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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충성하라 (요한게시록 2:8 ~ 11)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8-11
오늘은 6월 25일입니다. 56년 전, 이 땅의 비극을 체험한 날이지요. 한국은 고난을 많이 당한 나라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한국을 “고난의 여왕”(The Queen of Suffering)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한국 교회도 순교자의 피를 흘리는 고난에서 출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자체가 순교로부터 출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하였고, 1860년대에 토머스라는 26살 청년이 선교를 위해 이 땅에 도착하자마자 군인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렇게 순교로 출발했습니다. 기독교신앙은 순교적 신앙입니다. 박충건이라는 군인이 토머스 선교사를 죽이려고 칼을 들었을 때, 선교사는 그에게 성경을 주면서 “이 성경을 받고 나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박충건은 성경을 받고 토머스 선교사의 목을 쳤습니다.
박충건은 성경을 집에 가지고 가서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방에 내동댕이쳐 놓았다가 이영태라는 조카에게 주었습니다. 이영태도 읽어보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친구 최치량에게 주었습니다. 최치량은 종이가 귀한 때에 책 한 권 생긴 것이 너무 좋아서 집에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조각조각 분리하고 잘라서 벽에 싹 발라버렸습니다. 자기 집 벽을 성경으로 도배해버린 것입니다. “성경으로 집을 바른 최치량”이 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평양의 그 최치량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최치량이 결국 예수를 믿게 되었고, 토머스 선교사를 죽인 사람의 가족과 후손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왔을 때 평양에는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니 한국 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전국에 기독교인이 1만4천명에 달했습니다. 그 중 서울에 3,300명, 부산에 156명, 대구에 40명, 평양에는 무려 1만 명이 있었습니다. 평양은 본래 환락의 도시가 아니었습니까? 평양기생으로 유명한 그 환락의 도시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선교 10년 만에 전국에 예배 처소 237곳이 생겼는데 그 중에 185곳이 평양에 있었습니다. 평양은 기독교 도시가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도 총 8,700명 중에 7,200명이 평양에 있었습니다.
제가 평양에서 태어나 6.25때까지 살았습니다. 평양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주일날은 더욱 보기가 좋았습니다. 조용한 거리 곳곳에서 교회 종소리가 났습니다. 교회에 가려고 거리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성경과 찬송을 들고 교회로 가는, 어릴 때 보았던 그 아름다운 주일 아침의 모습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교 후 10년 동안 4개의 교회가 생겼는데, 그 중 마지막으로 생긴 교회가 지금부터 100년 전에 세워진 평양 산정현 교회입니다. 산정현 교회는 1906년 1월에 출발을 했습니다. 이 교회는 첫 번째 교회였던 장대현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네 번째 교회입니다. 장대현 교회는 아까 말했던 성경으로 도배했던 그 집에 사람들이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고난’이 떠오릅니다. 예수님 자신이 고난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도 순교자의 피로 출발을 했고 성장기에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생을 많이 한 교회가 평양의 산정현 교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주기철 목사님이 목회하신 그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었습니다. 주 목사님은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셨고 해방되기 바로 1년 전에 감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진 교회가 한국 교회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인 평양 산정현 교회의 모습을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에 있어서는 주기철 목사님이 대표적 상징입니다. 한국 교회 전체가 일본의 신사(神社) 앞에 무릎을 꿇었고 천주교까지 ‘신사에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 예의니 모두 가서 참배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산정현 교회는 끝까지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 일사각오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사랑입니다.
둘째는 나라 사랑입니다. 산정현 교회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105인 사건을 시작으로 산정현 교회 담임 강두찬 목사님, 김동원 장로님을 비롯해서 많은 교인들이 민족운동을 하였고 3.1운동에 앞장을 섰습니다. 산정현 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6,7년씩 언도받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만식 장로님을 중심으로 ‘물산장려운동’과 ‘국산품애용운동’ 등을 통해 나라를 살리려는 강력한 애국 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이렇듯 하나님 사랑에도, 나라 사랑에도 앞장을 섰습니다.
