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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부활 주일 설교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마태복음28:1-10 )

by 【고동엽】 2022. 8. 19.
 
부활 목차 돌아가기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마태복음28:1-10 )

아~유명한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개혁의 도상에서 여러 가지 그 장애에 부딪혀 아주 좌절해 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침식을 전폐하고 병상에 누워있던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루터가 누워있는 방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루터가 깜짝 놀라서 여보, 누가 죽었오?
예,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그 무슨 말이요?
이때 루터의 아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당신이 그 분이 살아 계시다면 그렇게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을 리가 있겠어요?
이 말이 루터를 깨우쳤습니다. 그렇지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벌떡 일어나 그는 종교개혁의 과제를 다시 추진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 계시다면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이 부활주일에 우리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엠마오 길의 두 제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가고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그들의 옛날 직업인 어부의 생업으로 돌아갈 궁리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러는 예수님의 제자인 것이 발견되면 그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가 두려워 그들이 묵고 있었던 집의 문을 꽁꽁 닫고 그들은 숨어있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커다란 사랑을 입었고 그 사랑 앞에 갚을 수 없었다고 느꼈던 소수의 여인, 제자들,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다른 마리아, 여성 제자들만이 제대로 장례도 치루지 못하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이 안쓰러워 그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새벽 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접합니다. 주 부활의 소식을 접하고 살아 계신 주님을 친히 만나는 놀라운 경험, 기대하지 않았던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본문의 5절입니다. 마태복음 2장5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절 다같이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래서 여인들은 그가 누우셨던 장소를 확인합니다.
빈 무덤 이였습니다. 과연 그는 다시 사셨습니다. 평소에 살아 계실 때 그가 예언하신 그대로, 내가 죽음에서 살아날 것이라는 예언 그대로 살아난 현장을 확인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 이였을까요? 이때 바로 그들 자신도 믿을 수 없었던 이 놀라운 사실 앞에 믿음의 여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이 첫 부활의 아침에 이 여인들이 보여진 반응이야말로 오늘 살아 계신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가 보여야 할 반응의 한 모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분이 참으로 다시 사셨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정말 기뻐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기뻐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 여인들이 보여준 반응을 오늘 본문의 8절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8절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본문의 8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
여기 두개의 매우 대조적인 단어를 보십시오. "무서움과" 뭐예요? "큰 기쁨으로" 무서움, 다른 말로하면 두려움인데요 두려움과 크다란 기쁨, 이 두 가지는 공존하기 어려운 감정이지만 때로 역설적으로 우리가 너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경험했을 때 두려움과 큰 기쁨이 함께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이 기쁨을 전율할만한 기쁨이 이었다고 말합니다. 전율할만한 기쁨.
이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해답을 발견한 그런 기쁨이였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인생의 근본적이고 그리고 궁극적인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죽음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아무도 죽음에서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지배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죽음이 인류의 왕 노릇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왕 노릇 한다, 로마서에 나오는 표현이지요? 다시 말하면 죽음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지배에 종속되지 아니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망률이 증가되었다는 표현을 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사망률이 어떻게 증가합니까? 안 죽을 사람이 죽었단 말입니까? 죽을 사람이 미리 당겨서 죽었을 것에 불과합니다. 모든 사람은, 살아있는 모든 자는 반드시 죽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죽습니다. 아무도 이 죽음에서 예외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죽음에 대한 해답이 있을까요?
세상은 이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철학은 이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발전되는 인류의 생명과학도 단지 우리가 살고있는 그 수명의 길이를 조금 연장시키는 것을 연구할 따름입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시간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이것은 해답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회답을 갖고 있습니다.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감격적인 사실일까요?
우리는 이 죽음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갖고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어찌 흥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자신의 부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믿는 자는 너희도 살리라! 그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에 보증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그가 선포했던 이 말씀은 인류역사를 뒤집을 만한 놀라운 선언입니다. 아무도 이런 선언을 한 사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이제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 당장 말이죠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 암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약을 발명했다고 하십시다. 흥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보통 흥분할 일이 아니지요. 우리는 돌아다니면서 소리칠 것입니다. 여기 암을 정복한 약이 발명되었다고,
그러나 암은 죽음을 치료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까지 시간을 조금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죽음에 대한 완전한 해답으로서의 부활을 지금 선포하고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리고 여러분과 저의 부활이 분명히 보장된 사실이라면 우리는 얼만큼 기뻐해야 할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얼만큼 흥분해야 할 사람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 또한 단지 우리가 죽음이후에 부활이 약속되었다고 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켜 세우시든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오늘 하루 하루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이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의 힘일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키는 것입니다. 아무도 죽음의 세력을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하시는 여러분 죽음의 힘보다 더 무서운 힘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패배시킨 부활의 힘인 것입니다.
