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4.24 (부활절)
날마다 부활절이다
롬 6:10-14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예수님의 무덤이 유명한 이유는 그 무덤이 텅 비었기 때문입니다. - 샘 모리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믿음이고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이 복음이 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한 교리이거나 지어낸 것이라면 기독교는 그 순간 사라지고 맙니다. 희대의 사기극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절 예배는 언제나 다른 주일보다도 특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 만큼 중요한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불신자를 대상으로 말씀을 전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증거를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다 믿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진정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인 것입니다.
부활절을 지키는 두 부류의 교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습니다. 그래서 부활절 예배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지는 못합니다. 이런 교인의 부활절 예배는 엄숙하기만 합니다. 기념식일 뿐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셔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교인의 부활절 예배는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생일을 축하할 때, 생일의 주인공이 함께 하는 생일잔치는 떠들썩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생일의 주인공이 함께 하지 않는 생일 잔치는 분위기가 엄숙할 뿐입니다. 부활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는 성탄절이라는 절기가 없었습니다. 절기라고는 부활절 밖에 없었습니다. 유대교의 안식일은 금요일 밤부터 시작되지만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안식일 후 첫날 정기적인 예배 모임을 가졌습니다. 초대교회가 예배날을 안식일 후 첫날 드린 것은 부활절이 지나간 과거 사건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부활절이 과거의 사건이었다면 예배날까지 바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매 주일이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능력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주일예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면서 더 깊은 은혜가 깨달아졌습니다. 우리에겐 주일마다 부활절이 아니라 날마다 부활절이라는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매일 매일 우리와 함께 사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사망권세를 정복하고 무덤에서 승리자로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든지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담대히 죽음을 향하여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외치며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순교할까봐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은 어떻게 순교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기에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얼굴이 천사와 같았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며 조그만한 일에도 쉽게 좌절하고 슬픔과 염려로 살아갑니다. 전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 처럼 마음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데도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믿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지식일 뿐입니다.
그러면 왜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습니까? 기도가 부족하여 그렇습니까? 성경을 읽지 않아서 그렇습니까?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십자가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란 하나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님과 하나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4절에 보면 우리는 두 가지 의미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죽었음을 믿지만 자기도 죽었다는 사실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분명치 않은 것입니다.
13절을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라고 분명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죽었다가 다시 산 자인 것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다음에 옵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후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이 분명해야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 한 것은 사도 바울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했습니다. 자랑입니다.
날마다 죽는 것이 무엇이 자랑입니까?
날마다 부활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예수님과 함께 죽으니 예수님과 함께 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날마다 부활절이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나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 안에 사망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십자가 앞에서“그에게 고통을 준 것들의 괴수가 바로 나의 죄 나의 끔찍한 죄였구나 / 나의 악행 하나하나가 그의 손과 팔을 찌르는 못이었고 / 나의 불신 하나하나가 그의 몸을 찌르는 창이었구나.”라고 탄식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역사는 매일 매일 계속 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죄성 때문에 깊이 회개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여기서 주저하고 멈추면 안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도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죽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다 내려놓겠습니다. 부모와 형제, 배우자, 자녀, 부와 명예와 권세, 교회의 직분까지...' 다 내려놓겠습니다.
이 때,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모든 것은 '부활' 합니다. 비로서 심령의 할례가 시작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살아 역사하십니다. 100% 확신 가운데 거하고, 100%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항시 있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부활절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리고 부활절 연합예배가 드려지지만 부활의 능력은 찾기 어려운 것은 한국 교회에 십자가가 분명치 않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은 많지만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자가 적은 이유는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이 적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은 믿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은 듣기만 하지 체험을 못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라는 말은 예수님이 죽었을 뿐 아니라 나도 죽었음을 믿고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만이 부활의 주님은 만나게 됩니다.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부활절은 기념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입니다.
