내지 말고, 사흘 동안 믿음으로 잘 견뎌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할/

 

1. 먼저 십자가을 알아보겠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 당시 흉악범을 처벌하는 저주의 형틀입니다. 수많은 강도들과 살인범들과 로마의 반역자들이 십자가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사람의 십자가도 우리에게 기억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상징이요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기독교인의 최고의 영광입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죄 사함도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구원의 능력도 없습니다. /믿/아멘!/
인간의 죄가 언제 우리에게 왔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인간의 모든 근본 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저주, 가난, 질병, 실패, 죽음 등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력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어 십자가를 지시게 하고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의 다리로 놓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 있던 죄악의 담을 허시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할/ 예수님이 화목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어떤 젊은 여인이 5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습니다. 살다보니까 지극히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하고 더 살다보니까 서로를 실망하게 되어 결국에는 대판 싸우고 서로 헤어지자고 합의하여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 가정병원에 제출했습니다. 재산도 공평하게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어린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딸을 누가 키웁니까?' 판사가 물자 '그 아이는 법적으로 제 자식이니 제가 키웁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식은 바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남편의 자식이지만 성년이 될 때까지 제가 키우겠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십시다. 판사가 말합니다. '너희 아빠는 저 북쪽에서 살고, 너희 엄마는 남쪽에서 가서 산단다. 너는 엄마에게로 갈래, 아빠를 따라가서 살래?' 이 소리를 듣고 아이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하기를 '나는 아빠 따라 북쪽에도 못 가고, 엄마 따라 남쪽에도 못 가요, 아저씨 우리 같이 살게 해 주세요!' 목석이 아닌 그 아빠도 그 엄마도 어린 딸의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돕니다.
남편이 '이혼 소송을 취소하겠다'고 말합니다. 부인도 '저도 취소하겠습니다.' 결국 이 부부는 서로 화해를 했습니다. 딸이 중간에 화목의 다리를 놓아준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의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의 징검다리요, 하늘의 복이 내려오는 사닥다리입니다.
예수님은 성금요일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6시간 동안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셨는데 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일곱 번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상의 칠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칠언 속에 기독교의 진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십자가상의 칠언을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①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제 일성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용서해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사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받습니다. 우리 모두는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떠난 죄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한 죄입니다. 모든 죄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용서받은 죄인!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자요,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이기에 우리는 절대로 죄에 빠져서는 안니 됩니다. /믿/ 신앙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내 믿음은 내가 지키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아름다운 여인이 그렇게 유혹해도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있다는 신전의식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왜 큰 죄를 짓습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루에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6:15절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아멘!/
②기독교는 천국 가는 종교입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우편강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천국 가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영생의 종교입니다. 행16: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합니다. 계시록을 보면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백보좌 심판을 받아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불과 유황불이 있고,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불로 소금 치듯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영원히, 그리고 또 영원히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지옥은 유황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단테'는 그의 저서 '신곡'에서 지옥 편을 소개할 때 '지옥에 들어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옥은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요 천국 가는 종교입니다. /아멘!/
③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 공경을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십자가 아래서 자식의 죽음을 통곡하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했습니다. 여기 '여자여'의 원어적인 뜻에는 최대의 존경어로 '귀부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죽으면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챙겼습니다.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그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여자여!'라고 호칭한 것은 '전도의 비상 방법'입니다. 그때까지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믿게 하기 위한 각성 법으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러분 효도 중에 가장 큰 효도는 예수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천당 갑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효도 관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하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비로소 천사 가브리엘이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희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리아가 믿음의 확신이 오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행1:14절에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이 마가 다락방의 기도의 처소를 통하여 예수의 육신의 동생인 야곱이 변하여 초대교회 감독까지 하게 됩니다. /할/
④기독교는 철저하게 버릴 때 얻어지는 종교입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막다니!(마27:46)
이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의 절규입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공의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죄 값으로 예수님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상의 예수를 철저하게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야 만이 만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려고 사랑하는 독생자를 저주의 십자가의 형틀에 찢어 죽이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믿/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래서 요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인류의 죗값으로 자신을 바쳤습니다. 세례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기독교는 버릴 때 얻어지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받았기에 부활의 새아침이 열린 것입니다. /할/
요12: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⑤기독교는 목마름에 종교입니다. 내가 목마르다!(요19:28).
예수님의 갈증은 갈급한 갈증이고, 목이 마른 갈증이고, 목이 타는 갈증이었습니다. 이것은 희생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육체의 모든 수분을 다 쏟았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 버리면 적탈 상태가 되고 전신 마비가 되며 상한 고통과 몸부림이 쳐진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희생을 우리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기독교는 철저하게 자기를 드리는 희생의 종교입니다. 또 다른 진리는 기독교는 목마름의 종교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갈급해 하시기 바랍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 큰 복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한 은혜를 주십니다. /아멘!/할/
⑥기독교는 완성에 종교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요19:30).
예수님이 다 완성하셨습니다. 율법을 완성하시고, 사랑을 완성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완성의 종교입니다. 우리 주님이 완성하신 것을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아멘!/ 주의 보혈을 의지하십시오, 바울은 엡2:13절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했고 또 엡1:7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성찬을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의식입니다. '이것은 내 피니라! 내 몸이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⑦기독교는 위탁하는 종교입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예수님은 큰 소리로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위탁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그의 영혼까지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인생을 맡기고 내 짐을 맡기고, 내 문제를 맡기고, 내 앞길을 주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할/

