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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11일] 경건의 기본적 속성(전 5:1~7)

by 【고동엽】 2022. 10. 23.

[2022년 09월 11일] 경건의 기본적 속성(전 5:1~7)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xCszcQfuun8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구약성경 전도서 5장 1절부터 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952면입니다. 952면의 구약성경 전도서 5장 1절부터 봉독하겠습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는 하나님 앞으로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하는 것이라.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는지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라.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도 네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게 하랴.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아멘.


10년 동안 교회 생활을 잘하고 있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날이 되어서 두 분이 같이 교회에 나가야 하겠지만 부득이 그 부인이 교회에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교회에 빠지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할 수 없이 제가 교회를 못 나가게 되니까 당신 혼자 나가요. 나가는 데에 부탁이 있어요. 내 몫까지 가서 은혜 많이 받고 오라고. 그런데 부탁이 있는데, 당신 늘 중간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던데 오늘만은 내 부탁이니까 맨 앞에 앉으라고. 이유를 묻지 마라. 맨 앞에 앉으라고. 두 번째, 가끔 설교 들을 때 졸던데 오늘만은 졸지 마라. 내 부탁이니까 부부 몫으로 교회에 나가는 거니까 맨 앞에 앉아서 졸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약속했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다고. 그리고 교회에 가서 정말로 교회에 다닌 지 10년 됐는데 10년 만에 처음으로 맨 앞에 앉았습니다. 앉아서 집중해서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내가 교회 다닌 지가 10년인데 이렇게 가슴이 시원하고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은 그런 은혜를 받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부인이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부인의 뒤태 모습이 이렇게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까이 가서 뒤에서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 부인의 말에 의하면 신혼여행 때 딱 한 번 들어보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말로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었습니다. “그래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은혜 많이 받았지? 무슨 말 하느냐?” “아예 그건 비밀이라고.” 끝까지 대답을 안 합니다.

다음 주일 날 교회에 나갔습니다. 교회에 나간 다음에 이 이야기를 목사님에게 했습니다. 그 부인이 말하기를 “아이, 이 남자 남편이 딴 사람이 됐어요. 지난 주일날 와서 은혜 받고 가서 아주 딴 사람이 돼 가지고 얼마나 저를 사랑해주는지 아주 감격하고 행복하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물었어요. “지난 주일 설교 중에 어떤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부인 남편이 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네 원수를 사랑하라.”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경건 생활이라는 이 뭡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본 자세가 경건입니다. 늘 꼭 잊지 마세요. 내 마음 내 멋대로, 내 욕망 그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내 뜻을 관철하려고만 하는 제발 고집 부리지 마세요. 그러다가 손해 봅니다. 그러죠?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경건, 경건이 기본 자세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하는 마음입니다. 그 첫째가 뭐겠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입니다.

내가 내 처지에 있으면서 난 나대로 그대로 있고 변화가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만 구해요. 그저 "능력도 주세요, 권력도 주세요, 재물도 주세요, 직업도 주세요." 뭐, 나는 나대로 그대로 부동 자세로 있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가까이 오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오기만 바라는 거예요. 이건 경건이 아니에요. 이거는 성서적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이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처지에 와서 내 소원을 들어주고 내 욕망을 채워주는 그런 능력, 그런 지혜를 구하는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내 처지를 떠나서 하나님께로 가는 겁니다. 내 마음 자세가 그 위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다윗 왕입니다.