그 부활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던 부활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그리고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한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상에서 부딪히는 삶의 시련이 어렵고 힘겨운 것이라 해도 왜 절망하십니까 왜 좌절하십니까?
우리는 참으로 이 죽음 건너편에 부활의 놀라운 소망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 안에 역사할 수 있는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삶의 시련을 넉넉히 넘어설 수 있는 흥분과 기쁨을 가지고 우리는 삶의 장 앞에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제가 예수 처음 믿고 함께 사역하던, 제가 모시고있던 선교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어느 날 들려주었던 그 얘기가 부활절이 되면 늘 생각이 납니다.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자기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다고 그래요. 뭐냐고 그러니까 우리 한국 교인들이, 그 거리에서, 집에서 만날 때는 다소간 웃으면서 흥겹게 즐겁게 얘기를 하다가도 왜 갑자기 교회당 안에만 들어오면 그렇게 심각하고 무서운 표정이 되느냐구요? 다 울상이고,
지금 보십시요, 제가 보면은 그 말이 딱 맞는 말이에요. 녜,
그래서 제가 대답이 궁해서 얼결에 대답한다는 것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 수난을, 고난을 묵상하기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씩 웃으면서 선교사님이 하는 말이 그러면 그분이 부활하신 것은 잊으셨나요? 그러더라구요. 그분이 부활하신 것은 잊어버렸나요? 그분이 다시 사신 것은 잊었나요?
그렇습니다. 그분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면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함게 하신다면 우리는 넉넉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이 기쁨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의 우리의 마땅한 반응이여야 할 것입니다. 그 기쁨이 저와 여러분의 몫이 되기를 그 기쁨이 회복되는 부활의 주일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옆에 사람 쳐다보시면서 좀 기뻐하십시다 인사하십시다
여러분이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응이 없는 사람은 부활한 것 믿으십니까? 한번 물어보세요. 따져보세요. 부활한 것 믿으십니까? 녜, 우리는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두번째로 우리는 경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경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여인들이 보여주었던 반응이 였어요.
자, 9절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본문의 9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자 천사가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했을 뿐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이 거기에 오셨어요. 평안하냐? 얼마나 놀랬겠어요?
살아 계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는 그 순간 여인들은 엎드립니다. 주님의 발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경배를 시작합니다. 경배를 시작합니다. 왜 일까요? 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또 그 무엇도 경배의 대상일 수가 없어요.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 입니다. 성경이 철저하게 우상숭배를 금하고있는 이유, 하나님 홀로 살아 계시고 그분 홀로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여인들이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뭘 나타내어주고 있어요?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자, 예수님은 그 경배를 만류하지 않으셨고 그 경배를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보면은 사도행전에 아주 흥미 있는 두개의 에피소드가 기록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시면 고넬료라는 이방인이, 군인 이였는데 장교였는데 그가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전해 받습니다.
자, 유태인들은 보통 이방인을 상대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베드로를 보내시사 그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그가 복음을 통해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고넬료는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앞에 엎드려서 베드로를 경배하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베드로가 깜짝 놀래면서, 물론 베드로가 한국에 문선생 비슷한 분 이였다면 그 경배를 받았을지 몰라요.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깜짝 놀라 만류하면서 나도 사람이라고, 나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이요.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보시면 비슷한 또 사건이 일어나지요 사도행전14장인가요? 녜,
거기에 보시면 바울이 루스드라 라는 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납니다. 이 광경을 보자 루스드라의 시민들이 바울과 바나바, 바울과 함께 있든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 을 보면서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 앞에서 제사를 하려고 그랬어요.