셋째는 이웃 사랑입니다. 산정현 교회 장로님 가운데 장기려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장로님은 외과의사로서 젊었을 때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평양의 ‘도 병원’ 원장도 지내셨습니다. 김일성 수령을 수술해서 살려낸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장로님은 수술하기 전에 김일성 수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수술은 제가 하지만 낫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을 할 때 기도를 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제가 수령님을 위해 기도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죽게 생겼는데 어쩌겠습니까? “기도하고 하시오!” 장로님은 김일성 앞에서 기도를 하고 수술을 했고 김일성은 나았습니다.
6.25때 부산으로 피난을 나온 장 장로님은 오자마자 김일성을 살린 사람이라고 잡혀갔습니다. 당시 경남도지사 등 몇 분이 나서서 그분은 예수 믿는 사람이고 의사라고 변호를 해주었습니다. 장로님도 “나에게는 적이나 친구나 아무런 상관이 없소. 아픈 사람은 누구든지 고쳐줍니다. 이것은 내가 의사가 될 때 맹세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장로님은 체구가 자그맣고 인물이 잘 생긴 분이셨습니다. 예배 시간에 가끔 테너 목소리로 독창을 할 때마다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종종 독창도 하시고 때론 사모님과 함께 이중창도 하셨지요.
장 박사님은 둘째아들만 데리고 남쪽에 내려와서 ‘복음 병원’을 시작하셨습니다. 6.25의 와중에 돈 없는 사람들, 치료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시작했고 많은 피난민과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복음 병원은 점점 커져서 지금은 의과 대학도 있습니다. 장 박사님은 한국 최고의 외과의사로서 서울대학 의과대학 교수도 하셨고 막사이사이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집 한 칸 없으셨습니다.
그 분에 대해서는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병원이 커져서 치료비를 받게 된 후에도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를 마친 후에 “앞문으로 나가면 돈을 내라고 할 테니 뒷문으로 나가시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종종 자기 돈으로 치료를 해주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청십자 의료 보험운동’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험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돈 없는 사람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그 운동을 통해 참 이웃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넷째는 교회사랑 입니다. 산정현 교인들은 남쪽에서 가는 곳 마다 산정현 교회를 세웠습니다. 부산에 가서도 맨 먼저 산정현 교회를 세웠습니다. 평양의 산정현 교회 교인들이 피난 시절에 부산의 산정현 교회를 다녔고 지금도 부산에는 산정현 교회가 남아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산정현 교인들은 사는 곳 마다 산정현 교회를 세워서 지금은 서울에 세 곳의 산정현 교회가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이민을 간 사람들은 그곳에 또 산정현 교회를 세웠습니다. 전 세계에 5개의 산정현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의 가슴 속에 있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이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올해가 산정현 교회가 세워진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주 동안 산정현 교회 100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습니다. 총신대학 교수가 산정현 교회의 100주년 역사를 책으로 써냈습니다. 제가 자란 그 교회의 역사를 읽으면서 ‘산정현 교회는 참으로 훌륭한 교회였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 가슴 속에 기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할렐루야 교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하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은 예수 믿는다고 잡아 죽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너무 자유롭고 너무 편안하고 모든 것이 좋기 때문에 영적으로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핍박이 오면 결사적으로 믿을 텐데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여러분의 가슴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한국 교회 신앙은 순교적 신앙입니다. 산정현 교인들은 한국 교회가 다 신사참배를 할 때 마지막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1945년에 해방이 되고 1950년에 6.25전쟁이 날 때까지 5년 동안 13명의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산정현 교회의 순교자가 주기철 목사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5년 사이에 공산주의자들이 13명의 산정현 교인들을 죽였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인 24일에 6명을 잡아가서 다 죽였습니다. 그렇게 목사님들과 전도사님과 장로님들의 순교적 신앙이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일본인들에게 고난을 받고 공산주의자들에게 고난을 받으면서 순교로 피 묻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한국의 기독교를 왕성케 해 주셨습니까? 이와 같은 순교적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은혜 베푸셔서, 비록 우리를 죽이려 하거나 핍박하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의 신앙만은 순교적인 신앙, 헌신된 신앙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나라 사랑에도, 이웃 사랑에도, 교회 사랑에도, 우리들의 강한 신앙으로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은 서머나 교회 이야기입니다. 