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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의 3가지 차원 요20:27~31

by 【고동엽】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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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의 3가지 차원                       요20:27~31                  

 

성도는.. 부활신앙의 믿음을 근거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도..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근거는.. 부활신앙의 믿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매사에 담대한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불신’이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삶은 믿음에 근거합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삶은,

그 자체가 믿음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①예를 들면, 건널목에서 파란색이 켜지면.. 보행자는 길을 건넙니다.

그 때는 자동차들이 정지한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우리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이유는

이 음식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런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식당에 가서 마음 놓고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항상 자기 집에서, 자기가 직접 요리해서 먹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는 게 너무나 불안합니다.

    어디 가서 물 한 컵 겁나서 못 마십니다. 그래서 집에서 물을 싸들고 다닙니다.

    과일을 먹을 때도.. 농약성분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니, 철저하게 씻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삶이란 너무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③여러분, 우리가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자는 것은

‘이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 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집에서 결코 편안하게 자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릴 적에 자는데,

천정에서 갑자기 전등 램프가 떨어져서, 크게 다칠 뻔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 충격은 오래 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전등을 피해서 눕습니다.

‘전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지요.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은,

    믿음이 없으면.. 사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믿음은 우리 모든 삶에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을 때,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결코 살 수 없습니다.

    믿음(신뢰)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믿지를 못하니까.. 큰 문제와 혼란이 일어납니다.

정치문제도, 노사문제도, 사회문제도..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

‘그의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

서로 믿지 못하는 것.. 이것은 정말 큰 불행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믿지 못할 때,

부모와 자녀가 서로 의심할 때.. 그런 생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와 가정의 모든 것은, 믿음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아들이, 밤에 잠자는 노부모를, 칼로 찔러 죽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뉴스가 나간 뒤에, 일부 노부모들은, 자기 방을 꼭 잠그고 잠을 잤습니다.

    혹시 밤에 자는 사이에, 집안에서 흉측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믿음이 없으니까.. 우리 삶에 큰 혼란이 생긴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사실상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불신을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내가 먼저 믿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먼저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손해보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내가 먼저 믿지 않고는,

불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결국은 내가 피해를 입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당연히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특별히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으면.. 이거 내세가 불안해집니다.

내세가 불안하면, 현세도 불안해 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부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누가 정의하기를

‘죽음이란.. 준비되지 않았는데, 예기치 못하게 불쑥 찾아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죽음과 부활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불쑥 내게 찾아왔을 때,

확실한 부활의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자기 마음으로 그게 확신이 되지 않아서.. 불안해서 떠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렇게 살아간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마다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죽음과 부활의 문제’를 깊이 있게 묵상해야 합니다.

마치 내가 당장 죽는 사람의 입장에 놓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노후준비’요, ‘노후보장’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자기 죽음이 불안한데, 무슨 보험이니, 비싼 실버타운에 사느니..

그게 무슨 안심이 되겠습니까?

 

 

◑부활신앙의 3가지 차원

 

▲1.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부활

주님이 과거에, 역사 속에서, 반드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정신과 가르침이, 지금 온 세상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주님이 부활하셨다’

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 가 아닙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한다... 가 아닙니다.

 

정신적인, 영적인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죽어서 심장이 멎고, 호흡이 멎었는데,

그 주님이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주님의 부활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2. 미래의 종말론적 부활 신앙

주님의 부활을 근거로,

마지막에 우리 각자가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고백하는 대로,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 주님의 재림의 날에

모든 영혼들이 다시 몸으로 부활하여,

믿는 사람들이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3. 현재의 신앙으로서의 부활

이것은 오늘/지금/현재에

내가 삶속에서 경험하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부활이 먼 과거, 아니면 먼 미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나의) 부활이,

오늘 나의 현재의 삶속에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의 제자들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그들은 겁이 나서,

모두 방안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지난 3년간의 모든 사역들이, 실패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예수 처형의 후폭풍으로,

자기들에게까지 화가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얼마 가지 않아서, 예수님을 심문했던 바로 그 공회 앞에서

베드로가 겁이 나서, 계집종 앞에서 3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도대체 그 용기가 어디서 나온 것이었을까요?

