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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문제
고린도전서 15장
우리가 고린도전서15장, 고린도전서15장 말씀을 잠시 후에 같이 나누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흔히 부활장이라고 불리워지는 유명한 장입니다. 부활장. 고린도 전서 13장은 무슨 장이에요?사랑장. 히브리서11장 믿음장. 네, 고린도전서 15장? 무슨 장이에요? 부활장. 네, 부활의 부활의 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의 메세지는 사실은 고린도 교회가 부딪혀 있었든 부활의 문제에 대한 바울의 답변으로 시작 됩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희랍에 한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매우 영향력이 있었든, 아테네와 함께 그리스에서 아주 영향력이 있었든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고린도는 희랍의 문화, 희랍의 철학에 한 중심지 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희랍 철학에 핵심가운데 하나가 부활을 거절하는 그런 경향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희랍 사람들이 당시에 붙잡고 있었든 희랍의 철학에 크다란 경향을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가 있어요.
우리가 사도 행전 17장에 보시면 바울이 아테네에 갔을 때 희랍의 가장 대표적인 도시 아테네에서 철학자들을 만나서 논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아래오바고라는 언덕에 올라가서 유명한 설교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바울이 아테네에서 만났든 두 가지 종류의 철학자들에 관해서 사도 행전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녜, 이두가지 종류의 철학자들, 어떤 철학자들이 였습니까? 한 종류는 누구에요? 사도행전 17장이라는 거 읽어보지 않으셨어요? 한번 찾아 보세요. 사도 행전 17장.18절 입니다 사도행전 17장18절의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8절 다같이 시작,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녜, 바울이 어떤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였습니까? 에비구레오, 발음이 좀 이상 하지만 우리가 옛날에 학생시절에 배웠을 때 에피규레안, 에피규레안. 공부를, 공부를 잘한 사람들은 생각이 날거고, 녜, 에피규레안이라는 철학 사조가 있었어요. 또 하나는 스도이고. 이 스도익크, 스도익크. 스도이고. 당시 아테네 아주 유명한 철학에 두 흐름 중에 하나였습니다. 소위 에피큐레안은 쾌락 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쾌락주의자들, 일종의 유물론자들이였고, 영적인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유명한 에피큐로스의 그 명언 가운데 하나로 이런 말이 있어요.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이런 아주 쑈피스틱한 괴변으로 사람들에게 설득했는데 어떻게 말했느냐 하면, 여러분 우리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걱정하지 마십시요. 우리가 죽었을 때 이미 죽음은 나에게서 떠나간 것 입니다. 감동이 안돼요? 걱정하지 말라는 거에요. 우리가 살아있을 때 죽음은 오지 않았고 죽었을 때 이미 죽음은 나에게서 떠나간 것이니까 걱정하지 마십시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의 유희를 통해서 실상은 죽음으로부터 도피 하고 죽음을 잊어 버릴려는 것에 불과 합니다. 이것은 사실은 도피에요. 해결이 아니에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두려우니까 죽음으로부터 도피 하기위한 일종의 철학자들의 언어의 유희에 불과 했던 것 입니다. 그들은 따라서 죽음을 생각하지 말고 즐기자! 즐기자. 인생을 엔죠이 하자, 쾌락주의의 사상이였습니다.