다윗 왕은 성경 중심으로,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장막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특별히 시편 84편에 보면 그는 하나님의 전을 사모했습니다. 심지어는 제비와 참새를 부러워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피난 길을 다니고 있는데 제비와 참새는 마음대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는구나.” 제비와 참새를 부러워했고요. 그리고 말합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성전 중심의 사람입니다. 사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의로운 자는 아닙니다. 깨끗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군사로서 많은 범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본 것은 다름 아니라 성전을 지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 나단 선지자를 불러서 성전을 지어야겠다고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백향목 궁전에 있는데 여호와의 궤는 저 수장된 가죽 천막 속에 있다니 둘 수가 없다.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지어서 여호와의 궤를 그 안에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을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말할 때 하나님 대답하십니다. “내가 언제 너더러 성전 지으라고 하더냐?” 이 아주 오묘한 말씀입니다. “언제 불편하다고 하더냐? 언제 너더러 성전 지으라고 하더냐? 어떻게 그런 생각, 자원해서?” 자원해서 성전을 지으려 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을 주십니다. 영원한 복을 주십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성전 지으려는 마음, 성전 중심 신앙을 가져서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디 가나 꼭 거처를 회당을 중심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지 가보면 회당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12 사람만 모이면 회당을 짓고, 회당을 중심으로 뺑뺑 돌아가면서 삽니다. 절대 경치 좋은 곳으로 먼 곳으로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회당 중심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수시로 회당에 출입하면서 안식일 날이 되면 회당에 나오고 회당과 가정과를 연결하며 이렇게 살아갑니다. 참으로 특별합니다. 그것이 그 성전 중심 그 공간도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미안한 얘기입니다만은 제가 소망교회에서 목회할 때 새벽기도 많이 나왔어요. 정확히 2,000명까지 새벽기도 나올 때입니다. 모든 분들이 다 새벽기도 나오려고 뭐 이렇게 애를 쓰고 있을 때입니다. 더 미안하지만 장로님들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은 장로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이거는 다 다음 장로 되기 위해서라도 새벽기도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런 분위기가 되었는데 어떤 분이 제게 물어봐요. “목사님 저는 새벽기도 나가고 싶지만 집이 워낙 멀어서요.” 그러더라고요. 그 뒤에 대답 안 했어요. 속으로 했어요, 속으로. "집이 그렇게 대단하냐. 왜 그렇게 먼 곳에서 오래 살 거냐? 팔아 치우고 이 근처로 이사 와야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빚질까 봐 말 안 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 집이 대단합니까? 성전 중심으로, 그래서 그저 나와서 수요 저녁 기도도 나오고 새벽에도 나오고 그게 사는 것이 경건이에요. 이걸 잊지 말아야 돼요. 성전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해요. 그래서 먼 벌판에 나가서는 회당을 지어요. 회당 짓고 뺑뺑 돌아가며 자기들 살다가 또 그 동네가 커지면 팔아 가지고 또 안 될 곳에 가서 또 집 짓고. 많은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것이 경건입니다. 성전 중심으로.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다음으로 생각할 것이 뭡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이제는 듣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심판이라는 게 뭡니까? 듣는 마음이 없어지는 거예요. 들려지지 않는 거예요. 믿어지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고통이 즐길 것이 뭡니까? 믿어지지 않는 거예요.

어느 부부가 너무 부부 사이가 나빠져서 둘이 간절한 마음으로 와서 상담을 한 일이 있어요. 아주 마지막 상담을 한 거예요. 그때 다 듣고 나서 그랬어요. “애도 셋이나 되고 한데 이럴 텐데, 저럴 텐데, 웬만하면 서로 참고 이해하고 그냥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물어보았어요. 했더니 그 부인이 한 말 잊을 수가 없어요. “예, 그렇죠. 참아야죠. 애들을 위해서라도. 그러나 이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요. 믿어지질 않아요. 맹세를 해도 이 사람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감당하겠습니까?”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갔죠? 가장 큰 은혜가 뭡니까? 믿어지는 거예요. 들려지는 거예요. 가슴으로 환영하게 되는 거예요. 가슴 열고 북한말로 할까요? 전복적으로 받아들일, 전적으로 수용하는 그 마음. 그것이 바로 은혜란 말입니다. 그것이 경건이에요.

그래서 솔로몬 왕은 스무 살에 왕이 되지 않습니까? 여어, 어린 나이로 어린 나이에 왕이 됐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아, 너는 내게 구하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 솔로몬은 대답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주세요.” 여러 가지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딱 한 가지, 딱 한 가지 지혜로운 마음을 주세요.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왕권은 주세요, 권력을 주세요, 재물을 주세요, 능력을 주세요." 아니에요. "지혜로운 마음을 주세요."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예, 아니 장수도 있고 권력도 있고 능력, 재물도 있고 구할 것이 많은데 어째서 그 한 가지를 구했느냐?” 하나님이 너무 기뻐해서 하나님이 감동을 해 가지고, 뭐 내가 볼 때는 좀 오버하는 것 같아요. 왜인지 아세요?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었다” 그랬어요. 전무는 마음에 들어 하지만 후무는 좀 빗나간 것 같잖아요. 왜 솔로몬까지? 왜요?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셨어요. “어떻게 그것을 구했느냐? 어떻게 그 한 가지를 구했느냐?” 그 경건에 하나님께서 복을 더해 복 주십니다.

