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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진 십자가 (막 15:21-24)

by 【고동엽】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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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진 십자가   (막 15:21-24)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이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시다가 일어난 은혜로운 사건 하나를 말씀드리고 성찬식에 임하고자 합니다.

원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죄수는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처음에는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전날 밤새도록 기도하신 데다, 새벽부터 식사도 못하신 상태로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셨고 또 채찍으로 몹시 맞으셨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기진맥진해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가 몹시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마 가시다가 몇 번이고 넘어지시지 않았겠는가 생각됩니다.

그랬을 때 마침 구레네 사람인 시몬이 시골에서 올라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지나가다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지 않았겠나 생각됩니다.
그랬을 때 로마 병정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 군인에게는 필요하면 언제라도 피정복민을 차출하여 일을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그럴 때에 피정복민은 누구라도 복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레네 시몬은 꼼짝 못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가 끝까지 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곧 골고다라는 곳으로 나오셨다"고 되어있기 때문입니다.(17절)
그러나 어쨋튼 구레네 시몬은 잠시동안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마도 억지로 졌을 것입니다.
몹시 원망을 했을 것이고 오늘은 되게 재수 없는 날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 복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에 보니까, 그의 아들들의 이름이 밝혀져 있는 것을 보아서 그렇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여기 21절에 보니까,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했습니다.
마가가 이 복음서를 쓰면서 이렇게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밝힌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 이름을 대면 독자들이 알아 볼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이름들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롬 16:13을 보십시오. (p.261)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보낸 편지 가운데 그곳의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부분인데, 거기에 루포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많은 학자들은 그를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와 동일인으로 봅니다.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 후에 교회에 중요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또 그의 어머니, 그러니까 구레네 시몬의 아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울이 그를 가리켜 내 어머니라고 한 것을 보면, 그는 바울과 매우 가까운 사이요, 바울에게 있어서 어머니처럼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행 13:1을 보라. (p.208)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여기 보면 당시 안디옥 교회에 교사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거기에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나옵니다. 이 니게르라는 말은 '검다'는 뜻인데,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방으로 그곳 주민들의 얼굴이 검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니게르라는 시므온이 바로 구레네 시몬이 아닌가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구레네 시몬의 식구들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처음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그것 때문에 그가 예수님을 누구보다 가까이 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태도, 예수님의 얼굴 표정, 예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 잘 들었을 것이고 또 예수님이 돌아 가셨을 때에 되어진 일들도 다 목격하지 않았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도 그 예수님을 전하여 온 식구가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 된 줄 압니다.

그래서 처음에 억지로 진 십자가가 그와 그의 가정을 구원케 하는 감사의 십자가가 되었고, 처음에는 그렇게 부끄럽게 느껴졌던 치욕의 십자가가 나중에는 영광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구레네 시몬처럼 내가 원치 않는 십자가를 억지로 질 때가 있습니다.
가령, 평생 내가 원치 않는 질병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평생 원치 않는 가난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
또 평생 원치 않는 사람 만나서 사람고생 하고 마음고생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별히 요즈음 같은 시대에는 예기치 않은 기업 도산으로 또는 부도로 갑자기 빚더미에 앉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치 않는 실업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애꿎은 누명을 쓴 사람, 남의 빚 보증을 잘못 서서 애매히 고난을 겪는 사람, 남에게 사기를 당하여 억울하게 고통을 겪는 사람 등등.. 갖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있습니다.
거기다가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다가 닥치는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들은 다 우리가 원치 않는 십자가들입니다.
그렇지만 내 몫의 십자가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기 구레네 시몬처럼 우리도 지고 가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며 나아가서는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예가 많이 나옵니다.
가령, 요셉이라는 사람을 보십시오.
요셉도 어려서부터 원치 않는 십자가를 졌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결국은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했고, 그것 때문에 그는 그의 온 가족을 기근에서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말합니다.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그 하나님이 우리들의 생명을 건지시려고 나를 먼저 이리로 오게 했다"고 합니다.

욥이라는 인물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도 한참 잘 나가는 때에 갑작스럽게 재난이 닥쳤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 다 날리고 자식들까지 몰살당하는 사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가기 몸에 병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니까 그의 신앙이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되었고 또 나중에 더 큰 축복을 누리지 않았습니까?

다윗에게도 십자가는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십자가였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섬겨주고 생명을 바쳐 전쟁터에 나가 싸워주었건만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늘 찾아 다녔습니다.
자기 아들이 십자가였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사랑한 자식이 자기를 배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그 십자가를 잘 지고 갔습니다.
그가 나중에 시편에서 말하기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예를 들라하면 시간이 모자랍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사실 예수님도 원치 않는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분은 그 십자가를 지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신데,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사 53:6)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셨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그 십자가를 지고 가셨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진하여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심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우리 모두가 다 구원받게 된 것이고,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지극히 높임을 받게 되었다고 빌립보서 2장에 말했습니다.(빌 2:6-11)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영광의 면류관으로 바뀌어 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도 영광의 면류관으로 바뀌어졌다면, 자진하여 지고 가는 십자가는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우시더라도 십자가를 잘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구레네 시몬을 생각하시면서 잘 지고 가십시오!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생각하시면서, 예수님은 우리 위해 그 아프고 힘든 십자가를 다 지고 가셨는데, 나는 이런 십자가 하나 견디지 못하겠는가 생각하시면서, 내 몫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여인이 예수님을 믿는데 십자가가 너무 무겁게 여겨져서 주님께 늘 불평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꿈을 꾸었는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여럿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 고르라고 하시는데, 어떤 것은 금으로 되어 있고 어떤 것은 은으로 되어 있으며 또 어떤 것은 나무로 되어 있었답니다. 거기다가 그 십자가의 크기도 다 제 각기 다르더랍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금으로 된 큰 것을 고르려고 하니까 어찌나 무거운지 도저히 지탱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은으로 된 것을 골랐는데 그것도 자기에게 너무 무거워서 자기에게 맞는 것을 고르느라고 애쓰고 있을 때 주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제일 맞는 것을 내가 골라 놓았으니 이것을 지라'고 해서 보니까 나무로 된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주님 나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나도 금으로 된 것, 은으로 된 것을 달라'고 했더니 '네가 아직은 그런 십자가는 견디지 못하여 줄 수 없고 앞으로 이 나무 십자가를 잘 짊어지면 나중에는 금 십자가도 주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억울해서 한참 울다가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깨닫기를 내가 지금 지고 있는 이 십자가 같은 고난이 나무로 된 십자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너무 괴로워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십자가 같은 고난을 잘 견뎠다는 이야기입니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대가 밖으로 도망쳐도 거기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 십자가를 볼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밑으로 파고들어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뉴스 캐스터인 David Brinkley 씨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신은 가끔 빵 대신에 벽돌을 던지시는데 어떤 이는 원망해서 그 벽돌을 차다가 발가락 하나가 더 부러지고 어떤 이는 그 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집을 짓기 시작한다"

여러분이 지고 가는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원망하거나 한탄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지고 가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먼 훗날에 여러분에게 한없이 요긴하고 유익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라,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주님이 우리 죄를 지시고 고난 길에 오르신 이 주간 첫 날에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고난의 주님을 묵상하며, 나도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지고 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 이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이 철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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