이때 바울이 보여준 반응이 뭐예요? 그래 나는 신이야! 그랬습니까? 옷을 찢습니다 바울이 막 옷을 찢으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우리는 그대들과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라고, 사람이라고, 사람은 경배의 대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인들이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뭘까요? 둘 중에 하나예요.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이 사기꾼이든가 하나님이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금세기의 최대의 크리스천 평신도 였든 옥스포드의 C S루이스가 물었던 질문이에요. 그분은 사기꾼이든가 하나님이든가 둘 중에 하나라고,
그분이 사기꾼일 수가 없다면 그는 하나님입니다. He's God !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말씀하신 데로 정녕 살아나셨고 다시 사신 부활하신 살아 계신 주님, 그래서 지금 여인들은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이 부활 사건을 가르쳐서 이것이야말로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의 증명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로마서, 이 위대한 로마서가 펼쳐지는 1장4절에 보시면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 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성령에 의해서 그 역사에서 부활하신 그 사건이야말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가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신 신성의 증명의 사건이라고 바울사도는 선포하고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가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진실로 여러분과 저에게 오늘 이 시간도 예배를, 그리고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경배하는 사람마다 그리고 살아 계신 주님의 임재를 경배 속에서 체험하는 사람마다 세상을 넉넉히 이길 줄로 믿습니다.
예배의 본질이 무어라고 생각해요? 예배는 단순히 예배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순서에만 참여하는 것,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에 한시간 동안을 머물러있고도 전혀 예배하지 않는 자로 이 자리를 나갈 수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이 없다면 말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가족이 함께 어린아이를, 꼬마랑 다같이 와서 주일날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녁시간에 주일저녁에 아버지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교회에서 뭘 배웠는가를 물어봅니다.
너희들 주일학교에서 뭘 배웠니? 예배시간 어땠니? 아이 재미있었어요. 즐거웠어요. 그러면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낸 우리 주님 앞에 각자 돌아가면서 감사하십시다.
꼬마가, 아들이 인제 감사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 예배당 가서 너무너무 예배시간이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하나님도 거기 계셨으면 참 좋았을텐데요. ~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신 분들도 계시는군요.
예배의 프로그램은 참여했어요.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단 말이지요. 그건 예배가 아니에요.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령으로 내게 다가오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순간,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래 주님은 살아 계셔! 살아 계신 주님과 함께 예배의 장을 떠나가는 순간 그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세상의 모든 프레시와 스트레스를 이기고 당당하게 진지하게 아름답게 확실하게 그리고 넉넉하게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들의 모습을 저에게 한번 보여주십시오.
저는 그 사람이 진지한 예배자라는 사실을 동시에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진지한 예배자를 저에게 보여주십시오. 저는 그들이 비록 이 자리뿐만 아니라 그들이 삶의 장에서 직업의 장에서 산업의 장에서 모든 스트레스와 프레시를 이기며 또한 넉넉히 삶의 장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을 보여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배는 그토록 소중한 것입니다.
저는 이번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내 아이들에게 어떤 부활절 메시지를 내가 보낼까, 그래서 어제 그저께 저녁에 기도하면서 우리아이들에게 이메일 카드를 보냈습니다. 보내면서 거기다 이런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예배를 너희들의 인생에 우선순위로 삼어다오, 그분이 정녕 살아나셨다면, make worship priority in your life if Jesus is truly risen, 그 분이 정말 다시 살아나셨다면 예배를 너희들의 인생에 우선 순위로 삼아다오, 예배하는 자들, 그들은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참으로 살아나셨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경배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우리는 증거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을 체험한 여인들이 보여주었든 반응이었습니다.
10절 마지막 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10절 다같이 읽습니다. 10절 시작,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나는 정녕 살아났다고, 그러면서 이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너희는 갈릴리로 가라고,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살아난 소식을 전하라고,
그 다음 11절에 보시면 "여자들이 갈제" 순종입니다. 주께서 가라고 말씀하셨고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니 가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벌써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과 열정을 가지고 가고있는, 이미 말하기 시작한 여인들의 모습을 보십시요.
8절에 보시면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뭐예요? "알게 하려고" 알게 하려고 달음질했어요. 어떻게 침묵할 수가 있겠어요.

여러분 정말 암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놀라운 약을 옆에 있는 사람이, 이웃집 사람이 발견했습니다. 잠잠할 수가 있습니까? 잠잠할 수가 있습니까? 동네를 돌아다닐 것입니다. 아픈 모든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여기 우리 이웃집 가운데 이 암을 정복한 놀라운 약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고 흥분하며 소리칠 것입니다. 말할 것입니다. 그게 전도가 아니에요? 그것이 전도예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본문을 묵상할 때 항상 제 마음속에 한가지 질문이 있었어요. 부활하신 주님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여인들에게 나타났거든요. 저는 남성으로서 항상 궁금한 것이 베드로는 야고보는 요한은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었는지,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성들에게 먼저 나타났을까? 오랫동안 제가 가지고 있었든 신학적인 질문이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번에 제가 남미에 가서 발견을 했어요.