그게 뭔지. 그 지혜로운 마음이에요. 히브리어로는 ‘레브 쇼메아’입니다. 이 '레브'란 말이 마음이라는 말이고 '쇼메아'는 듣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옛날 영어 번역에는 'very heart' 듣는 마음이라고 번역을 한 일도 있습니다. 지금은 'understanding mind'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같은 말입니다. "듣는 마음. 하나님이여, 듣는 마음을 주세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백성의 말을 들을 듣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양심의 소리를 듣는 마음을 주세요." 하나님 앞에 고할 때 하나님은 어찌 기뻐하셨는지. 전무후무하게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어서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요, 지혜의 대명사요. 솔로몬 하면 지혜, 지혜 하면 솔로몬. 오늘까지 그렇게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장 큰 경건이 뭡니까? 듣는 마음이에요. 가장 큰 인격이 뭡니까? 듣는 마음이에요. 가장 큰 행복이 뭡니까? 들려지는 마음이에요. 믿어지는 마음이요. 그러면 가장 무서운 것이 뭐냐? 불신, 불순종, 고집, 완악함이에요. 들려지지 않아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아요. 믿어지지도 않아요. 그러면 심판 받은 겁니다. 그걸 현재적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여기에 신학적인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십계명 중 이 계명에 보면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 계명입니다. 우상 섬기지 마라. 그 우상을 잘 분석해 보면요, 그게 뭡니까? 보는 것이 보고 싶은 거예요. 하나님은 듣는 거예요.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보려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말입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 밑에서 범죄하지 않습니까? 그 범죄가 뭔데요? 우상을 만들었어요. 모세가 보이지 않잖아요. 모세가 보이지 않아요. 그 보는 것을 만들어서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습니까? 이 보려는 마음. 그게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많이 보려는 마음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보면 뭐 아무리 봐도 여기 붙여 써 놓은 게 없어요. 그러나 어떤 교회 가 보면 도대체가 그거 다 보려면 1시간 걸려요. 뭐 무슨 교회, 무슨 교회, 기도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 뭐라 한참 써 붙였어요. 우리 예쁘게 다는 마음에 안 들어요. 여러분, 경건은 뭡니까? 보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에요. 보고 좋아하는 욕망을 포기하고 듣는 마음으로 바꿔야 돼요. 봐야 준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보려고 하지도 마세요. 듣는 거예요. 겸손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오. 믿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겸허한 마음으로 듣는 것이오. 이것이 경건이에요.

그런 다음에 좀 더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구하지 마라.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빠져서 조급하게 “하나님, 왜 역사가 최고만 주십니까? 당장 출세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조급한 마음을 버리라. 왜요? 우리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이에요. 미약하고 우매하기 때문이에요. 간절히 간구하세요. 기도하세요. 열심히 기도해요. 그러나 응답은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혜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섭리 중에 응답하실 거예요. 그걸 인정을 해야 돼요. 내 좁은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심판하고 조급하게, 조급한 마음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기도하더라도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대표적인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보세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세요. 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해 주세요.” 다음 말이 뭡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지혜, 아버지의 능력, 아버지의 섭리 속에 몰입할 것이고 기다리라는 거예요. 그게 경건이에요. 그런 걸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고 이제는 좀 더 경건하게, 경건한 자세로 기도해야겠단 말입니다.

