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약속

3가지 약속의 말씀 (누가복음 24장 1-12절)

by 【고동엽】 2022. 7. 22.
 
전체 목록가기 약속 목록 돌아가기
   

 

3가지 약속의 말씀 (누가복음 24장 1-12절)

나 중심적 세계관을 버리십시오
저는 2000년부터 인터넷 말씀선교 사역을 했습니다. 그 덕택에 일반 성도들은 잘 몰라도 목사님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해졌습니다. 저의 웹사이트 방문자는 대부분 목사님들입니다. 요새는 설교파일을 개별적으로 원하는 목사님들에게 따로 공급하면서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매주 수천 명의 목사님들이 저의 웹사이트를 방문해 설교 자료를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한 친구 목사님은 농담을 섞어서 저에게 ‘몇 천 명 목사님들의 교회 목사’라고 말합니다.

2004년 10월에는 미션퍼블릭을 세워 설교파일을 목사님들에게 공급했는데, 지금까지 21개의 설교파일 세트가 완성되었고 2년 5개월 동안 나간 설교파일 세트가 약 5100 세트였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선교사들을 후원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후원해야 할 선교사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션퍼블릭에서 공급하는 설교파일을 목사님들이 많이 찾는 것을 보면 겉으로는 내색 안 해도 속으로는 가끔 “내가 정말 설교를 잘하나보다!” 하고 착각합니다. 착각은 자유잖아요? 그런데 3주 전에는 그 착각이 진짜로 판명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임경성 집사 결혼 주례 후에 몇 사람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결혼 설교가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제 뒤의 하객들도 목사님이 설교를 참 잘하신데요.”

제가 속으로 우쭐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키는 작아도 인터넷에서 얼마나 유명한데...” 그런데 도대체 어느 내용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는지 알고 싶어 들뜬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집사님! 어떤 말씀이 그렇게 감동적이었어요?” 그분이 말했습니다. “특히 결혼 설교가 짧아서 감동적이었어요. 다른 분들도 주례 설교가 짧아서 너무 좋았대요.”

그 말을 듣고 순식간에 김이 팍 샜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그날 제가 6분 설교했는데, 원래 의도가 설교를 짧게 해서 신랑신부와 하객들을 행복하게 해주자고 미리 작정하고 설교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다시 한번 ‘짧은 설교가 명 설교’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성찬식 때문에 짧게 명 설교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약간 우스갯소리지만 실제로 설교는 준비할수록 짧아집니다. 1시간 분량의 설교를 한번 보고 설교하면 1시간 걸리지만 두 번 다듬으면 45분, 세 번 다듬으면 38분, 네 번 다듬으면 34분, 다섯 번 다듬으면 31분, 여섯 번 다듬으면 29분, 일곱 번 다듬으면 28분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저의 목표는 ‘원고를 일곱 번 다듬고 28분 전후로 설교하는 것’입니다.

물론 짧은 설교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많이 기도하고 준비할수록 설교가 짧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분은 부흥회에서 3시간 이상 말씀을 전하는데, 그처럼 과거에 했던 설교를 즉흥적으로 반복하면 설교는 자연히 길어지고, 가끔 걸쭉한 말과 상스러운 말과 욕 비슷한 말도 말씀에 섞여 나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웃음과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은혜 받았다는 느낌도 주지만 때로는 신앙의 밸런스를 잃게 하는 영혼의 독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원리는 ‘나 중심적 세계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생활이나 시간생활 등에서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가 남을 위해 십자가를 질 때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 부활절이 주는 3가지 약속 >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한 부활절을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만 끝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부활하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흔히 부활절의 대표적인 상징에는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빈 십자가, 빈 무덤, 빈 세마포’입니다. 그 3가지 상징은 무엇을 약속할까요?

