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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28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눅 11:9~13)

by 【고동엽】 2022. 10. 23.

[2022년 08월 28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눅 11:9~13)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apx6gqBGfFo


📖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성경 누가복음 11장 9절로 13절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 112면입니다. 112면 누가복음 11장 9절로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주와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마다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조지 워싱턴이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서 시장에 갔었습니다. 마침 제철이라서 잘 익은 앵두가 큰 그릇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조지 워싱턴이 보았습니다. 그는 앵두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것이 먹고 싶어서 거기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이것을 본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얘야, 너 저 앵두 먹고 싶으냐?" 조지 워싱턴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주인은 말했습니다. "네 손으로 한 움큼 가져다가 먹어라." 했는데, 조지 워싱턴은 요지부동입니다.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얘야, 한 움큼 가져다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했는데도 여전히 서 있었습니다. 마침내 좀 있다가 할아버지가 직접 자기 손으로 한 움큼 쥐어서 조지 워싱턴에게 주었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이것을 받아 가지고 "감사합니다. 땡큐."라고 말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야, 워싱턴아, 너 할아버지가 한 움큼 갖다 먹으라 했는데 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냐? 아무리 뭐라 뭐라 해도 왜 그렇게 먹지 않고 서 있었냐?" 그러니까 조지 워싱턴이 그 어린 아이가 하는 말 좀 보세요. "내 손은 작고 할아버지 손은 크거든요. 할아버지 손으로 주어야 이게 많지요. 내 손으로는 작아요." 얼마나 중요한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 손은 작고 하나님의 손은 크여!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새 이런 말이 있습니다. '3대 착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같이 생각해 보세요. 첫째 착각이 뭐냐면,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착각합니다. 여러분, 마음이 안 보입니까? 그 얼굴에, 행동에, 거처에 다 나타납니다. 마음이 환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고 착각을 하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얼굴은 내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천만에요. 거울 볼 때만 딱 한번 내가 보는 거고, 그 외는 다 다른 사람이 보는 거지, 내 얼굴은 내 것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언제 내 얼굴을 내가 봅니까? 그러니 자기가 자기를 본다는 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한 가지는 '나에 대해서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큰 착각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됩니다. 모든 일에서 나보다 저 사람이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그게 아닙니다. 내가 제일 잘 알고 다른 사람은 나를 모른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제일 잘 압니까? 솔직히 말합시다. 제일 모릅니다. 자기가 제일 모르는 것이 자기 자신입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지식,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이 보는 나, 그것을 내가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인간 관계는 발전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나는 아니오, 전혀 아니오"라고 부정해 버리면 그때부터 인간 관계는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거 아주 중요한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나의 '나됨'의 존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나를 알 수 있습니까? 꼭 알아야 하겠는데요. 종교개혁의 역작인 칼빈은 그의 책에서 강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나 자신에 대한 지식이 있을 수 없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로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 없을 때, 그리고 세상을 봅시다. 하나님 없이 세상을 본다, 그러면 유물사관에 빠집니다. 오직 유물주의, 유물사관에 빠집니다. 그러면 세상 논리는 딱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생존 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 요 세 가지입니다. 생존 경쟁이니까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는 겁니다. 약육강식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어 버립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는 것처럼 약육강식, 그리고 적자생존인 것입니다. 이거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거 위에 더 찾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무서운 재앙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요, 그것이 유물사관이요, 그것이 사람들이 통보하는 철학의 눈을 이목 돋우기요 됩니다. 이렇게 보면요, 엄청난 결과가 옵니다. 동물과 사람이 똑같습니다. 같은 소율이 있는 겁니다. 누가 더 강하냐 약하냐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그래서 유물사관에 빠졌던 분, 이런 분이 뒤에 책을 썼어요. 이어령 씨가 책을 쓴 걸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자기가 하나님 없이 살아갈 때 동물원을 방문했더니, 동물원에서 거기 침팬지도 있고, 뭐 그 오즈그 원숭이도 있구나 있잖아요. 그걸 보면서 생각하기를 **"네가 내 할아버지냐?"**라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유물사관을 버리고, 탕자가 돌아오는 것처럼 하나님을 찾고 보니까 그때 가서야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다 이뭐 당시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없이는 나 자신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내 존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너무나도 중요한 비유를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탕자가 집을 나갑니다. 아버지가 생존하기도 전에 유산을 내라 합니다. "내게 올 몫을 주세요." 그 요건은 모름지기 아버지가 마련했겠지요. 그러나 그는 뿌리치고 고향을 떠납니다. 허랑방탕해서 많은 재산을 다 없이 하고 거지 신세가 되고 심지어는 돼지 치는 집에 가서 쥐엄 열매의 그것을 주워 먹으면서 배를 채우려고 합니다. 아, 고생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 집을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 집에는 풍부도 많고 일꾼도 많고 음식도 넉넉하고 풍부한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하고 회개합니다. 탕자가 돌아왔지만은 사실 생각하면 회개하고 아버지를 생각하고 돌아온 것 같지 않아요. 배고파서 돌아온 거예요. 주워 먹기 위해서 그냥 기어 들어온 거예요.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선하고 아름답지 못해요.

