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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목사/예수님의 새벽! (막 1:35)
들어가는 말
오늘 이 마가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역을 시작하시는 장면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살아 계시면서 어떻게 당신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까지 어떤 식으로 자기의 인생을 사시고 어떤 생활을 하셨을 것인가의 형태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실 때 이미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갓난아기시절을 이야기하고 12살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는 30세 시절을 이야기하니까 앞의 11년의 세월과 뒤의 18년의 세월이 물음표로 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때에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많은 역사적 자료를 모아서 그 끊어진 고리를 이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시절의 이야기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꼭 필요하고 예수를 믿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면 하나님께서 기록되게 하셨을 것입니다.
삶 있게 한 기도
성경에 안 나와 있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기도함으로 십자가를 맞이하고 기도함으로 자기의 인생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공생애 동안의 오랜 기도생활 속에 뿌리를 박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나타난 그분의 삶의 모습은 이미 공생애에 들어오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삶과 신앙이 뿌리가 되었을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이전의 불 경건하던 삶이 경건하게 바뀌고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규칙적으로 몇 시간씩 기도하고 신령한 생활을 모르던 사람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권세 있게 한 기도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안드레와 시몬,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고 그들은 배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돕는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는데 그 때는 안식일이었고 주님은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하였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리리호수 바로 옆에 있는 갈릴리 지방에 속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신 다음에 주님은 가버나움으로 가신 것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치는 것이 서기관들하고는 틀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제껏 서기관에게서 성경을 많이 배우고 하나님의 진리를 많이 배웠는데 주님의 가르침은 서기관하고 같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는 서기관들에게 없었던 그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권세입니다. 왠지 똑같은 이야기인데 서기관한테 들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펴고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설하시니까 확하고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진리의 말씀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큰 힘과 권세를 느끼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권세를 더 확인 시켜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애원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일들이 이 회당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을 때 이렇게 귀신들린 자가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들어서 벌벌 떨면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애원하는 장면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이 언제 "귀신아 나오너라"라는 한 말씀이라도 하셨습니까? 그렇게 귀신에게 도전하지도 않으셨는데 이 귀신들린 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으니까 그 권세가 그 귀신들린 자의 마음속에 가서 닿고 그 마음에 다가왔던 하나님의 말씀은 그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사단에게 충격을 주고 위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속에 있던 귀신이 눈을 떠보니까 주님은 대항할 분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굴복하고 쫒겨 나가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다 놀라고 예수의 소문이 그 안식일에 온 갈릴리 사람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으로서 매스컴도 없는 시대에 온통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회당에 나와서 오전에 모임을 갖던 사람들이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서 전파했습니다. 새로 나온 랍비가 말씀에 놀라운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랬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체된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 곳에 가셨습니다. 거기서 그 사람을 위해서 예수께서 교훈을 베푸셨을 것이고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열병이 떠나가고 그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을 수종드는 아름다운 섬기는 여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앓던 여인이 일어나서 섬겼습니다.
이럭저럭 하다 보니 저물어서 해가 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숙소에 들어가셨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갈릴리 동네에 병신과 귀신들린 자들이 다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인 자들을 그냥 돌려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셨는데 얼마나 피곤하셨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각색 병든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가지고 나왔던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돌보시는 은혜를 입어 병든 자는 낫고 귀신들린 자는 깨끗하게 되어지고 온전하게 되어서 다 돌아갔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그 많은 사람을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났을 때 얼마나 장시간이 걸렸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하나하나 고쳐주시고 치료하시고 잘못 생각하는 것들을 바로 잡아주시고 참된 믿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일을 마치시고 오늘 읽은 본문과 같이 새벽, 오히려 이른 미명에 일어나셨습니다. 이 날은 안식 후 첫 날 이었으며 헬라어 성경에는 "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번역이 아주 좋습니다. 하루 중에 일찍 인데 그것도 밤인 때, 새벽 오히려 미명에 어둠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그 밤에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서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끊임없는 영력을 유지하시면서 그 큰 능력을 1장에서 행하시고 잠시 후에 또 다시 안식일이 되어서 문둥병자를 깨끗케 해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베푸시고 중풍병자를 고치는 역사를 또 베푸셨습니다. 이와 같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능력의 비밀은 바로 끊임없이 희생하는 기도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줄 만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밤늦도록 귀신을 내어쫓고 병든 자를 고치고 하늘나라의 참된 도를 가르치신 다음에 새벽 미명이 되었습니다. 가장 꿀 같은 잠이 쏟아져 올텐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도 같이 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깊이 곤하게 자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새벽 어두운 때에 언제든지 일어나셨습니다.