또 하나는 스토익 이라는 학파가 있었습니다. 스토익은 에피큐로스와 정반대의 일종의 금욕주의적인 철학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진지하게 죽음을 사색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정의하기를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신에게 연합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연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뭐냐하면 신에게 연합 되어서 신에 일부가 되어버리고 우리가 신의 품안에 안겨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는 뭐냐하면 개인적인 존재에 대한 언급이 없어요. 내 개인이 어떻게 되느냐, 우리 모두가 그냥 신에게 연합해 버린다는 매우 희미한, 안개 같은 사상 속에서 어떤 죽음이후의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아무런 소망을 스토익 학파들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든 것입니다. 이두가지 철학 사조와 함께, 아~소위 프라톤 아리스토텔래스, 프라톤 이래로 그 당시 희랍을 지배하고 있었든 매우 중요한 철학적인 사조가 소위 이월론적인 철학이였습니다. 프라톤익 철학의 핵심은 소위 이월론적인 철학이였습니다. 이월론 이란 것은 뭐냐하면 영혼과 육체를 딱 나누어 놓아요.나누어놓아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영혼과 육체를 나누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죽은 다음에 그 영혼은, 영혼은 영원히 살아있다. 소위 불멸설을 주장 했습니다. 육체는 없어진다. 육체는 없어진다. 육체가 없는, 육체가 없는 영혼의 불멸을 주장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기독교가 아니에요 이것은 기독교 사상이 아닙니다.
우리도 영혼 불멸을 믿어요.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영혼 불멸은 육체가 없는 영혼 불멸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부활의 몸을 가진 영혼의 불멸을 믿습니다. 기독교는 육체를 무시하지 않아요.육체를 소중히 여깁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육체, 비록 이땅에서는 병들고, 아우성치고, 배고프다고 그러고, 언제 끝나나, 그렇지마는 육체는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육체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거하는 몸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으로서 육체는 포기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후에 주께서는 부활의 몸을 약속합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러나 소위 이월론적인 희랍의 철학자는 영혼의 말을 높여놓고 육체는 온전히 무시해 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죽음과 함께, 죽음 저 건너편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거에요. 죽음 건너편에 기다릴 것도, 기댈 것도, 바라볼 곳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희랍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은 그 당시에 죽음 저 건너편, 무덤건너편에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든 것입니다. 자, 자 이러한 희랍 사람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선포 했을 때 복음의 내용가운데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들어 있단 말이죠. 어떤 반응을 불러 일으켰을까요?
사도 행전 17장을 한번 찾아 보세요. 사도행전17장, 사도행전17장입니다. 31절, 사도행전 17장 31절에 보시면 같이 한번 읽습니다. 사도행전17장31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아테네 아래오바고의 유명한 바울의 설교 입니다. 지금도 아테네를 찾는 사람들은 반드시 바울이 이 말씀을 선포했든 아래오바고의 언덕에 서기를 즐겨합니다. 저는 우리 성지순례 팀이 아테네에 갔다가 아레오바고 언덕 위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질번 하고 내려왔습니다. 하하하.녜, 유명한 아래오바고의 설교, 설교의 절정이 뭐냐하면 복음에 대한 프리젠테이션, 복음의 전달이였고, 복음 전달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부활 하신 사건이였어요. 그런데 어떠한 반응을 일으켰느냐? 3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32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저의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녜,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의 메세지를 듣고 혹은 뭐했다고 그랬어요? 조롱을 했다, 조롱을 했다. 어떤 사람은 이해가 안된다 나중에 다시 설명을 해달라. 그것이 일방적인 반응이였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 희랍 철학의 분위기가 부활을 전혀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바울이 부활의 메시지를 외쳤을 때 당연히 희랍 사람들은 아테니안, 고린도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부활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부활은 무엇이냐? 그 답변이 바로 고린도전서15장이에요. 사실 15장 하나 가지고 한 열 시간 정도 우리가 강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깊이가 있는, 바울의 신학적인 부활론이 농축되어 있는, 성경에 가장 위대한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는 짤막하게 15장 전체를 저가 썸머라이즈 해드리면서 스케치 해드리겠습니다.
우선 1절부터 19절까지는 부활의 사실을, 부활의 사실을 말합니다. 펙트, 부활의 사실을 바울이 전개하고있습니다. 부활의 사실. 그 다음에 20절부터 28절까지는 부활의 순서, 어떤 순서로 부활 할 것인가,부활의 순서. 그 다음에는 29절부터 34절까지는 부활의 근거, 우리가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그 다음 35절부터 49절까지는 부활의 특성, 부활체, 부활의 몸이 어떤 특성을 갖고있느냐? 부활의 특성, 그 다음에 50절부터 58절까지는 부활의 소망. 이런 순서로 되어있습니다. 부활위 소망.
