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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마치고, 지켰으니 딤후4:7~8
▲사명자의 길은?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로 산다는 것은,
소풍을 가듯이, 즐기며 흥미진진한 일 만이 아닙니다.
그 길을 가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난적과 난제들이 있는데, 요약하면
마귀의 훼방과, 세상의 대적과, 자기 자신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아래 본문은,
사도바울이 어떻게 그 사명자의 길을 걸어갔는지,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한 마디로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 싸우고
2. 마치고
3. 지켰으니..
의 길이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4:7~8
◑1. 싸우고
▲1.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악한 싸움’을 싸우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은 좋은데,
악한 싸움을 싸웁니다. 악하게 싸운다는 말입니다.
교인과 교회는 선한 목적을 위하여 싸우고,
그 방법도 역시 선해야 합니다. 즉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상해, 덫 놓기, 비방성 보도, 그 외 비열한 방법 등
그런 식의 싸움을 해서는.. 주님의 도우심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싸운다면, 그 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악한 방법으로 싸우면... 그 자체가 ‘악한 싸움’인 것입니다.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2. 마치 원형경기장에서 싸우듯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웁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말의 헬라어<아고니조마이>의 어근은 <아곤>인데,
이는 선수들이 원형경기장에서 혼신을 다하여 싸우는 모습을 그리는 말입니다.
그런데 원형경기장에서 사람과 맹수가 싸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운동장 가운데 사자 같은 맹수와 사형수를 싸움을 시킵니다.
그러면 사자밥이 되느냐, 살아남느냐..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맹수와 싸워서 이기면 살려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건 결사적인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수 만 명의 군중들은, 그런 실제적이고 잔인한 싸움을 보면서 즐겼습니다.
이 때 사형수는 죽느냐/사느냐의 싸움이라.. 그야말로 필사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서 지냈으니까, 이런 경기를 보았거나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생각하며, 감옥에서,
자기는 선한 싸움을 일생 싸워 왔다(아고니조마이)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이, 그만큼 싸우기에 힘들고 어렵다는 말입니다.
▲딤후4:7절의 ‘싸우고’와 같은 단어가 쓰인 다른 구절 보기 (재미있습니다) *헬, 아고니조마이
눅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3.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내가 가장 이기기 힘든 상대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주1)
◑2. 마치고
▲<마치고>라는 말은.. 앞서 목표가 분명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산 정상에 오르려는 이는, 정상에 도착하면 <다 왔다>라고 말합니다.
산 아래에서부터, 산 정상을 목표로, 계속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목표가 없으면.. 마침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 마쳤는지, 아직 못 마쳤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표(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분명한 사명)가 없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목표가 분명하였습니다.
온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목표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바울은 이방인의 선교사로서 최종 목표가 있었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심는 것입니다. 당시 온 세계를 지배한 나라가 로마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온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온 세계를 향하여 길을 닦았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복음이 그 길을 타고 온 세계를 향하여 뻗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울의 생각은 그대로 맞았습니다.
로마 복음화는 온 세계 복음화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복음을 심고, 후에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여러분은 금년에 아직 두 달이 남았는데,
<금년에 할 일을 다 마쳤다>라고 고백할 만한 목표가 있습니까?
금년 12월말에 <금년에 할 일을 다 마쳤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여러분은, 5월말에, ‘5월 달에 할 일을 다 마쳤다. 다 이루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만, 인생의 황혼에도, 사도바울처럼,
‘내가 다 마쳤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자기 삶에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입니다.
▲치타의 집중력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아프리카 정글에 표범같이 생긴 치타가 있습니다.
동물 중에 가장 빠르게 달리는 동물입니다.
한 시간에 70 km를 달릴 수 있습니다. 차와 경주할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치타가 먹이를 구하러 다니다가,
사슴 수 십 마리가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멀리서 봅니다.
그러면 그 중에 딱 한 마리를 목표로 정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물만 보고 맹추격을 합니다.
바로 옆에 다른 사슴이 있어도 멈추지 않습니다.
오직 처음에 정한 그 목표물만 바라보고 달립니다.
그래야 기어코 그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것 쫓다가, 저것 쫓다가 하면.. 결국 먹잇감을 놓치고 맙니다.
집중하는 사람만 <마칠 수> 있습니다.
이리 저리 기웃거리면.. 마치지 못합니다.
성공적으로 사명을 바울처럼 감당하려면 세 가지 핵심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1. 싸우고
2. 마치고
3. 지켰으니
이제 ‘지켰으니’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3. 지켰으니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믿음 하나 지키려고
지금까지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고생을 하여 왔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얼마나 손해 보는 일들을 많이 당했어도,
믿음을 지키고, 죽기까지 걸어가는 삶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방파제가 없으면, 큰 일 납니다.
여러분이 간척지 안에 산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바다의 수위는 지금 여러분이 누워 있는 간척지 안의 집 보다 5~6미터 더 높습니다.
그런데 간척지 안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 제방을 없애버려야 할 것 같아.
· 답답하잖아. 앞이 탁 트여야 할 텐데 제방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
· 제방만 없으면 망망대해가 잘 보일 텐데.
이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손가락질 하며 그를 비난할 것입니다.
바보 같다고 어리석다고 미쳤다고 말입니다.
성경 말씀은 제방과 같습니다. 둑과 같습니다.
도덕적 혼란의 바다 한 가운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자유의 영역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도덕적 죽음과 영적 파멸에서
우리의 세상을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그 방파제로 인해, 우리는 바울처럼, '믿음을 지켰으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태평양의 모든 물도, 작은 배 하나를 침몰시킬 수 없습니다.
그 배 안에 물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 어떤 일도,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문을 열고, 그것을 우리 내면으로 받아들이기 전 까지는요!
자기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태평양과 같은 거대한 물결과도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장차 나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전도만을 위하여 일생을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사형당하기 직전에 이렇게 고백하고 죽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4:7~8
이런 똑같은 고백을,
우리 각자도, 그 최후의 시간에, 할 수 있게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
주1) *중략된 부분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16:32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4:23
작가 최인호와 김수환 추기경이 이런 대화를 나눈 이야기가, 잡지에 실렸습니다.
추기경이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이렇게 대답하자
김 추기경은 손을 들어 머리부터 가슴까지 만지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나 역시 평생 이 짧은 것처럼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도 도착하기엔 멀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자기반성과 회개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우리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께 나아가고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과오가 있다 하더라도, 그나마 종교인들이 소금 역할을 해줌으로써,
이 나라가 굳건히 지탱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와 싸움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은 승리의 핵심입니다.
이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것에서 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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