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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얻는 신앙 (요3:14~17 히11:6)

by 【고동엽】 202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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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얻는 신앙  (요3:14~17 히11:6)

요한3장16절의 말씀은 성서 전체를 흐르는 구원의 진리를 한마디로 압축한 ‘작은 복음’이라고 루터는 말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한마디로 요약한 이 ‘작은 복음’을 통해 구원의 길로 나오도록 권유하심을 알게 된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이 그 나름대로의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불교는 명상을 통해 자아(自我)를 발견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구원의 방법을 가르친다. 유교에서는 윤리도덕을 통한 인격 수양을 최고의 선으로 여긴다. 또한 인도의 종교들은 고행이나 수도가 진리를 발견하는 최고의 방법이라 가르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본문에서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영생)을 얻는 다’ 고 한다.

더욱이 예수는 그 근본 본체가 하나님이시며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깊고 오묘하신 구원의 섭리와 경륜을 온전히 통찰하고 계심을 믿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시고 완성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종교는 인간의 노력과 행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죄 가운데 잉태되어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어찌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런 입장에 처한 사정을 아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직접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지 않고 구원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구원의 길로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멸망 가운데서 스스로 구원의 능력을 갖지 못한 죄인을 친히 찾아오신 것임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을 수 있기에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능함을 교리적으로 가르치게 된다. 이는 곧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인정하고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이 사실을 자신의 믿음으로 진실하게 고백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진실로 주님을 믿는 믿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오직 믿음(Sola Fidei)으로만’ 이다. 이 믿음의 신앙 안에서만 이 ‘삶을 얻는 신앙’을 누리게 된다. ‘삶을 얻는 신앙’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위대한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이 받아온 사랑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랑을 받아 오면서 오늘의 우리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서 잉태된 우리가 태어나면 부모의 사랑, 형제의 사랑 속에서 자라고 장성하면 친구와의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면 아내, 남편의 사랑, 자녀를 낳으면 자녀로부터 크고 작은 사랑을 받으며 우리는 일상을 살아간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함을 안다. 이렇게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이 곧 사람이 존재하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지금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앞으로부터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우리가 받아온 크고 작은 사랑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라는 고백에 기인한다. 이 사랑을 아는 것은 하나님은 계신다는 믿음과 하나님은 사랑 이시다는 사실의 체험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음을 통해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중요한 하나님의 사랑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변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삶을 얻는 신앙’이다.

여기에 성서는 이것을 거듭남의 삶이라고 한다. 사람이 지금까지 받아 왔던 것 중에 가장 위대한 선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수’라는 선물이다. 사랑의 속성은 주는 것이다.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 차 있으면 주고 싶어 견디지 못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람을 위하여 무엇이 아까울 것인가! 생각한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셨다. 그 사랑의 표현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밖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온전히 이룰 수 없으며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흠과 점이 없는 어린양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랑을 유일하게 깨달을 수 있는 장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십자가 밖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람으로서의 할 일은 선택의 길 밖에 없다. 이것은 삶의 위대한 선택이다. 오늘의 내가 나 된 것은 십자가의 선택뿐이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였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삶이 결정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위대한 선택임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를 선택하면 영생을 얻으리라’는 이 말은 놀라운 약속, 곧 영생이 주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을 얻는 신앙’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함을 말한다. 하나님의 공의에 참여함을 뜻한다. 예수를 믿음으로 죄를 미워하고 지난날의 삶을 회개한다. 그리고 의를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이유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삶을 얻은 신앙’은 영생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평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평강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아와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의 관계를 이룬다. 크게 강조하고 싶은 것의 ‘삶을 얻는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함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게 된다. 미움과 질투와 시기를 떠나고 사랑의 용기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삶을 얻는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에 참여하는 삶이다. 이 신앙은 영원한 삶이 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영생을 얻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는 사람이다. 세상의 어떤 도전이나 시련도 이길 수 있는 힘이 그 속에 있다. 그것은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생명이 죽음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자는 죽어도 산다. ‘삶을 얻는 신앙’은 영생을 얻는 삶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는 신앙을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그리스도교의 복음의 핵심이라고 하면서도 우리의 신앙내용이 되지 못한 현실을 감안할 때 신앙인의 허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신앙이란 행위나 생활 속에 반영되지 않는 하나의 개념이나 추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의 변화 또한 변혁을 포함하고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함도 아는 것이다. 신앙과 삶의 생활의 일치는 삶을 꾸리는데 요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이치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이 신앙과 생활의 일치된 삶의 모습이 성육신의 의미를 알게 한다. 신앙에 의한 생활, 생활에 의한 신앙, 이렇듯 이 둘은 일치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태어난 자기 아들을 통해 자신을 인류에게 계시하였다.

계시는 인간이 되신 그의 영원한 말씀으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신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인간이 반응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함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거룩한 계시의 절대적 요구에 자유롭게 복종하기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분명이 하나님의 선물이자 인간의 행위이며 은총이자 동시에 자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과 순종하고 그와 인격적으로 만나는 신앙은 결론적으로 ‘삶을 얻는 신앙’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신앙의 중심이고 기초이며 최종 목표가 되기 때문임을 알게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는 신앙으로만 가능하다.

출처/배성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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