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은 자여! (눅1:26-30)
눅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눅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눅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눅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작년에는 우리가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성탄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민하던 요셉이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데려왔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금년에는 우리가 누가복음에 기록된 성탄의 내용을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사 가브리엘이 한 무명의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알리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26절).
둘째,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27절).
셋째,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28-30절).
성탄을 맞이하여 마리아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도 풍성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섯째 달에.”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여섯째 달은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수태한 지 여섯째 달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육 개월 먼저 태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났습니다. 그 때문에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가랴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벙어리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마리아를 찾아왔던 이는 천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의 이름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우리는 천사들의 수가 얼마인지를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천사들의 수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계8: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성경에는 나머지 다섯 천사장의 이름이 등장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외경에는 그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나머지 다섯 천사장의 이름은 우리엘, 라파엘, 라구엘, 사리엘, 그리고 레미엘입니다(1 Enoch 20:2-8; Tobit 12:15).
성경에 그 이름이 나타나는 두 천사장에 대해서만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미 가엘은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입니다. 그는 주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악한 세력이나 사단과 싸워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용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단9:21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눅1: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눅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신약 시대에도 가브리엘은 두 번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처음은 제사장 사가랴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두 번째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메시야의 탄생을 알려주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천사 가브리엘은 우리들에게 복된 소식을 알려주는 천사입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지는 않으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에게 맡기셨던 그 사명을 이제는 우리에게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천사 가브리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을 전해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천사 가브리엘처럼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는 눅1:19에서,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 앞에 섰는 자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말라기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지, 어언 4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의 기적도 행하시지를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선지자도 세우지를 않으셨습니다.
이제 그 오랜 기간의 침묵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난 것입니다. 먼저는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났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명에 따라, 제사장 사가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이 태어날 것을 전해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잉태 된지 여섯째 되는 달에, 천사 가브리엘은 또다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모든 백성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탄생하실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 앞에 섰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그대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처럼, 우리들도 늘 하나님 앞에 섰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컨대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를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한 마디로 마르다는 예수님 앞에 섰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많은 일로 근심하고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마르다는 그저 자기 방식대로 분주했을 뿐이었습니다.
마르다와는 달리 그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섰는 자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처럼, 또한 베다니의 마리아처럼,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섰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서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즐겨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찾아온 곳은 갈릴리의 나사렛이라는 마을이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지명이 등장합니다. 갈릴리와 나사렛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갈릴리도 나사렛동입니다.
우선 갈릴리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로마 시대에는 성지 이스라엘을 4대 행정구로 나누었습니다. 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그리고 요단강 동편인 베뢰아였습니다. 본시 갈릴리는 어떠한 곳이었습니까?
왕상9:11 갈릴리 땅의 성읍 이십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지공하였음이라
왕상9:12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왕상9:13 이르기를 나의 형이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하뇨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으니라
그 다음에 나오는 지명이 나사렛입니다. 나사렛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그 이름이 단 한번도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만큼 나사렛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할 만큼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나사렛이란 동네,” 곧 “나사렛이라고 불리는 동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동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울러 오늘 본문은 나사렛이 어디에 있는 곳인가를 밝히 위해서 그 이름 앞에 갈릴리라는 지명을 덧붙였습니다.
요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릴리의 나사렛은 무명의 마을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던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니까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너무나도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보잘것없어 보입니까? 우리의 처지가 부끄럽게 느껴집니까? 낙심하지 맙시다. 좌절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면, 우리도 얼마든지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명의 마을이었던 갈릴리의 나사렛이 하나님의 은혜로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내세울 것이 없는 부족한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귀하게 쓰임을 받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그의 이름은 마리아였습니다. 둘째, 그는 정혼한 처녀였습니다. 셋째, 그와 정혼한 남자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오늘 본문에 기록된 순서에 따라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마리아와 정혼한 남자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이름이 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직업이 목수라는 사실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나사렛 사람이라는 사실도 아니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요셉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1장에 있는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요셉에게는 분명 다윗 왕의 DNA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의 이름은 헤롯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예수님은 요셉의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물론 혈통적으로는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였습니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이어서 누가복음 3장에도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비록 누가복음 3장의 족보에 마리아의 이름은 나오지를 않지만, 이는 분명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쪽의 족보라고 여겨집니다.
누가복음 3장의 족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역시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법적으로도 다윗의 자손이었지만, 혈통적으로도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은 요셉이 다윗의 자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며, 여자는 정혼을 하거나 결혼을 할 수 있는 최소의 연령이 12세였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여자에 비해 좀 늦게 성숙하기 때문에, 14세가 최소한의 연령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로마법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일 경우에는 대개 12~13세에 정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는 14~15세에 정혼을 했습니다. 따라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갔을 때, 마리아의 나이는 12~13세 정도였을 것입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결혼을 하기 일년 전에 먼저 정혼을 했습니다. 일단 정혼을 하면, 법적으로는 부부가 됩니다. 따라서 이 정혼 기간 내에 파혼을 원하면, 정식 이혼증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혼 기간 내에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처녀 과부가 되었습니다.
