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목록가기 | 약속 목록 돌아가기 |
명령과 약속 (수 1:1-9)
우리는 이 순간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해의 첫순간을 마지 하였습니다.
마치 숫눈길을 혜치며 걸어가야 할 이 한해의 미지의 길을 여러분과 나는 동시에 지금 출발 선상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한해 동안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갑자기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노숙을 해야 하는 현실을 맞기도 했고, 한꺼번에 닥친 실직과 병고로 인한 고통을 감내 해야 하는 문자 그대로의 인내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떤 경우에서는 하나님이나를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번 민과 고통스러움을 겪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를 그렇게 괴롭혔던 1998년도 영원히 과거로 잠적해 버렸고, 다시 소망의 새해를 마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여러모로 착잡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새해를 맞는 기대와 함께 현실의 불안이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밝지만은 못하게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태양처럼 빛나던 모세를 잃고 불안해 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기분인 것 같습니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되는 그러한 한해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임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잃고 불안해하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리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내린 명령이 곧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의 하나님은 곧 우리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일어나 요단을 건너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신년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출애굽과 광야 생활은 우리 구원의 여정(旅程)과 같습니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출애굽 시킨 것처럼, 우리는 죄의 세상으로부터 구출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광야 40년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광야 40년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여러 번 저들의 신앙생활에서 시행착오를 범하였습니다.
먼저는 자기들을 애굽의 바로의 손에서 구출해 낸 위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망각했습니다.
애굽에 내렸던 10가지 재앙들, 더욱이 애굽의 전역에서 처음난 생축이 다 죽는 그런 가운데서 자기들을 살려낸 그 하나님의 능력을 불평으로 응수했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광야에서 물이 없어, 목말라 죽게 되었다고 그러했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광야 생활에서 만나만 먹어 정력이 쇠해졌다고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고기와 부추와 마늘을 먹게 해 달라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 위에서 군림하고 독재한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들과만 같이하는 하나님이냐? 우리들의 하나님이기도 하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저들은 광야 생활에서 감사할 줄 모르는 우(愚)를 범하였습니다.
이것이 광야 생활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있던 저들에게 이제 모세까지 죽어 없어졌으니 얼마나 더 크게 방황할수 있는 그러한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는 일어나라고...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 이 명령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방후 오늘까지 근 반세기 동안 우리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일제의 손아귀에서 해방을 시킨 하나님의 그 큰손의 권능을 잊어버리고, 서로가 반목하고 원망하면서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교단이 갈라졌고, 그 결과로 6.25의 동족 상쟁의 처절한 피흘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는동안에도 하나님은 열 국들을 통하여 <만나가루>로 먹였듯이 우리 민족을 유엔을 통하여 먹이고 입혀 주어 생존할 수 있도록 하여 주었습니다. 그후 6.25로 페허화 되었던 땅에 복구의 바람을 일으켜 재건하도록 기회와 힘을 주었고, 그래서 불과 정전후 30여년만에 경제적으로 먹구살만큼 되었을 때,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감사 생활보다는 도리어 더큰 불평을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만 먹어 정력이 모자란다고 하면서 도리어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이 민족이 먹고 살 만하니 좀더 높은 가치의 세계와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삶을 살기보다는 사회 풍조가 먹고, 자구 노는 향락 산업으로 온통 산천을 오염시키게 되었고, 러브호텔의 성업이 극에 달할 즈음에 IMF 라는 한파를 맞게 되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IMF는 우리에게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 하나님의 징치(懲治)의 수단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한파 속에서 지난 1년동안은 너무나 큰 어려움 들을 감내 해 내야 하였고, 아직도 이것은 우리를 불안하게 미래를 전망케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하나님은 이 민족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게 하였고, 그래도 지금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잘해 보겠다는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이번에도 정신 차리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큰 시련이 닥칠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너는 일어나 요단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낙심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불안해하는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불신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부정직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운동이 믿는 성도들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너라고 했습니다. 요단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벽입니다.
아무도 감히 해결될 수 없다고 자인하고 있는 그런 난관들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무지 뚫고 들어갈 수 없다고 낙심해 있는 그런 문제들입니다.
그런 요단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단을 건느기 위해서는,
2.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는 것은 너는 나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해 동안 처음순간부터 약한 마음을 가지고 출발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면 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특히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에 대하여 마음을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까?
인간적인 신념의 마음을? 전문적인 지식의 마음을?
삶의 경험에서 얻은 경륜의 마음을? 사나이다운 배짱의 마음을?....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마음을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을 굳게 먹고 강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가 이 시점에서 경청해야 할 말씀이라고 봅니다.
이 순간, 우리는 마음을 굳게 다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강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처음이 중요합니다.
첫단추가 잘 채워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금년 한해 동안 마음을 강하게 하여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과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먹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마음을 강하게 먹는 사람에게 힘을 주십니다.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낼수 있는 담력도 주십니다.
두려움도 물리쳐 주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약속의 보증의 말씀을 주십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이제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여 나의 명하는 말씀을 실천하라. 그리하면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고,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을 것이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이 이상 더 확실한 보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일, 하나님이 동행하는 길, 하나님이 같이한다면 무슨 일인들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불안해하고 두렵고, 낙심하고, 또 절망스러운 것은 그 일을 나 혼자서 해야 할 일일 때 그렇습니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야곱도 광야에서 노숙할 때 하나님의 보증의 약속을 들었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던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꿈에 나타난 하나님이 약속하였습니다.
야곱은 그때부터 그 약속을 붙잡고 20년의 타향살이에서도 낙심치 아니했습니다. 결국 빈손으로 도망치듯 나갔던 길에서 돌아올 때는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해가 여러분에게 어떤 한해가 되기를 바라보십니까?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하나님께 구하려 나왔습니까?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문제는 하나님의 보증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리라”는 바로 그 약속입니다.
그러기위하여는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여 나의 명령을 굳게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 이상 더 확실한 미래의 보증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연약함을 아시오니 나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더 이상 방황치 않도록 나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말씀의 명령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내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주여! 당신의 능하신 팔로 나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이 한해 동안 온갖 유혹을 물리쳐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욕되지 않도록 영육간의 필요한 것으로 채워 주옵소서......
이렇게 구하는 성도들에게 독생자까지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지 않겠습니까?
일어나 마음을 강하게 합시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번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있는 것을 흩으시고, 없는데서 모으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망을 생명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실패의 자리에서 도리어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미련한 자들을 들어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법을 준 행하나 아니하나 지켜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체험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
'◑주제별 설교 3,276편◑ > 약속 설교 6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시127:1-2) (0) | 2022.07.22 |
---|---|
약속 중의 약속 (잠 6:20-28) (0) | 2022.07.22 |
두아디라교회에 주신 소망의 약속 (계2:26-28) (0) | 2022.07.22 |
3가지 약속의 말씀 (누가복음 24장 1-12절) (0) | 2022.07.22 |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성취되었는가? (창세기 12:1~3) (0) | 2022.07.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