남미에 갔더니 어떤 목사님이 저한테 물어 보더라구요. 남미에 있는 목사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왜 여성에게 나타난 줄 아느냐고? 제가 지금 하는 얘기 듣고 저에게 여성 여러분 화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한 얘기입니다. 저는 여성들을 비하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성들에게 나타났는가? 그분 대답이 뭐냐하면 여자들이 입이 싸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이 소식이 빨리 퍼지는데 효과적이다. ~ 네, 그분이 한 얘기예요 내가 한 얘기가 아니에요.
녜, 미국에도 비슷한 조크가 있어요.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자동차가 뭐냐? BMW 랍니다. BMW란 것은 Big mouth woman의 약자입니다. 입이 큰 여자들이다 이 말입니다.
어쨌든 이 여인들을 통해서 첫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에 대한 책임은 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는 책임이요 특권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면 저와 여러분의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보증된 사실을 우리가 알고있다면 어찌 잠잠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 열왕기 하 7장에 보면은 이런 사건이 있습니다. 옛날 사마리아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시리아에서 쳐들어온 아람 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자식들을 먹는 처참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성문 곁에 있던 나환자 몇 사람이 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밤중에 적진으로 가보았어요. 뭐 붙들리면 죽지 뭐 하고서, 앉아있어도 죽어도 마찬가지니까, 적진에 들어갔더니 적진들은 다 퇴각을 해버렸어요. 그리고 식량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것입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이 굶었던 그들은 정신없이 먹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먹다가 그들에게 다가왔든 그들에게 일어났든 놀라운 자각하나가 있어요. 이 자각을 그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오늘날은 기쁜 소식이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는 잠잠하고 있도다,
이 아름다운소식이, 식량이 여기 있다는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는 잠잠하고 있다, 우리가 내일아침까지 침묵하고 기다리고 그래서 우리의 이웃들이 죽어간다면 이것은 우리가 벌을 받을 일이다, 가자! 가서 이 소식을 전하자!
디티나이프 라는 유명한 세계적인 선교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전도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전도란 뭐냐? 전도란 것은 배고팠든 거지가 양식을 발견한 후에 그리고 그 양식을 취하면서 다른 배고픈 거지들에게 가서 여기에 빵이 있다고 전하는 것이다.
얼마나 쉬운 전도에 대한 증언입니까? 목이 말라 죽어가든 사람들이 생수를 발견하고 목근을 적신 후에 목말라 죽어 가는 이웃들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외치는 거에요. 여기에 생수가 있다고, 여기에 샘물이 있다고, 그것이 전도가 아닙니까?
죽어가든 사람이 의사를 만나서 자기의 병을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 치유가 있다고, 여기에 당신의 살길이 있다고, 그것이 전도가 아닙니까?
용서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그 마음이 어둡고 마음이 감옥이고 인생의 길이 처참한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용서를 체험한 사람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용서, 하나님의 완벽한 용서, 주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그 흘린 피로 나를 죄 사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 그 용서를 체험한 사람들이 아직 용서받지 못한 다른 죄인들에게 찾아가서 여기에 용서가 있다고, 그리스도 안에 죄 사함이 있다고, 그리스도안에 생명이 있다고 전하는 것, 여러분 이것이 전도의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히틀러 나치가 지배하던 시절에 유명한 본헤퍼 목사가 나치에 저항했던 유명한 목사님이죠? 그분과 함께 나치에 저항했든 분 가운데 마르틴 니멜러 라는 목사님이 독일 목사님이 계셨어요. 말틴니멜러, 그는 유명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온 후에 그는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히틀러의 작난들, 이들만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침묵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잠을 자다가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히틀러가 주님 앞에 마지막 심판을 받고있는 광경을 꿈꾸게 되었어요. 예수님이 이렇게 물어 보더래요 법정에서,
히틀러에게,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
히틀러가 대답하기를 저에게 아무도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히틀러보고 하는 말이, 야! 너 마르틴 니멜러 목사님하고 몇 시간씩 너 같이 잡아다 놓고 너가 얘기하지 않았느냐?