서머나라는 도시 이름은 ‘고난’이라는 뜻입니다. 본래의 뜻은 bitter, 즉 쓰디쓰다, 아프다,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한국 교회가 바로 그런 고난당하는 교회, 고통당하는 교회였지요. 토머스 선교사의 순교와 일제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순교, 공산주의자들에게 당한 수많은 순교의 피가 흐르는 교회가 한국 교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8절). 죽으려면 몸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육신을 갖고 사시다가 여러분과 저의 죄를 다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와 땀을 흘리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여러분과 제가 영원히 죄 사함 받고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성찬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찬은 ‘주님,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습니다. 예수께서 흘리신 그 피가 내 죄를 영원히 덮어 주신 것을 믿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순교적 신앙 고백으로 오늘의 성찬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나태한 신앙, 흔들리는 신앙, 약해진 신앙들이 오늘 성찬을 통해서 순교적 신앙으로, 헌신된 신앙으로 새롭게 되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고난을 받는 교회요 가난한 교인들이었습니다.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9절).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가난한 것, 궁핍한 것, 핍박 받는 것을 내가 알지!” 예수 믿는다고 고난을 받고 숨어 도망 다니느라 생계를 제대로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가족이 너무 고생을 했습니다. 자녀들이 여럿 있었는데, 아버지가 7년 동안 감옥에 계시니까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평양 노회에서 주 목사님을 교회에서 해임시키고 쫓아냈습니다. 갈 곳이 없는 가족은 조그만 단칸방에 겨우 들어가 살았고 교인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들키면 안 되니까 밤중에 몰래 가져갔지요. 제 어머니도 쌀을 한 주머니씩 넣어서 밤에 그 집 앞을 지나가며 울타리 뒤로 탁 던져 놓고 가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교인들이 던져주는 식량으로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가난함, 궁핍함을 아는 기독교인들이 우리 믿음의 선조들입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가난을 견뎌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현상은 가난과 궁핍인데)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9절)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했고 고생을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그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부요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부자라고 해도 하나님과 비교해서 뭐 그리 부자입니까? 그거 별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질적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아니하시고 마음과 영혼이 부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성찬을 받으면서 여러분의 영혼이 새로워지고 영혼의 생명이 솟아나서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부자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누가 서머나 교회를 핍박했습니까? 9절에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떠들었으나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사단의 회”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그들을 통하여 핍박을 했다고 했습니다. 누가 주 목사님을 정죄하고 누가 주 목사님을 쫓아냈습니까? 다른 목사들입니다. 누가 5년 동안 산정현 교회 교인 13명을 죽였습니까? 자칭 기독교 연맹이요, 자칭 노회입니다. 물론 공산당들이 함께 한 것이지만, 마귀가 역사하여서 자칭 기독교인, 자칭 유대인들이 핍박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잘 믿는다고, 의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조심하십시오. 자칫 잘못하면 여러분이 성도를 핍박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우리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우리가 70세, 80세, 90세가 되도록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그날까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 충성하게 되길 원합니다. 환란이나 핍박이나 건강이나 질병이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충성하는 우리의 신앙이 되길 원합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신앙이 흐트러지고 우리의 모습이 흐트러졌다면 오늘 성찬을 받으실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신앙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전심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산정현 교회와 같은 신앙이 할렐루야 교회에도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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