1. 빈 십자가는 용서를 약속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부활절 새벽에 몇몇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려고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은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며칠 전에 그들의 선생님이었고, 친구였고, 영웅이셨던 예수님이 비참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일로 그들의 희망은 철저히 무너졌고,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들은 숨어 지내고 싶었지만 안식 후에 용기를 내서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려고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약 1시간쯤 걸었습니다. 그리고 언덕을 넘자 멀리 희미하게 영문 밖에 주님이 달리셨던 십자가와 다른 두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 십자가는 그 전날이 안식일이라서 아직 치워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멀리서 피로 물든 그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 십자가는 예수님이 없이 빈 상태였는데, 그 빈 십자가는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상징합니다.

2. 빈 무덤은 영생을 약속합니다

그때 여자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계속 무덤을 향해 갔습니다. 무덤 가까이 가자 그들은 본문 2절 말씀처럼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돌은 2톤쯤 되는 돌로 쉽게 옮길 수 없었고, 로마 군인들의 허락이 없으면 치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무덤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 빈 무덤은 영생을 약속하는 상징입니다.

어느 날, 미국의 한 주일학교 선생님이 부활절 전에 아이들에게 플라스틱 달걀을 주며 일주일 동안 새 생명에 대한 상징을 발견하면 그 달걀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다음 주에 달걀이 하나씩 개봉되었습니다. 첫째 달걀을 개봉하자 예쁜 꽃이 나왔습니다. 둘째 달걀에는 아름다운 나비, 셋째 달걀에는 초록색 풀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렇게 개봉될 때마다 그 물건을 넣은 아이가 그 물건의 의미를 나름대로 설명했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달걀이 개봉되었을 때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걸 보고 아이들이 다 야유를 보냈습니다. “이 달걀 누구 거야?” 그때 한 아이가 선생님의 셔츠를 잡아당겼습니다. 그 아이는 필립이란 아이로 장애도 있고 사회성도 떨어져 평소에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내 거야. 주님이 계셨던 무덤이 빈 무덤이었잖아. 그래서 그냥 빈 달걀로 가져왔어.”

잠깐 침묵이 흐른 후에, 아이들은 다 빌립을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빌립은 용기를 얻고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았습니다. 그러나 그해 여름 빌립은 고열로 인한 합병증으로 죽었습니다. 그의 장례식 때 선생님은 빌립의 친구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 된 그 빈 달걀을 가져와 빌립의 관 옆에 두었다고 합니다.

빈 무덤은 영생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망은 마귀의 벌침과 같습니다. 빈 무덤을 통해 하나님은 그 벌침을 뽑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이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사망의 침을 뽑았다. 이제 사망이 너를 해칠 수 없다!” 벌침이 뽑힌 벌은 곧 죽습니다. 그처럼 침이 뽑혀 거의 죽어가는 마귀 앞에서 우리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3. 빈 세마포는 교제를 약속합니다

그때 여자들이 돌아가 자신들이 목격한 것을 즉시 사도들에게 전하자 다른 사도들은 믿지 않았지만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즉시 일어나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무덤 안을 살펴보자 정말 무덤은 빈 무덤이었고, 예수님을 쌌던 빈 세마포만 보였습니다.

만약 누군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쳤다면 번거롭게 세마포를 벗길 이유가 없고, 머리를 쌌던 수건도 반듯하게 개켜 놓았을 리가 없습니다(요 20:7). 결국 그 빈 세마포는 주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이자 동시에 주님의 부활이 유령처럼 영이나 환상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육체로 부활해서 사람들과 직접 교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과 함께 앉아서 대화도 하셨고, 같이 잡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어떤 신비한 기운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제자들과 함께 교제하셨듯이 지금도 우리와 직접적인 교제를 하실 수 있고, 우리도 주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예수님을 아는가?(Do I know Jesus?)”라는 질문을 삶의 평생 과제로 삼고 더욱 주님을 더욱 알려고 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아는가?(Do I know Jesus?)”라는 질문은 “나는 예수님에 관해 아는가?(Do I know about Jesus?)”라는 질문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도 그를 진짜로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도 사실 대통령을 잘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직접 만나 대화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직접 만나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더 깊이 알려고 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주님은 우리가 원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오늘 우리가 말씀 듣고 주님께 마음을 열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하실 것입니다.