여러분, 잘 아는 록펠러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47세에 당대의 큰 재벌이었지만 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1년밖에 못 산다고. 그걸 알고 그는 조금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래, 1년이면 얼마나 중요하냐. 1년 동안을 바로 살아야겠다.” 하고 살게 됩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일생을 통해서 언제나 주일이면 꼭 예배해라. 이유를 묻지 마라. 매일 주일 교회에 나가서 맨 앞에 앉아라.” 딱 한 마디. 두 번째는 “십일조를 바쳐라.” 세 번째는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들어라. 하나님 말씀으로 들어라.” 그대로 했습니다. 했는데 98세까지 살았습니다. 교회를 400개나 세우고 대학을 5개나 세우고 병원, 양로원. 엄청난 미국의 역사가 말하는 최고의 근본 가문 록펠러가 있습니다.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 축복입니다.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 은사입니다. 들을 수 있는 믿음이 생기라는 것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 요한복음 3장에, 14장에 보면 루스드라에 앉은뱅이가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어서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가까이하여 들었습니다. 집중적으로 들었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사도 바울이 설교를 듣습니다. 듣는 모습을 보고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일어나 걸으라.”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기적은 여기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경건에 있습니다. 집중하여 듣고 들려지는 대로 순종할 때 거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참 경건. 좀 더 경건, 좀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경건.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경건한 신앙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저희들을 주의 전으로 불러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만큼 주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또 주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을 기뻐하게 하시는 중에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경건 위에 경건을 더하사 주님 앞에 가까이 하게 하시고, 다윗처럼 솔로몬처럼 또한 하나님의 귀한 종들처럼 주의 말씀을 듣고 주의 말씀에 응답하며 살아가고, 경건을 열매로 살고, 경건을 통해 주의 능력을 우리 현실에서 매일매일 체험하며 주를 찬송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 내용 요약: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한 자세 (전도서 5:1-7 중심)

본 설교는 구약성경 전도서 5장 1절부터 7절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한 자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1. 📖 본문 말씀의 핵심 (전도서 5:1-7)

  • 말씀을 듣는 자세: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발을 삼가고(조심하고),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가 악을 행하며 깨닫지 못하고 드리는 제사보다 낫습니다 (1절).
  • 말과 서원을 조심: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거나 급한 마음으로 말하지 말고, 말을 적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됩니다 (2-3절).
  • 서원의 이행: 하나님께 서원했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서원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4-5절). 입술의 실수로 서원한 것이라 변명하며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6-7절).

2. 🔑 경건 생활의 기본 자세: 하나님께 나아감

  • 경건의 정의: 경건 생활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며, 성도의 기본 자세입니다. 내 뜻이나 욕망을 관철하려 고집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 신앙의 방향: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자기 처지에서 구하며 하나님이 오시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처지를 떠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3. 🏛️ 경건의 구체적인 두 가지 태도

A. 성전 중심 신앙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마음)

  • 다윗 왕의 예: 다윗은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성전(장막) 중심으로 살았고, 시온의 대로가 마음에 있는 자와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자를 복되다 여겼습니다.
  • 이스라엘인의 자세: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회당을 중심으로 거처를 정하고 수시로 출입하며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 적용: 성전 중심으로 삶을 살며, 예배에 힘쓰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B. 듣는 마음 (레브 쇼메아, $Lev~Shomea$)

  • 듣는 것의 중요성: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가장 큰 은혜는 말씀이 믿어지고 들려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경건입니다. 들려지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것은 심판받은 상태입니다.
  • 솔로몬 왕의 예: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구한 것은 오직 지혜로운 마음 (히브리어: 레브 쇼메아, 듣는 마음) 단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경건한 기도에 기뻐하시어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 보는 것 vs. 듣는 것: 우상 숭배는 보려고 하는 욕망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것)의 문제였으며, 경건은 보려고 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듣는 마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겸손과 존경, 믿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4. ⏳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림 (예수님의 기도)

  • 응답은 하나님께: 조급한 마음으로 자신의 중심적인 생각에 빠져 빨리 응답해 달라고 구하지 말고, 간절히 기도하되 응답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 예수님의 모범: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후,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뜻, 지혜, 섭리 속에 몰입하고 기다리셨습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5. ✨ 결론: 듣는 경건 속에 기적이 있습니다

  • 들을 수 있는 축복: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 마음, 믿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사입니다.
  • 앉은뱅이의 예: 루스드라의 앉은뱅이가 사도 바울의 설교를 집중하여 듣고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바울이 보고 "일어나 걸으라" 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참된 경건: 말씀을 듣고, 들려지는 대로 순종할 때 거기에 기적이 있으며, 더욱 경건 위에 경건을 더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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