 

2. 부활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네 마디를 부탁'하셨습니다.
①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20) 예수님이 무서워서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21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죽인 무리들이 자기들도 잡아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숨어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바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입니다. /할/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입니다. 완전한 평화는 그 분이 주셔야 합니다. 인생살이 뭐니뭐니해도 평안이 제일 큰 축복입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이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
②부활의 예수께서 두 번째 하신 말씀은 '성령을 받으라'는 명령입니다. 기독교는 성령을 받는 종교입니다. 요20:22절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할/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첫 번 만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고 이 땅에 40일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명령하신 말씀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4-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평강한 마음에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의 부탁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환영하고 모시고 사는 사람들 영속에는 성령이 임재하여 있습니다. 개가 사는 집이 개집이고 돼지가 사는 집이 돼지우리입니다. 대통령이 사는 집이 청와대입니다. 성령이 사시는 집이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모시고 살면 우리 마음은 성전이 되어 늘 성령께서 거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영감을 주고 때로는 소원을 줍니다.
빌2: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할/
③가라!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입니다. 요20:21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가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 가서 전해야 합니다. /아멘!/ 막16: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마28:18-20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할/
④예수님이 네 번째로 하신 말씀은 요20:23절에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탈무드에 보면 유대인들의 교리문답이 있습니다. '장소 중에 가장 중요한 장소는?' 물으면 다 같이 '지성소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계속해서 '사람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러면 '대제사장입니다.' 또 '날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은?' '대속죄일입니다.'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죄 사함 받는 일입니다.' /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죄 사함 받지 못 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다가 죄만 버리고 다시 부활하신 몸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을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용서하고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국에서 자기 주변에 가장 훌륭한 사람을 많이 둔 재벌은 '앤드류 카네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네기에게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옆에 많이 둔 비결이 무엇입니까?' 카네기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고 용서를 받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 사함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부활하신 후 우리에게 네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성령을 받으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죄 사함을 받으라.' /할/
▶프랑스에 야심에 찬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추종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수십 억 명이 되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종교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성직자를 찾아가서 말하기를 '나도 예수님처럼 종교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성직자는 정중하게 대답하기를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직접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시오. 그리고 3 일 만에 살아나십시오. 그러면 기독교와 같은 위대한 종교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새로운 종교 만들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입니다. /할/ 예수님이 '메시아냐 아니냐는 부활하셨느냐 부활하지 못 하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믿/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①만일 부활이 없다면 예수 부활도 없습니다. 고전15:13절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미국에서 스탠포드 대학은 우리나라 서울대 연 고대처럼 명문 대학입니다. 그런데 그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한 사람이 바로 '스탠포드'입니다. 스탠포드가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한 동기가 있습니다.
스탠포드는 부자였습니다. 캘리포니아 출신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잘 생기고 수재였던 외아들이었습니다. 극도의 슬픔에 잠긴 아버지는 장례식에서 말을 잃었습니다. 슬픔 속에 잠을 자지 못 하고 있는 데 그 날 밤 꿈에 아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저 대신 청년들을 도와주셔요.' 스탠포드는 이 환상을 보고 인생관이 확 바뀌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살아 계시고 내 아들도 살아있다!' 스탠포드는 이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소원을 들어 주기고 하고 청년 교육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 거액인 2천만 달러 약 200억 원을 바쳐서 오늘의 명문인 스탠포드대학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의 재산은 10원짜리 동전 하나 남기지 말고 청년 교육에 사용하라' /할/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도 부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분명히 부활은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부활합니다. /믿으시면 크게 아멘!/
②예수님 부활이 없다면 우리 부활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5:50-52절에서 말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 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 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아멘!/할/
여기서 우리가 잠깐 짚고 넘어 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죽어서 화장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분은 화장하면 '부활하는데 지장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한때 화장은 부활하는 신앙인에게는 합당하지 않다고 기독교 내에서 주장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몸을 모두 불태워버리면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느냐?'는 염려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활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다음에 우리의 부활이 이 몸 그대로 부활한단 말입니까? 여자는 또 여자로 부활하고 불구자는 또 불구자로 부활하고 못생긴 사람은 또 그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말인데 그러면 그때 가서 또 성형수술 해야 한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③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의 보상도 없습니다. 고전15:17-19절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기에 우리는 부활의 새 아침이 온 줄 믿습니다. 죽음 뒤에 부활이 있습니다. 고난 뒤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이 없었다면, 영생도 없다면, 저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우리가 소망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영국의 덜행지방에 있던 탄광에서 갱이 무너졌습니다. 164명이 생매장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시체가 발굴되었는데 발굴현장에서 큰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화요일 오후 2시'
