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좇아가는 신앙생활 (빌립보서 3:12∼16)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거듭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의 신앙생활은 좇아가는 생활입니다. 인생이란 세월의 길을 따라 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나그네, 길손, 순례자, 달려는 자, 좇아가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지의 세계, 아직 어떠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미래를 향하여 가는 길이기에 불안하고,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 길에는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할 필수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지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인생의 교과서입니다. 인생의 가는 길을 가르치는 교과서는 바로 "성경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이미 인생을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적인 간증"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입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간 자들의 역사도 필요하고, 실패한 인생의 간증담도 필요합니다. 이것도 역시 성경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등불"입니다. 어두운 세월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필요하고, 빛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빛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자신이 지금도 달려가고, 좇아가는 인생의 도상에 있음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많은 경험담을 고백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선 경험(1:20-21), 그를 방해하는 사람들과 환영하던 사람들에 대한 경험(1:18-), 그리고 빈부에 대한 경험과 이를 극복하며 만족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간증하고 있습니다(4:12).
1. "뒤엣 것은 잊어 버리라"(13절).
바울은 과거의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한 뒤에 이것을 다 잊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를 본받으라"(17절)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참으로 열심있고, 봉사 잘하고, 바울 사도를 잘 돕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러나 잊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도 많습니다. 바울은 몇 번이나 "마음을 같이 하고, 뜻을 같이 하고,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이 조심스럽게 이같이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다툼이 있고, 경쟁이 있고, 걱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그 원인이 과거에 대한 자기 공로를 잊지 못하는 자들의 주도권 다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빌립보교회의 창립에 공이 있는 루디아, 또 다른 부녀자들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는 과거의 것을 잊어야 합니다. 자기가 이루어낸 공로나, 타인과의 감정이나, 오기나 부덕했던 것들을 잊어야 합니다. "잊는다"는 영어 단어는 "Forget"입니다. 이것은 "얻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얻기 위하여 라는 말과 잊어버린다고 하는 말이 연관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옛말에 "덕은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으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덕과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한은 물에 새겨야 합니다.
2. "좇아 가노라" - I am still running(13절)
바울이 본문을 기록할 때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뛰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현재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괴테는 "현재야말로 하나님의 신성이다"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도 "현재는 하나님의 일터"라고 하였습니다. 내일은 현재에 의하여 얻어지는 열매입니다. 터키의 격언에도 "오늘의 계란이 내일의 병아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시대에도 완전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완전에 이르러 무죄상태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완전히 이루었다 함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가 구원을 이루는데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의인의 단계, 성결의 단계, 그리고 영화의 단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완성은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목표를 향하여 달리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3. "푯대를 향하여"(14절)
바울 사도가 좇아가는 푯대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부활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1절). 성경에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 재림 때의 "성도의 부활", 그리고 마지막 신불신 간의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기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잡힌바 되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셋째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목표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상 받는 것을 잊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로운 재판장이 내게 의의 면류관을 주시리라"(딤후 4:9)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 충성된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 그리고 장로로서 직분자로서 최선을 다한 자에게는 금면류관을 주십니다. 좇아가는 신앙생활에 하나님은 복을 더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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