첫째로 부활의 사실 1절부터19절까지는 바울은 부활의 펙트를 제시합니다. 부활의 사실. 그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허구가 아니라 역사 속에 뿌리박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부활의 사실. 우선 바울은 부활은 복음의 절대적 요소라고 말합니다. 복음의절대적 요소에는 부활이 있다 부활이 있다.자, 1절 2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무었을?복음을, 복음을 너희들에게 알게 한다. 너희가 이 복음을 받았다. 그리고 복음 가운데 서있다. 3절, 내가 받은 이 복음을 먼저 너희에게 전한다. 이 복음은 무엇이냐, 복음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죽으신 것만 복음이 아니에요. 죽으신 것은 복음의 반쪽 싸이드 에 불과해요. 부활하셨다. 부활하셨다.
오래 전에 제가 대학 캠퍼스에 가서 아주 옛날에 저가 젊었을 때 지금도 젊었지만, 지금보다 훨씬더 젊었을 때,하하~ 대학 캠퍼스에 가서 제가 전도 했는데요 한 학생에게 전도를 하니까 학생이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은, 목사님 저는 예수님의 죽음을 얼마든지 믿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부활이 안 믿어져요.예수님의 죽음만 믿고는 크리스챤이 될 수가 없습니까?. 저가 뭐라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랬어요. 참 미안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만 믿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로마서에 보면, ‘너희가 만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다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믿으면 뭐라고 그랬어요? 구원을 얻으리니. 로마서 10장 9절, 너가 만일, 너가 만일 예수께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그분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그러니 그거 안 믿으면 구원 못받는 거에요. 그렇다면 복음이 아니죠. 그는 우리의 죄 용서함을 위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으셨을 뿐 아니라 그는 우리가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새생명 안에서 행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임재를 체험하며 날마다 살아갈 수 있도록 그는 다시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신, 지금 이순간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부활은 복음의 절대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에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 이 부활은 구약 예언의 성취입니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것을 성취한 것입니다.
자, 우리 3절 4절 다시 한번 읽어요. 3절 4절, 다같이 시작,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무슨 단어가 강조 되었어요?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우연한 해프닝,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성경대로 죽으셨다. 성경대로 다시 사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것 처럼, 그렇죠? 많이 예언 되어 있죠? 어떤 말씀이 생각 나세요? 대표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예언이, 제일 유명한 장이 뭐일까요 이사야 53장.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우리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 예수님 오시기전 700년 전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분명히 예언을 해놓았어요. 그런데 죽으심만 예언 해놓은 것이 아니라 부활도 예언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예를 들어서 유대인의 칠대 명절가운데 하나인 초실절이 있어요. 초실절 무슨 뜻 입니까 초실절? 첫 열매를 바치는 절기, 이 첫 열매가 무얼 상징합니까? 죽음을 이기시고 처음으로 다시 사신 새로운 생명의 첫 열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절기였어요. 초실절 초실절, 아들 처음 낳으면 초식이라고 지어도 괜찮을꺼에요 하하~ 녜, 힌트를 드려요
녜, 우리23절에 보시면 고린도전서 15장2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23절 다같이 시작,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여기 첫 열매라는 말이 나와요. 구약에 예컨데 요나의 체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죽었다가 다시 산 요나의 체험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이 이 시대에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그리스도의,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의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표적,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사건의 예표하고 있었던 거예요. 구약에 직접적인 예언가운데 하나로 이런 말씀을 보세요 시편16편 보겠습니다. 시편16편 시편16편10절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16편입니다. 같이 읽습니다.시편16편10절 다같이 읽습니다.시작,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절,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게 누구에 대한 예언일까요? 예수님, 예수님의 무엇에 대한 예언일까요? 부활, 자, 이 시편 16편10절과11절이 신약의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보세요.