그때 마르틴 니멜러가 너에게 나를, 나를 전하지 않더냐? 이 광경을 보고있든 니멜러는 꿈속에서 소스라치게 깨어납니다. 갑자기 깨어납니다. 아!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었구나, 저가 나를 핍박하지만 저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지만 저도 용서받고 구원받아야 할 한 영혼으로 바라보지 못했구나,
그 날부터 그는 전도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붙들고있는 자기를 감시하고있든 나치의 가드들에게 그리고 간수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정신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이라고 그리스도가 생명이라고, 그래서 이 마르틴 니멜러를 통해서 적지 않는 숫자의 사람들이 나치의 간부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는 놀라운 기적 같은 사실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그것을 여러분과 제가 참으로 믿는다면 오늘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정말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고 진실로 이 기쁨 안에서 이 세상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삶의 현실은 없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마다 살아 계신 주님, 그리고 거룩하신 역사를 지배하신 그분 앞에 합당한 경배를 드리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구원이라고 소망이라고 우리는 전도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부활의 첫 번째 증인 이였던 여인들, 그들은 평범한 여자들 이였어요. 평범한 여자들.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후에 첫 번째 평신도 선교사들 이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평신도 선교사들,
그들을 통해 세상은 빛을, 세상은 여명을, 세상은 새로운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면 오늘21세기를 위해서 누가 이 부활의 소식을 전하겠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책임을 감당할까요
우리가 여기서부터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부터 우리의 직장에서부터 우리의 삶의 장에서부터 우리의 동네에서부터 우리가 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여기서부터 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할까요? 지금 하지 않는다면 언제 하시겠습니까?
여기 부활하신 주님 앞에 우리가 엄숙하게 고백해야 할 또 하나의 책임, 제가 전하겠습니다. 생명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라면 더욱이 순종하겠습니다. 여기 빠른 걸음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든 여인들을 통해서 일세기의 세상이 새로운 새벽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면 오늘 21세기는 여러분과 저의 증언을 필요로 하고있습니다.
누가 이 주님의 부르심 앞에, 보내심 앞에 응답할까요?

기도하시겠습니다.
다 일어나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통성으로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는 세상이 어렵다고 불평만 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이기신 부활하신 주님이 내 증인이 되었다면 저는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뻐하며 살겠습니다. 경배하며 예배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의 귀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를 향한 우리들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기뻐하겠습니다.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인 것을 확인합니다. 오 하나님 경배하겠습니다. 경배하며 살겠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내 발걸음이 미치는 모든 것에서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며 살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있습니다. 하나님 이 복음의 빚 앞에 응답하는 우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바울사도는 나는 빚진 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한 사람이, 나 한 사람이 예수 믿기 위해서 하나님은 온 세상을 동원했습니다. 복음이 한국 땅에 오기까지 나에게 미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순교하고 피 뿌린 줄 아십니까
우리는 온 세상에 복음의 빚을 지고있습니다. 침묵할 수 없는 우리들, 열방을 향해서 온 세상을 향해서 이 복음을 전하며 내 삶이 다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힘차게 가사의 뜻을 기억하며 찬양하십시다.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주안에서 거듭난 생명 도우시는 주의 사랑
참 기쁨과 확신 가지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살리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그 언젠가 주 뵐 때까지 주를 위해 싸우리라
승리의 길 멀고 험해도 주님께서 나의 앞길 지켜주시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할렐루야! 우리 살아 계신 주님 앞에 영광의 박수를,
녜 자기주변의 한 열 사람씩, 열 사람씩,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승리하십시다 이렇게 인사하세요 열 사람씩 인사하세요. 막 돌아다니면서,
다섯 사람밖에 안한 사람들 흩어져서, 마져 다섯 사람 인사하세요. 열 사람 인사 안한 분, 가지 마세요 ~
네, 오늘 몇 시에 와야 합니까? 1시 반부터, 네, 그리고 내일 몇 시부터요? 7시 반부터, 월 화 수, 월 화 수 네, 이런 특별모임에 참석한 사람을 뭐라고 그랬어요? 진짜 교인, 우리 진짜가족이에요.
옆에 사람 한번만 더 인사하시면서 진짜교인 되십시다. 이렇게 인사하세요. 진짜교인 되십시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우리를 죽음에서부터 건지신, 죄와 사망에서 건지신 구속의 은혜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의 부활하심을 그의 살아 계심을 우리 마음속에 확정 시켜 주시며 우리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성령의 놀라우신 교통케 하심이 오늘 이 부활의 아름다운 주일아침 주님을 경배하고 나가는 당신의 백성들의 삶의 현장마다 가정 직장 그리고 우리사업의 장마다 부활의 승리가 그 평안이 그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출처/이동원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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