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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축복받은 사람 (고린도전서 15장 20-22절) 1. 과거의 부활이 믿어지는 사람

by 【고동엽】 2022. 12. 22.

가장 축복받은 사람 (고린도전서 15장 20-22절) 1. 과거의 부활이 믿어지는 사람

 본문 앞의 12-19절을 보면 계속 가정법 문장이 반복됩니다. 13절에는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이란 말씀이 나오고 14절에는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15절 중간 부분에는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이란 말씀이 나오고 또한 16절, 17절, 19절에서도 비슷한 가정법 문장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가정법 문장을 많이 사용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한 사실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기록은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잘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이 꾸민 거짓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거짓은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도 대개 드러납니다. 정치인들의 머리 좋은 보좌관들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은밀하게 주고받은 돈 가방도 몇 년 후에 드러났고 완전범죄를 꾸몄던 IQ 150이상의 머리 좋은 닉슨의 보좌관들도 워터게이트 사건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부활이란 대 사건을 IQ 100도 안될 것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거짓으로 꾸몄겠습니까?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 거짓이 얼마나 가겠으며 또한 그처럼 자기들이 꾸며낸 거짓을 위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겠습니까? 그처럼 부활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그 사실이 아무 의심도 없이 순순히 믿어진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서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2. 현재의 부활을 체험하는 사람

 역사상 주님의 부활 사건만큼 위대한 사건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 사건이 현재 자신의 삶 속에서 실제로 역사하지 않으면 그 부활은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됩니다. 믿는 것은 단순히 윤리도덕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활의 삶을 체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 부활 사건이 현재 자신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게 하십시오.

 현재 부활 신앙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부활은 진짜 부활도 아니고 가치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유혹입니다. 신앙생활에서 헌신과 섬김이 없이 높은 신앙을 가지고 영성이 깊어지고 능력이 생기고 영안이 열리고 말씀을 보는 눈이 열린다고 하는 것은 다 사탄의 유혹입니다.

 어떤 분은 월요일에 큐티 집회를 가고 화요일에 영성 집회를 가고 수요일에 간증 집회를 가고 목요일에 찬양 집회를 가고 금요일에 평신도 성경대학에 가고 토요일에 기도 세미나에 갑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영안이 열리고 영성이 깊어질까요? 집회에 많이 참석해도 교회에서 걸레질과 설거지 한번 안하고 선교를 위해 자기 호주머니를 비우는 헌신이 없다면 그것은 깊은 영성이 아니라 천박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진정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수고의 짐을 지는 법을 배우십시오.

3. 미래의 부활을 소망하는 사람

 본문 20-22절 말씀은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고 몸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미래에 몸으로 부활할 것이란 사실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현재 승리하는 삶에만 관심이 있고 미래의 부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은 가장 고상한 신앙인 것 같아도 가장 불쌍한 신앙입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고상한 척 하는 사람에게는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죽음의 해결’이 바로 종교의 궁극적이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당하는 가장 무서운 현실은 죽음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은 조만간 죽습니다. 사람은 날마다 죽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죽음에는 특별대우가 없습니다. 그 죽음은 언젠가 자신에게도 찾아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죽음 너머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죽은 후에 부활한 몸을 가지고 영원히 천국에서 살 것입니다.

 가끔 오랜만에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대개 누군가 죽었다는 전화입니다. 가끔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 사람이 연락이 너무 없어서 섭섭해. 그럴 수 있어?” 생각을 바꾸십시오.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당당하게 사십시오. 부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죽음의 날은 천국으로의 이삿날입니다. 죽음은 지상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해방시키는 가장 복된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고 다른 어떤 고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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