잠자는 제자들이 깰 새라 조용히 방문을 닫으시고 어둠이 거치지 않은 광야로 걸어가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길 원해요' 죄 가운데 죽어가고 귀신에 눌려 고통 하는 병마에 시달려 신음하는 자들을 건져내시기 위해서 주님은 이 새벽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새벽 오히려 미명에 고요히 홀로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에게 무슨 해결하지 않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지 않으면 안될 회개의 제목도 없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그러한 강요된 조건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강요된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새벽의 시간에 오히려 어둠이 거치지 않은 미명의 시간에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신 분이라고 요한복음 3장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세가 그분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그 엄청난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던 우두머리 마귀를 보기좋게 물리친 사건을 보셨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한량없이 부어주신 그 성령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매일매일 그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오늘도 나에게 고통하는 자들을 건질 수 있는 지혜와 은혜로운 말씀과 귀신 들린 자를 자유케 할 수 있는 큰 능력이 여전히 자기 속에 깃들여서 고통하는 자들을 살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보내시는 그 뜻을 이루게 하여주소서" 새벽에 한적한 곳에 나아가서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기도의 패턴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으로 새벽을 맞으셨던 것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외로운 곳'으로 되어있고, 헬라어성경에는 '버려진 곳'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곳은 사람이 흔히 찾아오는 곳이 아니고 사람 때문에 방해받지 않는 그런 장소를 말합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든지 방해를 받지 않는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디든지 방해를 받습니다. 한적한 곳이 되기 위해서는 쉽사리 방해를 받지 않는 그런 곳으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간과 장소를 그렇게 방해받지 않는 곳으로 택했습니다.
왜 이 새벽에 기도를 하셨습니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새벽의 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고있기 때문입니다. 사면이 밝을 때는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른 사람과 똑같이 자고 숙소에서 낮에 기도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새벽에 기도하신 것은 그 시간이 가장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방해꾼은 단하나 졸음과 잠밖에 없습니다. 이것들만 이겨내면 새벽에는 방해받지 않습니다.
그 한적한 곳이 어느 곳이냐는 여러분들이 각자 정하셔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방해받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곳, 그 곳은 외로운 곳입니다. 홀로 있는 것같은 곳,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곳에 가셔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을 때까지 길고 깊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숙달되는 것이 아니라 길어지는 것입니다 길어져야만 깊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한다 하고 가장 나쁜 시간, 일과로 다 찌든 시간 아니면 일과를 지내면서 바쁜 일에 시달리는 시간 그런 것은 한적한 곳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물론 그러한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기도의 시간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주님 앞에 기도하심으로 생생한 영력을 유지하시며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훌륭한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깨달아도 기도함으로 그 말씀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능력을 가져다주는 기도의 체험이 없이는 여러분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희생이 없이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주님도 새벽시간에 주무시고 싶으셨습니다. 주님도 고단하셨습니다. 주님도 안식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육신의 요구를 물리치고 새벽 미명에 고요히 걸어서 한적한 곳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새벽에 이렇게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시다가 결국은 새벽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새벽에 부활시키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입니다. 늘 당신을 만나러 오셨던 그 시간에 하나님이 오셔서 죽으신 예수님을 위대한 권능으로 살리셔서 죽음의 무덤을 생명의 무덤으로 바꾸시고 부활한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 권고
결심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하나는 새벽에 비장한 각오로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결심이 약하면 사단이 세게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결심이 강하면 마귀도 물러갑니다. 피곤하다고 생각될 때 벌떡 일어나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새벽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새벽의 시간에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희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넘치는 영력과 은총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새벽시간 이외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험적으로 그 새벽의 시간이 가장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습니다.
두 번째의 권고는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나아갈 때 의무에 얽매어서 나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나가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너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일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주님이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시기를 기도에는 삶이 약속되어있다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이 놀라운 사건들과 기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혼란하고 어지럽고 이 세상을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들과 고통 하는 영혼들의 울부짖음 소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보다 훨씬 심합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일과 새벽의 부르짖음으로 온 세상을 깨워서 하나님이 이 마지막 때에 교회를 통해서 살리시기를 원하셨던 그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들과 그 새벽에 잠들어 있는 영혼들이 육신의 잠만이 아니라 죄악 가운데 잠들어 있는 것을 기억하며 울부짖는 기도소리가 새벽을 깨울 뿐만 아니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깨워서 이 시대의 참된 생명과 은혜를 고통 하는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저희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육을 이길 수 있는 영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새벽의 시간에 자는 일을 희생시키고 홍해와 같은 인생의 문제에 팔을 내밀게 하시며, 여리고성과 같은 난공불락의 문제를 돌게 하시옵소서. 소리치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새벽의 기도에 큰 보응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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