사도행전2장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2장22절을 보겠어요. 사도행전2장, 사도행전2장22절입니다. 사도행전2장22절. 어떻게 시작 되느냐하면, 베드로의 설교. 오순절설교.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리라” 23절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이 말이죠.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는 않아요. 27절에 보시면은 뭐라고 말합니까? 베드로의 설교에요 27절 다같이 시작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 임이로다” 어디서 많이 보았든 구절 같지 않아요? 시편16편10절이죠. 그 다음 구절 다같이,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하였으니. 31절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 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중인이로다” 할렐루야! 바로 이 부활에 구약에 약속된, 예언된 부활의 성취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건, 부활 사건이였든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부활의 사실은 수많은 증인들을 갖고있습니다. 베드로 게바가 보았다. 열두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어떤 사람들은 하도 예수님 사랑하고 사모하다가 어떤 사람이 그냥 허깨비 환상을 보고 예수님 부활했다고 소문을 낸 것이다. 신학적 이론이 있는데 이걸 가지고 환상설, 이렇게 말합니다. 환상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어요. 환상을 잘보는 체질이 있어요. 녜.그런데 그래 뭐 한 두사람 환상을 본다고 합시다. 그 다음 에 500명의 형제들이 한꺼번에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500명이 다 미쳤나? 무슨 말이냐 하면 바울은 충분한 증인을 갖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허다한 증인들을 우리는 소유한다!. 무슨 말입니까? 부활은 사실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부활은 신앙의 본질이다. 이것은 본질적 사건이다 신앙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14절 같이 보겠습니다 14절, 자,고린도전서15장14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여기서 어떤 단어가 강조되고 있습니까? 헛것 이다. 주님이 다시 살아나심이 없었다면 우리가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 헛것이다. 말짱 헛 것이다. 너희 믿음도 헛 것이다 본래 헛 것이라는 이 단어가 쓰레기, 휴지,그런 말에서 나온 말이에요.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신앙은 쓰레기에 불과해요 휴지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능력이 없어요. 사람을 변화 시킬 수도 없고 소망이 될 수도 없고 능력이 될 수도 없고,그렇습니다. 2000년 전에 이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그의 탄생은 죽기위해서 오셨어요. 그리고 그의 죽음은 부활로, 그가 이땅에 오신 사건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부활 때문에 오늘우리는 우리의 주님 2000년 전에 이땅에 오신 그 주님이 여전히 내 안에 우리가운데 살아계신 주님이신 것을 고백하는 줄로 믿습니다. 부활은 사실입니다. 믿습니까? 사실을 사실대로 믿는 것이 신앙이에요. 안 사실을 사실처럼 착각하고 믿고 있는 것이 미신입니다. 분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안 믿는 것이 불신입니다. 신앙은 사실대로를 사실대로 믿는 것 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인 것을 믿습니다. 이게 부활의 사실입니다 1절부터19절까지.
그 다음에 20절부터28절까지는 부활의 순서에요. 부활이 어떤 순서로 이루어지는가? 우선 22절보세요. 22절 다같이 읽습니다.시작,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부활은 죽음 때문에 부활이 필요한 거에요. 죽음은 왜 오느냐? 아담 때문에 왔습니다. 첫 사람이 범죄하므로 아담에게 속한, 아담의 후예인 우리도,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우리도 그 안에서 죽은 것 입니다. 억울해요? 억울해도 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버스타고 운전수 잘못 만나면 잘못 만난 운전수 때문에 그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을 수가 있습니다. 억울해도 할 수 없어요 그때 운전수 행동은 버스 안에 타고 있는 모든 승객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대표적 행동이에요. 아담 한 사람의 행동은 인류의 전체를 대표하는 행동이였어요. 아담 안에서 우리가 다 죽었어요. 아담 안에서 다 죽었어요. 그래서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담 안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든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마지막 아담, 둘째 아담을 준비 하셨습니다. 둘째 아담이 누구에요? 예수그리스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어리라’ 그래서 그리스도는 오셨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 하심으로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다. 죽음 다음에 오는 부활을 그분은 증명하고 약속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담 안에서 내가 죽었다 이것이 첫번째이고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 하시므로 예수그리스도가 부활 하심으로. 죽음을 이기는 첫 열매가 되셨어요. 예수님이 첫 열매에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첫번째 열매에요, 예수그리스도, 물론 일시적 부활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살리시든 나사로, 살아났지만 또 죽었어요 나사로, 일시적 부활의 하나의 에~ 케이스에 불과 했어요. 그러나 정말 본격적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히 다시 사신 예수그리스도의 사건은 부활의 첫번째 사건이에요. 첫 열매에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예표가 된다. 주님이 다시 사신 것 처럼, 주님을 믿는 주님 안에 있는 우리도 다시 산다.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 다시 오신다 믿습니까?