그러나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는 기다렸다가 아직도 상거가 먼데 달려가서 아버지가 아들을 끌어안고 "이는 죽었다가 살았고 잃었다 얻었노라" 잔치를 하자. 이렇게 아버지가 기뻐합니다. 그 순간 아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게 궁금해요. 성경에 없어요. 그 아들을 생각했을 겁니다. **"이러지 마세요. 이렇게 되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라고 생각을 했을까요? 아니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돌아올 걸!" 그렇게 그 생각 밖에 없었어요. 아버지 사랑 안에서 모든 자존심 다 녹아 버렸어요. 이렇게 아버지가 기뻐하는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걸. 다시 한번 생각하면, 나 자신을 생각할 때는 숨을 쉴 틈도 없어요.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할 때는 나는 소중한 존재요, 아주 소중한 존재, 아버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걸 여기서 깨닫는 거예요. 그것이 자기 존재 의식입니다.

여러분, 내가 나를 본다고 내 능력을 보고 내 지식을 보고 내 재산을 보고, 아니,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아야 됩니다. 그때만이 나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고,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고! 이거 잊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 너무나도 잘 아는 요절이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기까지 사랑했단 말이에요. 그만큼 나는 소중한 존재요, 아주 소중한 존재요. 큰 거로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내 몸도, 마음도, 가진 돈도, 시간 보내는 것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 생각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칠 때도 있고, 나약해지기도 하고 할 때마다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했네. 10년을 기도하고 나를 낳고, 그 늙은 어머니가 떠날 때 "내가 집을 떠난 다음에도 나는 죽을 때까지 너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너도 이 시간에 기도하라." 그러므로 저와 우리 어머니가 나를 기도한 그 위에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그 속에 내 존재가 있는 거예요. 그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 자신의 능력과 내 자신의 의지에 있는 게 아니고, 나를 위해서 희생하시는 거룩한 사랑 그 속에 내 존재가 있다는 걸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을 보면 더 귀중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입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한 고백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여러분, 내가 잘되고 못되고, 받고 못 받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이가 어찌 안 주시겠느냐? 다 주실 거죠. 당연히 받을 거죠. 믿고 그 속에서 나를 생각해 보세요. 내 존재가, 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예, 이것 같은 지식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그 속에 나의 존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주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으니까. 그 다음에 우리는 받았다는 걸 잊지 마세요. 받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나는 그만큼 소중한,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걸 항상 확인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가 보다.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가 보다"**라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좌절할 때가 있거든요. 이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7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너희를 아, 그 아들과 같이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아니하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징계가 없으면 사생하여 참 아들이 아니니라."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징계처럼 느끼는 사건들이 있거든요. 실패가 있고, 질병이 있고, 환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확실히 있습니다. 그러면 이 고난 속에서 생각할 것이 뭡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생각하는 데는 더 큰 사랑이요." 집을 나가겠다는 아들을 나가라고 내버려 두는 아버지 사랑. 그러나 그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큰 사랑이요. 돌아올 때 환영하는 아버지, 이건 어떤 사랑이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을 **'진노적 사랑'**이라고 합니다. 래스풀 러브(Wrathful Love).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낭만적인 게 아닙니다. 그 어머니 사랑처럼 눈물이나 흘리는 이런 게 아닙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확실히 다가오고, 그리고 환난 속에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듭니다. 만들어 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의지요.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진노가 곧 진노가 아닙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진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저는 아시지 않습니까? 