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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부활 주일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마28:1-10)

by 【고동엽】 2022. 4. 6.
 
부활 목차 돌아가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마28:1-10)

 

마28: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마28: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마28: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28: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마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마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마28: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28: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며 근본이요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그 때 일어나게 될 비극들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서 부활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첫째, 복음 전파도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으로 끝나버리셨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역시 사망의 권세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 되어버립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전하는 것도 우리가 믿는 것도 다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사도들은 다 거짓 증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고전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사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거짓말을 일삼은 셈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힘써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인류는 모두가 죄 가운데 남아있을 것입니다.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모든 인류는 여전히 죄의 권세에 얽매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믿는 자든지 믿지 않는 자든지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죄의 삯으로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믿는 자는 더욱 불쌍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부활이 없는데 괜히 믿느라고 전하느라고 고생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삶은 불쌍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것도, 전하는 것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조금도 불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사셨으므로 우리도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일 백 번 이상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여인들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술해나가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여인들의 심정은 세 단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 모두 그 당시 여인들의 심정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친히 말씀 속으로 우리 모두를 인도해주시기 소원합니다. 

 

첫째, 연민의 정(Compassion)

 

마28: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1) 부활의 때(The time of the resurrection)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는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해가 질 무렵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날 해가 질 때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 날에 우리들처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등의 이름을 부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기점으로 해서 일요일은 안식 후 첫날, 화요일은 안식 후 둘째 날 등등으로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 낮이었습니다. 그 날 해질 때부터 안식일이 시작되어 토요일 해질 때에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이제 안식일이 완전히 지나갔습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안식 후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밤이 거의 다 지나가고 아침이 되기 직전의 미명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따지면 주일날 새벽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셋째 날에 부활하신 셈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의 일부분이라도 그날 하루로 따로 계산을 합니다. 우선 예수님은 금요일에 돌아가셨습니다. 둘째 날인 안식일에는 무덤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인 주일 새벽에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이 늘 말씀하신 그대로 죽으신 지 사흘만에 다시 사신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념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안식일은 예수님이 무덤에서 온전히 안식하심으로 이제 그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더 이상 안식일 지키지 않습니다. 새 언약의 백성들은 창조보다 더 중요한 우리의 구속, 곧 새 창조를 기념하기 위해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따라서 매주일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고 말씀하시면서, 예배드리는 우리에게 평안을 허락하십니다. 

 

(2)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The women who came to the tomb)

마태복음은 오늘 본문에서 단 두 명의 여자들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이들 두 사람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막16:1은 여기에 세베대의 두 아들, 곧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매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눅24:10은 여기에 요안나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여러 명이었습니다. 마태는 오늘 본문에서 단지 두 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입니다.  

마태는 이들 두 여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27: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마27:56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27: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여기에 기록된 대로 많은 여인들이 갈리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처음에는 그 곁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이들 여인들 가운데 두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 곧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이들 두 여인은 예수님이 장사되실 때, 예수님의 무덤 곁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또다시 예수님의 무덤에 왔던 것입니다.

 

(3) 여인들의 목적(Their purpose)

그들이 왜 그곳으로 왔습니까?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그곳으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그곳으로 왔던 것입니다.

 

막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마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아직도 무덤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기 위하여 예수님의 무덤으로 왔던 것입니다.

 

(4) 여인들의 인정(Sympathy)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수님의 부활을 굳게 믿고 있었더라면,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품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아예 향품을 준비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에게는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몹시도 사랑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갈리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모든 사람이 잠들어 있을 새벽 시간에,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왔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인들에게는 믿음이 부족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이 그 부족함을 채워주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을 그들의 헌신과 봉사가 대신 채워주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의 정이 있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믿음이 부족할는지 모릅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에게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의 정이 있으면, 그러한 부족함은 채워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다른 아무 것도 묻지를 않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 사랑을 물어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면서 예수님으로 인해서 기쁘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즐겁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 두려움(Terror, 2-7절)

 

(1) 천사의 내려옴(The angel's descent)

 

마28:2-3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1) 돌을 굴려 내고, 2)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마28: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가까이 왔을 때였습니다. 그 때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도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삼일 동안에 지진인 두 번이나 있었던 셈입니다. 이번 지진은 두 번째로 일어난 지진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 두 번째로 지진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그 몸을 대었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때 일어난 큰 지진으로 인해서 여인들은 땅이 흔들리며 자신들의 몸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때 하늘로서 내려온 천사가 했던 역할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천사는 무덤의 돌을 굴려 내었습니다.

왜 천사는 무덤의 돌을 굴려 내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덤 밖으로 나오실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습니까?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제자들이 방안에 모여서 그 문들을 닫고 있었을 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 예수님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방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면 천사는 왜 무덤의 돌을 굴려 내었습니까? 여인들에게 빈 무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 천사는 돌 위에 앉았습니다.