23절의 약속 다시 읽어보세요. 23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부활의 순서, 우선 아담 때문에 죽었다. 그런데 뭐에요 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오신다. 다시 오실 때 우리도 뭐에요 우리도 부활한다. 우리도 부활한다. 누가 부활합니까? 23절에 보시면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어떤 사람이 부활 한다구요? 그에게 붙은 자. 저는 여기 크리스챤에 대한, 저가 제일 좋아하는 정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 크리스챤이 누가 크리스챤이냐? 교회 나가는 사람? 노(No)! 아니에요. 교회 나오면서도 예수 안 믿는 사람 너무너무 많아요. 난 안속아요. 교회 나온다고 다 예수 믿는다고 안속아요. 크리스챤의 정의, 그리스도인의 정의 뭘까요? 다같이 그리스도에게 “붙은자” 녜, 예수에게 붙어 있는 자. 여러분 예수에게 붙어 있습니까? 그러면 예수에게 붙어 있어니까 주님이 와! ~ 그러면 딸려가고 올라갈 거 아니에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니까, 주님 강림하실 때 다시 일어나요. 우리가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되어 주님과 함께 저 영원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저 영원의 기업을 누리기 위해서 주와 함께 설 줄로 믿습니다. 이게 부활의 순서에요.
그 다음 29절부터34절까지 부활의 근거, 우리가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근거, 바울은 세가지 근거를 둡니다, 첫째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좀 어려운 말이죠? 이건 기독교 사상이 아니에요. 이교 사상 가운데 그 당시, 그 당시에 다른 종교를 믿고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은 자들을 위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게 정당하다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에요 바울이. 정당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왜 받느냐하면 죽은 사람을 위해 대신 받으면 죽은 사람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소망 때문에, 그러면 너희가 죽은 다음에 어떤 소망이 없다면 왜 세례를 받느냐? 다른 사람들이 하는 습관을 가지고 바울은 까꾸로, 죽은 다음에 어떤 가능성을 여기서 증명하고 있는 거에요. 마치 이런 얘기에요. 우리가 천국을 증명하기 위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전도할 수가 있습니다. 여보세요 우리한국에 옛날 아, 대대로 우리주변에 어떤 분이, 어른신네가 돌아가시면 우리가 어떻게 말합니까? 돌아가셨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돌아가실 곳이 없으면 왜 우리가 돌아가셨다고 말하겠어요? 돌아가실 곳이 있지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우리가 전도를 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있죠? 바울이 그런 비슷한 논리를 펴는 거죠. 죽은 사람을 위해서 대신 세례를 받는 것이 정당한 교리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잘못된 교리지만 잘못된 교리를 신성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그러나 죽음 다음에 뭐가 없다면 사람들이 왜 저런 일을 하겠느냐 이 말이에요. 저런 일을 하겠느냐? .그 다음을 보시면 더 알 수가 있습니다.