참으로 참된 효자는 아버지 징계를 받으면 감사합니다. 매를 맞으며 오히려 감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징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그 귀절 수 한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겁고 아픕니다. 이사야서 1장 5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더 맞으려고 하느냐? 너희들이 잘못 되기 때문에 사랑하는 내가 너희를 징계할 수밖에 없다. 그래 때렸는데 어찌하여 더 맞으려고 하느냐? 채로 맞은 흔적뿐이요 싸맬 곳이 없는데 어찌하여 더 맞으려고 하느냐?" 하나님에게 눈물이 있어요. 이것 알아야 한다. 여러분. 아니, 때릴 수가 없어요. 때려야 해요. 때리면서 오히려 때리는 자가 우는 거예요. "어찌하여 더 맞으려고 하느냐?" 취한 듯이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이런 진노적인 사랑, 확실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느껴야 합니다. 매를 맞으며 감사해야 됩니다. 매를 맞으며 더 감사할 것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잘 될 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안 될 때 더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길을 가로막을 때 이것이 새로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더욱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13절 오늘 본문에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우리 부모의 본성이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좋은 것으로 그렇게 줄 줄 알거든 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예요. 그때 하물며 하나님께서 안 주시겠느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겠습니까? 받았다는 것이죠. 만일에 내가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내 그릇이 잘못된 거예요. 내 생활을 고쳐야 돼요. 내 그릇을 고치고 하나님이 주실 거예요. 내 버릇을 고치고 주실 거예요. 내 인격을 고치고 하나님 원하시는 형태로 만들고 주실 거예요. 그 믿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한다. 오늘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그때마다 생각합니다. 기도합니다. "더 좋은 것으로, 이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하나님은 주시려 하십니다."

저는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 뜻대로 안 될 때가 늘 있죠. 그때마다 저는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하나님의 기쁩니다. 이쪽 길을 막으시니 저쪽 길로 열어 주시는 거라. 뜻이 안 될 때 절로 인도하는구나.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1977년에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나왔을 때, 가족들이 있으니까 부지런히 나오긴 나왔지요. 하지만은 아주 막막해요. 길이 열리지를 않아요. 꽉 막혔어요. 이거 얘기할 테니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한경직 목사님을 만났는데 한 목사님 말씀이 "이 사람아, 그렇게 아무 계획도 없이 불쑥 한국에 돌아오면 어떡하나?" 믿음으로 산다는 게 뭔데요.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줄 알고 내가 한국에 도착하면서 맨 처음에 오라는 데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가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한 목사님이 껄껄 웃으면서 "그 믿음은 좋은데 말이야..." 걱정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모두가 "인지 인"이라 다음에 길은 줄 알았는데 엉뚱한 일을 했지. 그리고 소망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되기 때문에 소망 교회를 세운 겁니다. 내가 본래 바랐던 대로 여기서 오라고 저기서 오라고 하는 그대로 갔다면 내 운명은 전혀 달라집니다. 내가 가려던 길을 가로막고 더 넓을 곳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현실 속에서 우리가 뜻대로 안 되는 일을 많이 만납니다. 그럼 간절히 원하는데 질병이 있고, 성공은 하는데 실패가 있고, 좋은 일이 조직이 바라는데 배신을 당하고 무너지는 현실을 보면서 절망하겠지만, 인간 평국의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 당신의 의지를 나타내 주십니다. 여러분, 꼭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 속에 구체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보다도 확실한 내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세요. 더 좋은 것으로, 그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하시는 하나님. 이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뜻대로 안 된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가슴을 열고 주님을 바라보아 다시 한번 생각하세요.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한이 사랑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그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더 좋은 것을 받을 준비가 바로 자신에게 있습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주님 앞에 저희를 불러 주시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놀랍게 우리 생애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오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비옵건대, 세월을 살아가며 남은 생을 살아갈 때 "더 좋은 것으로," 내가 생각했고 내가 기도한 것보다 더 큰 것으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 내용 요약: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우리 존재의 소중함