오늘 부활신앙으로 사는 한 증인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아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레나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두 팔이 없고, 왼쪽 다리도 30cm 정도이며, 오른쪽 다리만 정상인 중증 장애인입니다. 태어날 때, 의사가 3일 동안이나 부모에게 아이를 보여주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부모가 의사를 졸라 겨우 만나게 된 아이를 보고 산모는 불쌍한 신생아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레나 마리아는 이렇게 불쌍하고 불행한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놀라운 기적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영상]
장애인 특수 보호시설에 맡겨야 된다는 것이 의사들은 물론 주변의 공통된 충고였다. 그러나 부모의 생각은 달랐다. 부모의 기도와 헌신적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철저히 적응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 레나는 중증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밝고, 맑게 자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수영하기를 좋아한 그는 남보다 몇 갑절 노력 끝에 18살이 되던 1986년에 스웨덴 보리에서 열린 신체장애자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50m 배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음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스톡홀름 음악대학 현대음악과를 졸업하였다. 지금 레나는 음악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가스펠싱어(gospel singer)로 세계의 여러 도시로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그의 수기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는 스웨덴은 물론 우리나라, 미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특히 기독교 인구가 적은 일본에서는 그의 책과 콘서트가 복음 전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말로 부른‘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레나의 사연을 아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주는 애창곡이 됐다.
저는 레나 마리아가 얼마나 의지가 강한 사람인지를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레나 마리아가 가진 부활 신앙 때문에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레나 마리아의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이 부활 신앙이었습니다.
레나가 가진 부활 신앙은 그 부모에게서 전해졌습니다.
레나의 어머니가 처음 어린 레나를 품에 안았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즉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이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가 까르르 하고 웃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얼굴 가득 하얀 미소를 지으면서 말입니다. 그렇다 그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였다. 가슴이 저려왔다. 갑자기 그 어머니가 남편에게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잘 키우면 돼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로 우리가 키워요.”
그 부모는 자신의 생각, 판단, 느낌을 정말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입니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오는 레나의 얼굴이 시무룩했다. 무언가 일이 있는 듯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엄마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레나야 표정이 좋지 않구나. 엄마! 난 왜 친구가 없는거죠?
엄마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친구가 없다니...
아니 친구가 아주 없는 게 아니고 친한 친구가 없다구요. 모든 걸 얘기할 수 있는 친구 말이예요.
그녀는 레나를 끌어당겨 무릎에 앉히고는 꼭 안아 주었다.
친한 친구가 없긴...... 레나에게는 늘 레나를 지켜주는 친구가 있는걸.
누구요? 깜짝 놀라 돌아보는 레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셔. 늘 레나와 함께 계시고 레나를 지켜주시는 분이시지,
레나는 무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 눈에는 안 보여도 늘 예수님이 나를 도와 주신다는 거죠?
알았어요. 그럼 나는 외롭지 않아요.
외롭지 않구 말구, 사람들은 몰라줘도 예수님은 항상 함께 계신단다.
엄마, 이제 레나가 친구들을 도와 줄래요. 레나는 예수님이 도와 주시니까요.
어느 날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레나에게 말했습니다.
“노래는 목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거야. 그렇지 않은 노래는 생명이 없어. 오늘은 그만 해야겠구나.”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걱정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이 나가신 후 레나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울었습니다. 노래는 가슴으로 하는거란 선생님의 말이 레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레나는 외로웠다. 미치도록 외로웠다.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다문 입 사이로 신음소리와 함께 눈물이 배어 나왔다.‘외로와하는 마음으로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겨우 눈물을 닦고 발로 수화기를 들었더니 “여보세요”하며.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나지요?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주님이 저에게 당신에게 전화하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힘들고 외로울 때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레나 마리아는 그 전화를 받고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그랬다.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내 눈물도 하나님이 닦아 주고 계셨다”그리고 레나는 다시 일어났다.
레나 마리아는 말했습니다.“누군가 나에게 예수님의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대 보라 하면 나는 나의 약한 육신과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나의 입술을 당당하게 보여 줄 거예요.”
레나가 가진 이 부활 신앙은 그 부모에게서 전해졌습니다.
레나 마리아에겐 날마나 부활절이었습니다. 그의 연약한 육신은 항상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위대한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레나 마리아가 그렇게 산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단순히 아는 것은 아직 구원받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음에 오셨고 삶의 주님이시고 마음의 왕이심을 고백할 때, 그 믿음은 능력이 됩니다. 진정한 부활 신앙인 것입니다. 그에게 날마다 부활절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항상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는데도 좌절과 실패와 상처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 계시나요? 당신은 왜 지금도 문제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까?
교회 영성일기 게시판에 올라오는 수많은 부활의 증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와 저주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뿐 만 아니라 나의 옛 사람도 함께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입니다.
그러면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사망의 권세, 죄의 세력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롬 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부활하신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문제 속에 갇혀 있지 말고 십자가 복음을 믿으라! 이제 당당히 내게로 나아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가정의 문제, 물질의 문제, 실패의 자리에서, 상처에서 부활하여 회복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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