부활의 둘째 근거. 성도의 고난. 우리들이 전도 하다가 고난을 받는 이유. 그 왜 고난을 받느냐? 30절 같이 읽겠습니다. 30절 다같이 시작,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여기 인칭 대명사를 주의해 보셔야 돼요. 뭐냐하면 음~ 29절에는 저들이 나와요. 자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저들이 세례를 받느냐’ 저들에 대한 얘기, 이건 우리에 대한 얘기가 아녜요. 크리스챤에 대한 얘기가 아니죠? 그러나 여기 30절에 보면은 또 어찌하여 우리가, 이번에는 우리 성도들 얘기에요.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우리가 목숨을 걸고 전도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죽는 것을 겁내지 않고 담대하게 크리스챤들이 전도하다가 순교를 당하는 일 왜 그럴까요? 그게 끝이 아니기 때문에, 부활을 믿기 때문에 그 얘기에요. 그래서 우리가 부활을 믿는 또 하나의 근거, 이것은 무얼보면 알 수가 있느냐, 왜냐하면 목숨을 걸고 전도 하고 있는 사람들, 이것은 죽음 건너편에 부활의 확실한 사실을 우리가 소망하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녜,
그 다음에 부활의 또 하나의 근거는 뭐냐하면 거룩한 삶의 죽음,거룩한 삶의 죽음, 32절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여러분 부활의 소망이 없고 내세에 소망이 없다면 뭐에요? 이 세상이 전부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이 짧은 세상 끝나기 전에 뭐에요?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부어라 마셔라’ 하~ 녜, 먹고 마시고 즐기자. 뭐, 그것이 우리 인생관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어요. 만약 부활이 없다면, 만약 내세가 없다면, 그러나 그 다음절에는 “속지말라 이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짖지 말라” 우리가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이유, 그것은 이세상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 하심과 상급 주심과 우리를 기다리고있는 영원한 나라를 우리가 소망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활을 믿는 근거란 말이에요. 근거,
자 그 다음에 부활의 특성.35절부터 49절까지 부활의 특성. 지금 저가 초 급행열차로 지금 달려갑니다. 녜, 한 열 달 할것을 몇 분 동안 요약하는 거에요. 35절부터 49절까지 부활의 특성, 부활의 몸은 어떤 특성이 있느냐, 저는 이세상에서 우리가 소유하고있는 몸과 부활 때 가지게 될 몸 사이에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공통점, 알아볼 수 있어요. 뭘 보면 알 수가 있느냐 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봤어요. 조금 달랐지만 알아봤어요. 너무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헛갈리고 착각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알아볼 수 있었어요. 저는 우리가 천국가서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아볼 수 없다면 무슨 재미에요? 응? 서로 알아봐야지, 저도 여러분을 알아보고, 그러나 그때는 주름살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흰 머리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우리 인생의 최정상의 모습으로 최절정의 모습으로 만날 줄로 믿습니다. 저는 공통점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그러나 차이가 더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차이가 더 많을 꺼예요. 그러나 그것을 바울이 어떻게 비유를 했느냐하면 씨앗과 열매로 비교 했어요. 씨앗과 열매, 3십 여기6절에 보시면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 씨앗에게 형체를 주신다. 씨앗과 열매, 공통점도 있어요 없어요? 있긴 있어요. 어떤 생명의 본질성에 있어 공통점이 있어요. 그러나 같습니가 다릅니까? 굉장히 달라요. 우리가 뿌린 건 씨앗 하나에요. 그러나 나중에 뭐에요? 엄청난 열매를 보세요. 엄청난 열매. 굉장히 다른 모습이에요. 어떻게 다르느냐? 부활의 몸이 어떻게 다를 것이냐, 그 정수를 바울은 이렇게 요약을 합니다. 어떻게 다를 것인가?