<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

그처럼 부활절에 주님은 빈 십자가를 통해 용서를 약속하셨고, 빈 무덤을 통해 영생을 약속하셨고, 빈 세마포를 통해 친밀한 교제를 약속하셨습니다. 삶의 가장 위대한 승리의 비결은 그 약속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천사가 여자들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 천사의 말대로 여자들은 본문 8절 말씀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보았습니다. 주님은 일전에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3일 만에 살아나신다고 말씀하셨는데(눅 18:31-34), 그 말씀을 기억하자 비로소 모든 상황이 이해되고 부활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성경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엄청난 체험과 깨달음이 있어도 그 체험과 깨달음을 말씀에 비추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다가 교만해져서 사단의 앞잡이가 됩니다.

어느 날, 마귀가 부하 귀신들과 함께 걷는데 저 앞에서 한 사람이 뭔가를 발견한 것처럼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귀신이 물었습니다. “대장님! 저 친구가 뭘 발견했어요?” 마귀가 대답했습니다. “음. 진리의 한 조각을 발견했어.”

그때 귀신이 다시 물었습니다. “대장님! 저 친구가 진리의 한 조각을 발견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그때 마귀가 말했습니다. “아니!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 이제 저 친구가 자신이 발견한 그 작은 진리로 교회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냥 지켜보면 돼! 우리는 저 친구만 이용하면 많은 영혼들을 망칠 수 있네.”

내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생각할 때가 조심할 때입니다. 균형을 잃어버리고 극단에 치우친 진리는 결국 진리가 아닙니다. 말씀에서 이탈한 체험은 성경적인 체험이 아니고 말씀에서 이탈한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들어 있는 인생 최대의 보고입니다. 우리는 그 성경 말씀을 항상 기억하되 무엇보다도 주님의 부활을 통해 주어진 ‘속죄와 영생과 교제의 약속’은 꼭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 약속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지금 TV 광고는 어떤 물건을 사면 행복해질 것처럼 선전하지만 곧 그 약속이 ‘빈 약속’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빈 약속’이 아닌 약속으로 가득 찬 ‘빈 무덤’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에게는 결코 영적 가난과 불행이 임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날, 미국의 한 아버지가 그 지역의 부잣집 관습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자녀에게 차를 사주려고 아들과 함께 틈틈이 차를 보러 다니다 마침내 알맞은 차를 발견했습니다. 졸업식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 선물 포장을 뜯자 성경책과 함께 이런 편지가 있었습니다. “빌! 졸업선물로 주는 이 성경을 평생 가까이 하며 살아라.” 빌은 아버지가 차 대신 성경을 준 것이 너무 속상해 그날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빌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가 아버지의 서재에 앉아있는데 그의 눈에 옛날에 아버지가 준 성경책이 들어왔습니다. 그가 그 성경책의 먼지를 닦고 성경을 열어보자 거기에는 그의 졸업 날짜에 맞춰 발행된 수표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수표에 아버지와 함께 골랐던 차와 똑같은 금액이 적힌 것을 알고 그는 한탄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 아들처럼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약속을 내던져버립니다. 그러나 세상 약속에는 빈 약속이 많아도 하나님의 약속에는 결코 빈 약속이 없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성경의 약속대로 축복의 문을 열어주시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주시고, 부활의 약속대로 부활하신 것처럼 재림의 약속대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 주님의 위대하신 컴백 >

한국 남자들은 2001년의 미국 야구 월드 시리즈를 거의 기억할 것입니다. 그 해 월드 시리즈에서는 월드시리즈 4연패를 노리던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와 창단 4년 만에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Arizona Diamondbacks)가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양키스가 우승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게임은 커트 실링을 내세운 다이아몬드백스가 9대 1로 승리합니다. 둘째 게임도 랜디 존슨을 내세운 다이아몬드백스가 4대 0으로 승리합니다. 셋째 게임은 로저 클레멘스를 내세운 양키스가 승리합니다.