그 용기의 근원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을, 자기들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까,

자기들이 죽는 것도.. 그들은 겁을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오히려 공회 앞에서 호령했습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려/ 부활시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행2:36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의 담대함은.. 전적으로 부활신앙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핍박이 심하고,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처럼, 나도 부활한다.’

이런 신앙으로.. 그들은 죽음의 핍박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당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부활신앙입니다.

 

▲위 3가지 차원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하나입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부활도 믿고, 장차 나타날 미래의 부활도 믿는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현재적 부활신앙’에 있어서는 미온적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현재의 삶이

나약함/좌절감/실망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립니다.

 

물론 눈물, 한숨, 탄식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현실이지만,

그러나 현재적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다시 말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지켜주시고, 나와 교제하시는 사람은

그렇게 절망의 늪에 오래 동안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듯이

    오늘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령의 모습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의 제자들처럼,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27

이것은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인데,

단순히 ‘부활을 믿는 자가 되라’는 뜻 이상으로

‘평소에 좀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라’라는 뜻이라고 나는 그렇게 봅니다.

 

도마가 평소에 늘 회의적이고, 잘 믿지 못하는 삶을 사는데 대한..

주님의 권고라고 봅니다.

‘의심하는 체질로 살지 말고, 믿는 체질로 살아가라’는 뉘앙스가 강한 말씀입니다.

 

의심이 많으면.. 사실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의심하는 사람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믿음을 근거로 세워지고, 지탱되어져 나가는데,

믿음이 없으니까..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말씀을 드리다 보니까 생각이 납니다.

    스탈린은, 그 넓은 러시아 대륙을 다닐 때, 꼭 전용열차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비행기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아무리 고생이 되더라도, 상관없이 기차를 탔던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고생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믿음이 없는 사람은.. 가장 큰 피해는, 자기가 당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고생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성도는 믿음이 있으니까, 새벽에도 새벽기도 마음 놓고 다니잖아요?

음식도 마음 놓고 먹잖아요?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 하면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20:29

예를 들어서,

남녀가 만나서, 교제하다가, 결혼을 할 때

어느 정도 서로를 신뢰할 때가 되면..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다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없으니까

요즘은 한 번 같이 일단 살아보고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아니면, 서로를 깊이 알 때까지, 교제를 질질 오래 끕니다.

그렇게 ‘믿음’이 없으면.. 결국은 당사자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20:29

하신 말씀을 붙잡고

약 1년 정도 교제한 후에는..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속속들이 알고서 뭘 하겠다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며,

세상 일이 그렇게 되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다 알고 나서 보면, 다 캐고 나서 보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더라’

이렇게 되면, 사회가 아예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믿어지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이 믿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사실상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니까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1;8~9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신뢰의 문제는.. 사실상 그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셈이지요.

사람도..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된 셈이지요.

(물론 기도하며 성령 안에서 분별해야지요. 다만 과도한 의심과 불신은 자기 문제라는 뜻)

 

▲기록의 증거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성경(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문맥에 의하면)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믿게 하려함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성경은, 주님을 보지 못한 자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우리는, 비록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뵙지 못했지만,

성경을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설마 내가 믿는 예수님이 부활을 거짓말하시겠습니까?)

 

    여러분, 경험은 40~50년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집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50년 전 사건을 떠올려 보십시오. 분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흐릿한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그 때 당시에 제자들이 기록했고, 그 기록이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서,

    가물가물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것입니다. (체험보다 기록이 더 정확합니다.) 

   

    물론 우리가 믿음으로, 사랑으로 예수님과 그 부활을 믿지만,

    기록된 성경으로도.. 예수님을 분명히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복된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2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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