산소부족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고 함께 모여 기도회를 갖고 준비하고 이 글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생을 믿고 기쁨으로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 힘이 부활이 주는 힘입니다. /할/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와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므로 우리도 부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고전15:20절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할/
농사하는 들녘에 늦은 여름이 되면 논에 벼이삭 하나가 툭 튀어나옵니다. 첫 이삭입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여기저기서 벼이삭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그 뒤에 이어서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날 때가 있습니다.
요5:28절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이때가 곧 올것입니다. /믿/
기독교의 신앙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부활은 증거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가 100세에 얻은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시험이 왔습니다.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쳐라!' 그때 이삭이 장가도 가지 아니했지만 하나님께서 '네 씨로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 하신 약속을 믿고 이삭을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행동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부활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히11:17절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죽여서 드려도 하나님께는 그를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에 주저 없이 그 아들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신약 때,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통하여 더욱 더 부활 신앙을 심어 주셨습니다. 요11장에서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죽은 지 사흘이나 되어서 썩은 냄새가 납니다.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르다와 마리아가 통곡하며 웁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고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시니 죽은 지 사흘 된 나사로가 수의를 걸친 채 살아 무덤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사건은 죽은 자가 이렇게 살라는 부활의 표적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할/
▶톨스토이의 부활은 유명한 작품입니다. 귀족 청년 '네풀류도프'는 '나타샤'라는 그의 하녀를 유혹하여 임신까지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하녀는 주인집으로부터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녀는 그 후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 지독한 고생을 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눈물나는 고생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견디다 못해 창녀가 되어 몸을 팔아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를 괴롭히는 남자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살인범이 되었습니다. 법정에 섰습니다. 그런데 임신하게 했던 그 남자 '네풀류도프'는 그 동안 법을 공부하고 판사가 되어 공교롭게도 그가 그 재판을 맡게 되었습니다.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자기가 한 때 불장난하여 그렇게 만든 여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돕게 되었습니다. 차마 사형을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사형을 면하여 주는 대신에 시베리아 먼 땅으로 유형살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여자를 시베리아로 유배시키며 그녀를 따라 가게 됩니다.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한 여인숙 방에서 밤중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젊은 날의 방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후부터는 사람을 사랑하고 돕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며 나머지 생을 그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의 줄거리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이 됩니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부활의 개념을 '악한 사람이 선해졌다'는 개념으로 부활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그런 부활이 아닙니다. 악한 사람이 선해졌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생명의 근원을 찾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생명' 이제 우리는 죽어도 우리를 다시 살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아멘!/


▶부활은 이 세상에 일대 변화를 안겨주는 능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때 다 변화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예수를 부인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서 '나는 예수를 위하여 다 버린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예수만 알기로 작정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도 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이렇게 변화를 일으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큰소리만 치던 사람이 위급할 때는 도망하고 숨던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서 그는 비로소 참 전도자가 되어 나가 성공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도마는 '내 손가락을 예수님의 옆구리 창 자국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말을 해도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말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도마는 철두철미하게 부활을 부정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 멀리 인도까지 가서 전도하다가 그 스스로 창을 맞아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또 부활은 새로운 질서를 마련해 준 사건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을 때 신앙의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확실하게 만날 때 나의 인생이 변화하고 나의 삶과 목적이, 신앙이 체질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에 온갖 소망을 준 사건입니다. 부활은 인류에게 주어진 은혜이고 축복이고 은총입니다. /아멘!/
▶이제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⑴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계20장에 생명록에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⑵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⑶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부활의 아침입니다. 이 부활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의 생애 위에 넘치게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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