넷째 게임은 커트 실링을 내세운 다이아몬드백스가 7회까지 1대 1로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 8회 초에 2점을 뽑아 3대 1로 앞섭니다. 그러자 밥 브렌리 감독은 8회 말에 주저 없이 당시 최고의 마무리인 김병현 선수를 투입합니다. 김병현은 토네이도 마구로 9회 말 투아웃 1루까지 만듭니다. 이제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경기가 끝나는데, 그때 김병현이 던진 초구를 티노 마르티네스가 쳐서 홈런을 만들었습니다.

3대 3이 되자 뉴욕 양키스는 최고 마무리 리베라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10회 초 공격이 끝나고 10회 말에 김병현이 또 마운드에 오릅니다. 그런데 또 투아웃에 데릭 지터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결국 김병현은 홈런 두 방으로 패전투수가 되었습니다.

다시 5차전이 되었습니다. 그날 다이아몬드백스가 9회까지 2대 0으로 리드하자 9회 말에 밥 브렌리 감독은 또 김병현을 마무리로 올립니다. 또 투아웃에 2루가 됩니다. 이제 아웃 하나만 잡으면 승리하는데 그때 김병현은 스캇 브로시어스에게 또 동점 홈런을 맞습니다. 그때 김병현은 털썩 주저앉았고, 모든 한국 팬들도 함께 주저앉았습니다. 저는 그때 TV를 꺼버렸습니다. 결국 그날 알폰소 소리아노의 끝내기 안타로 뉴욕 양키스가 3대 2로 승리합니다.

6차전은 랜디 존슨을 앞세운 다이아몬드백스가 15대 2로 승리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7차전이 되었습니다. 9회 초까지 양키스가 2대 1로 앞섰습니다. 9회 말 다이아몬드백스의 마지막 공격 때 양키스는 최고의 마무리 리베라를 내세웠습니다. 이제 양키스의 극적인 우승 드라마가 펼쳐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빗맞은 안타와 리베라의 악송구에 이어 루이스 곤잘레스의 끝내기 안타로 다이아몬드백스가 극적인 역전 우승을 했습니다.

너무 극적인 역전의 역전 드라마가 연출되어서 미국에서 2천 만 명 이상의 독자를 가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잡지는 11월 호에서 다이아몬드백스의 우승을 ‘최고의 컴백’이라고 표현하며 잡지 편집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역사상 최고의 10가지 컴백(TOP TEN COMEBACKS OF ALL TIME)’이란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그 리스트에는 1968년 TV 특별공연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베트남 전쟁 징병소집을 거부해 복싱 계에서 추방되었다가 7년 만에 포먼을 누르고 화려하게 컴백한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진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이 1948년 토머스 듀이(Thomas Dewey)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야구를 포기하고 농구선수로 돌아온 것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그 10가지 컴백 중에 2번째 순위에는 2차 대전 후 황폐화되었던 독일과 일본이 1세대가 지나기 전에 경제적 부흥을 이룬 것이 선택되었고, 그때 그 편집진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이 선정되었습니다.

주님은 2천년 전에 컴백하셨고, 앞으로 컴백하실 것입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우리도 삶에서 온갖 패배감을 물리치고 다시 컴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컴백할 수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을 이루신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면 우리에게도 위대한 컴백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죽음은 예수님을 무덤에 가두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죽음과 문제에 갇히지 않고, 이생과 내생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영어로 굳뉴스(Good News)라고 하는데, 주님의 부활은 단순한 굳뉴스가 아니라 베스트 뉴스(Best News)입니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담대히 내일을 맞이할 수 있고 우리 인생은 살만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원하면 이 시간 내 삶을 예수님께 드리겠다고 새롭게 결단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해 다시 한번 주님께 내 삶을 드리겠다는 다짐을 통해 영혼이 새로워지는 복된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이한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