42절부터 보시면 42절 자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그러니까 이땅의 몸과 부활의 몸의 차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은 뭐에요? 썩을 몸! 옆에 있는 사람 째려 보세요. 그리고 폼 잡아도 썩을 몸 이에요 한마디 해봅시다. 시작, ‘폼 잡아도 썩을 몸 이에요’ 그러나 그때에는 어떤 몸을 입을까요? 그때는, 썩지 아니할 몸! 썩지 아니할 몸, 옆에 사람에게 썩지 아니할 몸 궁금 하네요 한번 해보세요.시작, ‘썩지 아니할 몸 궁금 하네요’ 하하~ 녜,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을 입는다고 했어요. 그 다음에 보시면 욕된 몸이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그러니 욕된 몸, 어떤, 우리 몸에는 부끄러움을 느껴요. 그렇지 않아요? 이상하게, 우리 몸에 대해서 어떤 자부심도 있지만 또 부끄러워하고, 벗지도 못하고, 어떤 부끄러움이 있어요 부끄러움이 있어요. 그러나 그때 우리가 가질 몸은 아주 영광스럽다. 부끄러움의 요소가 하나도 없다. 어떤 죄 때문에, 죄성 때문에 어떤 부끄러움이 개제되어 있지만, 그때 그 몸은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이다. 그 다음에 또 약한 것이 강한 몸, 그러니 얼마나 약해요. 그냥 감기 한번 돌아 다니니까 캑캑 거리고 그냥, 얼마나 약한 몸 이에요. 그러나 그때 우리는 강한 몸. 여러분 기대 하십니까? 또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 육의 몸이지만 그때 우리는 신령한 몸. 어떻게 다른가? 나도 몰라요. 어쨌든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이라고 그랬어요. 흙에 속한 몸, 49절에 보면은 하늘에 속한 몸.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은 흙에 속한 몸 이에요. 그때 우리가 가질 몸은 하늘에 속한 몸. 어떻게 다를까요? 그건 나도 몰라요. 어쨌든 굉장히 다르다! 굉장히 다르다. 같은 것도 있지만 굉장히 다르다. 한번 따라서 하세요. ‘같은 것도 있지만 굉장히 다르다’ 녜, 옆에 사람보고 ‘어떻게 다를까요?’ 한번 상상 해보세요. 어떻게 다른 몸으로 만날까? 어떻게 다른 몸으로 우리가 만날 것인가? 부활체의 특성,
마지막 50절에서 58절까지 부활의 소망, 부활의 소망 두 가지 입니다. 미래의 소망,5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52절 다같이 시작,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나팔이 막 울려 펴지면 우리가 일어나요. 죽은 자리에서 다 일어나게 되요. 광야의 나팔은 전쟁을 위해서 예비하는 나팔이 제일 중요한 용도였어요.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 나팔은 축제의 나팔, 나팔이 울려 펴지면 뭐했어요 축제를 시작해요. 저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불어지는 나팔, 그것은 축제의 시작이다. 우리가 새로운 몸을 입고 주님과 영원을 즐기기 위한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는 다시 살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찬양을 불러요. 그 찬양의 제목가운데 하나가 뭐냐하면 죽음을 이긴 찬양이에요. 죽음을 이긴 찬양. 그 찬양이 뭐냐하면 55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니가 나를 잡아 먹었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놀랬지? 내가 지금 부활했다.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사망을 이긴 영원한 승리자로 부활의 찬미를 부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미래의 소망이에요.
그러나 부활은 미래의 소망만 주는 것이 아니라 현제의 소망을 줍니다. 현제의 소망은 무얼까요 58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58절 다같이 시작,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아멘~ 아멘, 그 부활의 소망이 확실하기 때문에 뭐에요? 지금 우리가 주를 위해서 흘리는 땀, 우리가 바쳐진 수고, 드려진 봉사의 모든 수고, 그것은 하나도 헛되지 아니하고 그 앞에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이것이 지금 여기서 또한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소망인줄로 믿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주기위해서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녜, 오늘 얼마나 수지 맞았어요. 부활 뛰었습니다. 옆에 사람보고 ‘부활 뛰었습니다’.
이동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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