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행사가 되어버린 부활절
우리시대 한국교회에 부활절이 연중행사가 되어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일 년 한 차례씩 돌아오는 부활절을 지키며 거창한 행사를 치루는 것은 결코 기독교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교회에서는 부활절이 기독교의 특별한 절기로서 완벽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마다 부활절을 앞두면 기득권을 누리기 위한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부활절 연합행사에서 누가 설교를 할 것이며 누가 순서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맡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큰 교단의 대형 교회 목사들 순서로 그것을 나누어 차지하게 된다. 힘이 없고 작은 교단 교회에 속한 인물들에게는 당연히 별다른 역할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뿐 아니라 한반도 전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지방의 대도시들에서도 그렇지만 군단위로 내려가도 그 규모가 작을 뿐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다. 해당 지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일만한 광장이나 운동장을 빌려 나름대로 대대적인 부활절 행사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부활절이 되면 교회들 가운데 평소에 보지 못하던 다양한 광경들이 눈에 띈다. 부인들은 하얀색 한복을 차려입고 예배당에 나오는가 하면, 유년 주일학교에서는 삶은 계란을 나눠주기도 한다. 그리고 대다수 교회의 목사들은 예배 시간에 부활에 연관된 설교를 한다. 성가대에서는 부활절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 부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활절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신문 등은 각 지역의 부활절 행사장이나 큰 교회들을 찾아다닌다. 그들은 대단한 취재거리라도 찾을 수 있는 양 호들갑을 떤다.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도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나아가 각 교단의 총회장을 비롯한 대표자들은 부활절 메시지를 발표하고 언론에서는 그것들을 대서특필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우리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익숙한 광경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행태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부활은 교회가 일 년 한차례 절기로서 지킬 것이 아니라 매주일 마다 그 의미가 드러나야 한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은 일 년 단위로 한번 씩 부활절 행사를 통해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다.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매주일 공 예배를 통해 확인되어야 하며 성도들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우리 시대에 부활절 행사를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종교적으로 이벤트화하고 있는 점은 심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것은 결국 매 주일 교회 가운데서 확인되어야 할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은 부활절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하지만 그 외의 다른 시기의 주일에는 부활에 연관된 설교를 줄이려는 경향성을 띠게 된다.
나아가 주님의 부활을 노래하는 찬송은 일 년 한 차례 부활절에만 부르는 것인 양 인식되어 버렸다. 부활절이 되면 성가대원들이 흰 옷을 차려입고 부활에 관련된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큰 교회들에서는 부활절 기념 음악회를 열기도 해 많은 교인들은 그것을 즐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는 부활절에만 부활에 연관된 찬송을 불러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추수감사주일에도 부활을 찬송할 수 있어야 하며 성탄절이 끼어 있는 십이월에도 주님의 부활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일 년 열두 달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며 찬송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절 절기를 성대하게 치르면 치를수록 매주일 기억되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진정한 의미가 약화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활절에 관한 무지한 사람들의 순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교회는 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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