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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으로 이뤄질 역사 (이사야 61장 1-6절)

by 【고동엽】 2022. 12. 30.

성령충만으로 이뤄질 역사 (이사야 61장 1-6절) 1. 기름부음의 역사

 본문 1절에서 언급된 ‘기름을 부은 자’는 히브리어로 ‘메시야’라고 하고 헬라어로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로 따로 구별해 위임할 때 머리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특별하게 구별된 존재가 된다는 뜻을 함축합니다. 구별된 존재 의식을 가질 때 영적인 자유와 부요함이 있게 됩니다. 영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의식을 가지십시오. 그 의식이 인생을 훨씬 복되게 만듭니다.

 사무엘하 23장 1절을 보면 다윗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유언의 고백에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 다윗은 자신을 표현할 때 단순히 자랑의 차원을 벗어나 자신을 신비로운 사명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말하면서 자신을 ‘높이 세워진 자’라고 하며 스스로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았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에는 그에게 삶의 목적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자연히 그의 삶에는 힘이 넘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자신의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각박한 현실에서도 노래를 잃지 않았습니다. 다윗처럼 성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라는 의식을 가지고 자신 있게 사십시오.

2. 기쁨이 넘치는 역사

 본문 2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은혜의 해’는 50년마다 찾아오는 희년을 뜻합니다. 희년은 온 이스라엘에 자유와 회복이 선포되는 해입니다. 가난 때문에 빚지고 자기 땅을 남에게 넘긴 채 소작인으로 혹은 종으로 살던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희년의 나팔소리였습니다. 희년의 해 7월 10일,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 소리가 길게 울리면 종은 자유인이 되고 땅은 원주인에게 돌아갑니다. 매인 사람에게 그 나팔 소리보다 더 기쁜 소리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가장 위대한 희년의 소식이지만 아직도 그 소식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희년의 소식은 저 너머에서 머뭇거리고 사회의 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혜로운 비는 누구에게나 내리지만 그 비가 어떤 사람에게는 기쁨의 눈물을 낳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슬픔의 눈물을 낳습니다. 비로 인해 수입이 급감하는 직종 종사자에게 비는 한숨의 눈물을 낳습니다. 좋은 것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희년의 기쁨을 전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물리적인 평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리적인 평등 추구는 삶의 의미와 땀의 의미와 책임의식을 희석시킬 수도 있기에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가진 자의 화학적인 평등 추구입니다. 뜻있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사회는 저절로 양극단의 사회로 치닫습니다. 성령충만한 성도가 물리적인 삶을 멸시하지 않으면서도 화학적인 삶을 힘써 추구할 때 요즘 흔히 말하는 ‘케미스트리(chemistry)가 넘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3. 온전한 회복의 역사

 메시아가 임하고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지면 온전한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때 황폐하게 되었던 성읍이 다시 깨끗하게 건축되고 단장되고 신분도 제사장 신분을 회복하게 됩니다(4-6절). 오늘날 무엇보다 회복되어야 할 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부단한 자기 갱신의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물량주의, 교권주의, 세속주의, 인본주의 등으로 많이 병들어 있습니다. 그 병의 치유를 위해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늘 계속되어야 할 명제입니다. 한국 교회도 새롭게 개혁되어 영성과 십자가 정신을 회복하고 부단한 자기반성으로 세계 선교의 막중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중심적인 삶입니다. 중세 시대의 종교개혁은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자는 갱신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의 핵심 내용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성령충만과 말씀충만은 같은 것입니다.

 요새 성령충만을 오해해서 성령을 시험하며 성령충만을 과시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함부로 뱀을 집어 올리거나 독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성경 말씀(막 16:18)을 앞세워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고 하나님께도 결코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지식과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지 상식을 멸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을 영성을 과시하는 도구로 삼지 말고 말씀 안에서 바르게 추구해야 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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