먼저 정혼을 하고, 그 뒤 일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리는 이유는 아내의 순결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부부가 동침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만일 이 기간 내에 아내가 아이를 배거나 낳았다면, 그 여자는 부정한 짓을 했음이 분명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정혼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과 아울러 그가 그 당시 처녀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은 “처녀”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함으로서 마리아가 그 당시 처녀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마리아는 헬라식 이름이고, 그 히브리식 이름은 미리암입니다. 본시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였습니다. 미리암의 뜻은 “높임을 받은 자”(exalted one)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어, 그 이름대로 크게 높임을 받은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까?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것이 전부입니다. 마리아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설명을 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이와는 달리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소개할 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만일 마리아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않았더라면, 마리아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자신의 삶을 끝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지나치게 높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도 없는 내용을 날조해서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마리아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 마리아도 예수님처럼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마리아는 동정녀의 몸을 그대로 가지고 살다가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는 두 분인데, 한 분은 예수님이고 또 다른 한 분은 마리아이다.”
이는 다 비성경적인 주장들입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이외에는 어떠한 말도 덧붙여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여기에 마리아를 칭찬하는 말이 조금이라도 덧붙여져 있었더라면, 아마도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하늘 끝까지 높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가 택함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고,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로 선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무 공로 없는 우리를 택하여 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맙시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더욱 하나님을 위하여 낮은 자세로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눅1:29 (2)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눅1:30 (3)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갔을 때, 마리아는 혼자서 집안 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기를 찾아온 이의 모습이나 목소리 등을 통해서, 분명 그가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초자연적 존재인 천사가 나타날 때, 놀라며 무서워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사는 마리아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중한 인사말로 접근했습니다. 인사말의 내용은 세 가지였습니다.
마리아는 무명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택함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마리아는 우리처럼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가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리아에게 기도를 한다고 해서, 마리아가 우리의 기도를 듣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마리아는 우리의 기도를 들을 수도 없고, 응답하지도 못하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도 못합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특별하게 받은 자였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천사의 출현 앞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놀랄 필요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로 인해서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마리아와 함께 하심을 기원하는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마리아와 지금 함께 하신다고 선언하는 인사였습니다. 본시 이와 같은 선언은 특별한 사명과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말씀이었습니다.
수1: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여호수아)
삿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기드온)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마리아가 놀랐던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천사를 그가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천사의 몸에서 나오는 빛난 광채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가 놀랐던 것은 그가 들었던 천사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삶을 살아갈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차라리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면, 마리아는 오히려 덜 당혹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야! 하나님은 네 중심을 다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다 읽으시고, 네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도 다 들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너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에게 알려주러 왔노라.”
그런데 천사는 전연 뜻밖에도 이와는 정반대의 인사말을 했습니다.
“마리아여!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특별히 받은 자로다. 그러니 평안할찌어다. 이제 하나님은 그대와 함께 하시면서, 그대를 통하여 특별한 사역을 이루실 것이니라.”
지난 수백 년 동안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갑자기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마리아를 특별하게 쓰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천사의 말을 듣고서 마리아는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Why me? 왜 하필이면 나란 말인가? 나같이 부족한 여종을 하나님은 대체 어디에 쓰시려고 하시는 것일까? 나같이 비천한 여자가 과연 무엇에 쓰임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마리아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마리아에게서 한 가지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마리아는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의롭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세리처럼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겸손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 모두 마리아처럼 겸손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 귀하게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당혹해 하는 마리아를 향하여 천사는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우리는 천사의 말을 통하여,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듣고 당혹스러워 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무서워하는 감정도 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죄인인 우리 인간은 누구라도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와 대면할 때, 무서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마리아에게 무서워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천사는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었습니다. 마리아에게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을 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전연 없었습니다. 마리아도 우리와 같은 죄인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눅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1: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도 당혹했습니다. 그런 마리아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인인 자기에게 와서 기도를 하고 복을 비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마리아는 정말 당혹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할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십시다. 우리 모두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평안을 누립시다. 힘든 일을 당했더라도 낙심하지 맙시다. 주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시면서, 성탄을 맞이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 천사 가브리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복 있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름진 얼굴에 기쁨이 넘치게 /잠언23:15~26/ 어버이 주일 (0) | 2022.04.06 |
---|---|
十字架 苦難의 비밀 /마가복음 10장32절 ~34절 (0) | 2022.04.06 |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07:1-32) (0) | 2022.04.06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마28:1-10) (0) | 2022.04.06 |
섬기러 오신 예수 / 마 20:28 (0) | 2022.04.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