이 설교는 누가복음 11장 9-13절 말씀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인간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 누가복음 11:9-13 말씀의 핵심

  •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입니다. 이는 구하는 이에게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 하늘 아버지의 더 좋은 선물: 악한 인간 부모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강조하며, 하나님은 인간적인 기준보다 훨씬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확신시킵니다.

2. 🍒 조지 워싱턴 일화: 하나님의 크신 손

  • 어린 조지 워싱턴이 시장에서 앵두를 보고 주인이 자기 손으로 가져가 먹으라고 했음에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 그 이유는 "내 손은 작고 할아버지 손은 크거든요. 할아버지 손으로 주어야 이게 많지요."
  • 핵심 교훈: 우리의 작은 손이 아닌, 하나님의 크신 손으로 받아야 가장 풍성하고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3. 🤔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3대 착각'

설교자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착각하는 세 가지를 지적하며,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1.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은 얼굴, 행동, 거처에 나타나 환하게 보입니다.
  2. '얼굴은 내 것이다': 거울 볼 때 외에는 타인이 내 얼굴을 봅니다. 내 얼굴은 내 것이 아닙니다.
  3. '나에 대해서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이것은 큰 착각이며, 나보다 타인이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할 때 인간관계 문제가 해결됩니다. 솔직히 자기가 자신을 제일 모릅니다.

4. 💡 하나님 지식과 나의 존재

  • 칼빈의 강조: 종교개혁자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나 자신에 대한 지식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 하나님 없는 세상: 하나님 없이 세상을 보면 유물사관에 빠져 생존 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 가지 논리만 남게 됩니다. 이는 사람을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만듭니다.
  • 이어령의 고백: 유물사관에 빠졌다가 하나님을 찾은 이어령 씨의 고백처럼, 하나님 안에서만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5. 💰 탕자의 비유와 존재의 소중함

  • 탕자는 배고픔 때문에, 다시 말해 '주워 먹기 위해서' 돌아왔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 그러나 아버지는 달려가 끌어안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 탕자가 깨달은 것: 아버지가 이렇게 기뻐하시는 줄 알았으면 "진작 돌아올 걸!" 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자존심이 녹아내렸고, 자신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 결론: 우리는 내 능력, 지식, 재산이 아닌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아야 비로소 자신을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한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6. 💖 진노적 사랑 (Wrathful Love): 징계 속의 사랑

  •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 징계의 의미 (히브리서 12:7): 우리가 겪는 실패, 질병, 환난 등 징계처럼 느껴지는 사건들은 사실 우리를 아들같이 대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닙니다.
  • 이사야 1:5: "어찌하여 더 맞으려고 하느냐?"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아프지만 사랑 때문에 징계하시고, 오히려 더 맞으려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보고 눈물 흘리십니다. 이 진노적 사랑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7. ✨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하나님

  • 믿음의 태도: 우리는 뜻대로 잘 될 때뿐만 아니라 뜻대로 안 될 때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길을 막으실 때, 그것은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 목사의 간증: 설교자 본인도 삶의 막막한 상황(한국 귀국 후 길이 막혔을 때)에서,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더 넓은 곳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 결론: 현실의 어려움과 실패, 배신 속에서 절망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 속에 구체적인 사랑이 있고, 하나님은 이보다 훨씬 더 큰,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 설교의 마무리 기도:

남은 생을 살아가며 내가 생각하고 기도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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