천사는 돌을 굴려 낸 뒤에 하늘로 다시 올라가지 않고 그 돌 위에 앉았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서 돌 위에 앉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빈 것을 보고서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예수님이 분명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증언하기 위해서 굴려 낸 돌 위에 당분간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천사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사의 형상은 번개와 같았습니다. 빛난 광채가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천사의 옷은 눈 같이 희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순결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천사는 그가 사람의 대리자로 또는 마귀의 대리자로 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천사를 보고서 보여주었던 반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서워하여 떨었습니다. 천사를 보는 것만 해도 무서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무덤을 지키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무덤 안이 비었습니다. 이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죽음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극도의 공포심으로 인해서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이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2) 천사의 설명(The angel's explanation)

 

마28: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마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먼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때는 새벽 미명이었습니다. 장소는 무덤 앞이었습니다. 그곳에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무덤의 돌이 굴려 내려 있었습니다. 그 돌 위에는 눈부신 모습의 초자연적인 존재가 앉아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여인들로서는 당연히 무서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너희는 무서워 말라”고 말하면서 먼저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의 경우는 전연 무서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고 증거하기 위해서 왔었기 때문입니다.

곧 이어서 천사는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찾아온 이유를 자기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아서 그곳으로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그곳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천사는 그 여인들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들에게 믿음은 부족했지만, 주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과 헌신의 정을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은혜로 대해주셨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에게 전혀 놀라운 일이 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평소에 여인들에게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그대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구름을 타시고 우리를 영접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다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크게 두려워 할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도 무서워서 죽은 자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데려감을 입는 우리에게는 전연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다시 오시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늘 사모하면서 기다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천사의 말에 따라서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을 보았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자기와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보았던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20:6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요20: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몸을 쌌던 세마포는 누군가에 의해 풀린 것처럼 헝클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머리와 몸을 따로 따로 쌌던 본래의 모습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에 있는 돌을 굴려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마포를 벗겨낼 필요가 전연 없었습니다.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세마포밖으로 그대로 몸만 빠져 나오신 것입니다.

 

(3) 천사의 명(The angel's command)

 

마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1)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2)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주의 천사는 여인들에게 두 가지를 명했습니다.

첫째,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얼른 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저버렸습니다. 아직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그들은 예루살렘에 숨어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이 좀더 고통을 당하도록 부활의 소식을 얼른 전하지 말고 가만히 내버려두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더 이상 낙심 가운데 있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자를 통해서 여인들에게 명하시기를, 빨리 자신의 제자들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낙심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얼른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 제자들을 갈릴리로 불러모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부터 자신이 부활하신 후에는 갈릴리로 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에 따라서 갈릴리로 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게 되었습니다.

 

마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28:16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천사의 마지막 말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였습니다. 천사는 자기가 하나님의 사자로서 전해야 할 말씀을 다 전했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인들이 주의 천사를 만나서 부활의 소식을 듣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뵈올 수 있었던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그 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무덤에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 때 누구라도 그곳으로 갔더라면, 모두가 똑같이 먼저 천사를 만나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듣고, 그 뒤에는 부활하신 예수님도 직접 뵈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면, 우리는 그만큼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되고 그만큼 더 많은 체험들을 직접적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인들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면, 예수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곳이라면, 예수님을 전하는 곳이라면,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봉사하는 곳이라면 부지런히 달려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큰 기쁨(Great Joy)

 

마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마28: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28: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 큰 기쁨(Great joy, 8절)

천사의 분부에 따라 여인들은 무덤을 빨리 떠났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달음박질했습니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일말의 무서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남들이 전연 이해하지 못할 너무나도 놀라운 초자연적인 일들을 그들이 겪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깟 무서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그들이 천사에게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 경배(Worship, 9절)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달음질할 때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안하뇨”라고 물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인사말입니다. 히브리말로는 샬롬이라고 하는 인사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화로운 몸을 가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평소의 친근함으로 여인들을 따뜻하게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과 같이 흰 천사들과 교통하시면서 그들을 부리십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죄인들인 우리와도 교통하십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죄인들인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으로 은혜가 풍성하십니다.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성경에서 경배라는 말은 언제나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영원토록 살아 계셔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여인들의 감정이 여러 차례 달라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저들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에 대해 연민의 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향품을 들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되어진 일들을 보면서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서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 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서 예수님에게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이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우리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과 그 때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일들을 묵상하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일말의 무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죄인 된 우리를 찾아주시고,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게 되면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일일 것입니다.

 

(3) 소망(Hope, 10절)

오늘 본문 10절에서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천사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조금 전 천사가 여인들에게 전해주었던 말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천사는 예수님이 보내신 사자로서 예수님의 말씀을 여인들에게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믿음도 부족했고, 겁도 많았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서 영원토록 거하게 될 하나님의 한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에게 나아오면,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맞아주십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고 불러주십니다.

본문 10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갈릴리에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도 분명한 소망을 주십니다.

 

요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14:19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예수님이 사셨기 때문에 우리도 살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도 영원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부활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서, 예수님의 부활을 크게 기뻐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모든 존귀와 찬미와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성전에 가득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를 충만하게 채워줄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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